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중 제14주간 토요일]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2018.7.14
제1독서 <나는 입술이 더러운 사람인데, 임금이신 만군의 주님을 내 눈으로 뵙다니!>
▥ 이사야서 6,1-8
복음 <육신을 죽이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 마태오 10,24-33
성체가 무너져도 하느님의 뜻은 여전하니 분노할 이유가 없습니다.
과거에 저는 사일런스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원작은 엔도 슈사쿠라는 사람이 지은 침묵입니다.
이 작품에서 한 사제가 일본에서 배교를 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입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제가 깊게 본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침묵은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말 뜻을 아시겠습니까?
사제가 배교를 했던, 일본이 천주교를 박해를 했건, 침묵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제가 침묵을 무엇이라 표현하는지 기억하십니까?
저는 침묵을 하느님의 목소리라고 표현했습니다.
사제가 배교를 했건, 일본이 천주교를 박해를 했던,
그 사제 안에서 또, 일본 안에서, 하느님의 목소리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제가 오랜만에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이 말씀 때문입니다.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죽음까지 불사하는 신자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신자들이 참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공동체가 무너지는 것을 참지 못합니다.
공동체가 무너지기 이전에 공동체가 상처 입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며
공동체가 모욕이라도 들으면 어떻게 해서든 복수하려고 칼을 갑니다.
이들은 자신이 모욕 듣는 것은 참아도 공동체는 중시합니다.
그 이유는 이들은 공동체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다시금 말하겠습니다. 이들은 “공동체”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얼핏 들으면 괜찮은 이 말을 이 말씀과 함께 생각해봅시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마태 6장 24절
공동체가 하느님으로부터 왔을 수는 있어도 공동체 자체가 하느님은 아닙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기에 공동체를 사랑할 수는 있어도
공동체를 사랑한다면서 하느님은 업신 여기며 무시하게 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하느님께서 지으신 공동체인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교회 자체가 하느님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고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다.
제자가 스승처럼 되고 종이 주인처럼 되는 것으로 충분하다.“
교회가 공격 받았고 모욕을 들었다 하더라도
하느님의 뜻이 무너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두려워할 바도 아니고 분노할 수준도 아닙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총칼을 들고 싸워야할 순간은 하느님의 뜻이 무너질 때입니다.
그러나 형제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이 세상에서 그 누가 영혼을 죽일 수 있는 이가 있습니까?
영혼도 못 죽이는 이들이 그저 겉을 건드렸다고 영혼을 건든 것입니까?
영혼도 못 죽이는 이들이 하느님의 뜻에 어떻게 관여하겠습니까?
예를 들어봅시다.
어떤 공동체에서 ㅋㅋㅋ ^^ 등의 이모티콘을 금지했습니다.
제가 지금 ㅋㅋㅋ 라는 글자를 치니 한글도 금지하는 듯이 zzz 로 바꾸어 버리는군요.
자 이 이모티콘에는 웃음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이모티콘을 금지했다고 해서 웃지 못하는 이가 있습니까?
제가 사용하는 한글이라는 프로그램이 ㅋㅋㅋ를 금지하였다 하여
제가 웃지 못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이모티콘을 금지시키는 것은 그러려니 하지만
웃지 못하게 하는 것은 학대로도 보고될 수 있습니다.
상징과 의미는 이런 관계입니다.
상징은 의미를 더 쉽게 기억하기 위하여, 즉 우리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상징이 무너진다하여 의미가 무너지지 않습니다.
타국에서 태극기를 불태웠다하여도 한국인은 한국인입니다.
과거 천주교가 박해받던 시기 아무리 상징들을 금지시켜도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그 누가 성체를 모독하였다 하여도 성체에 담긴 의미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오늘 이사야가 자신의 더러운 몸으로 하느님을 뵈었어도
하느님의 거룩함과 그 위엄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천사들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그를 정화 시켜줍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모욕을 받았으니 보복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작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하느님을 버리겠다는 뜻입니다.
상징을 버리는 것은 용서받아도 의미를 버리는 이는 용서받지 못한다는 것을 모르겠습니까?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들이 어떠한 죄를 짓든,
신성을 모독하는 어떠한 말을 하든 다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말은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사람의 아들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현세에서도 내세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우리의 선교는 교회로 초대하는 것이 아닌 하느님께로 초대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은 진실을 선포하고 하느님의 초대를 모든 이들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도 상징이 무너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선포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니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에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데에서 말하여라.
너희가 귓속말로 들은 것을 지붕 위에서 선포하여라.
우리가 최근 일련의 사건들로 힘든 것은 압니다.
어떤 비그리스도인들은 이것이 국제문제로 번질 것이라고 걱정합니다.
형제 여러분 우리가 언제부터 한낱 나라로 취급받는 것입니까?
우리는 모든 이들에게 평화를 전해야하는데
우리의 상징 작은 자존심이 흔들렸다고 모든 이들에게 불안을 가져다주려 하십니까?
우리는 하느님의 뜻에 의해 초대된 이들이며
초대를 받아들인 이들이며
교회는 그런 우리가 모인 곳입니다.
이 말씀을 기억하여 세상의 모든 이들에게 하느님의 초대를 선포하며
그들을 이끌 수 있도록 합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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