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중 제15주간 월요일]
<너희의 손은 피로 가득하다>
2018.7.16
제1독서 <너희 자신을 씻어라. 내 눈앞에서 악한 행실들을 치워 버려라.>
▥ 이사야서 1,10-17
복음 <나는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 마태오 10,34─11,1
저는 그저 지나가는 행인 A입니다.
아무런 업적 없는 지나가는 행인 A로서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우리는 일을 합니다. 무언가를 열심히 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업적이 있습니다.
업적이 뛰어난 사람일수록 우리는 대접을 해줍니다.
학교에서는 성적에 따라 등급이 정해지고 게임에서는 순위에 따라 티어가 정해집니다.
성당에서는 내가 무슨 일을 하느냐에 따라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사회에서도 스펙을 많이 쌓은 이가 대접 받습니다.
우리는 업적에 따라 대접 받는 사회를 살아갑니다.
업적이 뛰어난 이가 말을 하면 옳은 말이고 업적이 애매모호한 이가 말하면 그른 말이 됩니다.
최근 온라인 게임들은 이런 사회를 대변해주는 모습이 종종 보입니다.
“그님티”라는 신조어가 있죠. 이 뜻은 “그래서 님 티어가?” 의 줄임말입니다.
게임을 하다 보면 전술이 필요합니다.
캐릭터가 성능 상 좋고 나쁘다라는 것을 토론하게 됩니다.
그런 이야기들 사이에 논쟁이 생겼을 때 자주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서로 싸우다가 “그래서 님 티어가?”라는 말을 합니다.
이 뜻을 간략히 설명하면 학교에서 성적이 1등급인 사람과 5등급인 사람이 논쟁하는데
1등급 사람이 그래서 너 성적 등급이 몇인데? 라고 묻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낮으면 말할 자격도 없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평화를 되찾습니다.
분열이 사라졌죠.
낮은 이가 입을 다물고 겸손되이 순명하며 살아가면 되는 간단한 사회 구조입니다.
정말 평화롭지 않나요?
다만 이런 평화에 불만은 지닌 불순분자가 하나 있긴 합니다만
있다 해도 우리가 신경 쓸 필요 있나요?
하지만 그리스도인이라면 한 번 신경 씁시다.
그 불순분자가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하느님께서 왜 이런 평화를 무너뜨리려 하실까요?
오늘 독서에서 하느님께서는 지겹다는 듯이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그 원인 하나입니다.
너희가 나의 얼굴을 보러 올 때
내 뜰을 짓밟으라고 누가 너희에게 시키더냐?
우리가 하느님께 나아갈 때 세상과 같이 경쟁하면서 나아갑니다.
마치 하느님께서 대기업 사장으로 누군가를 뽑으시는 것과 같이 행동합니다.
우리는 다른 이단에서 하느님께서 마음에 드는 14만 4천명을 뽑아 가신다는 말을
우습게 여기면서 우리끼리는 14만 4천명만 쏙 빼놓고 그렇게 행동합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마음에 드는 이들을 뽑아 가신다고 생각하고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래서 그분의 뜰을 짓밟습니다.
내 업적으로 누군가를 짓밟고 올라갑니다.
누군가는 '난 누구보다 기도를 많이 했고, 교회에서 무슨 일을 하며 뛰어난 업적을 지녔다.
그러므로 내가 옳다. 내가 영웅이며 이끄는 사람이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짓밟힌 누군가는 '난 아무것도 못한 이여서 하느님께 부끄러운 사람이다' 하면서 숨습니다.
이끄는 이와 이끌리는 이들의 조화는 평화를 가져옵니다.
그러나 저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르기에 이야기합니다.
저는 이 평화에 책임이 없도록 할 것입니다.
있더라도 거두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에 따라 이 평화에 분열을 가져오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나는 이 무대의 "지나가는 행인 A" 로서 하느님 말씀을 선포합니다.
나는 아들이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갈라서게 하려고 왔다.
집안 식구가 바로 원수가 된다.
단순히 직위의 높고 낮음을 가름으로서 얻은 평화,
과거의 영광을 빌미로 새로움을 짓밟음으로서 얻은 평화,
신세대라는 빌미로 과거를 짓밟음으로서 얻은 평화
모두 하느님께로 온 평화가 아니기에 분열되어야 마땅합니다.
어떠한 공동체든지 그렇게 평화를 이룩한 공동체는 분열할 것입니다.
그것이 하느님의 의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대들 공동체원이 바로 원수가 될 것입니다.
그 까닭은 나의 행동의 기초와 이유를
하느님이 아닌
계급을, 과거의 업적을, 진보적인 생각을 이유로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자신의 계급이 하느님께 왔다는 것을 잊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께 합당하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1초 전의 영광일지라도 과거의 영광을 그리스도보다 사랑한다면
예수 그리스도께 합당하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자신의 효율적인 생각을
그리스도보다 사랑한다면 예수 그리스도께 합당하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자신의 행동보다 남의 행동에 더 유심히 보는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 합당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것을 통해 하느님을 선포하는 이는 자신의 것을 잃게 될 것입니다.
자신의 것을 버리고 하느님을 선포하는 이는 자신의 것을 올바르게 받을 것입니다.
사실 자신의 것을 잃는 것은
많은 영성가들이 이야기한 영적 메마름에 해당됩니다.
영적 메마름,
예수님께서 가져오시는 분열은 모든 성인들, 하느님의 자녀들이 겪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과거의 영광에 힘을 빌리지 않아도,
효율적인 생각에 힘을 빌리지 않아도,
어떠한 자리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그저 인간이라는 이유로,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영혼이라는 이유로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할 수 있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영혼을 일으키기 위해 듣는 영혼들은 상을 잃지 않습니다.
나의 업적을 일으키기 위해 다른 영혼들을 짓밟는 이들은 그 업적을 잃을 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영혼이라는 사실만으로
하느님께 초대될 수 있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 사실만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하느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1초 전의 영광을 버리고 현재를 살아가십시오.
방금 든 효율적인 생각을 버리고 하느님의 말씀을 기다리십시오.
우리는 하느님께서 계시기에 우리 자신을 지나가는 행인 A 로 소개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형제와 함께하기 위해 지나가는 행인 A 로서 하느님 말씀을 선포합니다.
그리스도인을 지나가는 행인 A로서
악행을 버리고 선행을 배우며, 공정을 추구하고, 억압받는 이를 보호하며,
고아의 권리를 되찾아 주고 과부를 두둔해 줍니다.
지금 나 자신은 지나가는 행인 A 입니까? 아니면 과거의 뛰어난 영웅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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