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무언가를 죽일 각오를 하는 것은 좁은 문이 아닙니다.

글쓴이 :  바울라님이 2018-07-28 05:28:48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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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6주간 토요일]

<′우리는 구원받았다.′ 고 말할 수 있느냐? 이런 역겨운 짓들이나 하는 주제에!>

2018.7.28

 

제1독서  <내 이름으로 불리는 집이 강도들의 소굴로 보이느냐?>

▥ 예레미야서  7,1-11

복음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 마태오  13,24-30

 


 

무언가를 죽일 각오를 하는 것은 좁은 문이 아닙니다.

 

'대의를 위해 소를 희생해야한다' 라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대의를 위해 무언가를 희생시켜야할 때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극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사람을 죽이는 행동에도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대의'를 위해 어려운 결심을 했다는 이야기이죠.

그리고 싸우기 위해서는 그런 어려운 결심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생각해봅시다.

사람을 죽이는 것이 어려운 일일까요?

크게 착각하는 것들 중 하나입니다만 사람을 죽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육체적으로는 총이라는 무기가 있다면,

손가락을 굽힐 수 있는 사람이라면 사람을 죽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한다면 사람 죽이는 데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은

육체적인 것보단 심적인 것이라고 이야기가 나올 것입니다.

그러나 심적으로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냥 여러분 마음 가는대로 행동하면 사람 죽이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미워할 것을 미워하고, 내치고 싶은 것을 내치고, 모욕하고 싶은 것을 모욕하고,

뽑아버리고 싶은 것을 뽑아버리면 됩니다.

명분도 간단합니다.

우리 식으로 이야기하면 내가 마귀라고 생각하니까 '이건 마귀다! 죽이자' 얼마나 쉽습니까?

그렇게 죽이고서 나는 하느님의 일을 했다고 이야기하면 되는데 뭐가 어렵겠습니까?

나는 대의를 위해서 그렇게 했다고 하면 되는데 무엇이 무섭겠습니까?

그러나 이런 이들에게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이름으로 불리는 이 집 안에 들어와 내 앞에 서서,

′우리는 구원받았다.′ 고 말할 수 있느냐?

이런 역겨운 짓들이나 하는 주제에!

 

사람들은 정말 선택하기 쉬운 결정을 어려운 결정을 한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그러고서는 비장한 척을 합니다.

아니면 스스로 비장해야한다고 착각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무언가와 싸울 때 하는 '죽인다는 각오'는 쉬운 것입니다.

남을 희생시키는 것은 그저 자신의 욕망대로 따라가면 쉽게 이룰 수 있는 선택이죠.

'죽인다는 각오'는 좁은 문이 아닌 정말 넓고

이 세상 사람들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그런 넒은 문입니다.

 

어렵고 좁은 문은 무언가와 싸울 때

'내가 죽을 각오'를 하고

더 나아가 싸우되 '죽이지 않을 각오'를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쉽게 '죽일 각오'는 해도 정작 '죽을 각오'는 쉽게 못합니다.

다른 공동체와 사람을 죽일 각오는 해도

정작 나 자신과 내 공동체가 죽을 각오는 못합니다.

전쟁 때 적군은 손쉽게 죽이고서 아무렇지 않아 하면서

아군이 죽은 것은 슬퍼하는 모습이 바로 그 대표적인 모습입니다.

낙태나 인공수정 등 남을 희생시키는 것도 쉬운 선택의 대표적인 모습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비유에서의 종들이

‘그러면 저희가 가서 그것들을 거두어 낼까요?’ 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정말 쉬운 선택입니다.

 

'나' 혹은 '너' 개인이라는 이름의 밭에도 밀과 가라지가 있습니다.

공동체라는 밭에도 밀과 가라지는 있습니다.

심지어 교회라는 이름의 밭에도 밀과 가라지는 있습니다.

이 밭에 있는 가라지들을 뽑는 것을 하느님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그것으로 인해 당신이 심은 밀들이 모두 죽을 수 있고

가라지들을 섬기는 밭들로 인해

당신이 십자가에 못 박힐 각오는 하시지만 밭을 망치려 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밭을 지키기 위한 결심을 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라지를 뽑으려는 이들은

밀이 무엇인지도 정확히 모르면서 뽑으려합니다.

그저 내가 보기 안 좋다는 이유에서죠.

 

가라지는 어디서 생겼습니까?’

 

형제 여러분,

우리는 '타인의 잘못된 길을 수정하는 법'을 예수님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무엇이었습니까?

먼저 그 사람에게 “발견한 네”가 이야기하고,

안 되면 형제와 함께 이야기하고,

안 되면 교회에 넘기며

그래도 안 되면 그냥 무시하고 놔두어라 라고 이야기하셨습니다.

상대가 자기 밭에 자란 가라지를 가지고서 이것이 밀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지적하고자 한다면

그 상대가 그것이 가라지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목적'으로 지적하십시오.

그것을 '뽑고자 하는 목적'으로 지적하지 마십시오.

'뽑는 것'은 '스스로 깨달은 밭주인의 몫'입니다.

못 알아듣는다면 차라리 놔두고서

그것이 가라지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십시오.

하느님께서도 종종 잘못된 소원을 이루어 주신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그 소원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그 사람이 깨닫게 하기 위해서 말이죠.

여러분에게 어떠한 모욕이 들어오든,

저건 잘못되었으니 뽑아야한다고 외치는 마귀의 목소리가 들릴지라도 그저 이야기하십시오.

한 작품에서 나온 명언을 하나 말씀드립니다.

우리 동포를 죽인 저 사람들을 처벌해 달라며 정의를 보여달라고 외치는 이들에게

지도자가 한 대답입니다. 이를 다시금 생각해보십시오.

 

'눈은 눈'으로 하다보면 세상이 눈이 멀겠지. 우리는 범죄를 범죄로 되갚지 않을 것이다.

네이버블로그 양 세마리의 잡생각들 https://blog.naver.com/crodei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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