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16,1-13
+찬미 예수님
주님의 이름으로 평화를 빕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이곳까지, 오늘 부산방 카페 식구들이 먼 곳에서 왔습니다.
늘 제가 묻는 얘기가 있죠. 여러분들 어떻게 오셨습니까?
주님이 불러주시어 왔습니다.이제는 자동으로 나와요.
정답을 얘기한 거예요.
거룩한 땅은 또 치유의 땅은 하느님이 선택해서 불러내야만 올 수 있죠.제가 감곡이나 배티 성지에 있을 때도 항상 그 얘기를 했어요.
그중에는 억지로 끌려온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아예 차에 있어 들어오지도 않고.
그렇지만 차에 있던 사람이든 여기 온 사람이든, 겉으로 보면 사람들이 계획해서 온 것처럼 모든 주체가 인간처럼 보이지만, 아니라는 얘기죠.하느님이 불러내지 않으면 이 땅은 밟을 수가 없습니다.성지도 마찬가지겠죠.
여러분들 왜 천주교 신자 되셨어요?
시집가다 보니까 시댁이 천주교다. 집안이 천주교 집안이라 어릴 때 세례받았다.
여러분들 천주교 신자 되는 게 확률적으로 따지면. 어마어마한 겁니다.
여러분들이 만일 사이비 종교에 빠졌다고 생각해 봐.
통일교, 신천지, 사이비가 얼마나 많아, 집안 다 망가뜨리고 그렇죠.
‘예수님이 세우시고 성령이 지켜주신 하나이고 거룩하고 공번되고 사도로부터 이어 내려온’ 사도신경에 나오는 조건이 딱 들어맞는 그걸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가톨릭교회 신자로 내가 선택한 게 아니에요.주님이 나를 불러주신 거예요.
불러주셨다고 하는 이 겸손한 마음은 우리를 한 눈 못 팔게 만들어요.
내가 선택해서 천주교 신자 되고 아무도 나 데려간 적 없어.내가 선택해서 와 보니까 뭐야?
꼴 보기 싫은 놈들도 많고 마음에 안 드는 신부들도 많고, 아 딴 데 한번 가볼까?자기가 선택했다고 생각할 때는 언제든지 나갈 수가 있어.
그러나 감히 천주교 신자 될 자격도 없는 나를 불러주셨다는, 그 부르심에 대한 소중함을 깨달으면 ‘감사합니다’라는 말밖에 나올 수가 없죠.그럴 거예요.
여러분들 여기 어떻게 오셨습니까?주님이 예비해 주셔서 맞습니다.이번에는 다 대답하네.
여러분들이 주일 본당 미사 갈 때도 그런 마음으로 가야 해.그냥 오늘 가서 해치워야지. 미사 안 하면 찜찜하고.
다음번에 또 성사 봐야 하니까 불편하고, 신부님이랑 눈도장은 또 찍어야 하겠고,
그런 마음으로 앉아 무슨 사제의 강론이 귀에 들어오겠어요.
머릿속은 미사 끝나고 나가서 점심 먹을 생각밖에 안 하고 있는데.의학용어로 뇌사라는 말이 있죠.
심장만 살아 있고 뇌는 죽어 있어.미사 때 보면 뇌사 상태인 사람들 많아.
몸은 앞은 보고 있지. 하지만 머릿속은 오만 동네 다 돌아다니는 거지.
껍데기만 앉아 있다는 거예요.그건 죽은 미사예요.
죽은 묵주, 죽은 기도.
레지오 단원이니까 묵주기도 해야 해, 까떼나도 해야 해,사도신경까지는 정신 차려서 제대로 해.
그다음에 환희의 신비 들어가면서부터 아주 환희스럽게 세상을 돌아다니는 거지.
고통의 신비하면 예수님 고통은 생각 안 나고 내 돈 떼먹은 놈 때문에 당한 고통만 생각하고.살아있는 재물만 하느님은 받으셨어요.
오늘 여러분들이 긴 시간 걸려서 여기까지 힘들게 왔어도, 정말 주님이 불러주셔서 왔다고 생각하면, 그 긴 시간도 정말 기쁨의 시간이었을 거고, 이따 돌아갈 때도 여기 정원 이름처럼 힐링 앤 피스, 일단 치유가 되면 자동으로 따라오는 것이 평화예요.
왜 수많은 성인 성녀가 여러분을 향하여 지금 화살기도를 바쳐주고 있겠어요.
‘루시아야, 너 미주알고주알 힘든 거 이야기하려는 거 내가 다 알아. 네 십자가가 얼마나 큰 데, 잘 왔어. 하느님이 역사하실 거야.’
돌아갈 때는 들어올 때 얼굴과 달라야지요.
내가 감곡성당 가기 전에 진천 성당에 2000년에서 2005년까지 있었어요.거기 유명한 거지가 있었어, 스테파노.
임 씨라고 맨날 성당 와서 자던, 그리고 조그만 아이 은우라고 있었죠, 이렇게 두 사람.
한 명은 꼬마, 걔는 자폐아야. 하루 종일 성당 와서 돌멩이 가지고 놀아요.
자폐는 천재성이 있는 거 아시죠? 어떤 문이든 다 따고 들어가.교리실에 들어가서 자고 있고, 그래서 열쇠공 만들려고 기술학교 보냈죠.
그런데 얼마 배우다가 그냥 돌아 나오더라고. 지금 걔 한 30 중반 됐겠다
우리 카페 식구인데 가끔 들어와요. 닉네임도 은우야.그런데 지금은 이제 사람 된 것 같아.
그때는 걔를 싫어하는 신자도 많았고 불쌍하니까 이뻐하는 신자도 많았고.
문 따서, 훔쳐서 나에게 그렇게 혼이 나도 그냥 성당 마당서 하루 종일 사는 거예요.
집에 가면 엄마도 없어, 노동하는 아버지는 술주정뱅인데 애를 제대로 키울 리가 없지.아무튼 기술학교도 내가 보냈었어요.
그리고 어른 가운데는 임 씨라고 하는 거지가 있었어요.
그 옛날 유대 땅에 나자로라는 거지가 있었다면 내가 본당 신부 하던 시절에는 진천에는 임 씨라는 거지가 있었죠.
아주 부잣집 외아들로 태어나서 약간 머리가 돈 거지.
그래서 거지야, 진천의 명물 거지.
사실 나는 이 할아버지 때문에 굉장히 걱정과 분심 속에서 산 적이 많아요.
왜냐하면 겨울에 얼어 죽잖아.
이 할아버지 머릿속에는 어느 집에서 잔치가 있고 어느 집에서 장례가 있는지가 다 있어요.
그래서 아무튼 하루 종일 얻어먹으러 다녀요, 잔칫집, 장례 집 가게 등등.
그러다가 꼭 잘 때가 되면 할아버지는 성당을 찾아와요.그러고는 성당 입구에 주보 놓는 주보상 위에서 자요.
나는 밤중에 자다가도 나가서 봐야 해요, 살았나 죽었나.
이불도 가져가서 덮어주죠, 안 덮어요.꽃동네까지 차에 실어 보냈었어요.
그런데 한 3일 돼서 나오더라고.여름에는 그렇다 치더라도 아무튼 겨울이 되면 내가 마음을 많이 졸였어요.
사제관 들어와서 재워도 안 들어와요.하여튼 천성이 거지 팔자인지, 자기는 죽었다 깨도 거기서 답답해서 못 살겠대요.
결국에 그 할아버지는 교통사고로 진천에서 죽었어요.
그래서 난 이 나자로 얘기가 나오면 항상 자동적으로 머릿속에 임 씨 할아버지가 떠올라요.
오늘 복음에 나오는 나자로는 동네 사람들이 부잣집 문 앞에 데려다 놨잖아요.
그런데 임 씨 아저씨는 자기가 찾아오는 거예요.
매일, 1년 12달 하루 종일 돌아다니면서 얻어먹다가 성당에 오는 겁니다.
아무튼 어떻게 도와드리려고 동사무소에 확인해 보니 땅도 있는데 친척들이 다 뺏은 거야.
정신 이상자라고 뺏은 후 돌보지 않는 거야.
그러다 교통사고 났다고 해서 병원에 가보니, 몸이 아직 따뜻하기에 대세를 드렸어요.
그래서 유대 땅에 나자로 거지가 있었다면 진천 땅에는 임 씨라는 거지 할아버지가 있었다는 것이 항상 이 복음을 읽을 때마다 생각이 듭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나자로는 앉은뱅이라 들어서 부잣집 문 앞에 데려다 놓을 수 있었죠.
그런데 그 할아버지는 두 다리가 멀쩡하고, 강제로 입소를 시키려고 해도 거의 불가능했던 분이었습니다.
제가 물어봤어요.
‘할아버지, 이 진천 읍내에 예배당도 많은데 하필이면 성당에서 잠자리를 정하는 이유가 뭡니까?’
그랬더니 ‘분위기 좋잖아. 예배당은 살벌해. 몽둥이 들고 쫓아.’
성당을 아주 예쁘게 만들어 놨거든. 느티나무가 큰 게 다섯 그루가 있고, 성모 동굴서부터 정말 달력에 나오는 아름다운 성당이에요.
그래서 2천 년 전 나자로는 사람들이 데려다 놨지만, 임 씨 할아버지는 분위기가 좋고 사제가 자기 돌봐주고 있다는 것을 알거든요.
밤마다 와서 죽었나 살았나 흔들어도 보고, 이불도 덮어주고 옷도 입혀주니 아는 거죠.
밥을 같이 먹자고 그래도 안 들어와요. 자기 더러워서 못 들어간대.그 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참 돌아가실 때가 안 됐어요.
그 당시에 무단횡단하다가 진천 읍내에서 차에 쳐 돌아가셨죠.
그래서 나는 1년에 한 번씩 이 성서를 읽을 때마다 임 씨 할아버지가 생각이 나요.
오늘 복음으로 잠깐 돌아갑시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나자로는 앉은뱅이라는 말은 없어요.
종기투성이라 개들이 와서 그 상처를 핥아도 개 쫓을 힘도 없을 정도였죠.
그러니까 나자로는 누구예요?
‘누군가 도와주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무기력하고 비참한 인간’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나타내요.
이 세상에는 게을러서가 아니라 너무나 무력해서, 아무 힘이 없어.
아무리 기를 쓰고 노력해도 가난에서 헤어나질 못해. 누군가 도와주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그런 무기력한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아.
나자로는 그런 사람들의 하나의 상징이야.
이 무기력하고 비참한 인간, 누군가 도와주지 않으면 본인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
이런 부류의 사람에는 누가 있을까요?
첫 번째 태아들이 그래요.
엄마 뱃속에 있는 아기들.
엄마가 지켜주지 않고 아빠가 지켜주지 않으면 태아들이 엄마 뱃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어.엄마가 나를 죽이려고 산부인과에 가더라도, 태아는 울기만 하지 살아갈 길이 없는 거예요.
엄마 뱃속으로 칼날이 들어와도, 그 칼날을 피하려고 움찔움찔하면서 비명을 지를 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게 태아예요.
맞죠? 그 영상이 있어요. 낙태시키는 모습.
집게가 들어오니 아이가 그걸 피하려고, 안 잡히려는 몸부림쳐요.
낙태는 몸에 있는 암을 떼어내는 게 아니잖아.태아들이 바로 이 나자로의 첫 번째 모습이에요.
대한민국이 낙태 왕국이잖아요, 세계 1위
.낙태시킨 엄마는 한평생 죄의식을 갖고 살고 또 성사는 봤어도,‘ 십자가의 길 한 번 하세요.
’아니, 내 배 속에 있던 애 죽인 것이 십자가의 길 한 번 한다고 해결이 돼요?
죄는 사함 받았어도 낙태시킨 죄에 대한 보속은 죽을 때까지 본인이 찾아서 해야 합니다.
적어도 그 죄만큼은 신부가 주는 보속으로는 해결 안 되는 거죠.죄 사함은 받았죠.
‘성령의 이름은 당신의 죄를 사하나이다.’ 그거는 의심할 필요 없지만, 거기에 따른 신부님이 주는 보속은 최소한의 보속이죠.
뱃속에서 ‘야, 가서 떼어. 우리 어떻게 키우냐?’ 하는 부부의 말을 들은 태아는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또 무기력하고 비참한 사람 누굽니까?
지금 내가 말하는 이 순간에도 굶어 죽는 사람들 많은 거 아시죠?
1초에 5천 명이 죽어요. ‘똑딱’하는 시간에 5천 명이 굶어 죽어요.어마어마하죠.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하마스 소탕한다고 9만 톤의 폭탄을 떨어뜨렸대요.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 폭탄이 만 5천 톤의 분량인데, 9만 톤을 떨어뜨렸대.
그러니까 가자지구에 있는 팔레스타인이 다 죽은 거예요.
그래서 UN에서 먹을 것을 가져다주니, 그거 가지고 싸우고.
어떤 기자가 사진을 찍으니 한 아이가 우리는 이렇게 산다면서 흙을 막 집어넣어.
1초에 5천 명이 죽어요.게을러서 죽는 게 아니라 전쟁 때문에, 계속된 가뭄 때문에.
한쪽에서는 배가 터져 죽고 살 빼려고 돈을 쓰는데, 한쪽에서는 아이가 흙을 퍼먹어요.이것도 나자로예요.
누군가 도와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본인이 할 수가 없어.
권력과 자기 식대로 해석해서 법을 집행하는 독재자들 때문에 힘없는 자가 죄인이 될 때가 있죠.
정의가 그 억울한 사람들을 도와주지 않으면 그 사람들은 살아갈 길이 없어요.
솔직히 감옥에 있는 사람들이 다 죄인이겠어요? 아니에요.나는 교도소 지도 신부를 7년을 했어요.
가서 면담하면서 여기 왜 들어왔냐 물으면, 변호사 댈 비용도 없어서 그냥 들어온 거야.
돈 있고 힘 있는 놈들은 다 빠져나가요.큰 도둑들은 다 빠져나가서 떵떵거리고 살잖아.
교도소에 가보면 나자로 같은 사람 너무 많아요.너무 불쌍한 사람들은 청원도 해보았죠.
저는 교도소 안에는 죄인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정말 억울하고 누명 당해서 온 사람들도 이렇게 많구나, 하는 걸 많이 느꼈었어요.
오늘 복음으로 다시 돌아와 봅시다.
호사스럽게 사는 그 부자가 입고 있는 옷에 관한 얘기가 나오죠.
그 옷은 당시 유대인 노동자들이 30년 동안 벌어야 모을 수 있는 그런 금액의 옷이에요.
얼마나 비싼 옷인지 몰라,
매일 파티를 벌였어. 매일 고기를 먹었겠죠.
그리고 유대인들 부자는 고기 먹고 난 다음에 손을 닦는데 뭐로 닦느냐?식빵으로 손에 기름기를 닦아요.
그리고 밀에 버리면 개들이 와서 주워 먹어.부자는 그 식빵 부스러기를 모아다 문 앞에 있는 나자로에게 밥이라고 준 거예요.
그러면서도 부자는 하느님에게 ‘하느님 저놈은 내 덕에 삽니다. 저 축복해 주세요.’
제 손 닦고 버린 식빵 쪼가리로 먹여 살리면서 그것도 자선이라고,그런데 그 후에 둘이 다 죽은 걸로 나오죠.
나자라도 죽고 부자도 죽었어요.부자는 지옥으로 갔고, 나자로는 아브라함 할아버지 품 안에, 다시 말하면 천국에 갔어요.
부자가 왜 지옥에 갔을까?
성경에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데 방해되는 어떠한 사상, 인간들, 또 제도 앞에 강하게 의노하셨어요.뭐 했다고요?
의노, 의로운 분노예요.
화는 두 종류예요.우리들이 하는 분노는 손해 안 보려고 자존심 상해서 자기중심인 거죠.
예수님도 화를 내셨어요. 분명히 여러 군데.
하지만 그 화는 우리들이 내는 그런 쩨쩨한 화가 아니라, 하느님 나라를 건설할 때 방해가 되는 제도, 인간들, 사상 그 앞에서는 조금도 망설임 없이 강하게 맞서신 의노죠.
예루살렘 성전에 있는 장사꾼들을 내쫓잖아요. 그렇죠?
‘내 아버지 집을 도둑놈의 소굴로 만들지 말아라.’
그 서슬이 시퍼런 조폭들이 있는 상황에서, 대사제가 쳐다보고 있는 상황에서.
그게 의노예요, 의노.예수님의 분노 첫 대상은 누구냐?
부자처럼 지옥에 갈 만큼 큰 죄가 뭐냐?
오늘 성경에는 그걸 답이 나오죠.바로 무관심해요.
‘무관심의 죄’는 무책임하다는 말과 동의어예요.부자는 나자로를 두드려 팬 적 없어요.
오히려 부자는 자기가 음식을 먹였다고 생각하고 살았어요.
부자가 지옥에 간 이유는 악행을 행했기 때문이 아니라 나자로에게 적극적인 선을 못 베풀었기 때문에 그래요.
적극적인 선!
무책임했다, 그거예요.
요양원에 있는 부모한테 형제끼리 1/n 해서 매달 돈은 보내요.
그리고 생전 찾아가지도 않아.이것은 오늘 부자랑 비슷한 종류예요.
그런 생전 부모 얼굴 보지도 않고 돈으로 다 해결되는 줄 알고, 남편이 가려고 하면 마누라가 말려요.
그런 여편네 가다가 돌에 걸려서 자빠질 거예요.
고해소에서 주님이 여러분의 입을 통해서 듣고 싶은 고백이 뭔 줄 아세요?
‘주일 몇 번 빠졌습니다’.
물론 그 얘기도 해야겠지만, 고해소 예수님 계신 거 알죠?사제 옆에 예수님이 계세요.
사제에 입을 빌려서 죄를 사해주고 다 그 죄 듣고 계세요.그런데 그분이 정말 듣고 싶으신 건 뭐냐?
주일 몇 번 빠졌다. 그게 아니에요.
‘너의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얼마나 책임감을 갖고 살았느냐?’
‘얼마나 너의 무관심의 죄 때문에 그 사람이 힘들어하느냐?’
그 소리를 듣고 싶으신 거예요.여러분들 부모님 돌아가시면 한두 번 또 한 달 두 달 위령 미사 드려요.
몇 년 지나 봐요, 그다음에는 잊어버려요.
아직도 그 부모가 연옥에 있다면 자손들의 미사를 기다리고 있는데, 자손들은 까맣게 잊어버려.
엄마가 돌아가셨다고 울고불고 난리 치더니 생각도 안 나지.내가 한 달 전 강론 때 그 얘기 했어요.
성경에서 얘기하는 죄라는 건 뭐냐?
‘내가 마땅히 돼야 할 그 존재가 안 되는 것’이 죄라고 그랬죠.
사제의 죄는 뭐냐? 사제처럼 살아야 하는데 사제처럼 못 살 때 그게 죄예요.
아버지처럼 살아야 하는데 아버지처럼 못 살 때 그게 죄예요.
사람 죽이고 도둑질해서만 죄가 아니에요.
마땅히 내가 되어져야 할 그 존재가 안 됐을 때, 그게 바로 죄예요.
예수님이 고해소에서 듣고 싶은 게 바로 그런 소리예요.
부자가 지옥에 떨어진 것은 나자로에게 악을 행했기 때문이 아니라 적극적인 선을 못 베풀었기 때문이었죠.
확실하게 지옥에 떨어지는 첫 번째 죄를 예수님은 오늘 복음을 통해서 예시하고 계세요.
그래서 마귀들은 이 ‘무관심의 죄’가 죄가 아닌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어요.우리 주변에 많잖아요.
부모에 대한 무관심, 또 신자끼리의 무관심, 본당 신부에 대한 무관심, 하느님에 대한 무관심.
여러분들, 부모님 살아계신다면 살아계실 때 잘하세요.
돌아가시고 나면 아무리 잘했던 자식도 다 불효자처럼 느껴져요.
우리 아버님은 2004년도에 3년 동안 투병 생활하다 돌아가셨는데, 내 셋째 동생 신부는 안식년을 내고 아버지 대소변을 받았어요.
나도 월요일이 되면 올라가서 교대하고.
당시 거기 신자들은 ‘신부님들이 효자야’ 그랬죠.그런데 돌아가시고 나니까 못한 것만 생각이 나.
그때 내가 진천 본당에 있을 때였는데, 성당 예쁘게 다 꾸며놓았는데 돌아가셨죠.
그렇게 진천 성당 와보고 싶어 하셨는데, 앰블런스라도 동원해서 성모 동산 한번 구경시켜 드릴 걸.다 후회만 남아요,
살아계실 때 잘하셔야 해요.돌아가신 다음에 무덤을 금덩어리로 덮어 놓는다고 아무 소용 없는 거죠.
여러분들 본당 신부한테도 잘하세요.
그리고 신부님들에 대한 근거 없는 얘기 들으면 혼 내키세요.나 지난번에 어디 갔다가, 기도 안 찬 얘기를 들었어.
어느 자매가 나한테 그래.
‘신부님, 용인 쪽에 자기가 잘 아는 천주교 신자가 있는데 이런 말을 해요, 신부님 애인이 용인에서 무슨 카페를 운영하는데, 신부님이 수시로 바이크 타고 온대~.’
세상이 이렇게 무섭구나!
분명히 뭐가 살이 붙여 막 돌아다니다가 나중에는 내 애인까지 만들어진 거야.그래서 내가 제발 좀 하나 만들어 줄래, 그랬어요.어휴~ 소름이 쫙 끼쳤어요.
근데 사실은 내가 그런 얘기면 이제껏 듣고 살았겠어요.사제들에 대해서 관심 두지 않는 신자들은 없어요.그렇지만 어떤 경우에는 어둠에 관심을 가질 때가 있어요.
그러니 사제들에 대한 심판은 신자들이 하려고 하지 마세요.
모든 신부가 다 비안네 신부님처럼 다 성인 사제는 아니잖아.
사제가 완벽하기 때문에 신부 생활하는 거 아니죠?모자람에도 불구하고, 약점투성이임에도 불구하고,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에, 기를 쓰고 그 길을 가고 있는 거예요.
가다 보면 약한 모습도 보일 때도 있고, 약점도 보일 때가 있잖아.그건 그때 그 신부님을 위해 기도하라는 얘기야.
묵주 기도하면서 ‘성모님, 우리 신부님 좀 일으켜 세워주세요.’
성체 조배하면서 ‘우리 신부님 좀 웃게 해 주세요. 슬퍼 보여요.’
그 기도는 성당 천장을 뚫고 주님한테까지 올라가요.
그러나 교우들 모여서 신부님이 이러쿵저러쿵 어쩌고저쩌고 뒷담화 마치면, 뒤에서 빙긋이 웃는 건 마귀 새끼밖에 없어.내 계획대로 돼 가는구나.
마귀는 어떻게 해서든지 사제와 신자 사이를 이간질해요.
전국을 다니며 피정을 시켜보면 사제와 신자들이 따뜻하게 한마음인 성당은 찾기 힘들어,본당 신부는 얼굴이 어두워.
‘아유, 신부님 성사 주세요.’성사 보고 난 다음에 ‘저 이제 6개월만 참으면 돼요. 이동할 때 다 됐어요. 여기 너무 힘들어요. 신자들이 너무 드세요.’
또 신자들 만나보면, ‘저희도 6개월만 참으면 돼요.’이게 하느님이 사는 성전이에요?목자와 양이 서로가 헤어지길 바라고 앉았으니.
그만큼 교회 안에도 마귀들이 들끓는 거예요.사제에게 관심을 가져도 올바른 관심, 사랑을 가져야지.
그래서 여러분들 본당 신부님에게서 예수님의 한 조각만 볼 수 있어도, 그 신부님은 성인 사제예요.아멘
내 피정 다니면 피정 끝나고 신자들이 내 손, 옷자락 잡느냐고 얼마나 난리야.
그러면 하나같이 말하지, ‘신부님 본당 신자들은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그러면 내가 ‘너도 와서 살아 봐.’
예수님이 본당 신부를 해도 반은 반대편이야.이해되지요?
어느 사제가 오더라도 항상 씹는 사람들은 정해져 있어요.
내가 터줏대감인데 새로운 신부가 나를 안 알아주고 다른 신자들하고만 친한 것 같아.그러면 적이 되는 거예요. 갈 때까지 씹어요.
나중에 얼마나 큰 벌을 받으려고.
용인에 내 애인이 있다고 떠들고 다니는 그 여자, 혹시 이 유튜브 방송을 듣는 사람 중 하나라면 앞으로 또 입을 놀렸다가는 내가 찾아낼 거야.아휴 애인이나 있고 이런 소리 들으면 억울하지나 않지. (웃음)
그러니까 주님 의노의 대상 첫 번째가 무관심한 사람들이에요.이제 이해되셨죠?
두 번째는 어떤 사람 앞에서 예수님은 망설임 없이 의노를 보였느냐?
위선자들이에요.위선자의 정의는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이에요.물론 이렇게 종이 접어서 코가 맞듯이 살 수 없어.나도 입만 열면 좋은 소리 하잖아요. 하지만 내가 한 말 100% 다 지키지 못 지켜요.그러나 적어도 신자들이 사제를 볼 때, ‘우리 본당 신부님은 당신이 한 강론 말씀은 지키려고 무던히 애쓰시는 분이야.’ 적어도 이 정도는 들어야 위선자가 아니에요.‘신부님은 입만 열면 어쩌고저쩌고 떠드는데 본인은 하나도 안 지키고 살아.’
이건 위선자죠.베드로전서 2장 12절에 그런 말이 나오잖아요.‘이방인들 앞에서 행실을 단정히 하십시오.’세상의 진리에는 과학적인 진리가 있고 도덕적인 진리가 있겠죠.하나 더하기 하나는 이다. 이거는 과학적인 진리, 수학적인 진리예요.수학적인 진리를 가르치는 사람들은 가르치는 것과 자기 삶이 조금 어긋나도 괜찮아.어느 학원의 수학 선생이 끝내줘. 수학 못 하던 애도 거기만 가면 수학을 잘해.그런데 그 선생이 카사노바야, 그래도 애들 학원 보내요.수학만 잘 가르쳐주면 돼. 그 선생이 뭐든 실력만 있으면 되는 거야.그런데 도덕적이고 윤리적이고 종교적인 진리를 가르치게 되는 사제나 넓게는 여러분 신앙인들은, 세상을 향하여 하는 말과 행동이 다를 때는 돌이 날아와요.
위선자 소리를 듣는다 이 얘기예요.이해되시죠?
‘이방인들 앞에서 행실을 단정히 하십시오.’어느 며느리는 시어머니 때문에 성당 안 나가겠대요.시어머니가 성모회장하고 온갖 성당에 일하는데, 며느리한테 그렇게 모질게 해.
성당 나가고 싶어도 시어머니 때문에 못 나가겠대.시어머니는 며느리를 걸려 넘어지게 하는 존재예요.라틴어로 ‘스캔달룸(scandalum)’은 ‘걸려 넘어지게 하다’라는 뜻이에요.여러분 주변에 나 때문에 걸려 넘어져서 신앙을 포기한 사람이 없는가?나 때문에 걸려 넘어져서 지금도 피 흘리면서 상처 끌어안고 있는 사람은 없는가?
뒤돌아봐야죠.그래서 예수님은 위선자들한테 아주 강하게, 어떤 말까지 하셨죠?
‘독사의 족속들아’ 그렇죠, ‘회칠한 무덤 같은 놈들아’ 그랬어요.무덤에 아무리 이쁘게 회칠해도 속에는 시체가 썩고 있고 구더기가 끓고 있죠.
바리사이들, 율법 학자, 대사제들에게 향하는 말이었죠.이런 분노를 보이니 당연히 죽일 계획을 세울 수밖에 없었죠.‘아 저거 입만 열면 우리 씹네. 저거 어떻게 죽여야 하나?’예수님은 사회학적으로 보면 스스로 무덤을 파신 분이에요.‘나 죽여주시오’ 하신 분이에요.
지금 같으면 총으로 벌써 암살당했을 그런 분이에요.그런데 그분은 그걸 무서워하지 않았거든요.
의노, 아까 뭐라 그랬어요?하느님 나라를 만드는 데 방해가 되는 모든 것 앞에서는 예수님은 그게 조직이든 권력이든 상관하지 않고 그냥 저돌적으로 의노를 보였다는 거죠.우리들이 보이는 그 쩨쩨한 손해 볼까, 내는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거죠.
세 번째 예수님은 어떤 사람들 앞에 의노를 보였을까?
자기 법에 얽매여서 자기가 만든 세계, 자기가 만든 그 법이 세상의 기준으로 알고 다른 사람을 자기 잣대로 재는 사람들이 있어요.눈금도 맞지도 않은 엉터리 잣대를 가지고 하느님을 재고 남편을 재고 이웃을 재고 본당 신부를 재고.
자기 법에 얽매여 사는 사람. 자기중심적인 잣대로 모든 것을 재는 사람.내가 얼마 전 강론에도 얘기했지만, 여기 와서 정원 농사지으며 참 많은 걸 묵상해요.저 느티나무가 황금색으로 바뀌는 것도 참 신비스럽지만, 소나무에는 없는 것이 있어요.느티나무는 구멍을 많이 만들어 내요, 군데군데 구멍이 많아.여기도 보면 큰 구멍이 있잖아. 왜 이렇게 구멍을 많이 만들까?그런데 소나무는 구멍이 있는 거 못 봤거든.
다 쫙쫙 철갑을 두른 듯, 그저 껍데기가 쫙쫙 올라가잖아.가만히 묵상해 보고 내가 물어봤지, ‘왜 이렇게 비우십니까?’
그랬더니 이 500년 된 어르신이 친절하게 답을 줘.세 가지 이유야.첫 번째 속을 자꾸 비워야만 뿌리 힘을 덜 뺏어요. 그죠?안이 꽉 차 있으면 뿌리는 이 속을 다 먹이기 위해서 계속 일을 해야 해.뿌리에 부담을 덜 주기 위해서 자꾸 안을 비워주는 거예요.
얼마나 지혜로워. 그런데 소나무는 안 비우거든.두 번째로 비우는 이유는 뭐냐?
소나무는 자연과 타협을 하지 않고 맞서요.그렇기 때문에 바람이 불면 뚝뚝 부러져요. 눈이 와도 뚝뚝 부러져요.그런데 느티나무는 바람이 오면 자기 빈 곳을 통해서 흘러 나가게 만들어요.
자연과 타협을 해요.싸우지 않고 지혜롭잖아. 소나무는 맞서다가 부러져.세 번째 이유는 뭐냐?
새들에게 둥지를 만들어줘요.그 대신에 새들에게 뭘 부탁하느냐?
껍질 속에 있는 해충을 잡아달라고 그래요.기가 막히잖아요?
그리고 느티나무는 그늘을 만들어서 사람을 모이게 하죠.그런데 동네 어귀 소나무 밑에 정자 있는 거 보셨어요?동네 어귀에 있는 건 다 느티나무야.그다음 정자가 있어서 노인네들이 와서 하루 종일 그늘에서 쉬어요.그러니까 자연도 이런 나무 하나도, 얼마나 지혜로운 자기 법이 있습니까?
그런데 인간만이 이기적인 법을 자기가 잣대로 만들어 살잖아요.그 잣대를 가지고 사람들을 재는 거예요.
여러분들 그런 사람 있죠?점심 한 번 얻어먹은 적이 없는데 그 사람 곁에만 가면 편하고 좋은 사람 있어요.또 어떤 사람은 주는 것도 없이 그냥 꼴 보기 있는 사람이 있어요.당연히 있죠.
나한테 해 끼친 것도 아닌데 뭔가 차가워.
여러분도 느티나무처럼 큰 잣대를 갖고 사셔야죠.우리들의 법은 성령의 법이 돼야 해요, 자기가 만든 그 옹졸한 법이 아니라.
자기가 만든 법에 얽매여 살아가는 사람은 본인 스스로에게 생채기를 계속 내고 살아요.그리고 주변 사람들한테 계속해서 상처를 줘요.그 잣대를 보면 가시가 숭숭 나 있거든, 눈금도 안 맞아.
이렇게 자기 법에 얽매여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하여 예수님은 의노를 보이셨다는 말입니다.
네 번째 어떤 사람에게 의노를 보였느냐?착취하는 인간들.
온갖 착취에 대하여 예수님은 의노를 보이셨어요.만물은 만인의 행복을 위하여 창조된 거 맞죠?
‘내가 필요 이상의 것을 소유하면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 것을 훔친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신학자들도 있어요.나는 볼펜이 하나만 있으면 되는데 두 개가 있어. 그런데 저 사람은 볼펜이 없어.
그러면 너는 그 사람 것 하나를 훔친 것이라는 거죠.진보적인 신학자들은 그렇게까지도 얘기해요.
왜? 세상의 만물은 만인을 위해서 있는 거죠.
이것은 공산주의 개념과는 달라요.가톨릭 교리대로만 천주교 신자들이 살았으면 공산주의라는 괴물이 안 나왔을 거예요.하느님을 믿는 사람들도 전부 다 이기주의로 살고 그러니까 공산주의가 나왔죠.
공산주의 이론이 뭐예요?뺏어서 똑같이 분비하겠다 이거야.
무력을 써서라도 뺏어서.
그게 공산주의죠.
가톨릭이 제대로 못 살았기 때문에 생긴 괴물 덩어리가 공산주의예요.공산주의 이론 자체는 좋죠.
그런데 거기에 무력 투쟁이라든지 유물사관 같은 것이 들어가니 문제죠.
안 내놓으면 총칼을 들이대고 똑같이 강제 수용 농장.그런데 공산주의에서도 재벌이 있죠, 그것도 썩은 거죠.
성전을 더럽히는 사람도 예수님의 의노의 대상 다섯 번째입니다.
성전은 눈에 보이는 성전이 있겠죠.여러분의 몸뚱아리도 성전이에요, 아니에요?
그리고 여러분의 몸이 여러분 거예요? 아니죠.그런데 왜 내 몸이라고 그래요? 웃겨 죽겠어.
정말 자기 몸도 아니라는 거 얘기하면서도 꼭 내 몸 내 눈, 내 머리, 내 팔.
‘나의’라고 하는 그 이기적인 대명사.
하느님이 머무시는 궁전이고 미사 때마다 예수님이 들어오시는 성전 감식이에요.성체를 영하면 움직이는 감실이죠.
내 몸이 바로 감실이 되는 거예요. 성전이야. 아멘예수님은 성전에 장사꾼들이 바글바글할 때 내 아버지 집을 더럽히지 말라고 그랬잖아요.마찬가지예요.
성체를 영하는 이 거룩한 존재가 내 몸을 더럽히는 행동을 한다면, 주님의 의노 대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항상 여러분들에게 미사 오면 피정을 시켜드립니다.25년도에는 내가 공식적으로 피정을 안 나간다고 했어요.그전에 예약해 놨던 수지성당과 간석2동 성당, 그리고 암사동 성당 것만 있네요. 그래서 아무튼 이렇게 미사 드릴 때만이라도 피정식으로 합니다.오늘 지금 제가 얘기해 드린 것은 저도 유튜브에 올립니다.그리고 또 카메라를 통해서 지금 실시간으로 나아가고 있어서, 오늘 들은 것을 정리하고 싶으면 얼마든지 집에서 차분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제 강론의 특징은 뭐죠?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정리의 달인이라는 거 알죠?옷 정리 잘하지만, 강론 정리도 잘해줘요. 더군다나 뒤죽박죽이 올라왔던 유튜브도 종류별로 정리했죠.
크게 4개예요.주일 강론, 가나다해 평일 강론 1년 것, 구약 성서 강의, 그다음에 피정 강론.
이 4개가 섞여 있다가 보니 나도 찾기가 힘들어서 폴더를 만들어 정리해 넣어두었어요.아마 더 쉽게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구약 강의도 쭉 한번 연결해서 들을 수도 있습니다.창세기서부터 월정리 달을 보면서 그 첫마디가 그거잖아요.어느 날 월정리 달을 보면서 깜짝 놀랐다.
‘2천 년 전에 주님도 저 달을 보셨겠지?’
같은 달이야, 그 생각부터 구약 강의가 시작돼요.세상이 좋아진 거죠.
유튜브를 통해서도 계속해서 볼 수 있고, 또 여러분만 들으려는 게 아니죠.주변에 얼마든지 전달할 수가 있잖아요.
전교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 때 한번 들어보라고 전달할 수도 있죠.그리고 잠 안 올 때 들으면 잠 잘 와.
그래서 불면증 치유로부터 시작이 돼서 유튜브에 빠지는 분들도 있거든.오늘 우리 초대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면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겠습니다.
♣2025년 연중 제26주일 (9/28) 김웅열(느티나무) 신부님 강론
출처: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