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오 28,16-20
+ 찬미 예수님
주님의 이름으로 평화를 빕니다.
오늘 미사는 한 달에 두 번 있는 방별 미사가 아니라,
운영자들과 봉사자들이 어제 1박 2일로 모여 친교의 시간도 있었고,
오늘은 사제관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말 그대로 예전에는 전교주일, 지금은 민족의 복음화를 위한 주일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얘기하신 제2독서의 말씀을 보면 정말 어디 하나 버릴 데가 없어요.한 절 한 절 그렇죠.
그중에서 특히 15절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리고 17절에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그래서 나는 묻습니다.
‘그들이 들은 적 없다는 것입니까?’물론 들었습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는 전교의 핵심이 무엇이고, 어떻게 전교해야 하고, 전교의 결과가 무엇인지에 대해,
이방인의 사도답게 바오로 사도가 어느 글자 하나 버릴 것 없이 너무나 정확하고 명쾌하게 이야기해 주십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뭐가 아름답다고요?
‘발’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발의 종류는 많아요.빚쟁이 집을 찾아가는 발이 아름다울까요? 그렇지 않겠죠.
누구를 보복하러 가는 그들의 발이 아름다울까요?
자리싸움 때문에 싸우러 가는 조폭의 발이 아름다울까요?
그러면 월정리를 향하여 미사를 오는 이들의 발은? 당연히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나는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지만, 그래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겠다.’ 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화해하려고 찾아가는 이들의 발이 아름답겠죠.
우리들이 집을 나서서 어딘가를 향할 때는 분명히 목적이 있어요.
이발소를 향해서 갈 때는 아름다워지기 위해서 가는 발이고,
또 목욕탕에 갈 때는 때를 벗기기 위해서 향하는 발이에요.
그런데 오늘 바오로 사도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뷰티플 하겠냐 했어요.
다시 말하면 이 세상에 가장 아름다운 발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발이라는 말이에요.
나 같으면 한평생을 전국으로 주님의 말씀을 전하러 다녔잖아요.
거기에 블라시오는 수호천사로 전국을 같이 다니죠.
그 발이 예쁜 거죠.
‘믿음은 들음으로써 온다.’
그러니까 그 아름다운 발을 가지고 누군가가 전해줘야만 들을 수 있어요.
다행히 요즘은 유튜브라든지 TV를 통해서도 전할 수 있지만, 그래도 제일 힘 있게 말씀을 통해서 오시는 건 현장이야.
그래서 유튜브로 보다가 자기네 동네에 어느 신부님이 와서 보면 다르잖아요.
그러니까 나훈아 콘서트 하면 달러 변을 내서라도 가고 또 조용필 만나러 가잖아.
그게 라이브랑 다른 거거든.
천주교에 3자 들어가는 게 참 많아요.
삼위일체 하느님, 그건 누구나 다 알아요.
또 뭐 있냐,
‘예수님의 3대 유언’ 그리고 ‘가톨릭의 3대 신비’가 있어요.
자, 답 맞추는 사람은 내가 상을 줄게요.
‘예수님의 3대 유언이 뭘까?’
이것은 내가 평일 강론, 주일 강론, 피정 강론 때도 참 많이 했어요.
우리 제일 중요한 게 무언지 떠오르는 거 없어요?
(대답) 성체성사요.
그것을 예수님의 표현대로라면 ‘내 살과 내 피를 먹고 마셔라.’이게 1번이야. 사크라멘투(Sacramento)
그다음 두 번째 아까 뭐 비슷한 게 나왔는데, ‘세상 끝날 때까지 복음을 전하라’ 그게 세 번째야. 미션(mission).
이제 두 번째 것, 영어로 유니티(unity), 라틴어로 우니따스(Unitas)
‘세상 사람들이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그래서 3개를 라틴어로 하면, 사크라멘투, 우니따스, 미션.
풀이하면 첫 번째 ‘내 살과 내 피를 먹고 마셔라.’
두 번째 ‘이들이 하나가 되게 해주십시오.’
세 번째는 ‘세상 끝 날까지 복음을 전하여라.’
그런데 순서가 있어요.
3번이 일단 이루어져야만 1번 2번이 가능해요.
세상 끝 날까지 복음을 전해서 그 복음을 믿고 모여든 교회 공동체가 만들어져야만,
성체를 영할 수 있게 되고 또 하나가 될 수가 있단 말이에요.
그래서 일단 제일 중요한 것은 3번이야.
이게 바로 예수님의 3대 유언입니다.
그러니 이 세 가지 유언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의무요, 권리인 거죠.
또 ‘가톨릭의 3대 신비’가 있다고 하죠.
첫 번째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전교의 신비’가 나와요.뭐냐?
전교를 자기 힘으로 하려고 하면 안 돼.
하느님께서 도와주셔야만, 내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지혜로운 말이 나오고,
그 지혜로운 말 한마디에 감동하여 돌처럼 굳었던 마음이 열리면서 하느님을 따라온단 말이에요.
두 번째는 ‘헌금의 신비’가 있어.
특히 우리 천주교 신자들은 이 헌금의 신비에 강하죠.
10년 전에도 천 원, 지금도 천 원.
이건 사람의 힘으로 할 수가 없는 거야.
그러니까 어느 성당이든지 주일 헌금액이 거의 비슷해,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 헌금의 신비에서 이제 가장 외적으로 드러나는 행위는 뭐냐?
하느님에게 헌금을 드릴까 말까 드릴까 말까, 하니, 하느님도 줄까 말까 줄까 말까.
이렇게 하느님과 거래하다가 한평생 끝나.
개신교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죠.
그 때문에 개신교는 헌금의 신비가 아니라 ‘헌금의 기적’이 일어나죠.
40명 모인 개척교회에서도 봉고차를 굴리고 목사님 월급 다 줘.
십일조, 예수님 말씀대로 따르는 거예요.
예수님도 ‘십일조 외’에 다른 것도 해야 한다고 했지, 십일조를 폐쇄한 것이 아니죠.
십일조 안 지키는 천주교가 맞는 교리가 아니에요.
십일조 지키는 개신교가 적어도 전교하고 헌금하는 것만큼은 우리보다 형이야.
거기가 종갓집이야. 우리들은 안 하잖아요.
장손이면서도 제대로 본을 못 보이고 있잖아.
그러니까 동생이 무시하는 거야.
천주교가 냉담자도 많고, 성경책도 안 보고, 생전 누구 하나 전교하는 거 못 봤고.
그러니까 형이 창피한 거지.
세 번째 신비는 뭘까요?‘성장의 신비’
성장은 큰다는 거죠.
씨를 뿌리고 물만 줘도 희한하게 싹이 나오죠.
이렇듯 내 신앙이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것 같아도, 자라 있다는 얘기야.
정말 느리게 자라지만 자라죠.
교회 공동체도 지지고 볶고 그 안에서 싸워도 이렇게 조금씩 커요.
하다못해 성당 지을 때도 보면 얼마나 힘들어.
그런데 성당 짓다가 중간에 포기한 곳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어요, 맞죠?
시간이 오래 걸릴 뿐이지요.
그것처럼 한 개인이 마음 안에 영적인 성전을 지을 때도 짓다가 힘들어서 부서지고
몇 년 동안 돈이 없어서 중단할지언정, 언젠가는 완성이 돼.
내 안에 아름다운 하느님의 성전이 완성돼요. 아멘
내가 또 하나 붙이고 싶은데 안 붙이는 게 ‘아멘의 신비’야.
아멘 좀 하세요.
그러면 ‘예수님의 3대 유언’과 ‘교회의 3대 신비’에 공통으로 들어가 있는 게 선교죠.
그런데 왜 우리 천주교 신자들은 그렇게 복음 전파를 못 할까?
루시아, 올 한 해 동안 선교한 사람 누구 있어요?
(대답) 적어도 나가자고 적극적으로 온 힘을 기울이고 있는 사람 있어요.
오케이, 땡큐!
그다음에 베드로, 있어요?
(대답) 회사 직원이요.
오케이, 아주 훌륭해요. 엑설런트!
그다음에 요안나?
(대답) 너무 많아요. 가족들, 친정 식구들이요.
오케이, 그다음에 미카엘라
(대답) 네, 저는 옆 반 선생님이요.
오케이, 아주 훌륭해요. 스테파노?
(대답) 아직 결실은 못 맺었는데 동생들 데리고 가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동생은 한 30년 된 것 같아, 언젠가는 되겠지. 반 정도는 왔어.
오케이, 다음에 토마스는?
(대답) 친구에게 교리 받으라고 권면 중이고, 가족 중 냉담 중인 아들과 동생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굿, 굿, 굿!
어느 성인이 그런 얘기를 했어요.
나중에 죽어 받는 심판 가운데 하나가 ‘너희들 내 유언은 지켰니?’래요.
유언은 꼭 지켜야 하는 거지요, 그렇죠?
아버지가 자식한테 유언하면 목숨 바쳐서라도 지켜야 해.
그것을 안 지키면 호래자식 소리 듣잖아.
내가 분명히 세상 떠나올 때 세 가지 유언을 남겼는데, 이 유언에 충실했느냐?
너의 기도와 너의 그 피눈물 나는 노력으로 충실했느냐?
안 하면 괜히 찝찝하니까 하는 정도가 아니라,
내가 이 영혼을 구하기 위해서 목숨을 걸겠다는 각오로 충실했느냐?
말이 딸리면 책을 보내주든지, 어느 신부님의 유튜브 강론을 계속해서 보내주면,
어떡하다 듣는단 말이에요, 어떡하다 볼 수 있단 말이에요.
천주교 신자 생활 50년 하다가 내 곁에 왔는데 너 한번 뒤돌아봐라.
너의 힘으로 지금 신앙 생활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느냐?
이렇게 물으실 때 ‘아무리 생각해도 없네요.’ 하면, 심판 거리가 된다는 말이죠.
나도 사제이기 전에 천주교 신자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나도 기를 쓰고 사제의 임무를 띤 신앙인이기 때문에,
한평생 턱뼈가 달 정도로 아무튼 열심히 복음 선포를 하고 살았잖아요.
그래서 나중에 ‘김웅열 신부, 네가 제일 열심히 한 거 뭐야?’ 물으시면,
‘글쎄요. 그냥 주님 보시기에 부끄럽게 살았죠.
하지만 나는 모르지만 내 설교를 듣고 변화된 사람이 그래도 있지 않겠습니까?’
라고 말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렇게 말도 겸손하게 해야 해.
예수님 앞에 잘난 척하다가 귀퉁이 맞아.
그랬을 때 ‘그래, 애썼다.’
이 말은 들어야 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신자 생활하면서 정말 단 한 영혼이라도 천국으로 갈 수 있게끔
준비해 준 영혼이 죽으면 엄하게 심판하지 않는다’라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하느님 앞으로 이끄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선교는 아까 자매가 말했듯 외인을 천주교로 이끄는 것만은 아녜요.
냉담자, 사실 냉담자가 더 중요해.
지금 성당마다 냉담률이 거의 40% 45%예요.
팬데믹 터지고 나서 더 올라갔어요.
팬데믹 터지기 전에는 30%이었죠.
교적에 10명 있으면 7명밖에 주일에 안 나왔죠.
그런데 지금은 4.5명이에요.
처음에는 꿉꿉하더니, ‘뭐 안 나가도 편안하네’ 하면서 불감증에 걸려버린 거야.
주변에 너무 많죠.
요번에 유퀴즈하면서 작가가 2주 전 왔는데, 보니까 손에 묵주반지가 있어.
신자라면 나한테 세례명이 뭐라며 인사를 할 텐데, 5시간 인터뷰하는 동안 한마디도 안 하는 거예요.
끝나고 나서, ‘아이고 작가님, 손에 낀 게 어디 뭐 교회 다니세요?’
그러니까 ‘저 천주교 신자예요.’하는 거야.
‘아니 그러면 얘기를 해야죠?’ 그랬더니
‘지금 10년째 쉬고 있어요. 그래서 신자라고 감히 신부님 앞에서 말씀 못 드렸어요.’
그래도 이번 인터뷰하고 돌아오는 주일부터 안 빠지고 나가고 있대요.
그래서 내가 이번에 오면서 그랬어요.
‘작가다 보니까 수많은 종류의 사람을 만날 거다. 어두운 사람도 분명히 있다.’
작가 세례명이 보나인데,
‘보나의 영혼을 지키려면 성벽을 쌓아야 한다.
아무리 바빠도 주일 지키고 고해 성사 보고 성체 영해라.
성체를 매 주일 영하면 적어도 어둠이 점령 못 한다.
그리고 어느 종류 사람을 만나더라도 분별이 생긴다.’
하여튼 이번에 유퀴즈 녹화하면서 냉담자 하나 회개시켰잖아.
그러니까 어떤 상황, 어디에 있다. 하더라도 주님이 나를 도구로 쓰세요.
지금 헤매고 있는 영혼을 이끌게끔 하셔요.
선교할 기회를 주시는 거죠.
그런데 ‘얘기할까 말까? 귀찮은데 또 데리고 가?’
이러다 보면 못하는 거야.죽을 때까지 한 사람도 전교할 수가 없다는 얘기죠.
그래서 왜 천주교 신자들이 복음 전파하는 데 소극적일까?
첫 번째 너무 점잖아서. 이게 말 돼요, 안 돼요?
두 번째 천주교는 자기가 알아서 선택해서 오는 곳이라.
이 1, 2번 다 이유가 안 되는 거죠.
그럼, 왜 복음 전파를 못 하느냐?
그전에도 무수히 얘기했지만 제일 중요한 것, 본인이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어.
‘형제님 구원받으셨어요?’ 질문하면
개신교 신자들은 1초의 망설임도 없죠. ‘네 구원받았죠.’
천주교 신자들은 ‘네, 구원받은 것 같아요.’, ‘제 주제에 무슨 구원을 받습니까?’
우리 언제 구원받았어요?
교리적으로 세례 받을 때 물과 성령으로 구원받았죠.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서 견진성사 때 성령 칠은의 갑옷까지 입었잖아.
개신교는 꿈도 꿔보지 못할 견진성사가 있잖아.
물과 성령으로 세례 때 구원을 확실히 받고,
성령 칠은의 갑옷까지 두르고 영적 무기까지 가지고 있는 우리인데,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어요.
오히려 동생네한테 물어보면 부흥회 이틀만 갔다 오면 나 구원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냥 동네 사람들, 시어머니 끌고 나가려고 난리잖아.
우리는 40년 50년을 신앙생활 해도 내 자신이 구원받았는지 안 받았는지조차도 확신이 안 드는 판에, 누
구를 구원의 길로 이끌어요.
이렇게 연결이 되는 거예요.이해되시죠?
내가 구원받았다는 확신이 들면, 이렇게 좋은 것을 내 가족들한테 어떻게 안 알릴 수 있으며,
정말 주님 모르는 사람한테 어떻게 내가 전달하지 않을 수 있어요.
구원에 대한 확신이 있으면, 그야말로 오늘 바오로 사도 말씀 ‘복음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의 그 발로 바뀌어.
시간만 나면 복음 전하러 다니고 냉담자 회두 시키러 다닌다는 말이야.
나를 구원해 주신 그 좋은 예수님을 세상에 알리지 않고서는 내가 못 배겨요.
누가 등 떠밀어서 다니는 게 아니에요.
예배당 다니는 할머니 봐요.
길거리에 앉아서 배추 파는 할머니도 ‘내가 알아야 전한다. 무식해지면 안 된다.’
그러니까 어떻게 해? 뭘 봐?
배춧단 앞에 쭈그려 앉아 침 발라가며 ‘예수님께서 가라사대’ 하면서 성경 읽잖아.
그리고 외우려고 애를 써.
그러다가 초등학교도 못 나오고 이름도 못 쓰던 할머니가 국문을 깨친단 말이야.
그런 기적이 일어난단 말이지.
호떡 장수 할머니도 그 아파트에 사는 대학교수를 끌고 교리반에 나가요.
알아야 전교하니까, 성경을 읽어요.
그래서 전교하려면, 바오로 사도 얘기한 그 아름다운 발이 되기 위해서는,
일단 내가 배워야 해.
요즘 마음만 먹으면 좋은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게 많잖아요.
내가 안 하는 거야, 그렇죠, 안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전해주는 사람이 없고 배울 데가 없어서 못 했다는 변명이 이젠 안 통해요.
우리는 구원의 확신을 가질 때 적극적으로 된다는 거죠.
구원의 확신을 갖으면, 전교만이 아니에요.
전례에 임하는 자세도 달라져.
그냥 시간 때우기로 왔었는데, 나 같은 죄인 주님 구원해 주셨네!
미사 시간 내내 눈물이 앞을 가려, 성체를 영할 때 가슴이 막 벅차죠.
그것뿐이겠어.순명하는 자세가 달라져.
그전에 신부님이 뭐 하라 하면 머릿속으로 계산하기 시작하죠.
그런데 이제는 무조건 ‘네, 하겠습니다.’ 야.
나 할 만한 거 보시고 하느님이 신부님 통해서 나한테 명령을 내리신 거니까.
하다 보면 할 힘도 줘요.
그 순명을 통해서 나한테 정말 이로운 일들이 많이 일어나죠.
그런 것들이 순명뿐이겠어요?봉헌하는 자세가 달라져.
내 돈의 일부를 떼어서 하느님에게 드린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야.
‘하느님의 것을 하느님에게 온전히 되돌려 드린다.’라는 마음 자세로 바뀌는 거야.
그래서 늘 봉헌할 때마다 기쁘죠.
찌꺼기가 아니라 늘 깨끗한 돈, 흠집 없는 것으로 정성 다하려고 애쓰죠.
그리고 그전에는 안 하던 자선, 베푸는 것을 작은 돈이라도 남모르게 하기 시작해.
또 봉사할 때 태도가 바뀌어요.
마지못해하는 봉사하고 나면은 영과 육이 피곤해요.
그런데 기쁜 마음으로 하는 봉사는 하고도 늘 내가 모자랐구나.
그리고 티를 안 내, 유세를 안 떤다, 이거야.
기도하면서 봉사하는 사람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일해도 얼굴이 충만해.
하지만 마지못해하는 사람은 꼭 사람들 사이에서 분란을 일으켜.
유세 떨고, 누구 뒷담화하고.
그래서 구원에 확신이 있으면, 전교, 전례, 순명, 봉헌, 봉사,
이것에 대한 차원이 업그레이드가 확 된다, 이거야.
이 첫 단추인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으니까, 전교도 생전 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내 주제에 무슨 전교를 해, 이렇게 자기 자포자기에 빠지고.
사방에 내가 손만 잠깐만 잡아끌어도 끌려올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 뒤돌아보면 너무 많은데 안 하거든.
미사 때 앞을 보고 있지만, 거의 뇌사 상태, 혼수상태에 빠져있고.
앞은 잘 봐, 하지만 심장만 뛸 뿐, 다리만 갔을 뿐.
묵주 기도할 때도 성호 그을 때나 좀 정신 차릴까,
그다음부터는 무슨 능력이 있는지 TV 보면서도 다 할 수 있대.
묵주 돌리면서, TV 보면서, 한 손으로는 또 전화도 받아.
순명도 마찬가지고, 봉헌도, 봉사도 마찬가지고.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것’이 전교를 못 하는 첫 번째 이유입니다.
두 번째, 우리가 매사 이렇게 전교의 약한 두 번째는 뭐냐?
성령의 체험이 없을 때 그래요.성령에 대한 체험이 없으면 절대로 전교 못 해.
구원에 대한 확신만 갖을 수는 있어.‘나 구원받았네, 나 구원받았네.’
하루에 100번씩 외치면 구원받은 것 같아.
그것 가지고는 반쪽이야.
성령께 도움을 청해야 해.
사제의 강론도 성령께 도움을 청하지 않으면 그냥 지식 전달로 끝나.
듣든 사람이 변화가 안 돼.
성령이 나와 함께한다는 확신을 갖고, 냉담자의 집을 노크할 때는 두려움도 없어져.
내가 말주변도 없는데 어떻게 하지 하는 그런 계산도 사라져 버리죠.
성령에 대한 체험이 없으면 사제들도 직업이 돼버리는 거예요.
평신도들은 세례받을 때 사제직, 예언직, 왕직을 받았죠.
평신도 사제직의 목적은 봉사하는 데 있어.
예언직은 전교하는 데 있어.
왕직은 영적인 자유를 누려야 해.
뭐로부터 얽매여 있으면 안 되고, 잡혀 있으면 안 된다는 거죠.
왕은 자유롭잖아요.
노예들은 일 끝나면 허리띠 빼고 발에 도망 못 가게 쇠고랑 차고 있죠.
사제직, 예언직을 수행하려면 성령에 대한 체험이 있어야 한다.
오늘 정리합시다.
‘예수님의 3대 유언’과 우리 ‘가톨릭의 3대 신비’가 있다고 했어요.
3대 유언은 첫 번째 내 살과 피를 먹고 마셔라. 사크라멘투
두 번째는 이 세상 사람들이 하나가 되라, 우니따스, 일치야.
세 번째는 이 세상 끝 날까지 복음을 전하여라. 미션이 있죠.
그리고 ‘3대 신비’는 뭐냐?
첫 번째가 전교의 신비,
두 번째는 헌금의 신비, 좀 쪽팔리는 신비.
세 번째는 성장의 신비
자, 그러면 왜 2천 년을 이어온 이 어마어마한,
하느님이 세우시고 성령이 지켜주시고 성모님을 어머니로 모시고 있는
거대한 천국 같은 교회에 몸담은 우리 천주교 신자들이
어떨 때는 동생들만큼 못 사냐?
이유는 뭐였지? 딱 두 가지.
첫 번째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다.그래서 매사에 소극적이야.
두 번째는 성령에 대한 체험이 없다.
그리고 두 가지가 반드시 해결되어야 우리가 복음을 전할 수 있는데 그 두 가지가?
우리를 뒤에서 밀어주는 힘, 구원에 대한 확신 0.01%도 의심하면 안 돼요
.‘나 구원받았어. 이 좋은 예수님을 알려야 해’
구원의 확신이 있으면은 적어도 5가지에 대한 태도가 달라진다고 그랬죠.
전교, 전례, 순명, 봉헌, 봉사. 확 바뀌어.
전혀 보던 시야가 달라져.
순명에 대한 개념이 달라지고, 제대로 봉헌할 수 있게 되고.
가난한 과부의 작은 헌금이라도 온 힘을 다해서 자기 걸 다 봉헌할 수 있는 거예요.
하느님에게 찌꺼기 드리는 게 아니라 달라진다는 거죠.
그리고 성령에 대한 체험이 없으면 사제건 평신도건 껍데기만 다니는 거다.
그것이 중요하다는 얘기죠.
확실하게 요약했기 때문에 아마 신자들 살아가는 데 지침이 될 겁니다.
우리 약하지만 성령께서 우리를 움직이셔서 하느님 나라 만드는 데,
전교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우리가 함께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
♣2025년 연중 제29주일 (10/19) 김웅열(느티나무) 신부님 강론
출처: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