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성모님의 영광, 모두 하느님께서 이루신 일입니다.

글쓴이 :  바울라님이 2018-08-15 22:55:20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181)
    이 게시글이 좋아요 싫어요
 

[성모 승천 대축일 - 낮 미사]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2018.8.15

 

제1독서   <태양을 입고 발밑에 달을 둔 여인>

▥ 요한 묵시록   11,19ㄱ; 12,1-6ㄱㄷ.10ㄱㄴㄷ

제2독서   <맏물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다음은 그리스도께 속한 이들입니다.>

▥ 코린토 1서   15,20-27ㄱ

복음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습니다.>

✠ 루카  1,39-56

 


 

성모님의 영광, 모두 하느님께서 이루신 일입니다.

 

성모님, 우리 가톨릭에서 가장 공경한다는 의미의 상경을 받으시는 분입니다.

그분이 받으신 영광, 오늘 성모승천 대축일은 그 영광을 바라보며 기억하는 날입니다.

오늘 매일미사에서는 오늘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성모 승천은 그리스도 안에서 산 모든 사람이 누리게 될 구원의 영광을

미리 보여 주는 ‘위로와 희망의 표지’이다.

 

이 상징은 우리에게는 희망의 표지입니다.

또한 고난당하는 우리에게 위로의 표지입니다.

그런데 희망이라 한다면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이루어질 것을 그렇게 부릅니다.

이루어지지 않았고 평생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우리는 희망이라 부르지 않습니다.

예를 들자면 우리나라에 수많은 달인들이 있습니다.

그 달인들을 보면서 와 신기하다...라는 생각은 들지언정 희망이 생기지는 않습니다.

와 저런 사람도 있구나 싶죠.

내가 저렇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뛰어나다는 것이 우리에게 희망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톨릭은 개신교와의 싸움에서의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 상처를 통해 가톨릭 내부에 성모신심의 왜곡이 발생했습니다.

개신교도들이 '왜 마리아를 숭배하느냐?' 라고 묻는다면

그 답변은 성모 승천의 의미와 같습니다.

이렇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숭배가 아닌 상경 즉 최고로 공경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은

우리 신앙태도의 모범이며 위로와 희망의 표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답변으로 성모마리아께서 뛰어나고

능력이 출중하시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통해 성모님을 통해 선포된 희망의 표지가 무너졌습니다.

제가 들은 개신교에 반박하기 위한 허구들을 이야기하겠습니다.

“가나안의 혼인잔치에서 성모님은 하느님의 뜻을 바꾸었다.

즉 하느님을 다룰 수 있는 분이다.”

“성모님은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고서 교회의 수장이었다.”

“그런 수장인 성모님께 눈치를 보던 예수님을 모른다했던 베드로는

성모님의 눈치를 보며 교회에 못 들어오고 떠돌았지만

성모님께서 용서하시어 교회에 다시 돌아왔다.”

성모님은 교회 내의 영웅주의에 첫 번째로 또 수많이 희생된 성인이실 것입니다.

이런 영웅주의는 하느님이 아닌 보이는 사람을 깃발 삼아 그들을 따릅니다.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는데 큰 공로를 세워야하는 것처럼 묘사합니다.

영웅주의는 만민을 절망하게 만듭니다.

하느님의 영광과 그 안에서 성인들이 함께 누리는 영광은 우리와 관계없도록 묘사합니다.

그러나 이런 영웅주의를 비판하는 성경구절이 있습니다.

 

죽음이 한 사람을 통하여 왔으므로 부활도 한 사람을 통하여 온 것입니다.

 

우리는 부활과 생명을 예수 그리스도 단 한 사람을 통하여 받습니다.

그것은 성모님도 아니고 어떤 예언자도 아니며

사적 계시자도 그 역할을 대신할 영웅들이 아닙니다.

제가 그들을 반박하여 주장합니다.

성모님께서는 스스로 하신 일이 아무것도 없으며

단지 하느님의 영광과 아들의 영광에 함께하시어 그 영광을 누렸을 뿐입니다.

하느님 없이 성모님 혼자만 두고 보면 아무것도 하신 것이 없습니다.

제 주장에 비판할 것이라면 비판하십시오.

그러나 우리의 신앙의 기본이 이것임을 기억하고 비판하십시오.

오늘 영광스러운 성모님,

태양을 입고 발밑에 달을 두고 머리에 열두 개 별로 된 관을 쓴 여인을 묘사하는

요한 묵시록을 봅시다.

 

태양을 입고 발밑에 달을 두고

머리에 열두 개 별로 된 관을 쓴 여인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 여인은 아기를 배고 있었는데,

해산의 진통과 괴로움으로 울부짖고 있었습니다.

또 다른 표징이 하늘에 나타났습니다.

크고 붉은 용인데, 머리가 일곱이고 뿔이 열이었으며

일곱 머리에는 모두 작은 관을 쓰고 있었습니다.

용의 꼬리가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휩쓸어 땅으로 내던졌습니다.

그 용은 여인이 해산하기만 하면 아이를 삼켜 버리려고,

이제 막 해산하려는 그 여인 앞에 지켜 서 있었습니다.

이윽고 여인이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사내아이는 쇠지팡이로 모든 민족들을 다스릴 분입니다.

그런데 그 여인의 아이가 하느님께로, 그분의 어좌로 들어 올려졌습니다.

여인은 광야로 달아났습니다.

거기에는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신 처소가 있었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여인은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단지 낳는 것만 합니다.

그러나 이 배고 있던 아이 예수 그리스도도 성령을 통해서 잉태한 것이며

하느님의 뜻으로 낳은 것입니다.

그녀가 도망친 것도 하느님께서 정해준대로 도망쳤습니다.

그녀 스스로 무언가를 한 것은 없습니다. 모두 다 하느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복음을 보겠습니다. 엘리사벳은 성모님을 이렇게 찬양합니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엘리사벳이 찬양한 주님의 어머니, 세상의 눈으로 바라봅시다. 무엇입니까?

시골에 사는 여중생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시골에 사는 여중생이

하느님께서 그리 하셨기 때문에 주님의 어머니가 된 것입니다.

이에 대해 성모님께서도 솔직하게 고백하십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노래는 나는 비천했으나 하느님께서 굽어보셨기 때문에

또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에 큰 사람이 되었음을 고백합니다.

성모님은 응답하셨을 뿐 어떠한 노력도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만세가 복되다고 할 사람이 되었습니다.

바로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했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께서도 이를 그리스도인들도 마땅히 걸어야할 길임을 보여줍니다.

 

맏물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다음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그분께 속한 이들입니다.

 

우리가 살아나는 것은 우리의 노력이 아닌

그분께 응답하였기에 그리스도께 생명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공로는 하느님의 업적이며 그 공로에 우리의 노력이 1도 들어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단지 하느님을 믿으며 그분을 따른 것뿐입니다.

주인과 도구의 관계에서 종종 주인에 따라 도구가 영광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도구의 영광은 도구의 공이 아닌 온전히 주인의 공입니다.

여러분이 신앙을 통해 받는 영광들은

여러분이 기도를 열심히 해서 받은 영광도 아니고

미사를 많이 참석해서 얻은 영광도 아니며

선행을 많이 하였기 때문에 얻은 영광도 아닙니다.

그저 하느님 안에 속하기에 받은 영광입니다.

우리의 공로는 하느님 안에 있었다는 것뿐이며

더 나아가 교회의 공로도 하느님 안에 있었다는 것뿐입니다.

 

형제 여러분 성모님의 영광을 보며 성모님의 삶을 본받으십시오.

우리는 단지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함으로서 이 모든 영광을 누리는 것입니다.

언제나 내가 어떻게 해보려하기 전에 하느님의 뜻을 추구하십시오.

내가 하는 것이 아닌 하느님께서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무언가를 지시받았더라도 그것은 하느님의 뜻을 기다려야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파멸의 임무를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겸손되이 하느님의 뜻을 기다리십니다.

이 모든 영광은 내 노력이 아닌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스승의 뜻에 따르며 그 스승을 따랐던 가장 모범적인 제자의 모습을 본받으십시오.

하느님의 영광에 살아가는 것은 내 뜻이 버리고 하느님의 뜻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때에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권세와 모든 권력과 권능을 파멸시키시고 나서

나라를 하느님 아버지께 넘겨 드리실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모든 원수를 그리스도의 발아래 잡아다 놓으실 때까지는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셔야 합니다.

네이버블로그 양 세마리의 잡생각들 https://blog.naver.com/crodeiran

  

카카오스토리에서 공유하기 페이스북에서 공유하기 네이버 밴드에서 공유하기 트위터에서 공유하기 구글+에서 공유하기 Blogger에서 공유하기


   
  댓글 쓰기

 
로그인 하셔야 댓글쓰기가 가능합니다. 여기를 눌러 로그인하세요.
 

이전 글 글쓰기  목록보기 다음 글

본 게시물에 대한 . . . [   불량글 신고 및 관리자 조치 요청   |   저작권자의 조치요청   ]
마리아사랑넷 | 이용약관 | 개인정보보호정책 | 메일추출방지정책 | 사용안내 | FAQ | 질문과 답변 | 관리자 연락 | 이메일 연락
Copyright (c) 2000~2021 mariasarang.net , All rights reserved.
가톨릭 가족공간 - 마리아사랑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