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다른 것과 틀린 것

글쓴이 :  바울라님이 2018-08-09 06:26:18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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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8주간 목요일]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저승의 세력도 교회를 이기지 못하리라.>

2018.8.9

 

제1독서   <나는 새 계약을 맺고 죄를 기억하지 않겠다.>

▥ 예레미야서  31,31-34

복음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 마태오  16,13-23

 


 

다른 것과 틀린 것

 

하느님은 어떤 분이신가?

이 질문에 대해서는 참 다양한 답변이 나옵니다.

많은 사제의 강론을 들어보신 분들은 느끼시겠지만

각각의 사제가 느낀 하느님이 다릅니다.

다양한 영적 지도자를 만난 분들은 알겠지만

각각의 지도자가 느낀 하느님이 다르죠.

그렇기에 그들이 선포하는 복음의 느낌이 다릅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굉장히 크신 분인데

우리의 적은 식견으로 보기에 각각의 느끼는 하느님이 다른 것이라고 합니다.

마치 장님들이 코끼리를 만지고서 논쟁하는 꼴입니다.

제가 제 동네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하나님의 교회? 의 선교사를 만났는데

자신들은 아버지 하나님 말고도 어머니 하나님도 섬긴다고 이야기하면서

제가 “저는 천주교 신자입니다.” 하니

천주교는 하느님을 잘못 섬기고 있다고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어머니 하나님을 제대로 섬겨야한다고 말이죠.

솔직히 어머니 하나님에 대해서는 크게 논쟁하지 않았습니다.

불쾌하지도 않았고요.

그런데 제가 불쾌했던 하나는 하나님께서는 무조건 이렇기에

다른 것들은 다 틀렸다 하는 태도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다르다와 틀렸다의 개념을 명확히 잡고 가야합니다.

다르다는 개념을 잡음으로서 우리끼리 쓸데없는 논쟁을 피해야할 필요가 있고

틀렸다는 개념을 잡음으로서 잘못된 길로 들어서지 않는 것이죠.

하느님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문제는 별로 상관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별 말씀 없으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하느님을 따뜻한 분으로 생각하든, 차가운 분으로 생각하든,

세례자 요한이라 생각하든, 엘리야라 생각하든, 예언자로 생각하든

위의 예시에서처럼 어머니라 생각하든, 아버지라 생각하든,

심지어 쓰레기라 생각하든 별 상관없습니다.

존 그린 성인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자신의 결혼 길을 막은 하느님이란 이름이 짜증나서

“너 나 좀 봅시다. 본 때를 보여주겠다.”

이러면서 수도원 들어간 사람이 그 성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 것은 관심을 두지 말라고 하십니다.

어떻게 생각하든 더 중요한 것이 있거든요.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내가 그분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내가 하느님과 관계를 맺고 있느냐?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당신을 세례자 요한이라 생각하든

엘리야라 생각하든 예언자라 생각하든 별 상관이 없으십니다.

결국 관계를 맺고 있느냐 그것이 문제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관계를 맺고 있느냐를 중요하게 보시고

내가 하는 대답으로서는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느냐가 중요한 질문임을 보이십니다.

내가 어떤 이들의 말을 따라가서 묻히듯 하는 신앙이 아닌

내가 관계를 맺어야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모르고 있거나 잊었거나

무관심한 태도를 지니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다른 이에 대해서는 관계를 시작하도록 이끌고

그 다음은 하느님과 그 사람의 관계로 넘기는 것이

우리가 이끄는 방법인 것입니다.

다른 이는 하느님께 맡기고 우리의 관계에 집중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독서에도 나타나 있습니다.

 

그때에는 더 이상 아무도 자기 이웃에게, 아무도 자기 형제에게

“주님을 알아라.” 하고 가르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모두 나를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하느님을 따르고 있는지 신경 쓰지 말고

내가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느냐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다른 누군가가 하느님을 사랑하든, 증오하든 관심이 많고

자신과 다르다면 지적하는 이들이 있는데

누구든 하느님을 사랑하든 증오하든지 간에 관계를 맺고 있다면

하느님께서 베드로가 대답한 정답으로 이끄실 것이란 것입니다.

다른 이가 하느님을 어떻게 인식하든

그것은 우리가 다른 것이라고 것으로 인식하고 하느님을 믿어야합니다.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자 이제 틀린 것입니다.

정답에 도달했던 베드로 사도는 한 가지 사고를 칩니다.

우리가 정답에 도달해도 이것은 틀린 것이란 것입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기 시작하였다.

“맙소사, 주님! 그런 일은 주님께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이 틀린 것을 한 문장으로 이야기하겠습니다.

하느님의 자유의지를 뺏는 행위는 틀린 행위입니다.

우리도 알다시피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자유의지를 빼앗으신 적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다른 것이 인정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든 증오하든 그 선택에 대해서는 존중해주십니다.

문제는 하느님께서도 하시지 않으셨던 마귀에게 배운 행동을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바로 자유의지를 빼앗은 것이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무언가를 하시든 받아들일 수 있어야하지

하느님을 이래야한다, 신부님은 이래야한다,

신학생은 이래야한다, 수녀님은 이래야한다 어떤 직업은 이래야한다,

이것은 틀린 것입니다.

모든 이가 방식은 다를 수 있습니다.

그것이 하느님을 기억하면서 하는 행동이면 틀린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틀린 것들은 대부분 하느님과 그분의 가르침을 모르거나,

잊었거나 무관심한 상태에서 나타납니다.

그 틀린 것에 대한 지적은 옳지만 다른 방식에 대한 지적은 옳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의 반석인 베드로는 시작부터 자유의지를 빼앗으려는 시도를 했다가

틀린 것으로 마귀의 행동으로 지적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시작부터 강하게 우리의 반석에 틀린 것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내가 하는 지적을 생각해봅시다.

하느님을 기억하고 계십니까?

하느님께서 주신 다른 이의 자유의지를 기억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최고의 계명을 지키고 있습니까?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신명 6.5

 

하느님을 잊고 살지 않으십니까?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레위 19.18

 

내 자유의지는 잘 찾으면서 다른 이의 자유의지를 억압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베드로의 반석에 세워진 교회에 속한 그리스도인 형제 여러분

다른 것을 받아들이고, 틀린 것을 용납하지 마십시오.

네이버 블로그 양 세마리의 잡생각들 https://blog.naver.com/crodei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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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카엘라모바일에서 올림 (2018/08/09 10: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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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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