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중 제20주간 월요일]
<그들은 주님을 저버리고 바알과 아스타롯을 섬겼다.>
2019.8.19
제1독서 <주님께서 판관들을 세우셨으나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 판관기 2,11-19
복음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너의 재산을 팔아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 마태오 19,16-22
하느님 없이도 계명은 지킬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보다보면 굉장히 이스라엘이 배은망덕하다는 생각이 들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툭하면 다른 신을 섬기고 하느님을 저버렸다는 이야기를
성경은 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근데 이런 모습이 판관기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역사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이야기이니
참으로 배은망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판관기는 이런 이야기를 또한 전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느님께서 함께하시는 판관들의 손에 항상 구해지는데도
전혀 회개하지 않았다고 전합니다.
주님께서는 판관들을 세우시어
이스라엘 자손들을 약탈자들 손에서 구원해 주도록 하셨다
그런데도 그들은 저희 판관들의 말을 듣지 않을뿐더러,
다른 신들을 따르며 불륜을 저지르고 그들에게 경배하였다.
그들은 저희 조상들이 주님의 계명에 순종하여
걸어온 길에서 빨리도 벗어났다.
그들은 조상들의 본을 따르지 않았다.
왜 이스라엘은 회개하지 않았을까요?
왜냐하면 죄인지도 모르는 상태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스라엘이 하느님을 저버리고 다른 신을 따른다는 의미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봅시다.
성경은 하느님을 저버리고 다른 신을 따른다고 할 때 불륜을 저질렀다고 이야기합니다.
자 다른 신들을 따르고 그들에게 경배했다는 것 사이에서
왜 뜬금없이 불륜 이야기가 나올까요?
여기서 쓰인 불륜이 단순히 남녀 간의 불륜이 아닌 것입니다.
불륜이라고 칭해지는 행위는 결혼을 하고 배우자가 있는 상태에서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하느님을 섬기는 상태에서 다른 신을 섬긴 것입니다.
그런데 이를 왜 성경은 하느님을 저버리고 다른 신을 섬겼다고 표현할까요?
황금송아지와 같은 맥락입니다.
초월적인 하느님은 인간에게 정의될 수 없는 하느님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만들어낸 신과 함께 섬기게 되면
인간이 정의 못하는 초월적인 하느님께 초점이 맞춰지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집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바알 = 하느님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바알과 아스타롯으로 정의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이런 행위를 하느님을 저버리고 다른 신을 섬긴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아마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도 잘 지키며 살았을 것입니다.
이런 이스라엘에게 예언자들이 너희는 율법을 저버렸다고 선언한 이유는
“한 분이신 하느님을 사랑해야한다.”라는 가장 중심 계명을 어기고 있었기 때문이죠.
하느님이 아니라 정의된 하느님을 섬기며 율법을 지키면서 나는 잘 살고 있다고 한 것입니다.
판관이 죽으면 그들은 조상들보다 더 타락하여
다른 신들을 따라가서 그들을 섬기고 경배하였다.
그들은 이렇게 자기들의 완악한 행실과 길을 버리지 않았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담화도 이를 지적한 것입니다.
이 부자청년은 계명을 지키며 살았습니다.
부자청년은 분명히 이야기했습니다. “그런 것들은 제가 다 지켜왔습니다.”
살인해서는 안 된다. 즉 자기 욕심대로 사람을 다뤄서는 안 된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 자기 욕심대로 다른 사람과 관계해서는 안 된다.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자기 욕심대로 타인의 것을 탐해서는 안 된다.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욕심대로 자기 이익을 위해 증언해서는 안된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자신에게 휘둘리지 말고 부모에게 공경할 수 있어야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한다. 네가 사랑받는 것과 같이 이웃을 사랑하라.
그런데 부자청년이 이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을 하느님을 따랐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재물을 따르고 그에 따른 안정적인 생활이 있기에 가능했죠.
예수님은 이를 지적하십니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앞선 4가지 계명은 욕심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죄였습니다.
그런데 자기만족이 어느 정도 된 사람이면 욕심이 생기지 않습니다.
이 자기만족은 많은 재산에서 옵니다.
자기만족이 있다는 것은 자신이 안정적이기에 부모를 부양할 수 있고
자신이 재산에 행복을 느낀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친목을 다지면 계명을 지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재물이라는 우상을 따른 것에서 성경은 똑같이 전할 것입니다.
이 젊은이는 예수님을 저버리고 재물을 섬겼다고 말이죠.
그러나 그 젊은이는 이 말씀을 듣고 슬퍼하며 떠나갔다.
여러분은 계명을 잘 따르십니까?
주님의 말씀을 잘 지키며 살아가십니까?
그런데 성찰을 한번 해보아야합니다.
무엇을 통해 그 계명들을 지켜나가십니까?
내가 의지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신념입니까?
재물입니까?
능력입니까?
지위입니까?
인맥입니까?
아니면 업적입니까?
내 안에 하느님께 의지하는 마음이 없이
다른 것에 의지하고 있어도 계명은 잘 지킬 수 있습니다.
진짜로 하느님을 따르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성찰이 요구되는 오늘의 복음말씀을 묵상하며
내가 진정으로 의지하는 것이 무엇인지 되돌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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