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좋은 땅, 등장인물은 몇명입니까?

글쓴이 :  바울라님이 2018-07-27 06:29:08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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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6주간 금요일]

<좋은 땅에 뿌려진 씨>

2018.7.27

 

제1독서  <내가 너희에게 내 마음에 드는 목자들을 보내리니 모든 민족들이

              예루살렘에 모일 것이다.>   ▥ 예레미야서  3,14-17

복음   <말씀을 듣고 깨닫는 사람은 열매를 맺는다.>   ✠ 마태오  13,18-23

 


 

좋은 땅, 등장인물은 몇명입니까?

 

천주교에서는 세례를 줄 때 대부와 대모를 세웁니다.

영적인 부모님, 즉 신앙생활을 인도해 줄 사람을 세워줍니다.

꼭 대부나 대모라는 직책을 맡지 않았어도,

레지오등 여러 단체를 통해서,

아니면 그런 단체도 아니고 같이 다니다보니 친해졌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사람을 하느님께 인도할 목자가 되고는 합니다.

이는 어떤 형태로든 어떤 사람에게든 하느님께서는 목자를 보내주시는데,

즉, 양이 눈으로 직접 보고 귀로 직접 듣고서 따를 수 있는 목자를 보내시기 때문에

여러분도 남을 인도할 목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내 마음에 드는 목자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너희를 지식과 슬기로 돌볼 것이다.

 

그런데 여러분은 어떤 유형입니까?

여러분은 씨앗과 좋은 땅 사이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습니까?

오늘 복음을 통해서 좋은 땅 위에 무엇이 있냐에 따라

그 사람이 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십시오.

여러분은 좋은 땅 위에 어떤 형태로 자리 잡고 있습니까?

새입니까? 돌입니까? 가시덤불입니까?

 

새라고 한다면, 이런 유형입니다.

그냥 내가 좋은 데로 나아갑니다.

씨앗이 땅속에 묻혀 땅 속에서 뿌리가 깊어져야 하는데

자기감정으로 좋은 것으로 씨앗을 가져갑니다.

그것이 씨앗이 자신한테 먹혀도 말이죠.

사실상 말은 자신이 맡은 양 떼를 위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자신의 감정이 더 중요한 것이죠.

자신이 기분 좋은 것으로 씨앗을 좋은 땅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듭니다.

본래 비유에서는 새가 씨앗을 먹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자신이 먹음으로서 얻은 포만감에 취해

씨앗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관심 없이 끌고 가는 것입니다.

잔인하게 평가하면 내가 맡은 양 떼에도 관심 없고, 하느님께도 관심 없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저 자기가 기분 좋은 데로 나아가죠.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아 간다.

 

돌이라고 한다면, 이런 유형입니다.

내가 이끄는 양이 신앙에 발을 붙이게 해줍니다.

그러나 내가 스승이기에 내 말을 따라야하고, 나와 관계를 돈독히 해야 합니다.

나를 통해야 좋은 땅과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땅과 관계를 맺어야 하는 씨앗은 돌 때문에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뿌리를 내리려 해도 좋은 땅 앞에 돌이 막혀 있기에

뿌리를 내리긴 해도 깊게 내리지 못합니다.

씨앗이 자신과 관계를 맺게 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면에서 씨앗을 신경을 씁니다.

그러나 좋은 땅에 닿고 있는지는 신경 쓰지 않죠.

오직 나에게 뿌리가 얽혔는가만 신경 씁니다.

이때 당신이 사라지면 그 사람에겐 그것이 가장 큰 환난으로 다가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환난을 그 사람을 위해 허락하시는 분입니다.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그는 곧 걸려 넘어지고 만다.

 

가시덤불이라고 한다면 이렇습니다.

신앙생활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모양으로 자라야합니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는 가시를 세우고서 그 사람을 숨 막히게 만듭니다.

다양한 규정들, 꼭 해야 하는 기도, 해서는 안 되는 것들로 그 사람을 둘러쌉니다.

그 씨앗이 어떻게 해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려 그러면

가시를 세워 그 나무를 말라 죽게 합니다.

그 나무가 죽더라도 규정을 어길 바에야 차라리 죽은 게 낫다고 여기는 그런 사람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이런 나무가 아닌 이 나무는

이 땅을 더럽히는 것이기 때문에 있어서는 안 된다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즉 이런 신앙생활은

하느님을 모독하는 것이기 때문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의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한다.

 

새나, 돌이나 가시덤불은 유형은 다르지만 세 가지 같은 공동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나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둘째는 좋은 땅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아무리 좋은 땅에는 관심이 없어도

시간이 길게 지나면 땅이 되어야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할 것이 마지막 것입니다.

새가 죽어서 땅에 떨어져 썩어서 땅의 일부가 되듯,

돌이 시간이 지나 갈리면서 땅의 일부가 되듯,

가시나무가 죽어서 땅의 일부가 되듯

시간이 지나면 땅이 되어야하는 존재입니다.

오늘 읽은 책에서 나온 이야기를 전해드리겠습니다.

이탈리아 캄펠로술클리툰노의 프란치스코 수도원에서 마리아 수녀님이란 분이

이런 말을 하셨다합니다.

 

“사랑과 규칙이 대립하면 규칙을 버리세요. 우리의 유일한 규칙은 사랑입니다.”

 

여러분의 지금의 모습을 성찰하십시오.

사랑과 규칙이 대립하면 규칙을 버리십시오.

사랑과 여러분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무언가가 대립한다면 그 중요한 것을 버리십시오.

하느님과 여러분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무언가가 대립한다면 그 중요한 것을 버리십시오.

하느님은 사랑이시며 하느님과 사랑은 우리의 알파요 오메가임을 잊지 마십시오.

비유를 다시 기억해보십시오.

다른 유형에서는 여러분 눈에 보이는 것은 세 가지입니다.

씨앗, 땅, 그리고 무언가

그러나 좋은 땅의 비유에서 등장하는 것은 좋은 땅과 씨앗뿐입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목자로 보내셨는데

왜 하느님과 양 떼 사이에 목자 모습이 없을까요?

목자가 좋은 땅의 일부기 때문에 목자 스스로 나라고 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목자는 자신도 좋은 땅의 일부가 됨으로서 자신과 좋은 땅과 관계를 맺었을 뿐

그 이상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당신이 누구든 상관없습니다.

당신이 언제 신앙생활을 시작했는지 상관없습니다.

당신이 어디서 신앙을 얻었던 상관없습니다.

당신이 무엇을 신앙이라 생각하든 상관없습니다.

당신이 어떻게 살든 상관없습니다.

당신이 왜 하느님과 관계를 맺는지 상관없습니다.

당신이 목자로서 필요한 것은 “하느님과 관계를 맺고 있는 나” 뿐입니다.

하느님께 나를 온전히 바친 모습을 보여주고

하느님께서 나를 온전히 받아주신 모습을 보여주십시오.

그것이 씨앗이 바라보는 좋은 땅의 모습입니다.

당신이 목자로서 할 것은

좋은 땅의 비유처럼 씨앗과 좋은 땅 사이를 비워주는 것입니다.

당신의 양이 하느님께 온전히 자신을 바칠 수 있도록

하느님과 양 사이를 비워주는 것입니다.

당신 자신일지라도 말이죠.

다시금 되돌아보죠.

하느님, 목자, 양,

여러분이 양이든 목자든 한 번 성찰해보십시오.

보이는 등장인물은 몇 명입니까?

네이버블로그 양 세마리의 잡생각들 https://blog.naver.com/crodei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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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발 (2018/07/27 10:3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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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멘, 오늘복음 묵상감사합니다, 주님의은총이 충만하시기를기도드립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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