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중 제23주일]
<복수가 들이닥친다, 하느님의 보복이!>
2018.9.9
제1독서 <귀먹은 이들은 귀가 열리고, 말 못하는 이의 혀는 환성을 터뜨리리라.>
▥ 이사야서 35,4-7ㄴ
제2독서
<하느님께서는 가난한 사람들을 골라 약속하신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지 않으셨습니까?>
▥ 야고보서 2,1-5
복음 <예수님께서는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 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신다.>
✠ 마르코 7,31-37
복음의 걸림돌, 선택적 장애인들
제가 어떤 신부님의 강론을 들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사람에게 평범함을 돌려주시는 것 외에
그 이상의 기적을 하신 바가 없다고 들었습니다.
예수님의 기적들을 보면 실제로 배고픈 이들에게 먹을 걸 주시고
눈 먼 이들을 보게 해주시고 귀먹은 이를 듣게 하시며
혀가 꼬여 말 못하는 이들을 혀를 풀어주시는 그런 기적들을 행하십니다.
그런데 이런 세대들을 보면서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이야기하십니다.
너희는 듣고 또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리라.
저 백성이 마음은 무디고
귀로는 제대로 듣지 못하며
눈은 감았기 때문이다.
이는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서는 돌아와
내가 그들을 고쳐 주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
예전부터 눈은 있어도 보지를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입이 있어도 말을 못하는 그런 세대가 있습니다.
이들은 장애를 가진 것도 아니고 단지 스스로 그렇게 됩니다.
눈이 있어도 고개를 돌리지 못하고 눈도 돌릴 줄 몰라
하나 밖에 못 보는 이들도 많고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고 헤드폰을 끼듯이
다른 소리는 못 듣는 이들이 많으며
입이 있어도 눈을 가리고 귀를 막은 이들 때문에
또 불쾌한 소리가 나오는 입을 막으려고 하는 이들 때문에 말을 하지 못합니다.
이를 하느님께서는 기적을 통해 그 입을 열어주시고
눈을 트이게 해주시며 귀를 열어주십니다.
그러나 이것이 기적을 통해 벌어지는 것은 그것대로 하느님의 보복입니다.
참으로 불행한 세대라는 것입니다.
복수가 들이닥친다, 하느님의 보복이!
하느님께서 보라고 눈을 주셨고
들으라고 귀를 주셨으며
말을 하라고 입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것들이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사실,
육체 자체가 기능을 못하고 있는 것을 기적을 통해 치유해야하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세대임을 기억해야합니다.
아무리 장애가 있더라도 우리는 치유를 통하지 않더라도
노력하면 소통이 가능합니다.
입이 없더라도 비언어적 표현을 통해 우리는 그 사람과 소통할 수 있고
눈이 멀었더라도 우리는 세상을 소개하고 세상을 들려줌으로서
세상의 지혜를 얻을 기회를 줄 수 있습니다.
귀가 멀었다 해도 우리는 그가 가진 눈으로 많은 것을 알려줄 수 있습니다.
완전히 한 기능이 멈췄다 해도 다른 것을 통해 우리는 소통할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이런 경우를 자주 만나지는 못합니다.
귀에 장애가 있다 하더라도 완전히 못 듣는 이는 흔하지 않으며
눈에 장애가 있다 하더라도 완전히 못 보는 이도 흔하지 않다고 합니다.
입이 꼬여도 말을 완전히 못하는 이도 드물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지 않으려 하고,
귀를 기울이지 않으며,
말을 하려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이 완전한 장애인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과거 이스라엘에서 이런 장애인들이 크나큰 죄인이라고
격리시켜 버렸던 것처럼 말이죠.
우리 사회에서의 걸림돌은 우리가 일컫는 장애인들이 아닌
선택적 장애인들이 걸림돌인 것입니다.
제가 앞서 이야기했던 스스로 눈과 귀와 입의 기능을 포기한 이들
이들이 선택적 장애인들입니다.
바오로 사도께서 그 선택적 장애인의 예시를 들어주셨습니다.
여러분의 모임에 금가락지를 끼고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누추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온다고 합시다.
여러분이 화려한 옷을 걸친 사람을 쳐다보고서는
“선생님은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십시오.” 하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당신은 저기 서 있으시오.” 하거나
“내 발판 밑에 앉으시오.” 한다면,
여러분은 서로 차별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또 악한 생각을 가진 심판자가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선택적 장애인”
이들은 모두 정상입니다.
귀도 멀쩡하고 눈도 멀쩡합니다. 또한 말도 할 줄 압니다.
그러나 내가 듣기 불쾌한 소리 앞에서 귀가 멀고
보기 싫은 것 앞에서 눈이 멀고
내 말에 동의하지 않는 이 앞에서 나의 말을 멈추는 이들입니다.
불쾌함을 떠나 눈과 귀와 입이 조금만 피곤해져도 그 기능을 멈춰버리는 이들입니다.
상대가 입이 꼬였다고 비언어적 표현을 읽으려 하지 않고
입이 꼬인 사실만 보는 이들
상대가 귀가 멀었다고 그 앞에서 소통을 안 하려는 이들입니다.
선택적 장애인들은 상대를 강제적으로 완전한 장애인을 만들어버립니다.
귀를 막음으로서 상대의 입을 막아버리는 이들이며
눈을 가림으로서 상대의 비언어적 표현을 막아버리는 이들입니다.
입으로 모독을 하며 상대의 눈과 귀를 막아버리기도
입을 다물면서 상대의 눈과 귀를 멀게 하는 이들입니다.
그러고는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자신이 아닌
자신이 장애인으로 만든 이들의 장애를 탓합니다.
자신이 들으려 않은 사실을 잊고 “왜 말을 안했냐?”
자신이 보려 하지 않은 사실을 잊고 “왜 표현을 안했냐?”
자신이 말을 하지 않은 사실을 잊고 “내가 힘든 것을 보지도 듣지도 못하느냐?”
사회는 인간의 관계가 쌓이고 쌓임으로서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그 관계가 서로에게 장애를 쌓아주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사회에서 말할 수 없게 만들고
들을 수 없게 만드며 귀를 멀게 만들어버립니다.
가정에서 힘든 것을 말 못하고 혼자 잠자리에서 울고 있는 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집안에서 혼자 이를 갈고 살아가는 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자녀들이 부모에게 나에 대해 뭘 알아! 라고 이야기하는 가정이 얼마나 많습니까?
자녀들에게 부모 맘을 왜 몰라주냐며 외치는 가정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의 사회가 구성된 관계가 서로에게 장애를 쌓아주는 관계였다면
장애로 구성된 사회에서 장애를 없애는 것은
하느님의 기적을 바랄 일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귀를 열어 듣는 것이 훌륭한 것이고
눈을 떠 보는 것이 경이로운 것이며
말을 당당하게 하는 것이 용기 있는 행동이 되겠습니까?
몸이 제 기능하는 평범한 것을 훌륭하다며
칭찬을 하는 사회가 얼마나 불행한 사회입니까?
귀를 열게 해주고, 눈이 보이게 하며, 입을 열게 하는 것이
하느님의 기적으로 소화되어야하는 사회가 얼마나 불행한 사회입니까?
말하는 것이 대단합니까? 비언어적 표현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대단합니까?
내가 힘든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대단한 것입니까?
그것이 하느님의 초월적이고 비자연적인 현상을 가져와야지 해결되는 이야기입니까?
오늘의 이 불행한 세대의 이야기를 들어보십시오.
“저분이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하다.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 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시는구나.”
우리는 가난하고 힘겨운 이들 이 세상 밑바닥에 있는 이들을
본받을 때가 온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들을 이렇게 표현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의 가난한 사람들을 골라 믿음의 부자가 되게 하시고,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약속하신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지 않으셨습니까?
가난한 이들은 가진 것이 없기에 좀 더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그렇기에 들으려하고 보려고 합니다.
힘든 것이 있으면 도와달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 이들은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영혼이 제대로 활성화되면서 몸이 제 기능을 찾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가난한 이들은 복음을 전파합니다.
들으려 함으로서 상대의 입을 열게 하고
보려고 함으로서 상대의 영혼이 말하게 합니다.
도와 달라 이야기함으로서 상대의 눈과 귀를 열어줍니다.
그렇게 복음이 전파됩니다.
그러나 이의 걸림돌은 여전히 선택적 장애인들입니다.
들으려는 이들을 배척하여 자신의 입을 닫는 이들,
보려고 하는 이들을 배척하며 마음을 닫는 이들
도와 달라 이야기함에도 듣지 않고 보지 않음으로서
말할 이유를 잃게 하는 이들, 복음의 걸림돌들입니다.
형제 여러분
눈이 있습니까? 보십시오.
귀가 있습니까? 들으십시오.
입이 있습니까? 말하십시오.
여러분이 잠깐 편하자고 선택한 장애가 모든 것의 걸림돌이 됩니다.
보게 해달라고 기적을 청하지 마십시오
듣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마십시오.
말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하지 마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이미 다 주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장애를 극복할 수 있고 서로의 장애를 없애버릴 수 있습니다.
선택적 장애인에서 장애를 극복하고 정상인이 되십시오.
진정한 정상인은 다른 이들도 정상인으로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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