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심에 황홀경을 느끼지 말고 응답하십시오.

바울라님 2019-05-23 22:54 ... 조회(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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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5주간 월요일]

<여러분, 왜 이런 짓을 하십니까?

우리도 여러분과 똑같은 사람입니다.>

2019.5.20

 

제1독서 <우리는 복음을 전하여 여러분이 헛된 것들을 버리고 살아 계신 하느님께로 돌아서게 하려는 것입니다.>

▥ 사도행전  14,5-18

 

복음 <아버지께서 보내실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다.>

✠ 요한  14,21-26

 


 

부르심에 황홀경을 느끼지 말고 응답하십시오.

 

하나의 가정을 해봅시다.

여러분이 만약 오늘 신비체험을 하게 된다면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맞을까요?

하느님 현존을 명확하게 느끼는 체험이나 치유기적과 같은 초월적인 체험,

아니면 탈혼 체험과 같은 것을 경험한다면 어떻게 느끼는 것이 좋을까요?

또 확장해서 생각해봅시다.

여러분의 주변 사람과 교회는 그런 체험을 한 이들을 어떻게 다루어야할까요?

뽐내고 다닐까요? 나의 놀라운 신심을 발휘하며 다닐까요?

수많은 이들의 칭송을 받으며 교회의 인가를 받아 높은 자리에 올라야할까요?

바오로는 아니었습니다.

 

도시 앞에 있는 제우스 신전의 사제는 황소 몇 마리와 화환을 문으로 가지고 와서,

군중과 함께 제물을 바치려고 하였다.

바르나바와 바오로 두 사도는 그 말을 듣고서

자기들의 옷을 찢고 군중 속으로 뛰어들어 소리를 지르며 말하였다.

“여러분, 왜 이런 짓을 하십니까? 우리도 여러분과 똑같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다만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할 따름입니다.”

 

많은 신학자들, 신비가들, 영적지도자들, 교회의 지도자들은

신비체험을 대하는데 있어 상당히 냉정한 태도를 보입니다.

상당히 무관심한 태도로 말합니다.

영적 지도자들에게 신비체험을 했다고 하는 이가 온다면

칭송하지 말고, 신비체험에 관심을 끊도록 지도하라고 이야기합니다.

대표적으로 오상을 받은 비오 신부님도

교회에서 직무정지를 받고서 드러내지 않을 것을 지시받습니다.

이에 대해 질투와 정치에 휘둘린 교회 판단이라며 이는 오판이라고 이야기하는 이도 있으나

오판이 아닙니다.

오히려 참으로 현명한 판단입니다.

이 명령은 비오 신부의 영혼에 커다란 이득을 가져온 판단입니다.

사실 신비체험은 체험한 이도 그 이상 관심을 갖지 않고

자신의 영적지도자에게만 이야기하고 함구하는 것이 좋습니다.

정확히는 드러내지도 웬만해서는 발설하지도 않는 것이 좋습니다.

성 이냐시오 성인은 영신수련을 남기고 예수회에 커다란 영적이익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영신수련을 다 쓴 후 삶을 살아가던 중

그는 자신이 명확하게 회개하는 신비체험을 했다는 말만 할 뿐

이에 대해 밝히지 않고 갔다고

한 예수회 신부님께서 안타깝게 이야기하시는 것을 들은 적 있습니다.

왜 침묵이 이득일까요? 무관심이 이득일까요?

하느님의 말씀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죄악을 범하는 것 아닐까요?

영혼의 이득을 위해서입니다.

 

“주님, 저희에게는 주님 자신을 드러내시고

세상에는 드러내지 않으시겠다니 무슨 까닭입니까?”

 

신비체험은 하느님의 부르심 중에서 감각적으로 가장 명확하게 알 수 있는 방법입니다.

이를 통해 하느님을 향하면 참으로 좋은 은총입니다.

그러나 매이면 그 전보다 못한 상태가 됩니다.

저는 신비체험을 하나 했었습니다.

하느님께 크게 다가갈 수 있는 체험이었고

저한테는 하느님과의 관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점이라 생각됩니다.

지금은 년도만 기억하고 여름이었는지 겨울이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그 당시에는 영적지도자에게 알리고 기뻐하였습니다만

문제는 그 체험을 다시하려고 다른 것을 비교적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지냈죠.

생각해보면 상당히 긴 기간이었습니다.

그 체험을 하고자하는 의지를 내려놓자 더 큰 은총을 받게 되었습니다.

나의 상태는 하느님의 일부를 발견하고서 그것이 하느님의 전부인 마냥

거기에만 머물려 했던 것입니다.

그걸 시작으로 하느님을 더 찾아 나서자

하느님께서는 더 큰 은총을 주셨죠.

마치 사무엘이 주인의 목소리에 매여 있다가 주님의 목소리에 응답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하느님과의 관계를 계속해서 이어나가는 것과 신비체험에 매여 있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하느님의 관계를 잇는 것이라며 신비체험에 매여 있거나 기적에 매여 있는 이들은

요즘 시대의 연인들이 성관계를 하지 않으면 사랑하지 않는 것이라 주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성관계에 매여 있기에 평상시의 인격적 친교로 이루어지는 사랑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연인의 사랑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성관계입니까? 인격적 친교와 사랑입니까?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신비체험입니까? 하느님과의 인격적 친교와 사랑입니까?

일부의 것으로 인해 전체를 향하지 못하는 것은 하느님이 원하시는 바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이런 헛된 것들을 버리고

하늘과 땅과 바다와 또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신

살아 계신 하느님께로 돌아서게 하려는 것입니다.

지난날에는 하느님께서 다른 모든 민족들이

제 길을 가도록 내버려 두셨습니다.

그러면서도 좋은 일을 해 주셨으니,

당신 자신을 드러내 보이지 않으신 것은 아닙니다.

곧 하늘에서 비와 열매 맺는 절기를 내려 주시고

여러분을 양식으로, 여러분의 마음을 기쁨으로 채워 주셨습니다.

 

하느님과의 인격적 친교는 모든 것을 알게 해줍니다.

단순히 신비체험과 같은 일부가 아닌 전부를 보게 해줍니다.

신비체험은 주님께서 인간을 부르시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신비체험뿐만 아니라 많은 것에서 부르심을 받습니다.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하며 좋은 감정이 드는 모든 것이 그런 것입니다.

그러나 그 감정에 머무는 것을 중시한다면 신앙은 고립됩니다.

그 감정을 통해 하느님께 응답하십시오.

좋은 감정이 아닌 하느님을 향하십시오.

그러면 하느님과 인격적 친교가 이루어집니다.

그 친교를 통해 하느님께 은총으로 채워집니다.

그리고 나의 모든 것이 채워져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기억하게 됩니다.

그 기억은 영혼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것에 매여 있지 마십시오. 하느님께 향하십시오.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

네이버블로그 양 세마리의 잡생각들 https://blog.naver.com/crodei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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