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중 제16주간 월요일]
<그분께서 너에게 이미 말씀하셨다>
2018.7.23
제1독서 <사람아, 주님께서 너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이미 말씀하셨다.>
▥ 미카 6,1-4.6-8
복음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와 함께 되살아날 것이다.>
✠ 마태오 12,38-42
여러분은 무엇이 옳은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솔직하게 제 약점을 드러낸다면 예전에 제가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 거짓말은 '당장 내가 이 진실을 이야기하면 나는 큰일 날 것이다' 라는
불안감 때문에 그런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군대에서 배운 것이 있습니다.
분대장 하기 전에도 배웠고, 분대장을 하면서도 분대원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무슨 일이 생기면 반드시 보고해라.
너에겐 큰일이라고 생각해도 위에서 해결하면 별거 아닌 경우도 많다.”
실제로 저도 보고함으로서 위태롭게 생각했던 문제가 해결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한 번은 휴가를 나왔는데 집에 오고서 보니까 휴가증이 사라졌었습니다.
어떻하지 고민하다가 부대에 전화해서 보고했더니 부대에선 이렇게 말하더군요
“그런 거 별거 아니다. 만약에 헌병에게 잡히면 부대에 연락해라
우리가 얘기하면 해결되니까 너무 걱정 말아라” 그렇게 쉽게 해결되었었습니다.
오히려 정 반대로 보고를 안 하면 이야기가 복잡해진 경우도 있었습니다.
통신기기가 고장 났었는데 후임이 큰일인 줄 알고 보고를 안했습니다.
실제 훈련 들어갔더니 그것 때문에 애를 많이 먹었습니다.
평상시 점검할 때 보고했으면 통신병이 아닌 저라도 가서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는데
급한 상황에서 하려니 일이 복잡해진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오늘 복음을 바라보았습니다.
사람아, 무엇이 착한 일이고 주님께서 너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그분께서 너에게 이미 말씀하셨다.
공정을 실천하고 신의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느님과 함께 걷는 것이 아니냐?
우리는 무엇이 옳은 것인지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선택을 할 때,
진정하고 가만히 기다리면
마음 속에 조용히 울려 퍼지는 목소리가 있음을 우리는 압니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그 목소리로부터 귀를 막게 됩니다.
내 당장 급한 마음 때문에,
치밀어 올라오는 감정 때문에
우리의 영혼은 조용히 울려 퍼지는 양심의 소리를 듣지 않고 귀를 닫습니다.
급한 마음과 치밀어 오르는 감정,
이 두 개의 것은 마귀가 심어놓은 가라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급한 마음에 외치는 소리를 들어보십시오.
감사하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여 외치는 소리를 들어보십시오.
급하게 믿어야겠다는 마음이 외치는 소리를 들어보십시오.
내가 무엇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가고
무엇을 가지고 높으신 하느님께 예배드려야 합니까?
번제물을 가지고,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분 앞에 나아가야 합니까?
수천 마리 숫양이면, 만 개의 기름 강이면 주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내 죄를 벗으려면 내 맏아들을,
내 죄악을 갚으려면 이 몸의 소생을 내놓아야 합니까?
“스승님, 스승님이 일으키시는 표징을 보고 싶습니다.”
제가 예전 묵상글에서 마귀의 뜻은 인간의 승낙이 없다면 유지할 수 없기에
사람에게 급한 결정을 촉구한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급한 식별은 우리가 옳은 것에 대한 양심의 목소리를 닫게 만듭니다.
그래서 무언가를 식별할 때 조용하고 여유로운 식별이 필요한 것입니다.
만약에 그 식별하는 과정에서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 마귀의 뜻이라면
마귀는 우리가 승낙하지 않고 무시하거나 침묵하면 극심하게 외칩니다.
'이걸 믿지 않으면 죽는다.',
'이것을 선택하기 위한 정보를 빨리 모으지 않으면 인생을 허비할 것이다.'.
'이걸 하지 않으면 큰 걸 잃을 것이다.',
'지금 당장 이렇게 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냐?'
그렇기에 식별은 당장 급하게 식별할 것이 아니라
일단 두고 보면서 천천히 식별해야하는 것입니다.
영화에서의 무당처럼 사람을 보면 바로 마귀라고 할 수 있는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마귀의 뜻은 조용히 또 길고 여유롭게 식별해야하는 것입니다.
제가 치밀어 오르는 감정은 사람이 올바르게 판단하지 못하게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렇다고 감정을 버리고 로봇처럼 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갖되 듣는 것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모님께서 좋은 모범을 보이십니다.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을 잃으신 성모님께서는
성전에서 문답하는 예수님을 찾고서 자신이 느꼈던 불안,
제멋대로 돌아다닌 예수님에 대한 분노를 감추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 것을 관두지 않으셨습니다.
듣고 곰곰이 생각하는 것을 관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귀를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늘 상 기억해야합니다.
오늘 너희는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여러분의 선택의 순간, 조용히 내 내면의 식별을 들으십시오.
무엇이 옳은 것인가?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치밀어 오르는 감정, 급한 마음들이 그 옳은 것들을 가리고 있습니다.
감정과 함께 급한 마음도 있는 그대로 두고서 조용히 여유롭게 식별해보십시오.
여러분은 이미 무엇이 옳은지 알고 있습니다.
이 옳은 것은 어떠한 사실이나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이 공정이며, 무엇이 신의이며,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옳은 행동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금 떠올리십시오. 여러분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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