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가 사랑인 나무와 자신의 열매가 사랑이라 외치는 나무

바울라님 2019-05-19 21:26 ... 조회(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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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4주간 토요일]

<우리 하느님의 구원을 온 세상 땅끝마다 모두 보았네.>

2019.5.18

 

제1독서 <이제 우리는 다른 민족들에게 돌아섭니다.>

▥ 사도행전  13,44-52

 

복음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 요한  14,7-14

 


 

뿌리가 사랑인 나무와 자신의 열매가 사랑이라 외치는 나무

 

사랑이라는 단어는 참으로 신비롭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생각한다면

모든 것이 그 사랑을 기반으로 자라고

사랑을 통해 성장하며 사랑으로 열매를 맺으면 모든 것이 발전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뭐든지 사랑이라는 말을 갖다 붙이면 정당성이 있어 보입니다.

사실 사랑에 하느님 사랑과 인간의 사랑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나뉘어져 있지 않습니다.

사랑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온전히 하느님의 것이죠.

그렇다면 인간의 사랑은 무엇일까요?

하느님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이라 칭해지는 것은 이렇게 구분됩니다.

여러분이 선물을 받았을 때

내용물이 사랑인 것과 포장지가 사랑인 것과 다른 것이라 보면 됩니다.

사실 이러한 사랑은 잠깐 멈춰서 바라보면 알게 됩니다.

 

믿지 못하겠거든 이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사랑으로 기반으로 쌓인 것은 인내가 전제되어 있습니다.

나의 욕심이 없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사랑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고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고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자신의 의견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상대를 완성시키고자 하는 의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상대를 믿습니다.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합니다.

상대의 말에 경청하여 그 자리에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줍니다.

이는 오늘 바오로 사도의 태도입니다. 그는 복음을 선포합니다.

반대에 있어 진실을 말해줄 뿐 그 이상 재촉하지 않습니다.

복음을 선포하고 들은 이들의 자유의지에 온전히 맡깁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먼저 여러분에게 전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것을 배척하고

영원한 생명을 받기에 스스로 합당하지 못하다고 판단하니,

이제 우리는 다른 민족들에게 돌아섭니다.

사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땅끝까지 구원을 가져다주도록 내가 너를 다른 민족들의 빛으로 세웠다.’”

다른 민족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기뻐하며 주님의 말씀을 찬양하였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정해진 사람들은 모두 믿게 되었다.

 

그러나 사랑이라 칭해지는 것은 사실상 자신의 교만에서 다가옵니다.

상대를 믿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상대가 부족한 이라 생각하여 경청하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의 시각에 신뢰합니다.

자신의 의견이 절대적인 것이기에 반대 받는 것에 분노하고 답답해합니다.

혹은 자신의 의견이 무너질 것을 두려워하여

상대에게 직접 이야기하지 않고 뒷담이라는 죄를 범합니다.

그리고 후에 다수라는 무기로 상대의 자유의지를 빼앗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율법을 지키기 위해 정면으로 부딪히는 것이 아닌

모략과 계략으로 내쫓습니다.

 

그러나 유다인들은 하느님을 섬기는 귀부인들과 그 도시의 유지들을 선동하여,

바오로와 바르나바를 박해하게 만들고 그 지방에서 그들을 내쫓았다.

 

자신의 의견이 진리인 마냥 상대를 저주하면서 외치는 이는 사랑하는 이가 아닙니다.

상대의 길에 조언을 할 때 경청 이전에

상대의 말을 무조건 핑계로 여기는 이는 사랑하는 이가 아닙니다.

진리를 통한 설득이 아닌 다른 권위나 다수 등 모략으로 외치는 이는

사랑하는 이가 아닙니다.

나의 말이 사라질까 두려워하는 이는 하느님의 사랑으로 말하는 이가 아닙니다.

우리가 사랑을 명확하게 알기 위해서는 사랑을 식별하는 법을 배워야합니다.

그 식별의 시작은 남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닌 자신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자신이 행하는 것들, 나 자신에게 또 다른 이들에게 행하는

사랑이라 칭해지는 것들이 진정 사랑인가 떠올려보십시오.

사실 사랑의 행위에 사랑하기에 한다는 것을 계속 강조하고 있다면

그 사랑은 옳지 못한 것일 가능성이 큽니다.

열매는 뿌리가 온전하면 열매라 이야기하지 않아도 열매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올바른 열매가 아니기에 열매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나를 알게 되었으니 내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아는 것이고, 또 그분을 이미 뵌 것이다.”

 

형제 여러분 스스로가 행하는 사랑을 되돌아보십시오.

사랑을 기반으로서 행합니까?

단순히 내 맘대로 행하고 사랑을 포장하고 있습니까?

하느님을 뿌리로 두고서 사랑을 키우십시오.

사실 모든 열매들과 판단들은 온전한 뿌리로부터 나옵니다.

나무는 자신의 열매가 땅에 떨어졌다하여 슬퍼하지도

자신의 열매가 누군가의 양식이 되었다고 기뻐하지도 않습니다.

열매는 난 것이고 그 이후로 어찌 쓰이던 그냥 있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포장했다면 자신의 열매에 집착할 것입니다.

그러나 뿌리가 튼튼하면 열매는 자연스레 자라는 것으로 둘 것입니다.

나의 사랑이 어떤 사랑인지 살펴보는 하루되시길 바랍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시도록 하겠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네이버블로그 양 세마리의 잡생각들 https://blog.naver.com/crodei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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