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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 강론&심쿵소리강론] 세계 가난한 이의 날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강론[2020년 11월 15일 연중 제33주일 (세계 가난한 이의 날)]

글쓴이 :  Fran.님이 2020-11-20 22:30:51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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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미사 강론입니다.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13.index.html#homilies

                                                                                https://www.vaticannews.va/e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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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 강론 날짜]2020년 11월 15일 주일[연중 제33주일 (세계 가난한 이의 날)]

[독서와 복음 말씀] 제1독서 : 잠언 31,10-13.19-20.30-31

                           화답송 : 시편 128(127),1-2.3.4-5(◎ 1ㄱ 참조)

                           제2독서 : 테살로니카 1서 말씀입니다. 5,1-6

                           복음 : 마태오 복음 25,14-30

http://maria.catholic.or.kr/mi_pr/missa/missa.asp?menu=missa&missaid=11902&gomonth=2020-11-15&missatype=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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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가난한 이의 날

 

거룩한 미사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강론

 

성 베드로 대성당

2020년 11월 15일 연중 제33주일

 

우리가 방금 들었던 비유에는 처음과 중간과 끝이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들 삶의 처음과 중간과 끝을 비춥니다.

 

처음. 모든 것은 큰 선량함에서 시작됩니다. 주인은 자신의 재산을 자기 자신을 위해서 보관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자신의 종들에게 줍니다. 한 사람에게 다섯 탈렌트, 다른 사람에게는 두 탈렌트, 세 번째 사람에게는 한 탈렌트, “각자의 능력에 따라”(마태오 복음 25,15). 단 한 탈렌트가 약 20년 동안 일한 수입과 같았다고 계산되어져 왔습니다. 그것은 엄청난 가치여서 평생 충분할 것입니다. 이것이 처음입니다. 우리에게도 또한 모든 것이 하느님의 은총으로 시작되었습니다 – 모든 것이 항상 은총으로 시작됩니다, 우리 자신의 노력이 아니라 - 하느님의 은총으로. 그분께서는 아버지이시고 다른 탈렌트들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시면서 너무나 많은 것들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달려 있는 큰 재산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받은 삶, 우리 안의 선함, 하느님께서 당신의 모상 안에서 우리를 만드심으로써 우리에게 주신 지울 수 없는 아름다움… 이 모든 것들이 그분의 눈에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하게 만듭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매우 귀중하고 역사상 유일합니다! 이것이 하느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시는 방식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 대해 느끼시는 방식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너무나도 자주 우리는 우리에게 없는 것들만 보고 우리는 우리에게 없는 것들에 대해서 불평합니다. 그때 우리는 유혹에 굴복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 하기만 한다면!” 내가 저 일을 갖기만 한다면, 내가 저 집을 갖기만 한다면, 내가 돈과 성공을 갖기만 한다면, 나한테 이런 또는 저런 문제가 없기만 한다면, 내 주변에 더 좋은 사람들이 나한테 있기만 한다면…! 그러나 저 환상에 불과한 말들-하기만 한다면!-은 우리 주변의 모든 좋은 것들을 보지 못하도록 우리를 막아 버립니다. 그 말들은 우리가 갖고 있는 탈렌트들을 우리가 잊어 버리게 만듭니다. 당신은 저것을 갖지 못하고 이것을 갖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하기만 한다면”이 이것을 잊어 버리게 만듭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아시고 우리의 능력을 아시기 때문에 저 탤런트들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의 나약함에도 불구하고 그분께서는 우리를 신뢰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탤런트를 숨겨둘 그 종을 신뢰하기까지 하십니다. 그의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그도 또한 그가 받은 것을 잘 활용하기를 바라시면서. 요컨대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과거를 그리워하지 말고 그분이 돌아오시기를 열심히 기다리면서 현재를 최대한 활용하라고 하십니다. 저 향수는 얼마나 추합니까. 그 향수는 우울한 기분으로 우리들의 영혼을 중독시키고 있고 우리를 언제나 뒤돌아보게 만들고 있고 언제나 우리들의 손이나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일을 위한 기회를 절대 보지 못하게 하고 우리 자신의 상황을 절대 보지 못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심지어 우리 자신의 가난도 보지 못하게 합니다.

 

이것이 우리를 비유의 중심으로 데리고 갑니다. 종들의 일, 그것은 섬김입니다. 섬김은 우리의 일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탈렌트들이 열매를 맺게 하고 그것이 우리의 삶에 의미를 줍니다. 섬기기 위해서 살지 않는 사람들을 이 삶에서 조금밖에 섬기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것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섬기기 위해서 살지 않는 사람은 조금밖에 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종류의 섬김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까? 복음에서 착한 종들은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두려워하지 않고 지나치게 조심하지 않으며 그들은 자신이 가진 것에 집착하지 않지만 그것을 잘 활용합니다. 선량함은 활용되지 않으면 소실되기 때문이고 그리고 우리 삶의 위대함은 우리가 얼마나 많이 모으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맺은 열매에 의해서 측정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삶을 단순히 소유를 축적하는데 소비하고 그들이 할 수 있는 선한 일이 아니라 오로지 풍족한 인생을 걱정하는 데에 자기 삶을 소비합니까. 그러나 우리의 욕구에 중심이 맞추어지고 다른 이들의 궁핍함에 눈감은 인생은 얼마나 공허한지요. 우리가 선물을 받은 이유는 우리가 다른 이들을 위해서 선물이 될 수 있기 위해서 입니다. 그리고 형제 자매 여러분, 여기서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해야 합니다. 나는 오로지 나 자신의 욕구만 쫓고 있는가, 아니면 나는 다른 이들의 궁핍함을 바라볼 수 있는가, 궁핍한 누군가를 바라볼 수 있는가? 나의 두 손은 열려 있는가 아니면 닫혀 있는가?  

 

위험을 무릅쓰고 그들의 탈렌트들을 활용한 그 종들이 무려 네 번이나 “성실한”(마태오 복음25, 21. 23)이라고 불리는 것은 중요합니다. 복음에 나오는 성실함은 결코 위험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신부님,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위험을 감수한다는 것을 의미하나요?” – “네, 사랑하는 여러분, 위험을 감수하십시오. 당신이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세 번째 종처럼 끝날 것입니다. 즉, 당신의 능력을, 당신의 영적인 그리고 물질적인 부와 모든 것을 숨기면서. 위험을 감수하는 것. 즉, 위험 없는 성실함은 없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충실함은 우리의 삶을 넘겨 드리는 것, 우리가 면밀하게 세운 계획이 섬기고자 하는 우리의 욕구에 의해서 중단되도록 놓아 두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내 계획이 있어요, 그래서 내가 섬겨야 한다면…” 당신의 계획이 뒤엎어 지도록 놓아두십시오, 가서 섬기십시오. 그리스도인들이 방어적인 일을 할 때 오로지 규칙만을 지키고 계명에 순종하는 것에 만족할 때 슬픕니다. 위험이 두려워서 절대로 경계를 넘지 않는 결코 넘지 않는 저 “적당한” 그리스도인들. 그리고 그들은, 나에게 이런 이미지를 허락해 주세요,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보살피는 사람들은 자신의 삶 안에서 그들의 영혼을 미라로 만드는 과정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결국 미라처럼 됩니다. 규칙을 따르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즉, 예수님에 대한 충실함은 그저 실수를 하지 않는 것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상당히 잘못된 것입니다. 그것이 비유에 나오는 게으른 종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즉, 진취성과 창의성의 부족으로 그는 불필요한 두려움에 굴복했고 그가 받은 탈렌트를 숨겨 두었습니다. 주인은 실재로 그를 “악하고”(마태오 복음 25, 26)라고 부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는 잘못한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선한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실수를 하는 위험을 감수하기 보다는 태만함으로 죄를 짓는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 그는 하느님께 성실하지 않았습니다. 그분께서는 자유롭게 쓰시는 분이시고 그리고 그 종은 그가 받는 선물을 돌려 줌으로써 훨씬 더 나쁘게 마음 상하게 하는 행동을 저질렀습니다. “당신이 나에게 이것을 주었죠, 그래서 나는 그것을 당신에게 주겠어요”, 그 이상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주님으로서는 우리에게 후하라고 하시고 사랑의 용기로 두려움을 극복하라고 하시고 복잡해 지는 소극성을 극복하라고 하십니다. 오늘 불확실성의 이 시대에 불안정한 이 시대에 우리의 삶을 오로지 우리 자신만을 생각하고 다른 이들에게 무관심하거나 “평화롭다, 안전하다.”(테살로니카 1서 5, 3)라고 말하면서 우리 자신을 착각하게 만드는데 낭비하지 맙시다. 성 바오로가 직면한 현실을 바라보고 무관심의 전염을 피하라고 우리를 초대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섬기라고 하시는 대로 섬길까요? 주인은 성실하지 않은 종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다면 내 돈을 대금업자들에게 맡겼어야지. 그리하였으면 내가 돌아왔을 때에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돌려받았을 것이다.”(마태오 복음 25, 27). 누가 우리에게 장기 이자를 붙여 줄 “대금업자들”입니까? 그들은 가난한 이들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가난한 이들이 복음의 핵심에 있습니다. 우리는 가난한 이들 없이 복음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가난한 이들은 예수님 당신 자신과 같습니다. 그분께서는 부유하시면서도 당신 자신을 비우시고 당신 자신에게 죄를 지우기까지 하시면서 당신 자신을 가난하게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가장 나쁜 형태의 빈곤. 가난한 이들은 우리에게 영원한 수입을 보장해 줍니다. 지금도 그들은 사랑으로 부유해 지도록 우리를 돕습니다. 싸워야 하는 가장 나쁜 형태의 빈곤은 우리 사랑의 빈곤이기 때문입니다. 싸워야 하는 가장 나쁜 형태의 빈곤은 우리 사랑의 빈곤입니다. 잠언은 사랑에서 부유한 여인을 칭송합니다. 그 여인의 가치는 산호보다 높습니다. 우리는 “가난한 이에게 손을 펼치”는{잠언 31,20} 여인을 본받으라고 이야기 됩니다. 그것이 이 여인의 위대한 부유함입니다. 당신에게 없는 것을 요구하는 대신 당신의 손을 가난한 이에게 내미십시오. 이런 방식으로 당신은 당신이 받은 탈렌트들을 늘릴 것입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휴가 시즌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사람들이 이렇게 묻는 말을 듣습니까? “내가 뭘 살 수 있을까? 내가 무엇을 더 가질 수 있을까? 나는 쇼핑하러 가야겠다”. 다른 말을 씁시다.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예수님과 닮기 위해서, 그분께서는 당신 자신을 내어 주셨고 구유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우리는 지금 복음 말씀 비유의 끝에 와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부유해 질 것입니다. 한편 다른 이들 많이 가지고 그들의 삶을 낭비했던 사람들은 가난해 질 것입니다(마태오 복음 25, 29 참조). 우리 삶의 끝에서 그때 진리가 드러날 것입니다. 이 세상의 가식이 사라질 것입니다. 성공과 권력과 돈이 인생에 의미를 준다는 관념과 함께. 반면 사랑–우리가 주어왔던 사랑-은 진정한 부유함으로 드러날 것입니다. 그것들은 쓰러질 것이고 그러나 사랑은 떠오를 것입니다. 교회의 위대한 교부는 이렇게 썼습니다. “이 세상에 관하여 말하자면 죽음이 오고 연극이 사라질 때 모든 것이 그들의 부나 빈곤의 가면을 없애고 떠날 때 그때부터 오로지 그들의 일들로만 심판을 받으며 그들은 그들이 어떤 모습인지 보여지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진정으로 부유하고 다른 사람들은 가난하게(요한 크리소스토모, 「가난한 이 라자로에 관한 강론」 2,3). 만약 우리가 가난하게 삶을 살기를 원치 않는다면 가난한 이들 안에서 예수님을 보고 가난한 이들 안에서 예수님을 섬기는 은총을 간구합시다.

 

나는 다른 이들을 섬기면서 이런 방식으로 조용하게 사는 하느님의 성실한 저 모든 종들에게 감사하고 싶습니다. 나는 그 예로 로베르토 말제시니(Roberto Malgesini) 신부를 생각합니다. 이 사제는 이론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는 단순히 가난한 이들 안에서 예수님을 보았고 그들을 섬기면서 삶의 의미를 찾았습니다. 그는 위로하시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자신의 온유함으로 그들의 눈물을 닦아 주었습니다. 그의 하루의 시작은 기도였습니다, 하느님의 선물을 받기 위해서. 그의 하루의 중심은 자선이었습니다, 그가 받은 사랑이 열매를 맺도록 만들기 위해서. 그 끝은 복음에 대한 그의 확실한 증언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그들 한 사람 한 사람 안에서 예수님을 보았기 때문에 그가 자신의 손을 자신이 매일 만난 저 모든 가난한 사람들에게 뻗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말이 아닌 행동 안에서 그리스도인이 되는 은총을 간구합시다. 예수님께서 열망하시는 대로 열매를 맺기 위해서. 이것이 진실로 그렇게 되게 하소서.

 

 (번역 2020. 11. 20. 금요일. 22:32)

 

강론영어원문 -> http://www.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20/documents/papa-francesco_20201115_omelia-giornatamondiale-poveri.html

강론 미사 사진 동영상 -> http://www.vatican.va/content/francesco/en/events/event.dir.html/content/vaticanevents/en/2020/11/15/giornata-poveri.html

 

<소리로 전하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심쿵 미사 강론>

1. 마리아 사랑넷 https://m.mariasarang.net/bbs/bbs.asp?index=bbs_sermon_pope (->신앙생활->교황님 미사 강론)

2. 팟빵 http://www.podbbang.com/ch/1771273(->교황님의 심쿵 미사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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