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을 드높이는 마귀의 목소리

바울라님 2019-09-04 20:40 ... 조회(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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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기념일]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2019.9.3

 

제1독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당신과 함께 살게 하시려고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 테살로니카 1서  5,1-6.9-11

 

복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 루카  4,31-37

 


 

하느님을 드높이는 마귀의 목소리

 

하느님께서는 초월자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참으로 바라보기 힘든 분이며 너무나 드높은 분이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느님을 참으로 드높으신 분으로서 높이 올리고 찬양을 드립니다.

그런데 이런 드높임과 찬양이 종종 마귀의 꾀임으로서도 나타난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마귀의 꾀임에 넘어가서 하느님을 찬양하고 하느님을 드높이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마귀는 예수님을 드높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를 침묵시키십니다.

 

“아!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꾸짖으시니,

마귀는 그를 사람들 한가운데에 내동댕이치기는 하였지만,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하고 그에게서 나갔다.

 

마귀에 의한 드높임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성령을 통해 드리는 찬양과는 좀 다릅니다.

마귀의 드높임에는 어떠한 전제가 있었습니까?

예수님께서 우리를 멸망시키실 것이라는 전제가 있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우리와 무슨 상관있냐고 외칩니다.

그렇습니다.

마귀의 꾀임에 넘어간 드높임은 하느님과 사람의 관계를 멀어지게 만듭니다.

신성모독을 함부로 외치는 이들도 조심해야할 부분입니다.

하느님과 사람의 관계는 하느님께서 함께하시는 진솔한 관계입니다.

그것이 가능하냐고 묻는다면 불가능하긴 하죠.

그런데 하느님께서 가능하게 만드셨기에 가능한 관계이고 지금도 이어지는 관계입니다.

그런데 진솔한 이야기 중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면 신성모독이라 하면서

하느님을 드높이고 사람과 하느님의 관계를 가로막기도 합니다.

두려워할 필요 없는 부분에서 두려워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진노의 심판을 받도록 정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차지하도록 정하셨습니다.

 

또 드높임으로서 스스로 안심합니다.

자신은 하느님을 이렇게 높이는 삶을 살았으니 나는 괜찮겠지

하느님을 높였으니 하느님께서 나를 좋게 봐주시겠지

심판 이야기가 나오면 “저는 아니겠지요.”

하느님의 의중은 생각지도 않고 스스로만 높인 결과

이런 안심을 하게 되고 마귀의 덫에 묶이게 됩니다.

마귀의 속삭임으로 하느님을 드높이면서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느님을 전지전능하시니 제가 생각하는 길의 모든 것을 순탄하게 이뤄주실 것이며

하느님께서 자비하시니 내가 잘못을 해도 용서해주실 것이지만

그렇게 드높으신 하느님께 진솔한 이야기보단 위선으로 나를 좋은 이로 보이게 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 생각하게 만듭니다.

교회의 가르침을 정면에서 반대하면서

당당히 아무렇지 않게 영성체를 하러 오는 이들도 비슷한 것입니다.

하느님을 드높였다지만 하느님을 자신의 도구로 여기며 살아가는 이들

마치 낮은 이들이 높은 이들에게 아부하며 그들을 제멋대로 다루듯이

하느님 또한 그렇게 하려 합니다.

하지만 마귀의 꾀임에 넘어가 자신이 주인이 된 그들은

어둠의 자식이 되어 자기들이 만든 평화에 취해 살아갑니다.

 

사람들이 “평화롭다, 안전하다.” 할 때,

아기를 밴 여자에게 진통이 오는 것처럼

갑자기 그들에게 파멸이 닥치는데, 아무도 그것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빛의 자녀라 함은 하느님께 의롭다고 칭해진 이들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뭔가 하느님께 잘 보여서 하느님께 “너 의로운 걸로 해라.” 라고 선정되는 것이

교회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그것은 개신교의 가르침입니다.

교회의 가르침은 사람 자체가 하느님과의 관계를 통해 의로워지는 것입니다.

이는 하느님께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섭리에 자신의 모든 것을 봉헌하면서

사람 그 자체로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느님께 대해야할 태도가

사회에서 정치적으로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아부하는 위선의 태도이겠습니까?

하느님께 대해야할 태도는

진정한 친구의 태도이며 진실하게 믿고 사랑하는 부모에게 행하는 태도여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진노의 심판을 받도록 정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차지하도록 정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살아 있든지 죽어 있든지

당신과 함께 살게 하시려고,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이미 하고 있는 그대로,

서로 격려하고 저마다 남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하느님께 대한 경외심으로 하느님을 드높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드높임이 참으로 하느님께 드리는 감사로서 하느님과 가까워지는 드높임인지

아니면 하느님께 잘 심판받기 위한 위선의 드높임인지 성찰해봅시다.

우리가 하느님을 드높이는 것이 우리의 욕심에 의한 것이면

그 드높임의 주인공은 결국 하느님을 드높인 자신이게 되며 하느님과 관계를 멀게 만듭니다.

우리가 가장 신경써야할 것은

하느님을 드높이는 일이 아닌 하느님과의 관계를 이어가는 것임을 언제나 기억합시다.

네이버블로그 양 세마리의 잡생각들 https://blog.naver.com/crodei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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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저받은은총 (2019/10/05 16:5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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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 예수님!

도처에 마귀와 사탄이 하느님의 권능을 이용해 본인이 하느님이 되는 사례가 목회자와 그들을 추종하는

일들이 비일 비재합니다

저들이 악을 행하며 우리에게 보여주는건 뭘까요 ?

어떻게 주님께 청원 드려야 할지 묵상 되는 현실입니다

 

"주님 !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님 저희를 가련히 여기소서!!!

--아멘-

  
  수산나의 기쁨 (2019/11/08 07:3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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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가슴 깊히 새겨 보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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