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우상숭배는 하느님께 다가가는 조건을 세웁니다.

글쓴이 :  바울라님이 2019-08-29 19:57:06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161)
    이 게시글이 좋아요 싫어요
 

[연중 제19주간 토요일]

<너희가 주님을 선택하고 그분을 섬기겠다고 한

그 말에 대한 증인은 바로 너희 자신이다>

2019.8.17

 

제1독서 <누구를 섬길 것인지 오늘 선택하여라.>

▥ 여호수아기  24,14-29

 

복음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사실 하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 마태오  19,13-15

 


 

우상숭배는 하느님께 다가가는 조건을 세웁니다.

 

오늘 독서에서는 스켐 집회로 가나안 땅을 모두 정복한 이스라엘이

하느님을 섬기겠다고 맹세하는 구절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께서 자신들에게 해주신 것을 기억하면서

하느님을 따르겠다고 맹세합니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하느님께서 질투하시는 하느님이라면서

이스라엘은 하느님을 따르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하느님은 한없이 자애로우시고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했는데

왜 질투하는 하느님이 되신 걸까요?

여호수아 이야기대로 이스라엘은

훗날 하느님이 아닌 다른 수많은 이민 종족들의 신을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을 저버리지 않는 신기한 형태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것은 다신교로서 살아가는 것이죠.

이스라엘이 다른 종교를 믿을 때

그냥 단순히 하느님을 믿지 않고 ‘이 신앙을 믿겠습니다.’ 라고 하면서 믿은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믿으면서 동시에 다른 신을 믿은 것입니다.

한마디로 하느님 야훼 신앙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그 위에 새로운 신앙을 접목시켜서 신앙을 하곤 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에 대한 신앙에 다른 신앙이 얹어졌을 때 생기는 문제점은

하느님 신앙 위에 이상한 것들이 많이 추가된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이 이야기하는 하느님을 다시금 되새겨봅시다

 

우리와 우리 조상들을 이집트 땅에서, 종살이하던 집에서 데리고 올라오셨으며,

우리 눈앞에서 이 큰 표징들을 일으키신 분이 바로 주 우리 하느님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걸어온 그 모든 길에서,

또 우리가 지나온 그 모든 민족들 사이에서 우리를 지켜 주셨습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모든 민족들과 이 땅에 사는 아모리족을

우리 앞에서 몰아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주님을 섬기겠습니다. 그분만이 우리의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데리고 올라왔을 때 그들은 단지 아무것도 없는 종이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이들을 이끄시어 이스라엘이

스켐 집회에서 선언할 때까지의 여정을 거치며 이스라엘을 일으켜 주셨죠.

이런 모든 과정에서 하느님께서 원하신 것은 단 하나이고 이스라엘은 이를 봉헌하였습니다.

바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응답이었습니다.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너희가 주님을 선택하고

그분을 섬기겠다고 한 그 말에 대한 증인은

바로 너희 자신이다.” 하고 말하자,

그들이 “우리가 증인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하지만 낯선 신앙을 받아들이면서 하느님께 다가가는데

이 응답 외에 다른 것들이 추가되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민족이 다른 신앙을 하며 다른 신을 모시는 모습을 보면서

‘아, 우리도 저렇게 하면 하느님께서 좋아하실텐데’,

또 다른 신들의 이야기를 듣고 ‘아, 하느님도 이렇게 해주시면 좋을텐데’ 하면서

하느님에 대해서 또 우리에 대해서 하나하나 무언가를 만들어냅니다.

그것이 황금 송아지였고,

사울이 하느님 말씀을 어기고 전리품을 가져오는 태도였으며,

이스라엘이 다른 신들을 받아들이는 모습이었습니다.

원래는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것을 있는 그대로 당신에게 봉헌하여

모든 것을 섭리해주시는 것이었지만

이민족들을 받아들임으로서 생긴 것은

하느님께 다가가는 것도 조건이 생기고 다가가는 것이 힘든 하느님이 되어버렸습니다.

오늘 예수님께 다가오려는 아이들을 막은 제자들도 그런 의도였습니다.

 

그때에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들에게 손을 얹고 기도해 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제자들이 사람들을 꾸짖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는 어린 아이와 같은 이들의 몫이라고 이야기하십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은 이 모든 것이 쌓이기 전의 모습

오로지 하느님만을 섬기는 이의 모습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내가 보기에 좋아 보이는 신앙을 모아서 하는 신앙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하느님께 응답하는 신앙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어떠한가요?

우리가 좋아보이는 행동들을 모아놓은 신앙인가요?

아니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거기에 응답하는 신앙인가요?

네이버블로그 양 세마리의 잡생각들 https://blog.naver.com/crodeiran

  

카카오스토리에서 공유하기 페이스북에서 공유하기 네이버 밴드에서 공유하기 트위터에서 공유하기 구글+에서 공유하기 Blogger에서 공유하기


   
  댓글 쓰기

 
로그인 하셔야 댓글쓰기가 가능합니다. 여기를 눌러 로그인하세요.
 

이전 글 글쓰기  목록보기 다음 글

본 게시물에 대한 . . . [   불량글 신고 및 관리자 조치 요청   |   저작권자의 조치요청   ]
마리아사랑넷 | 이용약관 | 개인정보보호정책 | 메일추출방지정책 | 사용안내 | FAQ | 질문과 답변 | 관리자 연락 | 이메일 연락
Copyright (c) 2000~2021 mariasarang.net , All rights reserved.
가톨릭 가족공간 - 마리아사랑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