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17,11-19
+ 찬미 예수님
주님의 이름으로 평화를 빕니다.
오늘은 경기방이죠.
오늘 강론은 여러분이 선택할 수 있어요.
오늘 군인 주일이니 신부님 군종 사목할 때 이야기 해주십시오. 옵션 1.
오늘 10명의 나병환자 이야기해 주세요. 옵션 2.
옵션 1, 손 들어보세요. 하나, 둘, 셋, 일곱 명.
옵션 2, 손 들어보세요. 압도적으로 많군요.
옵션 2로 하겠습니다.
고대 근동 지방,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유대인들이죠.
유대인들이 생각할 때 병의 원인을 뭐라고 생각했느냐, 크게 세 가지예요.
첫 번째는 정말 다친 거야, 찢겨 피가 나. 이렇게 자연적인 병이 생기는 거죠.
두 번째는 공기 중에 악령이 떠다니다가 약한 모습을 보이면 치고 들어가서 병을 일으킨다.쉽게 말해 병마예요.
그런데 이 두 번째는 전혀 허무맹랑한 소리는 아니에요.
왜냐하면 내가 한평생 신자들을 치유하고 구마 시켰는데, 어떤 경우에는 마귀를 떼어내니까 동시에 그 사람이 갖고 있던 병이 나은 일도 있었어요.
그러면 결과로 볼 때 이 사람의 병은 100% 병마였구나, 하지만 극히 드물어요.
또 재미난 얘기는 공중에 떠다니다 남의 말 많이 하는 사람 입으로 들어간다는 설도 있어요.
조심들 하세요. 함부로 남의 얘기하지 말고 입 다물어야지.
그다음에 세 번째로는 뭐냐?
이 세 번째를 대부분 다 믿었어요.
저 인간이 병이 났으면 병이 날 만큼 뭔가 죄를 지은 게 있다, 이겁니다.
우리는 몰라도 하느님은 그 죄를 알고 있어서 그 죄에 대한 보상으로 병을 내린 것이다.
그런데 저 사람 어릴 때부터 자란 걸 보면 법 없이 살 사람인데, 병에서부터 헤어나질 못해?
그런 경우에는 뭐까지 걸고넘어졌느냐? 조상 가운데 있다, 이거야.
조상 가운데 하느님 배반하고 죄지은 인간이 있어서 자손이 지금 그 벌 받는 것이다.
보통 이렇게 세 가지로 병의 원인을 생각했죠.
그때 당시에 의학이 발달한 시대가 아니었죠.
그래서 첫 번째 뭐라고요? 자연적인 병.
두 번째로는 악령이 일으킨 병, 세 번째로는 죄에 대한 벌로 받는 병.
그런데 오늘 복음에 나오는 10명의 나병환자는 셋 중에 어디였을 것 같아요?
3번이에요.
병이 깊으면 깊을수록 저 인간은 도대체 얼마나 큰 죄를 지었길래.
당시에 제일 큰 병은 암도 아니고 관절염도 아니라 옛날 문둥이라고 그랬죠? 나병이었죠.
일단 나병에 걸리면 자식들이 아버지 묶어 산속에 있는 나병 굴속에 내던지고 와요.
나병으로 판명이 되는 순간 이제 인간이 아니에요.
아내로부터도 외면당하고, 자식으로부터 외면당해.
나병환자들이 모여 사는 굴속에서 그냥 죽을 날만 기다리는 거죠.
치료는 무슨 치료입니까? 소독은 무슨 소독을 어디서 해요?
그냥 냄새나는 누더기 같은 천을 칭칭 감고 있었죠.
나중에는 보면 발가락도 떨어져 나가고 코도 없어져 버리고.
다만 가족들이 해야 할 의무가 있어.
굶어 죽지 않게끔 일주일에 두 번씩 빵 덩어리를 근처 두는 곳에 두어야 해요.
그러면 엉금엉금 기어 나와서 그걸 가지고 들어가는 거예요.
그런데 어느 날 누군가 음식을 갖다 놓고 굴속에 대고 소리를 지르고 갔어요.
‘살아들 계슈? 우리 동네에 나자렛 선생이 오셨어. 그 양반, 죽은 사람도 살렸대.’
불만 지르고 가는 거야.
그 사람이 떠나고 난 다음에 굴속은 웅성웅성 대기 시작했죠.
‘지금 뭐라고 그랬지? 죽은 이도 살린 양반이 우리 동네에 왔대.’
그중에 용기 있는 사람 하나가 ‘우리 가보자.’
대부분 사람이 ‘미쳤어? 동네 가기 전에 돌에 맞아 죽어.’
유대 법에 나병환자들은 절대 동네를 못 내려왔어요.산
길에서라도 혹시 저 앞에 사람이 있으면 나병환자가 먼저 손을 들고 소리를 질러요.
‘피하시오. 나를 피하시오. 나 나병환자요.’
그리고 율법에 나병환자를 돌로 쳐 죽이는 건 죄가 안 됐어요.
돌로 처맞아 죽을 정도로 죄를 많이 지은 인간이라는 뜻이죠.
그런데 예수님 만나려면 동네로 내려가야 하잖아요.
한 사람이 ‘나 여기서 죽나, 가다가 죽나, 아무튼 그 양반 가까이 한번 갈겨. 갈 사람?’
그러니 여기저기서 일어나는데, 발가락도 없고,
서로가 팔짱을 끼고 부축하고 산길을, 얼굴을 썩은 냄새 나는 붕대로 친친 감고 내려와요.
그야말로 인간의 몰골이 아닌 사람들이 산길을 따라서 동네로 내려갑니다.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마음이 힘들었을까요.
그런데 마을 입구에 들어섰는데 동네가 조용해, 왜? 다 예수님 보러 간 거야.
마을 광장은 인산인해야, 그 동네 사람들뿐이었겠어요?
다른 동네서 온 사람부터, BTS 저리 가라죠.
그러니 이 10명의 나병환자가 군중 쪽으로 가는 것을 모두 등을 돌리고 있어 못 본 거야.
그래서 아무튼 조심스럽게 사람들이 꽉 차 있는 곳으로 갔죠.
예수님은 저 한가운데 계실 것 같은데 뚫고 들어갈 재간이 있습니까?
그런데 사람들이 무슨 냄새를 맡은 거예요? 사람 살 썩는 냄새.
갑자기 어디서 송장 썩는 냄새가 코에 들어와.
이게 뭔 냄새인가 두리번거리니 문둥이 10명이 서 있는 거예요.
뒤쪽에서 난리가 났겠죠.
웅성웅성, 사람들이 돌을 집기 시작해요.
그중에 나병환자 한 사람이 뭐라고 불러요?
명칭이 두 개야, ‘예수님, 스승님’
공동 번역에는 ‘예수 선생님’이라고 나와요.
‘예수님, 스승님’ 그다음 뭐라 그래요?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세요.’
목에도 나병이 침투되어 소리도 안 나오는 그 목소리로 죽을힘을 다해 소리 질러요.
‘저희에게 자비를’ ‘나에게’가 아니에요.‘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세요.’
성서에 보면 ‘멀찍이 서서 소리를 높여 말했다.’
멀찍이 설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아셨죠?
예수님 앞으로 올 재간이 없는 거야.
이제 사람들의 시선은 예수님 쪽이 아니라 다 뒤를 돌아본 거예요.
‘저것들이 미쳤나, 죽으려고 환장했나, 여기가 어디라고?’
분위기가 살벌해졌어요.
근데 말이죠.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나병환자 많이 고쳐줬죠.
그리고 고쳐주실 때는 좀 더 특이하게 고쳐줬어요.‘터치 테라피’
예수님 말만해도 다 낫게 했는데, 유독 나병환자 때는 몸소 가셔서 상처에 손을 대요.
왜 손을 댔을까?
이 저주받을 몸뚱아리는 아내도 나를 버렸고, 이 나병이 생기고 난 이후로는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손을 댄 사람이 없어.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멀찍이 보고 ‘나아라.’ 하시면 나병은 나을 수 있었지만, 마음의 병까지 나았을까?
아니죠.
배신감, 절망감, 그리고 자식이 나를 갖다 버렸다고 하는 분노.
이런 것들은 나병이 나아도 해결 안 됐을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은 직접 가서 그 썩은 물이 줄줄 흐르는 몸뚱아리에 손을 대면서 ‘나아라.’
예수님의 손과 나병환자의 상처가 딱 만나는 순간, 우주가 만난 거죠.
그 순간에 나병환자는 육신의 병만이 아니라 마음의 병까지 치유가 돼요.
그래서 다른 복음에서는 나병환자 치유시킬 때는 터치 요법을 항상 썼어요.
저도 본당 신부로 있든 성지에 있든, 항상 미사 끝나면 기를 쓰고 한 게 손잡는 거였어.
그런데 우르르 몰려나오면 나는 손이 하나니, 어떤 때는 양손으로 해.그래도 뒤로 빠져나가는 분 있죠.
어떤 분은 그게 또 서운한 거야, 내 뒤통수에 인사하고 신부님이 인사 안 받았다고.
그리고 본당에 있을 때 이름과 세례명이 적힌 이름표를 미사 때는 차고 나오라 했어요.
그러면 성체 줄 때, ‘베드로, 그리스도의 몸.’
이름을 불러줘요.‘마리아, 그리스도의 몸.’ ‘시몬, 그리스도의 몸.’
신자들이 막 눈물을 흘려요.
주님이 내 이름을 부르면서 들어오셨어.
이런 비법을 누구한테 배웠을까요? 예수님이지 누구야.
예수님이 터치하셨잖아요.
그런데 문제는 오늘이야.
10명의 나병환자가 ‘선생님,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는데, 예수님이 일어서서 갈 생각도 안 하고 생뚱맞게 무슨 말 한마디만 해요.
‘너희 몸을 사제에게 보여라.’ 그렇게 나와요.
다른 복음서에는 그 말만이 아니라 ‘사제에게 보이고 네가 나았다는 것을 확인받은 다음에 모세가 정해준 대로 예물을 드려라.’라는 말까지 하셨어.
여기는 루카 복음에는 그 말이 없어요.
그냥 ‘사제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여러분이 나병환자라면은 어땠을까요?
‘뭐야, 이거? 여기까지도 목숨 걸고 내려왔는데, 사제가 있는 동네 한가운데로 가라고? 가다가 죽게 생겼는걸’
그러면서 나병환자를 인솔한 사람에게 ‘봐, 신통한 것도 없잖아. 우리 왜 끌고 내려왔어?’
그렇지만 리더는 ‘조용히 해. 분명히 저 어른 뭔가 뜻이 있을 테니, 시키는 대로 하자.’
그래서 열 명이 서로 팔짱을 끼고 부축하면서 사제가 있는 쪽으로 가는데, 어떻게 됐어요?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다.’
여러분들이 아침에 세수 깨끗이 하고 제일 좋은 옷 입고 ‘오늘 주님 만나러 가는 주일이네’하며 성당을 향해 가는 중에 이미 치유가 된 거예요.
여러분들이 새벽 일찍 일어나 월정리 오늘 11시 미사 가야지 하면서 길을 나서는 그 중간에, 벌써 사제를 향하여 오는 중간에, 여러분께 이미 치유와 구마가 이루어진 거예요.아멘
여러분들이 미사 갈 때마다 ‘나병환자가 사제를 찾아가는 동안에 병이 나았다.’
성체를 향해 가는 그 과정 중에 이미 나는 나았다는 믿음을 갖는다면, 그게 바로 축복이죠.‘너의 몸이 나았다는 것을 보여라.’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다.’
그다음부터 또 스토리가 엄청 재미있습니다.
낫기는 10명이 나았는데, 예수님에게 다시 와서 땅바닥에 엎드리면서 큰 소리로 하느님 찬양하고 감사를 드린 사람은 몇 명? 딱 한 명.
그 딱 한 명은 누구냐, 족속이 달라. 사마리아 족속이야,
놀랍게도요.‘고통’이라는 공통 분모가 있을 때는 유대인이고 사마리아인이고 한 공간에 머무를 수 있었죠.
고통이 나병이라고 하는 고통은 민족 간의 장벽을 깨.
유대인이든 팔레스타인이든 그걸 깨버려요.
한 동굴 속에서는 ‘너 사마리아인이지?’ 그런 적 없어.
사마리아인인 것 알아도 구타하거나 쫓아내지 않았죠.
같은 공동 운명체일 때는 원하는 것이 같기 때문이죠.그런데 딱 나았어.
낫고 나니 유대인 9명이 한 명 사마리아인이 보이기 시작해.
꼴 보기 싫은 사마리아 놈이 우리 가운데 있었던 거야.
9명은 휙 하고 가버렸어.
사마리아 사람만 왔죠.
예수님이 그걸 보고 ‘허허 내 이럴 줄 알았어.’
‘내가 분명히 10명 고쳐줬는데 아니 어찌 아홉 놈은 어디 가고 너 혼자 왔냐?’
어찌 이 외국인 말고는 다른 인간들은 하느님께 영광 돌려드리러 오지 않았느냐 얘기죠.
그리고 하느님의 입에서 들리는 소리 가운데 가장 축복의 말,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 이 말을 마지막 선물로 주셨잖아요.
성경에 사마리아인들은 좋은 역할로 많이 나오죠.
강도 만난 사람을 구해서 여관까지 데려가서 사람으로도 나오죠.
2천 년 동안 성서학자들, 역사학자들의 큰 수수께끼가 뭐였느냐, 이 아홉 사람이 어디 갔을까?
자기 병을 낫게 해준 의사가 있다면 귤 한 상자라도 사서 가지고 가잖아.‘선생님 고맙습니다.’ 메모 써서 붙이고.
그런데 이 아홉 놈은 행방이 묘연해.
그래서 2천 년 동안 수많은 성서학자가 이 아홉 사람의 행방에 관해서 연구했지만. 결국 못 찾아냈잖아.
나도 무려 35년 동안 연구하다가 드디어 답을 찾았어.
아직 학계에 발표도 안 한 건데 이걸 얘기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딴 데 가서 막 이렇게 얘기하면 안 돼(웃음)힘들었어요.
이 아홉 놈의 행방.
병이 낫자마자 참 묘하게 취미가 같은 놈끼리 모입디다.
세 놈, 세 놈, 세 놈.
첫 번째 세 놈은 병이 낫자마자 어디 갔느냐?
몽둥이부터 찾아 집으로 달려갔어.
왜? 마누라 두들겨 패려고.
남편이 문둥이로 굴속에 있는 동안에 이 여자가 딴 남자랑 살고 있단 말이야.
그 배신감 너무너무 컸어요.
나병 때문에 아플 때는 생각도 안 났어.내 마누라가 누구랑 살든, 바람을 피우든.
그런데 건강을 찾으니까 다시 그 분노가 살아나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은 치유와 분노는 어떻게 보면 동전의 앞뒤 때가 있어요.
사람이 치유를 받은 후 어떤 하느님의 보물을 쌓지 않으면 반드시 분노, 상처의 마귀가 따라와요.
그 세 사람은 자기를 업신여겼던 사람들, 배반했던 사람들, 굴속에 갖다 내던진 새끼들 두드려 패야겠다, 이제 힘도 있겠다, 정상이야, 가만 안 둬, 하며 찾아간 거예요.
이것은 수많은 증인의 증언을 듣고 내가 찾아낸 얘기야.웃긴 왜 웃어요?
그다음에 또 세 사람은 병이 낫자마자 어디 갔느냐?
그동안 못 먹었던 우리 술 실컷 먹자.술집으로 찾아갔어.
치유된 사람이 그 치유를 하느님께 감사드리지 않으면 반드시 술 마귀가 쫓아와요.밤새 술 먹었지.
이제 몇 놈 남았어? 3명.
이 3명은 몸이 낫자마자 어디를 단체로 예약하고 갔느냐?
창녀 집으로 쫓아갔어.
우리 그동안 여자 맛 못 봤는데, 우리 실컷 즐기자.
다시 말하면 치유된 자가 하느님께 감사하지 않으면 반드시 음란 마귀가 쫓아와요.
그래서 이 세 마귀, 분노의 마귀, 또 두 번째 술 마귀, 음란 마귀는 삼 형제라고 그래요.
셋은 항상 같이 다닌다고 그래요.
그런데 여러분들 얼굴 감탄하는 얼굴이 아니야.
내가 35년 동안을 연구해 어마어마한 발표를 했는데.
유튜브 보시는 분들 깜짝 놀랐죠?
봐, 봐, 놀랬다고 그러잖아. 지금(웃음)
우리는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서 치유를 받아요.
성체를 통해서, 또 사제들의 말씀을 통해서, 또 아니면 거룩한 장소에 옴으로써 치유를 받죠.
오늘 강론 우리가 정리하면은 일단 나병환자들은 목숨을 걸고 예수님 만나러 간 거죠.
이게 첫 번째예요.
여러분들이 기도할 때 안 하면 손해 보니까 하는 마음으로 하는 기도는 하느님 마음을 못 움직여요.
정말 기도드릴 때 이 나병환자가 주님 만나러 가는 그런 마음으로.
우리가 미사 가고 어디 성지 순례 갈 때 관광 가는 마음으로 아니죠.
절실한 마음으로 우리가 움직일 때는 이미 그 마음을 먹는 순간부터 치유는 시작이 돼요.
그리고 오늘처럼 사제 입을 통해서 치유됐다고 하는 얘기를 듣는 거예요.
월정리를 향해서 이른 새벽에 차를 몰고 아마 여러분들 여기 오기까지, 가로막는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있을 거예요.
하느님 쪽으로 향하면 마귀가 가만히 안 있어요.
수단 방법을 안 가리고 어떻게든지 막아요. 아주 교묘하게 막아요.
더군다나 그것도 먼 데 있는 사람이라 가까운 사람을 통해서 시비가 올 때가 있어요.
그래서 오늘 여러분들 왔잖아요.
여러분이 온 게 아니라 하님이 불러낸 거예요.정확히 얘기하면 부르신 거예요.
거룩한 곳은 내가 오고 싶어서 오는 게 아니죠.
설령 어떤 분은 차 운전 때문에 억지로 끌려왔다고 하더라도 그분조차도 이미 하느님의 계획 가운데 있었던 분이에요.
불러내셨으니까 하실 말이 있잖아요.
하실 말은 이 사제의 입을 통해서 하시잖아요.
이곳에 머물면서 아름다운 자연을 통해서도 뭔가 말이 들릴 거예요.
연못 앞에 앉아서 눈을 감고 소리 들릴 거예요.
그래도 주실 게 있을 거예요.주실 것은 자명해요.
분명히 치유 은혜 주실 거예요.
어둠이 나를 괴롭히고 있다면 구마의 은혜 주실 거예요.
그리고 세 번째로는 담대한 믿음의 은혜 주실 거예요.
이 세 가지를 여러분에게 주기 위해서 오늘 이 시간을 예비하셨다고 하는,
어쩌다가 온 게 아니고,
누가 불러서 온 게 아니고,
뭔지도 모르고 왔던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은 하느님의 계획 가운데 있었던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또 하나의 나병환자죠.맞죠?
겉은 멀쩡해도 우리 나병환자예요.
나병환자 치유시킬 때 예수님은 특별히 어떻게 하셨다고요?
말로만 한 것이 아니라, 가셨죠.
그 예수님의 따뜻한 손이 내 상처를 만질 때 놀라운 신비감, 기적이 일어나는 거죠.
그래서 저는 은퇴하기 전부터 나중에 은퇴한다면 그런 장소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왜냐?
나는 이 세상 어느 신부님이 갖고 있지 않은 사십몇 년 동안 한 점 한 점 이 김 신부를 찾아온 성인들의 유해가 있어요.
물론 저 유해를 갖고도 시비 거는 신부님들도 있죠.
증명서를 보여줘도 안 믿어서 내가 그 가짜라는 걸 좀 증명해 보라 했어요.
그럼 할 말이 없지. 이유 없이 반대하는 거죠.
나는 100% 다 증명서가 있어요.
그리고 성인들의 유해는 밀랍하고 그 뒤에 추기경 반지 도장이 찍혀 봉인돼 있어요.
앞으로 내가 살면서 해결해야 할 문제 중 하나가 성인 유해를 어디에 봉헌하느냐입니다.
일단 내가 속해 있는 청주교구는 좀 어려울 것 같았어요.
사실 배티에 박물관 지을 때 성인 유해 전시관도 같이 지으려 했는데 당시 주교님이 NO.
배티 성지는 최양업 신부님이 주인공인데 왜 다른 성인들 유해 들어오느냐고 했죠.
나랑 좀 생각이 좀 차이가 컸어요.
최양업 신부님은 피의 순교자가 아니기에 성인 되기가 정말 하늘의 별 따기야.
그래서 이 많은 성인·성녀들이 최양업 신부님의 시성을 위해서 울타리를 빙 둘러주면 좋겠다.
나는 그 생각으로 성인 유해 관을 만들려고 그랬어요.
주교님은 나랑 생각이 다르시구나.
지금도 난 찾고 있어요.
어느 교구든지 어느 수도회든지 만약에 한국에서 찾지 못하면 다시 외국으로 보내야 해요.
저분들이 42년 내 사제 생활 동안 한 점 한 점 온 건 분명히 이유가 있으니까 오신 건데, 여러분을 여기 이유가 있으니까 불러냈듯이 오신 건데.
성인 유해를 다시 외국으로 돌려보낸다는 것은 우리 한국 교회에 좀 부끄러운 일 같아요.
여러분들 기도 중에 성인 유해가 제자리를 찾을 수 있게끔 기억해 주세요.
어차피 내가 여기서 천년만년 못 살잖아요
.나도 이제 힘이 들면 사제들 양로원으로 들어가야 할 날이 언젠가는 올 거고, 그러면 저 성인 유해를 갖고 들어갈 수가 없잖아요.
그렇다고 개인적으로 누구에게 하나 모셔가라 할 수도 없잖아요.
정말 우리 한국 신자들이 다 공경할 수 있는 장소, 여러분들이 기도 중에 꼭 기억해 주시면 빨리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사
실은 저도 집에서는 숨도 못 쉬어요.
층층시하 어른들이 너무 많아.
내 서재에도 24분이 계셔요.
어떤 때는 런닝을 갈아입으려고 하다가 화장실 들어가서 갈아입고 나와야 해요.
많은 분이 어떻게 해서 이렇게 많이 모으셨어요, 물어요.
내가 성인들의 뼈 모으는 수집가가 아니잖아요.
한꺼번에 오신 게 아니죠.
하나하나 나한테 오신 것을 얘기하면 다 신비고 기적이야.
이제 그것을 내가 책으로 내야 해요. 아마 전집이 될 거예요.
프란치스코 성인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나한테 오시게 됐다.
비안네 신부님의 발꿈치뼈는 루르드 성지에서 외국 사람이 나한테 전달했다.
정말 많은 얘기가 있어요.
그런데 지금 한 가지 걱정이 제가 황반변성 때문에 책을 읽거나 쓰기가 거의 불가능해요.
혹시 대필에 재주 있는 사람은 미리 얘기해 주시면 나중에 도움을 청할 수도 있어요.
지금도 이렇게 글자가 다 깨져버리기 때문에 눈에다 힘을 줘도 금세 풀어져 버려.
여러분들도 잘 안 보여.
그러니까 좋은 점이 하나 있어요.
다 예뻐 보여. 모두 뽀샵 처리가 되어 다 이뻐요.
오늘 이곳에 불러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또 이렇게 좋은 날씨 주심에 감사드려요.
어제 비 표시 있던 것도 사라지게 해주시고, 기온도 딱 좋죠.
사제 은퇴 후의 삶을 주님께서 이런 장소를 준비해 주셨고, 또 제가 가지고 있는 공간 활용 능력으로 이렇게 힐링피스가든을 만들어 교우들이 누구나 와서 기도하고 가고 촛불 봉헌할 수도 있죠.
물론 여기 들르신다고 저를 다 만날 수는 없겠지만, 우연히 제가 만나면 강복해 드리고 차 한잔하고 가시라 할 수 있죠.
하지만 내가 없을 때도 있고, 여기는 나 혼자 기도하려고 만든 게 아니잖아요.
상처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래도 여기 오면 성인들이 계시니까 성인들께 전구 청하세요.
답답해서 찾아왔습니다. 저 좀 살려주세요. 우리 아들 좀 살려주세요.
오늘 나병환자들의 예수님 만나려 했던 그 마음으로 찾아온다면 분명히 필요한 것을 주시리라 믿도록 합시다.
♣2025년 연중 제28주일 (10/12) 김웅열(느티나무) 신부님 강론
출처: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