제  목 : 

무엇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글쓴이 :  바울라님 2019-04-30 12:17:45   ... 조회수(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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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팔일 축제 토요일]

<그 여자에게 나타나셨다는 말을 듣고도 믿지 않았다.>

2019.4.27

 

제1독서 <우리로서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사도행전  4,13-21

 

복음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선포하여라.>

✠ 마르코  16,9-15

 


 

무엇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오늘 복음을 보다보니 갑자기 토마 사도가 생각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토마 사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 믿는 이는 행복하다.”

그런데 보지 않고 믿는 것이 가능할까요?

주님께서 보지 않고 믿는 이들은 행복하다고 말씀하신대로 

그들은 참으로 행복한 것입니다.

하느님 체험 없이 하느님을 따르는 이들,

그저 자신의 자연적 본성으로 따르는 이들은 얼마나 행복합니까?

사실 일반적으로는 보고 들은 이들이 하느님을 따르죠.

신앙을 이어가는 데에 하느님 체험이 참으로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거나 아니면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거나 하면서 우리는 하느님을 향해 갑니다.

우리는 최소한 말씀의 전례 때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우리에게 응답을 해주시기에 우리는 신앙을 이어나갑니다.

이는 참으로 감사할 일입니다.

 

주님, 제게 응답해 주셨으니 제가 당신을 찬송하나이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보지 않고 믿는 단계를 요구하지는 않으십니다. (정말 보지 않았다면 예수님과 대화한 적도 없을 테니 보지 않고 믿으라고 할 이유가 없으시겠지만)

그러나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꾸짖는 이유는 본 이들의 증언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이야기를 들었지만 믿지 않았죠.

그리고 또 유다 지도자들과 율법학자들은 사도들의 이야기를 듣고 믿지 않습니다.

이렇게 오늘 복음과 독서에서는 두 종류의 믿지 않는 이들을 보게 됩니다.

 

마침내, 열한 제자가 식탁에 앉아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셨다.

그리고 그들의 불신과 완고한 마음을 꾸짖으셨다.

되살아난 당신을 본 이들의 말을 그들이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러한 단계를 거칩니다.

먼저 아무것도 지니지 않은 이들의 증언을 듣습니다.

유다 지도자들이 바라보았을 때 제자들은 아무것도 아닌 이들이었고

예수의 제자들이라는 이유로

스승의 명예를 다시 세우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에게 여자의 증언은 무엇이었을까요?

과거 이스라엘에서는 증인으로 남자 둘이 오면 진실로서 받아들이지만

여자는 수백 명이 와도 증인으로 채택되지 않았습니다.

여자의 말은 그렇게 귀담아 들을 것이 아니었죠.

이들은 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이 단계에서는 상대의 가죽옷에 따라 판단을 한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살아 계시며

그 여자에게 나타나셨다는 말을 듣고도 믿지 않았다.

 

그 다음으로 효력이 있는 이들의 증언을 듣습니다.

유다 지도자들은 '병이 나은 이'라는 명백한 표징과 마주합니다.

또한 제자들에게도 효력이 있는 증언 남자 제자 둘의 증언을 듣게 됩니다.

그러나 이들은 듣지 않습니다.

자신의 것에 취해서 이를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유다 지도자들은 하느님의 아들을 사형시킨 자신들의 권위가 흔들릴까 두려웠고

제자들은 자신들의 슬픔에 취하였기에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하나는 자신의 가죽옷에 중요해서

하나는 자신의 감정에 중요해서 받아들이지 못하죠.

 

“저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저들을 통하여 명백한 표징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에게 알려진 터이고,

우리도 그것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이 일이 더 이상 백성 가운데로 퍼져 나가지 않도록,

다시는 아무에게도 그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엄중히 경고만 합시다.”

 

제자들은 마침내 예수님께서 오셔서 이를 믿게 됩니다.

이 순간 제자들 안의 가죽옷은 모두 무너집니다.

그들의 영혼은 예수님 안에 자리 잡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영혼을 당신 안에 자리 잡게 하시며

그제야 그들에게 사명을 부여해주십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유다 지도자들과 율법학자들에게는 예수님이 가지 않았을까요?

효력이 없는 이들에게서 효력이 있도록 표징이 드러난 그때도 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선포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여러분의 말을 듣는 것이

하느님 앞에 옳은 일인지 여러분 스스로 판단하십시오.

우리로서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자들과 유다의 지도자들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요?

둘은 같은 과정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확인했습니다.

믿지 않았지만 하느님이 드러났을 때

하나는 마침내 믿었고, 하나는 마침내 믿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뵈며 자신과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유다 지도자들은 주변을 살필 뿐입니다.

주변이 나에게 유리한 상황인가 아닌가만 바라볼 뿐입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의 입으로 선포하지만 유다지도자들은 주변의 상황에 따라 이야기합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의 형제를 바라볼 때 여러분은 무엇을 바라봅니까?

형제의 가죽옷입니까? 형제 안에 계시는 하느님입니까?

하느님과 마주했을 때 무엇을 바라봅니까?

주변입니까? 하느님과 나의 관계입니까?

여러분이 집중해야할 지점을 명확히 하십시오.

그것이 부활을 받아들일 수 있는 하나의 방향입니다.

네이버블로그 양 세마리의 잡생각들 https://blog.naver.com/crodei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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