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호수에 큰 풍랑이 일어 배가 파도에 뒤덮이게 되었다.>
2019.7.2
제1독서 <주님께서 소돔과 고모라에 유황과 불을 퍼부으셨다.>
▥ 창세기 19,15-29
복음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 마태오 8,23-27
사람은 새로운 고난에서 흔들립니다.
사람은 살아가다보면 각오라는 것을 합니다.
어떤 일을 하는 것에 앞서
다가올 고난에 대해 마음을 다져서 그 고난을 이겨낼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만약 금식을 한다면 그 고난은 배고픔일테고,
대침묵을 한다면 다가올 고난은 말하고 싶다는 욕망일 것입니다.
이와 같이 무언가 하기 전에 우리는 각오를 통해서 고난을 참아내며 선행을 합니다.
아니면 고난이 너무나 익숙한 것이기에 자연스럽게 살아가면서 선행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고난이 올 때는 어떻게 될까요?
사람들의 대부분은 무너지고 맙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도 그런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롯이 망설이자 그 사람들은 롯과 그의 아내와 두 딸의 손을 잡고
성읍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주님께서 롯에게 자비를 베푸셨기 때문이다.
오늘 독서에서 롯의 가족이 나옵니다.
롯의 가족은 소돔과 고모라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따르며 살아간 사람들입니다.
이들 가족은 온갖 악의 원성이 가득한 성읍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는 의인으로서 살아갑니다.
그런 의인으로서 받는 수많은 역경 속에서도
그들과 관계를 맺으며 의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 가족들에게 예상치 못한 사건이 있었죠.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이었습니다.
롯은 자신이 하느님을 통해서 맺어온 관계들이 멸망할 것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 관계를 내려놓게 되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롯의 아내는 주변의 혼란한 상황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지 못하고 멸망을 향하여 고개를 돌리고
롯의 딸들은 하느님을 믿지 못하고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 절망하여 근친상간을 벌이게 됩니다.
자신이 생각하지 못한 상황에서 사람은 새로운 선택, 새로운 행동을 하게 되는데
대부분 그 과정에서 너무 급하게 행동하다보니 식별을 못하고 행동하곤 합니다.
복음에서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르면서 수많은 환난과 고난을 예상했을 것입니다.
그게 물에 빠져 죽는 거라고는 생각 못했던 거죠.
이 폭풍우 속에서 두 가지를 살펴봅시다.
어부가 아닌 제자들과 어부였던 제자들의 경우가 있습니다.
어부가 아닌 제자들은 배를 타고 호수로 나갈 일이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거의 새로운 고난이죠.
어렴풋이 들어오기만 했던 고난을 자신이 직접 겪는 새로운 고난 속에 있습니다.
어부들도 마찬가지로 새로운 상황입니다.
호수에 배를 띄워 살아가던 이들에게 폭풍우는 익숙한 것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 익숙함을 뛰어넘는 상황이 생긴 거죠.
예를 들어 참다 참다 폭발한 상황,
상황은 익숙해도 분노는 익숙한 상황이 아닙니다.
우리도 이런 경우가 많죠.
생각지도 못한 고난을 겪거나 참다 참다 표출된 익숙하지 않은 감정들 속에서
우리는 혼란스러워 합니다.
이에 예수님께 다가가 부르짖지만 예수님께서는 냉정하게 말씀하십니다.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새로운 것에 대해 혼란이 크다는 것은
어찌 보면 나에게 집중에 되어있는 상황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나에게는 새로운 것이지만 하느님께는 새로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섭리 안에 있던 일이고 보호해 주실 준비를 다 해주시고
더 나아가 이를 통해 새로운 은총을 받게 해주실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 안에서 살아간다면 모든 새로움 안에서도 평정심을 갖고
하느님을 따르며 모든 것을 맡길 수 있습니다.
마치 예수님처럼 말이죠.
호수에 큰 풍랑이 일어 배가 파도에 뒤덮이게 되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주무시고 계셨다.
물론 예수님과 같이 새로운 상황에 혼란을 겪지 않는 것은 힘들 것입니다.
그러나 혼란을 겪더라도 자연스럽게 하느님 관계 안에서 행했던 것들을
그대로 따르고자 해야 합니다.
롯은 그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으로 받은 것을 따르려 노력했습니다.
그것이 최대한 많은 관계를 구하려 한 것입니다.
그래서 초아르를 어떻게든지 살린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느님 사랑을 통해 배운 것을 선택한다면 그 자유의지는 받아들여집니다.
생명을 향하는 길이며 하느님께서도 사랑으로 받아들여주시기 때문입니다.
나 주님께 바라네. 주님 말씀에 희망을 두네.
우리가 하느님 안에서 충만함 가운데 배운 것들 따랐던 것들을
우리가 힘들어 할 때 새로움에 혼란스러울 때 항상 유지할 수 있어야합니다.
우리의 각오를 다시금 되돌아봅시다.
단순히 내가 무엇을 하겠다라는 다짐이 아닌
하느님 안에서 충만했던 것과 같이
하느님 안에서 계속해서 살아갈 것을
하느님께 받은 대로 살아갈 것을 다짐하고 각오해봅시다.
그러면 새로움 안에서도 하느님의 뜻을 따르며 살아가는 우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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