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사람마다 태도를 달리한다는 것은?

글쓴이 :  바울라님 2018-11-07 08:07:29   ... 조회수(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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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1주간 수요일]

<여러분은 늘 순종하였습니다.>

2018.11.7

 

제1독서  <여러분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힘쓰십시오. 하느님은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시어 의지를 일으키시고 그것을 실천하게도 하시는 분이십니다.>

▥ 필리피서  2,12-18

복음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 루카  14,25-33

 


 

사람마다 태도를 달리한다는 것은?

 

여러분들은 사람마다 태도가 변하는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중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그게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사람을 보면 누군가를 보며 웃고, 누군가를 보면 울기도 하며,

누군가를 보면 짜증내며, 누군가를 보면 방관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자연스러운 일인데 한편으로는 부정적인 것 같습니다.

무언가 내가 태도가 일관되지 않다면 죄를 지은 것 같죠.

예를 들어 누군가에게 불쾌감이 들었다고 죄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누군가에게 화를 내었다고 죄를 지었다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일관되게 사랑을 하며 기쁘게 맞이해야하는데 그렇게 못했다는 것이죠.

서로 사랑하란 말을 기억하며 사도 바오로의 칭찬을 보면

한편으로 마음 한 편이 양심에 찔리는 느낌이 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늘 순종하였습니다.

내가 함께 있을 때만이 아니라 지금처럼 떨어져 있을 때에는

더욱더 그러하였습니다.

 

하지만 다시금 강조하자면 사람마다 태도가 다른 것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사람에게 감정이 기쁨과 평화만 있지 않죠.

다양한 감정 긍정적 감정이라 불리는 것들도 많고

부정적 감정이라 불리는 것들도 많습니다.

그런 감정들이 다양하게 드러나는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며

그런 감정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태도가 다른 것에는 이런 구분이 있습니다.

바로 내 감정에 충실한 사람과 하느님께 충실한 사람이 구분이 되죠.

이는 단계별로 나누면 세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사람에 따라 태도가 달라지는 사람,

행동에 따라 태도가 달라지는 사람,

사랑의 법칙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는 사람입니다.

 

사람에 따라 태도가 달라지는 이는 자신의 감정에 충실합니다.

이는 사람이 자신에게 한 행동을 완전히 기억하며 그대로 대하는 것입니다.

나에게 잘못한 이는 영원한 죄인이며 나를 사랑하는 이는 영원한 의인인 것이죠.

나의 주관적 평가가 내가 태도를 취하는 데에 중대한 위치를 잡고 있습니다.

가장 안 좋은 단계로서 현재를 살아가지 못하고 과거에서 살아갑니다.

 

그 다음이 행동에 따라 태도가 달라지는 이입니다.

상대의 과거를 떠나 현재를 통해 바라봅니다.

상대를 객관화해서 바라보려 노력하며 철저히 좋은 행동에 잘해주며

잘못한 행동에 확실히 책임을 잡고 갑니다.

하느님과 조금은 닮았지만 명확하게 좋다고 할 수 없는 단계죠.

그저 기계처럼 차갑게 느껴집니다.

또한 여전히 시선이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안으로 초대하기 위해

사람에 집중하는 태도를 치우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사랑의 법칙에 따라 태도가 변하는 사람은 하느님께 순명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사람을 바라보아도 하느님과 맺어진 관계와

하느님 안에서 완성된 사람인지 바라봅니다.

그 식별도 간단히 자신의 감을 통해서가 아닌

최대한 상대를 바라보도록 노력하며

완전하게 식별하도록 자신의 판단을 의심하며

하느님께 지혜를 청하며 식별합니다.

또한 행동을 보며 하느님 사랑을 생각하며

그의 행동에 하느님께서 어떻게 하실지 고민합니다.

그에 따라 자신이 사랑하는 태도, 즉 방법을 바꿉니다.

자비를 베풀기도 하고 심판하기도 하며, 섬기기도 하고, 목표를 제시하기도 합니다.

이런 태도 변화의 모습은 하느님으로부터 시작되며

하느님께 의지를 받고 그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그 사랑의 모습을 따르며

상대의 상태에 따라 그 사랑을 하느님께서 하셨듯이 따라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순명하는 태도 변화의 자세이죠.

 

하느님은 당신 호의에 따라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시어,

의지를 일으키시고 그것을 실천하게도 하시는 분이십니다.

 

이러한 순명을 명확히 실천하기 위해

우리는 순명을 통한 식별도 확실히 해야 합니다.

우리는 종종 식별의 과정에서 순명이 아닌 나의 직감을 통한 식별을 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식별은 예수님께서 비유하신 것과 같이

건물을 짓기 앞서 앉아서 계산하는 것이며

전쟁에 앞서 맞설 수 있는가 헤아리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순명이 무너지기 시작할 때

식별부터 하느님으로부터 시작하도록 이를 철저히 할 수 있어야합니다.

이러한 식별이 무너질 때 우리의 하느님으로부터 시작하려는 신앙도 무너지는 것입니다.

내 직감을 믿고서 식별을 맡겨버리면

우리의 신앙을 완성시키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너희 가운데 누가 탑을 세우려고 하면,

공사를 마칠 만한 경비가 있는지 먼저 앉아서 계산해 보지 않느냐?

그러지 않으면 기초만 놓은 채 마치지 못하여,

보는 이마다 그를 비웃기 시작하며,

‘저 사람은 세우는 일을 시작만 해 놓고 마치지는 못하였군.’ 할 것이다.

 

우리의 태도는 이웃사랑과 직결된 것입니다.

이 이웃 사랑은 내 몸과 같이 내가 받은 하느님의 사랑과 같이 행해져야합니다.

이는 의지와 스스로의 식별 실천까지 하느님으로부터 올 수 있도록

조금 더 하느님을 바라보도록 노력하면서 실천해야합니다.

태도는 변할 수 있습니다.

다만 하느님을 앞서 생각하며 태도를 변화시키십시오.

우리가 이웃 사랑을 어떻게 하는가

이는 하느님 사랑 안에서 시작되어지고 마쳐져야합니다.

우리의 신앙의 알파요 오메가도 하느님이심을 기억해야하십시오.

 

비뚤어지고 뒤틀린 이 세대에서

허물 없는 사람, 순결한 사람, 하느님의 흠 없는 자녀가 되어,

이 세상에서 별처럼 빛날 수 있도록 하십시오.

네이버블로그 양 세마리의 잡생각들 https://blog.naver.com/crodei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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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카엘라모바일에서 올림 (2018/11/07 09:3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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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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