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최선의 노력 최악의 결과

글쓴이 :  바울라님이 2019-08-29 20:35:19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269)
    이 게시글이 좋아요 싫어요
 

[성 비오 10세 교황 기념일]

<나는 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당신에게처럼 품삯을 주고 싶소.>

2019.8.21

 

제1독서<주님께서 여러분의 임금이신데도 “임금이 우리를 다스려야 하겠습니다.” 하고 말하였소(1사무 12,12 참조).>

▥ 판관기  9,6-15

 

복음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 마태오  20,1-16

 


 

최선의 노력 최악의 결과

 

살아가다보면 내가 원하던 것보다 결과가 나쁘게 나타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평균정도일수도 있고 아니면 그 평균보다 못한 경우도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떤 삶을 살게 될까요?

최선을 다하는데도 최선의 결과가 아닌 그 이하 혹은 최악의 결과를 낳기도 합니다.

한 두 번은 참더라도 그것이 계속 반복해서 또 삶 전반적으로 그렇다면

최선을 다하고 싶지 않아질 것입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생각해보게 되는 것은

왜 최선으로 선택한 결과가 왜 최악으로 나타날까요?

이에 대한 첫 번째 답변은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다른 경우도 생각해보셔야합니다.

예수님의 경우 인간의 삶으로 인정될 수 있는 삶은 십자가 죽음까지라 했을 때

예수님은 하느님의 뜻을 따랐지만 최악의 결과로서 실패한 스승이며 패배자로서 죽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경우는 어떤 걸까요?

예수님이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아서 최악의 결과를 맞이한 걸까요?

우선 최악의 결과가 맞는지부터 생각을 해봐야합니다.

최악의 결과였을까요 결과론적으로 최악의 평가를 받은 인생일까요?

 

아무도 우리를 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삶은 하느님 앞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이었습니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사는 삶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삶은 구원의 길이었습니다.

즉 모든 이들이 자신의 가치를 밝힐 수 있는 삶이죠.

오늘 독서에서는 나무들이 왕을 세우는 우화가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각각의 나무들은 자신의 가치를 뽐내면서

신들을 흥겹게 하고 사람들을 즐겁게 하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가시나무 아래에 있게 되면서 그 가치는 퇴색되어 가게 됩니다.

가시나무 보호 아래에서는 가시나무 안에서 살기에 좋은 모양으로

나무를 가꾸어야하는 것이지

제 모습대로 살아가면 가시나무에 숨이 막혀 죽어가는 삶을 살게 됩니다.

가시나무 아래에서는 안전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가시나무가 자신들의 가치를 깎아 내립니다.

이 가시나무는 오늘 날에 평판 명예라고 불리는 것들이죠.

 

‘너희가 진실로 나에게 기름을 부어

나를 너희 임금으로 세우려 한다면 와서 내 그늘 아래에 몸을 피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이 가시나무에서 불이 터져 나가

레바논의 향백나무들을 삼켜 버리리라.’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 위에서도 언제든지 방향을 틀어

교만하고 악한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며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성도들입니다.

그러나 종종 우리는 이 길의 목적을 어떠한 평판 어떠한 명예를 목적으로 두고

걸어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선행을 행하면 누군가 칭찬해주기를 바라고, 

성당에서 열심히 봉사하면 높은 자리에 앉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내가 행한 것에 비해 내 목적이 달성되지 않는다면

내가 생각한 명예와 보상이 따르지 않으면 사람은 절망하게 됩니다.

그 절망을 통해서 하느님과 멀어지곤 하죠.

저 사람보다 내가 더 열심히 했는데 왜 나는 이런 결과가 나오지? 하면서

하느님 뜻이 틀린 건가? 하느님 나한테 너무한 거 아닌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맨 나중에 온 저자들은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뙤약볕 아래에서 온종일 고생한 우리와 똑같이 대우하시는군요.’

 

우리의 목적을 되돌아보고 다시 바로 잡아야합니다.

아니면 우리가 기쁘게 살아가는 신앙생활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누군가 칭찬해주길 바라는 것도

누군가 높여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닌

예수님을 사랑하기에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고

예수님을 닮고 싶기에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최선을 다했는데 평판으로 최악의 평판을 받는다면

예수님을 닮아가며 기뻐해야합니다.

부유함을 받으려하기 보단 가난한 예수님과 함께하는 가난을 받음을 기뻐하고

명예와 안녕을 받으려하기보단 수난을 당하신 예수님과 함께하는 모욕을 받는 것을

기뻐하십시오.

우리는 예수님을 닮기 위한 그리스도의 제자들임을 언제나 기억하십시오.

네이버블로그 양 세마리의 잡생각들 https://blog.naver.com/crodeiran

  

카카오스토리에서 공유하기 페이스북에서 공유하기 네이버 밴드에서 공유하기 트위터에서 공유하기 구글+에서 공유하기 Blogger에서 공유하기


   
  댓글 쓰기

 
로그인 하셔야 댓글쓰기가 가능합니다. 여기를 눌러 로그인하세요.
 

이전 글 글쓰기  목록보기 다음 글

본 게시물에 대한 . . . [   불량글 신고 및 관리자 조치 요청   |   저작권자의 조치요청   ]
마리아사랑넷 | 이용약관 | 개인정보보호정책 | 메일추출방지정책 | 사용안내 | FAQ | 질문과 답변 | 관리자 연락 | 이메일 연락
Copyright (c) 2000~2021 mariasarang.net , All rights reserved.
가톨릭 가족공간 - 마리아사랑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