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4,1-13
+찬미 예수님
주님의 이름으로 평화를 빕니다.
오늘 오신 분들은 충청방이 메인이고 서울방에서 몇 분이 오셨습니다.
여러분들 방금 제가 읽은 복음 기억나시죠?
예수님이 광야에서 유혹당하는 이야기를 읽었죠.
여러분 생각할 때 이것이 진짜 같아요, 아니면 무슨 소설이나 신화 같아요?
이것은 진짜죠.
그런데 문제는 너무 많은 신학자가 이것을 신화화시키고 있어요.
이것이 마귀가 노리는 거죠.
마귀가 신학생들을 가르치고 신자들을 가르쳐야 할 신학자 한 사람만 휘어잡으면,
그 신학자의 입에서는 마귀의 입에 목소리가 나오게 돼 있어요.
그 결과 불행하게도 지금 신학교에서는 ‘마귀’를 안 가르쳐요.
이미 마귀 안 가르친 지 오래됐어요.
그리고 성경에 나오는 이런 얘기들은 전부 다 그냥 신화다.
철학적인 개념, 악의 개념으로만 말하지, 마귀가 실존하는 존재라는 걸 안 가르친단 말이에요.
그렇게 배우고 일선 현장에 딱 나오니까 이건 뭐야?
‘신부님 우리 딸 좀 살려주세요. 우리 딸이 이상해요.’
그러면 뭐라 하겠어? 왜 나한테 데리고 오냐고 정신병원으로 입원시키라고.
사제가 고쳐져야 할 영적인 병이 있고 정신과 의사들과 협업해야 할 병이 따로 있어요.
아예 신학교에서 그런 훈련조차 받지 않고, 소위 악마에 대한 개념조차도 못 받고 신부가 되니까 정복을 당한 거죠.
그래서 현대 신학의 가장 큰 위기는 뭐냐? 악마가 없다고 믿는 거예요.
저명한 사람들의 입, 소위 진보적인 신학자들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와요.
마귀들도 이왕이면 카리스마가 있고 힘이 센 사람의 입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그러겠죠.
그 사람 말이 권위가 있기 때문이죠.
금세기 최고의 신학자 하면, 돌아가신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이에요.그분이 교황님이 되기 전에 이름이 라칭거 추기경이었죠.신학생들과 신부들 치고 그 양반의 책으로 공부 안 하는 사람은 없을 정도로 아주 정통 가톨릭 신학자죠.교황님 옆에서 신앙교리성 장관을 하다가 요한 바오로 교황님이 돌아가시고 교황이 되셨죠.그리고 난 다음에 제일 먼저 밝힌 훈령으로 전 세계 주교들한테 뭘 보냈느냐?
다시금 각 교구마다 구마 사제를 양성하라고 그랬어요.그런데 안타깝게도 구마 사제를 양성한다고 하는 교구는 내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요.물론 본인이 구마 사제 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건 아닙니다.아주 엄격한 훈련을 받아야 하고 되게 비밀스럽게 활동들을 해나가고 있죠.1965년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는 각 교구에 구마 사제가 있었어요.그래서 본당마다 좀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면 구마 사제가 분별합니다.제가 구마 사제로 한 평생을 살면서 정말 많은 사람이 우리 아들 이상하다며 묶어서 데리고 오기도 하지만, 거의 95%는 부마자가 아녜요.그러니까 본인들이 먼저 이 사람은 마귀 들렸다고 다 결정하고 와요,
그런데 저 사람이 부마자냐 아니냐 하는 건 쉽게 결정이 나는 게 아니거든요.여러 가지 테스트를 해야 해요.
이게 정신과 쪽 문제냐, 또 원래 정신과적으로 취약하여서 마귀가 그것을 가지고 이 사람을 지금 지배하려고 하느냐는 것을 그림 보듯이 이렇게 그림을 그려야 해요.그래서 가끔 신자들이 물어봐요.
‘신부님, ’검은 사제‘라든지 ’사자‘에 관여하셨다고 그러던데 관여하셨어요?’
관여했죠. 당연히 시나리오 감수라든지, 주인공 역할 등.
그러면서 거기서 구마 예식 때 마귀 날뛰는 것처럼 진짜 그렇게 무섭냐고 물어요.
그러면 ‘열 배는 더 무서울 거다. 영화에서 보는 것보다.’라고, 답해줍니다.구마 예식할 때는 구마 사제는 목숨을 걸고 해야 해요.왜냐면은 잘못하면 그게 사제에게 들어올 수가 있어.여러분 옛날에 엑소시스트라는 영화 혹시 기억나십니까?구마에 대해서 다룬 첫 번째 외국 영화였는데 쇼킹했죠.거기 보면 나이가 많이 든 할아버지 구마 사제가 아이한테 붙은 마귀를 떼려다 워낙 센 마귀라 구마 사제는 급성 심장 정지로 죽어요.그다음에 보조하던 다른 40대 신부가 들어와서 대신 하는데 너무 강한 거예요.결국에는 어떻게 하는지 아세요?
그 마귀한테 차라리 나한테 들어오라고 하죠.
순식간에 그 사제의 얼굴이 시퍼렇게 바뀌고, 사제는 마지막 가지고 있는 자기의 의지와 이성을 동원해서 유리창 쪽을 향해서 뛰어가 자살해요.마귀 들린 채 신부로 살 수는 없잖아.그래도 그 애는 살린 거예요.
실제로 그런 각오를 하지 않으면 어려운 거죠.
오늘 들은 이야기에 예수님이 광야에서 마귀와 싸웠는데, 루카 복음 맨 마지막엔 어떻게 끝나는지 한번 보시겠어요?‘다음 기회를 노리고 그분에게서 떠나갔다.’하느님의 아들한테 이렇게 깨졌는데도 이 마귀 놈은 포기를 안 한 거예요.하물며 우리 약해 빠진 인간들을 고백 성사 한 번 보고 눈물 찔찔 흘렸다고 해서 마귀가 내버려 두겠어요? 피정가고 성령 세미나 가서 나 성령 받았다고 하면 그냥 놔두겠느냐 이거예요.실제로 마귀는 ‘다음 기회를 노리고 떠나갔다’ 하는 것을 실행에 옮겼죠.언제 다시 또 예수님을 언제 공격했어요? 겟세마니 동산에서
마귀가 귀에 대고 예수님의 인성에 속삭이죠.
‘네가 그것을 왜 받니? 어마어마한 고통이 올 거야. 거부해.’예수님이 자기도 모르게 이 잔을 거두어 달라고 이 고통 당하기 싫다고 하시죠.
그렇지만 예수님은 바로 다시 신성의 기도를 하셨죠.‘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 당신 뜻대로 하소서.’
신성이 인성을 누르는 기도이고 겸손이 교만을 이기는 기도를 하신 거예요.또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죠. 십자가상에서 또 유혹합니다.
십자가상에서 너무 고통스러워 그러니까는 예수님 귀에다 대고 마귀가 속삭입니다.
‘거 봐. 병신아, 너 버림받았잖아. 네 아버지가 너 이렇게 만들었다고. 너 버림받은 자식이야. 네 아버지한테 욕해.’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무슨 말이냐면 ‘엘리 엘리 레마 사박타니’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해서 나를 버리셨나이까?’
정말 그 순간에 예수님은 버림받은 느낌을 받으신 거예요.그렇지만 마지막에는 ‘이제 다 끝났다. 당신에게 제 영을 맡깁니다.’ 하면서 고개를 떨궜죠.
그러니까 오늘 복음에도 보면 세 번이나 가장 원초적인 것으로 예수님을 공격하면서 마지막에는 이놈이 포기한 게 아니라 ‘다음 기회를 노리고 떠나갔다.’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한 번에 총 고백으로 성인 성녀처럼 살 수가 없는 거예요.한 번의 피정을 통해서 꽃길만 놓여 있다? 이건 아니라는 얘기죠.
아까 얘기한 걸 다시 한번 강조하면 현대 신앙의 위기는 악마가 없다는 것을 믿는 거예요.너무나 많은 교우도 그렇게 얘기하는데 불행하게도 전국에 있는 각 본당에서 신자들은 자기 본당 신부님 강론 중에서 악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불행하게 못 들어봐요.주교님의 사목교서에서도 마귀와 싸우는 방법에 대한 방법을 안 가르쳐요.그러니까 요한 바오로 2세, 성인 되셨죠, 그분이 그런 얘기를 하셨잖아.‘교회의 유리창 틈으로 이미 악마가 다 들어와서 다 퍼져 있다.’그래서 독성 죄를 만들고 지금은 전 세계가 그냥 말세입니다.신앙이 없는 사람들도 ‘아이고 인간들 이러다 벌 받지 벌 받아 벌 받아.’
나는 다큐를 좋아하는데 요즘 보고 있는 것이 ‘그것이 알고 싶다’를 봐요.그걸 보다 보니까, 어떻게 세상에 이런 인간들이 있을 수 있나, 부모가 자식을 죽이고 자식이 부모를 죽이고, 상상을 초월해요.이렇게 악할 수가 있을까, 이렇게 잔인할 수가 있을까?
여러분들 재의 수요일 이마에 재 바르셨죠?재를 왜 발라야 하냐에 대한 것은 유튜브 수요일 강론에 아마 올라가 있을 거예요.재를 받는 이유와 사순절 의미에 대해서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을 겁니다.아마 지난 수요일 강론에 그 얘기를 했어요.‘사순절은 시련과 유혹의 시기다.’정말 사탄은 인간을 너무너무 교묘하게 정복해 나가요.머리에 뿔 달린 모습으로 나타나서 ‘나 사탄이다.’ 절대 이러지 않는다는 거죠.사탄이 쓰는 가장 큰 무기는 자기 자신을 감추는 거예요.정말 교묘하게 감춰요. 그러면서 정복해 나가요.그 사람의 묵은 상처, 하다못해 뱃속에서부터 받은 상처까지 건드리며 그 사람을 지배해요.어떤 사람과 화해해서 나 상처가 다 났다 싶었는데, 사실은 또 아닌 것도 많아.못을 빼도 못이 들어갔던 구멍은 보이잖아요. 기억력까지도 치유되기 쉽지 않아.그 정말 아주 저주스러운 미움으로부터 해방이 됐을지 몰라도, 누구를 생각하면 그 사람이 줬던 상처에 대한 기억은 그대로 사라지지 않아요.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간들은 이 교묘한 사탄의 전술에 넘어가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리고 늘 깨어 있어야 하죠.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 유혹받으셨죠?
유혹받으심으로써 유혹이 가득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각자 각자에게 어떻게 그 엄청난 유혹을 이기고 승리할 것인지를 방법을 간곡히 들려주고 있어요.결국에 마귀와 싸워 이기는 방법도 예수님한테 배워야 해요.어디 학원에 가서 배우는 게 아니야.
예수님이 어떻게 마귀를 싸워 이겼는지 그것도 그 양반한테 노하우가 있어.그 성경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노하우가 바로 오늘 읽은 복음이에요.
예수님이 40일 동안 금식을 하고 있는데 뭐가 제일 생각나겠어요?여러분 같으면 며칠을 굶으면 밥이지 뭐야? 그렇죠. 밥이죠.첫 번째 뭐에 대해 유혹합니까? ‘밥에 대한 유혹’을 해요.‘탐욕’에 대한 유혹을 합니다.뭐 가지고 뭐를 만들어 보라 그래요? 돌멩이 가지고 빵을 만들어 보라고 해.그런데 참 이게 기가 막힌 유혹이야.
예수님은 실제로 돌멩이 가지고 빵 만들 수 있잖아요.그렇기 때문에 이게 기가 막힌 거라는 거야.
우리들은 돌멩이 가지고 빵 못 만들어요.그런데 그분은 빵만 만들겠어? 닭 뒷다리까지도 만들 수 있지.나무때기 가지고 치킨도 만들 수 있는 분이야.
그렇기 때문에 이게 미치는 유혹이야.‘손만 닿으면 요게 내 손에 들어올 거다.’
마귀 새끼는 이런 것을 가지고 유혹하지 아예 꿈도 꿔보지 못할 거 가지고 유혹 안 해요.우리 여기 우리 형제님 세례명이 어떻게 되셔? 프리스코 특이하네.우리 프리스코 형제는 대통령이 되고 싶은 유혹을 받아본 적 있어요?지금 직장 다니십니까? 아, 대학교 교수시구나.그러면은 교수로 살면서 어떤 유혹이 제일 큽니까?교수라는 그 직책으로만 볼 때, 인정받아야 하고, 또 교수 사이도 보면 참 치열하잖아요.그리고 교수로서 제일 높이 올라가는 게 총장인가요?
학장, 학과장, 그렇죠. 그런 것은 욕심이 있으시잖아.
그런데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유혹은 받지 않죠.
그러니까 이 마귀라는 놈이 얼마나 교묘하냐면 내가 눈 한 번 질끈 감고 ‘아유, 그래.’ 이런 것으로 유혹하지, 아예 꿈도 꿔보지 못한 것까지는 절대 유혹을 안 해요.예수님은 돌멩이 가지고 빵 만들 수 있어요.
그러니까 40일 동안 굶어 배가 고픈데 마귀 새끼가 나타나서
‘너 능력자잖아. 이거 빵 만들어서 먹어. 왜 배를 곯고 있어?’
우리 재의 수요일에 한 번 굶고 성금요일에 한 끼 굶죠.그런데 그때도 유혹 많죠.
꼭 회 먹자는 사람 나타나고, 성금요일에 갈비 사준다는 사람이 나타나요. 희한한 거야.
그래서 내가 눈 한 번만 질끈 감으면 내 안에 있는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될 수 있는 그런 유혹을 해요.그래서 인간은 이 탐욕 때문에 무수한 죄를 짓고 타락해 가요.특별히 이 ‘탐욕’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많기 때문에, 아주 원색적이면서도 굉장히 직접적으로 나한테 확 와닿죠.‘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들로 빵이 되라고 해보시오.’40일간 단식한 이 예수님에게 빵이라는 말 자체가 견딜 수 없는 유혹이었을 거예요.옛말에 그런 말이 있죠.
‘어떤 슬픔도 배고픈 슬픔보다 더 큰 건 없다.’ 여러분들 며칠까지 굶어본 적 있으세요? 저는 군종신부로 있을 때 특수부대에 있었는데, 혹한기 훈련을 같이 받았죠.겨울 되면 미숫가루 두 봉지 갖고 낙하산을 타고 저 밑으로 떨어져, 군종신부도 마찬가지. 나침판 하나 가지고서 거의 600km를 산으로만 목적지에 며칠 안에 도달해야 해.낮에는 자야 하고 밤에만 산길로만 움직이는데, 미숫가루 입에다 묻혀도 금세 없어지잖아요.보이는 움직이는 건 다 잡아먹어야 했죠. 생존 훈련이야, 한마디로.
그래서 난 최대로 많이 굶어본 게 한 일주일은 굶어봤어요. 물만 가지고.얼마나 배가 고픈지 낙엽도 입에다 넣었다가 그냥 토해버려요.그러니 40일을 굶었는데 그 빵이라는 말 자체가 얼마나 큰 유혹이겠습니까?이 빵에 대한 원천적인 유혹은 누구든지 생각 없이 쉽게 넘어갈 수 있는 기본 원칙이에요.그래서 이 유혹에 대해서 예수님은 어떻게 합니까?신명기의 말씀을 인용해서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다.’ 하면서 단호하게 거절하죠.‘사람이 빵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말씀으로 사는 것이다.’참, 이 악마라는 놈이 얼마나 지능적이냐면 유혹할 때 성경을 가지고 유혹해요.여러분들, 내가 피정 때 그런 얘기 가끔 해요.악마 중에 제일 IQ가 떨어진 놈이 200대인데 사람은 200대면은 아인슈타인 같은 천재죠.그러니 이 머리싸움으로 이기겠냐? 못 이기죠.
그런데 여러분들이 한 가지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신명기의 말씀이에요.‘사람이 빵으로만 살 그것이 아니다.’ 단호히 거절하셨는데 이 대목을 우리가 오해해서는 안 돼요.이 대목을 흔히 하느님이 물질을 거부하시는 것이라고 잘못 인식할 수도 있다는 얘기죠.물질이 결코 나쁜 것 아니죠. 빵이 결코 나쁜 거 아니에요.
물질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고 거부되어서도 안 된다는 얘기죠.우리가 정말 똑똑히 알아야 할 중요한 것은 ‘하느님과 물질의 순서’예요.하느님보다 물질이 위에 올라가 있었던 것이 우상이에요.그래서 우상의 정의는 뭐냐?
‘하느님보다 윗자리에 모시고 있는 것’은 다 우상이라고 보면 돼요.오늘 아주 종일 하느님 생각은 하나도 안 났고 오로지 자식새끼만 생각났어.그러니까 오늘 하루는 내 우상은 자식이야.
오늘 하루 종일 돈 생각밖에 안 나. 하느님 생각은 1분도 한 적이 없어. 그건 돈이 우상이야.하느님보다 윗자리에 버티고 있는 것들은 다 우상이에요.자식 잘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죠.
그런데 문제는 뭐냐? 자식이 하느님보다 늘 위에 올라가 있어요.여러분들 은총의 비는 위에서 밑으로 떨어집니까? 아니면 땅에서 거꾸로 하늘로 올라갑니까?
하느님이 첫째 자리에 당신 자리 딱 좌정하고 앉아 계실 때 그 밑에서 은총의 비가 내려가요.그런데 이게 순서가 바뀌면 물질과 하느님의 이 순서가 바뀌어 버리면은 이건 아니지.그래서 신명기에서 얘기하는 그 말은 물질을 거부하라는 얘기가 아니라, 물질과 하느님의 순서를 제대로 잡아야 한다는 말입니다.내가 오늘 주님을 첫째 자리에 모시고 살았는가 아니면 내 취미 생활이 첫째였는가?
취미 생활하지 말라는 거 아니에요. 취미 생활하면서도 하느님은 첫째 자리에 있을 수 있죠.그래서 내가 취미가 과도하게 오버하는 거를 막아줘요.첫째 자리에 주님을 모시고 살면 내가 이 물질을 어떻게 선익을 위해 쓸 수 있는지 분별력을 주신다는 그 얘기죠.그런데 이게 순서가 바뀌면 정말 그것이 알고 싶다에 나오는 그런 괴물들이 만들어지죠.마귀는 항상 그 순서를 뒤바뀌게 만들어요. 그래서 혼란스럽게 만들어요.‘돈이 최고야. 하느님이 어디 있어?’
돈을 위해서는 사기 치고 다른 사람을 죽여서라도 온통 물질만을 섬기고 살아갑니다.하느님을 뒷전으로 하고 물질을 하느님인 양 섬기고 있죠.그것이 바로 악이요. 그것이 죄고 이것이 바로 마귀의 노리는 목표입니다.우리는 그렇게 되어 가고 있어요.
맘몬(mammon)이냐 하느님이냐의 문제.
재물 욕심을 우리는 맘몬이라고 부릅니다.맘몬이냐 하느님이냐의 문제는 육체냐 영혼이냐 하는 문제도 되고요.땅이냐 하늘이냐 하는 시간이냐 영원이냐의 문제로 발전해 나갈 수 있다는 거죠.그래서 사실은 우리는 죽을 때까지 이 문제 앞에 봉착하게 됩니다.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육체는 결코 우리 영혼에 앞설 수 없어요.그리고 땅은 하늘 위에 있을 수 없어요.시간은 영원을 능가할 수 없어요.불교에서 얘기하는 ‘겁’이라고 하는 것은 시간의 연장이에요.우리들에게 있어서 영원이라고 하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개념이죠.시간의 개념이 아니에요. 그래서 시간은 절대로 영원을 앞설 수가 없어요.우리는 영원을 향해서 이렇게 지금 이 세상살이 나그네 살이가 힘들고 어려워도, 때로는 손해 봐도 참아야 하고 그렇죠.용서할 수 없는 놈들도 용서하려고 애를 써야 하고, 슬픔의 골짜기를 넘어갈 때마다 웃으려고 주님을 바라보면서 애쓰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영원한 세상으로 가기 위해서 그런 거예요.우리가 살 그 영원한 세상은 바다에 떨어지는 빗방울보다도 작은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희망을 주거든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당하신 이 첫 번째 유혹은 인간의 이 엄중한 사실 앞에서 갈팡질팡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말라 하는 일깨움을 주고 있죠.‘빵이냐 하느님이냐?’
어떤 걸 선택할 것이냐는 갈림길에 있을 때 빵을 버리라는 얘기가 아니고 순서를 지켜라.하느님 첫째 자리에 모시고 빵 맛있게 먹어.그렇지만 그 빵을 도둑질해서 먹으려는 건 아니겠죠.땀 흘려서 벌은 빵을 먹으라는 얘기예요.
하느님의 말씀은 빵보다 더 중요하다고 나오죠.그러나 물질이나 육체, 땅이나 시간이 나쁜 건 결코 아닙니다.그것들이 하느님과 영원 뒤에 자리 잡고 있다면 가장 쓸모 있는 것이 되죠.순서가 바뀌면 그게 바로 사탄이 되는 것이라는 것을 명심하시기를 바랍니다.아멘
두 번째 유혹이 뭐였어요?야심과 지배욕이에요.
마귀가 나한테 절하면 이 세상 다 주겠다고 합니다.
권세와 영광에 대한 유혹은 물질에 대한 유혹보다 사실은 더 교묘하고 악랄하고 깊고 끈질겨요.묵시록 13장 1절에 이런 야심과 지배욕을 ‘땅에서 울부짖는 짐승’이라고 그랬어요.특별히 이 야심과 지배욕에 대한 유혹은 특히 누구에게 강하게 오느냐?소위 지성인들에게 이 유혹은 굉장히 물질적인 저속한 유혹보다도 아주 강렬하고 위험해요.사탄은 아담에게서 빼앗았던 그 권세를 예수님께 보이면서 ‘만일 당신이 내 앞에서 엎드려 절한다면 모두가 당신 것이오. 저 모든 권세와 영광을 당신에게 주겠어.’ 이렇게 유혹합니다.‘단 한 번 머리 숙이기만 하면 이 세상의 권세와 영광은 당신께 되는 거야. 나한테 한번 머리 숙여 봐.’
마귀한테 인사 전하래요.예수님은 단호히 거절하셨죠.어떤 말씀으로?
신명기 6장 13절 ‘주님이신 너의 하느님을 예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건방진 놈! 네가 어디 나한테 머리를 숙이라고 해.여기서도 우리는 조금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어요.이 권세에 대한 정의입니다.
권세도 하느님에게서 온 것이라면 나쁘다고 할 수는 없죠.그런 권세를 남용하거나 자신의 영광이나 야심을 충족시키는 데 사용할 때, 우리는 그때 사탄에게 무릎을 꿇는 것이 됩니다.그래서 우리는 절대 사탄 앞에 무릎을 꿇으면 안 되지요.우리는 오로지 하느님 앞에서만 무릎을 꿇어야 해요.그리고 이런 유혹을 이겨나갈 수 있음을 주님은 몸소 보여주셨죠.
성당들이 다 다르실 텐데 여러분 성당에는 장궤틀이 있습니까?피조물이 창조주 앞에 하는 첫 번째 경배 행위는 무릎을 꿇는 거예요.그것보다 더 큰 경배는 엎드리는 거예요.사제와 수녀들이 종신서원 할 때 바닥에 엎드리잖아.성경에도 예수님한테 치유받고 온 여인이 엎드렸잖아.그런데 지금은 명동 성당부터 장궤틀을 떼기 시작했어요.몇백억짜리 성당을 지으면서도 장궤틀을 안 만들어요.유일하게 전 세계 가톨릭 가운데 장궤틀을 떼어내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어요.
이게 보통 문제가 아니에요. 하느님 앞에 무릎을 못 꿇게 해요.하느님한테만 무릎을 꿇어야 한다고 그랬잖아요.장궤틀을 안 만드는 이유가 뭐냐 하고 그 신부한테 물어보면 너무 세속적이야.단가가 얼마씩이 더 들어간대. 또 장궤틀 길이만큼 성당이 좁아져서 의자가 부족하대요.그게 말이 돼요?
그런 마인드로 장궤틀을 없앤 신부가 죽어서 예수님 앞에 한 번 갈 거 아닙니까?그럼 물을 거예요.‘아무개 신부야, 너한테 맡겨진 양들을 왜 내 앞에 무릎을 못 꿇게 했어?’‘돈 때문에 그랬는데요’.
‘어디서 돈 얘기를? 성당 네 돈으로 지은 거야? 양들이 지은 거지. 니가 그 걱정을 왜 해?’그러니까 사제도 분별력이 없으면 이렇게 돼버려.여기 들어오는 입구에 알퐁소 성인의 글이 있죠.그리고 이쪽에는 내가 늘 했던 얘기 ‘혼란스러울 때는 전통으로 돌아가라.’지금은 그게 해법이에요. 전통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어.나는 한평생 피정 지도하면서 그거 가르친 거예요.그런데 그 소리를 듣기 싫어하는 신부들도 있었겠죠. 장궤틀을 떼어 없앴는데 피정시켜 달라고 나를 불렀어.
그런데 왜 장궤틀 떼어냈냐고 혼을 내키면 나랑 적이 되는 거지, 상관없어요,
하지만 잘못 생각했구나! 깨닫고 다시 장궤틀을 붙인 신부들도 있어요.
여러분들 미국 성당에 가 봐도 다 있죠.들어올 때 성수 찍고 제대 향해 반 무릎 꿇어요. 그리고 성체 성혈 축성할 때는 그 자리에 왕이 있어도 왕도 무릎을 다 꿇어요.그런데 지금 다 뻣뻣하게 서서 있잖아.
대등하다, 나 하느님이랑 맞먹는다는 그 뜻이죠.
하느님 앞에 우리는 무릎을 꿇어야 해요.그래서 이 두 번째 유혹을 물리치는 방법을 예수님께서는 알려주신 거예요.이 두 번째 유혹, 권력 야심은 사실 빵보다도 더 교활하게 가랑비 옷 젖듯이 스며들어요.내가 지난번에도 얘기했지만 내가 이제 피정을 공식적으로 안 나가다 보니까 이렇게 한 달에 두 번 주일 미사 때 강론이라기보다는 이건 특강이에요.
세 번째 유혹 넘어갑시다.세 번째 유혹은 뭐예요? 떨어져 보라고 그럼 천사가 떠받들 거라고 그랬잖아요.높은 데로 데려가서 ‘뛰어내려. 너 하느님의 아들이잖아. 네 다리가 땅에 닿기 전에 천사가 딱 받쳐줄 거야.’유혹했죠.
‘허영과 교만’을 부추기는 유혹이에요.기적을 자기 과시를 위해서 남용할 때 인간은 하느님의 원수가 될 수밖에 없어요. 아멘다시 말하면은 사탄의 제자가 되는 거예요.
남보다 출중해 보이겠다고 하는 유혹, 유명해지고 싶은 유혹, 존경받고 싶은 유혹 등은 하느님으로부터 능력과 권세가 주어졌을 때 꽃이 피어요.나 존경해 줘? 아니죠.
재미난 얘기 있어요.
유럽에는 축일마다 행사들이 많아요.
큰 행사가 되면 성당에서 기르고 있는 당나귀 등에 예수님상을 세워서 동네를 돌아.
신부님이 향 피면서.
그러면 동네 사람들은 당나귀 등에 있는 예수님상을 보고 절을 하죠.
그런데 어느 날 당나귀가 착각한 거야. ‘나만 나타나면 다 절을 하네.’당나귀가 꼴값을 떠는 거지 지금 한마디로.
그런데 어느 날은 예수님상 없이 혼자 외양간에 나와서 시찰을 나갔더니 ‘저거 뭐야? 성당 당나귀가 왜 나왔어?’ 하면서 빨리 돌아가라고 막 때리는 거야.그래서 매만 맞다 들어왔대.
그러니까 우리에게 있는 어떤 재능은 그분이 주셨기 때문에 우리들이 쓰는 거예요.그래서 항상 감사해야 해요.
내가 남보다 어떤 재주가 더 있다, 능력이 있다?
그것을 가지고 교만의 재료가 돼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섬기는 것보다도, 오로지 기적을 행하고 치유 능력을 과시하고 환시를 보고 성은을 받는 거를 더 좋아하는 것, 이것은 굉장히 위험한 거예요.열심한 사람들이 흔히 빠지기 쉬운 유혹이 이런 거예요.이 유혹을 이기는 길은 신명기 6장 16절 ‘주님이신 너의 하느님을 떠보지 말라.’오로지 기적이나 치유, 이런 것들을 좋아하는 믿음은 자칫 잘못하면 다 기복으로 빠져요.솔직히 삼 년 동안 예수님 따라다녔던 수많은 사람이 있죠.빵을 먹인 숫자가 남자만도 5천 명이라니까, 그 당시도 여자가 더 많이 모였을 때니, 적어도 한 1만 5천 명에서 2만 명 되는 사람을 먹인 거예요.그리고 또 12 광주리가 남는 그렇게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쫓아다녔어.그런데 그 쫓아다닌 사람들이 저분이 메시아이기 때문에 쫓아다녔을까요?그런 사람은 거의 없었어. 이 열두 제자마저도.
누구로 안 거예요?로마를 물리치고 왕이 되실 분. 그러면 내 아들은 국무총리,
제자들 엄마가 로비하잖아.예수님을 따라다녔던 그 수많은 사람은 99.9%가 다 기복이었어요.
저 사람만 쫓아다니면 병이 난대.세상에 누가 옷자락 잡고 일어섰대.
저 사람이 손대니까 장님이 눈 뜨고, 세상에! 쳐다만 봐도 문둥병이 나왔대.그러니까 뭐 들것에다 싣고 유대 땅 전국에서 모여드는 거야.메시아건 뭐건 상관없어. 나만 편하게 해주면 돼.그런데도 예수님은 까탈스럽게 하시지 않았죠.
기복으로 나 찾아온 거 알고 언젠가 내가 잡혀서 십자가 질 때 저 사람들이 나한테 돌 던진다는 것 다 알면서도 다 해줬어요.그 인간들이 다 돌 던졌잖아요. 침 뱉고.
예수님께 나음을 받은 그 수많은 사람도 군중 속에 섞여서 폭도가 됐단 말이에요.한마디로 배은망덕한 거죠.오늘 2독서에 보면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또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그 이름에 의지하고 그 이름으로 행한다면 무엇 하나 어긋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구약의 백성들이 이국땅에서 노예로 있을 때도 주님께 부르짖어 구원받지 않았던가! 이런 말이 1독서에 나옵니다.
자, 정리합시다. 오늘 악마 이야기가 나오죠.
오늘 여기 마귀라고 나와요, 악마라고 나와요? 악마예요.예수님한테 대든 게 악마예요, 마귀가 아니라.이게 외국말을 번역한 것인데, 내가 무수히 이야기했지만 다 까먹었을 거야.정확히 아셔야 합니다.
창조주 하느님이 천사들을 만드셨죠? 천사들은 인간이 아니에요.그 천사들 가운데서 가장 능력을 많이 준 4대 천사가 있어요.가브리엘, 미카엘, 라파엘.그런데 이 세 천사의 능력을 합친 것보다 더 큰 능력, 우리 식으로 따지면 육군 참모총장 별 넷짜리 천사가 루치펠이에요.루치펠 제일 센 천사예요. 세 천사의 능력을 다 갖추고 있어요.루치펠이 한동안은 하느님께 정말 큰 수호자 노릇을 했었지만, 어느 틈엔가 간신배들이 생기면서 ‘루치펠님, 당신 능력 같으면 하느님 밀어내고 저 자리 차지할 수 있겠다.’
루치펠이라는 말의 뜻은 ‘빛을 지니고 있는 자’입니다.미카엘은 ‘하느님이 승리한다’ 그 뜻이고 가브리엘은 ‘하느님이 보낸다.’라파엘은 ‘하느님이 치유한다’는 뜻이죠.
엘(El)이 하느님을 뜻합니다.그런데 ‘하느님이 빛을 주신다’라는 뜻의 루치펠이 반란을 일으켰죠.이 루치펠이라는 피조물이 창조자를 이길 수 있어요? 없죠.쫓겨나면서 루치펠이라고 이름을 뺐고 어떤 이름을 붙여줬어요?‘사탄’ 그 사탄을 한국말로 번역한 게 ‘악마’예요.그리고 천국에서 쫓겨날 때 그 졸개들이 같이 나갔죠.게네들을 ‘데이블’이라고 그래요. 그걸 번역한 것이 마귀 내지는 악령.그래서 악마는 하나뿐이에요. 루치펠.
그러니까 마귀는 예수님이랑 싸울 생각을 못 해요. 급이 다르니까.
옛날 대천사였다 악마로 변한 루치펠이 예수님이랑 맞짱 떠도 되겠다하고 덤빈 거죠.우리들은 그냥 악마, 마귀 막 섞어서 얘기하잖아요.하지만 악마와 마귀는 언어학적으로는 분명히 구분됩니다.
루치펠이 떠나면서 사탄(악마)이라는 이름이 붙여지죠.
사탄은 ‘하느님께 등 돌리고 있는 자’라는 뜻입니다.오늘 복음의 악마는 자기의 큰 힘을 가지고 40일 동안 광야에서 공생활을 준비하고 있는 예수님께 다가가 탐욕의 유혹을 합니다.빵의 유혹을 합니다.
그런데 그 유혹이 정말 예수님 쪽에서는 힘들었을 거라 짐작하는 것이, 그분은 얼마든지 돌을 빵으로 만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에 힘들었겠다.그래도 예수님은 끝까지 ‘악마 새끼’ 하면서 삿대질하고 멱살 잡고 싸운 게 아니었죠.차분하게 구약의 말씀을 가지고 물리쳤어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뭔가 내가 요즘 이상해, 내 안에 마귀 새끼가 들어왔나 생각 들면, 그럴 때는 제일 좋은 것은 성경을 소리 내서 읽는 거예요.그러면 그냥 부글부글 끓던 마음, 흥분했던 마음, 그냥 정신없던 마음들이 내가 읽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물러나게 돼 있어요.요즘은 휴대폰에서도 성경 다 읽을 수 있잖아요.차 타고 가면서 얼마든지 버스 안에서도 읽을 수 다 있잖아요.예수님의 무기는 칼이나 창이 아니에요.
그 양반은 시작부터 끝까지 말씀이에요.예수님 그랬잖아요. 내가 마음만 먹으면 천사 한 군단을 불러낼 수 있다고 그랬잖아요.능력이 없어서 그렇게 돌아가신 게 아니지 않습니까?사순절 우리 첫 주일 교회는 구원자이신 예수님이 악마가 어떻게 싸워 이기는 법을 또 모습을보여주면서 사제들의 입을 통해서 정리해 주기를 원하고 있죠.빵의 유혹이 올 때 빵을 무시하려는 건 아니다. 순서를 지켜라.하느님 위로 빵이 올라가면 절대 안 된다.은총의 비는 위에서 밑으로 내리지, 거꾸로 땅에서 올라가는 은총의 비는 없다.두 번째 유혹은 뭐라고 그랬어요? ‘나한테 절하면 다 주겠다.’그랬더니 예수님은 ‘오로지 하느님 앞에서만 우리는 무릎을 꿇어야 한다.’이런 유혹은 소위 많이 배웠다고 하는 사람들한테 아주 교묘하게 치고 듭니다.
세 번째는 ‘뛰어내려 봐라’ ‘하느님을 시험하지 말라’라고 얘기하시죠.
그리고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13절 ‘악마는 모든 유혹을 끝내고 다음 기회를 노리며 그분에게서 물러갔다.’다음 기회는 두 번 있었어요.
겟세마니 동산에서 이 잔을 거둬 달라고 그리고 마지막은 십자가상에서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왜 저 버리셨어요?‘너 버림을 받았어, 이 바보야. 거 봐. 내 말이 맞지? 내가 그럴 거라고 그랬잖아.’예수님한테까지도 이렇게 집요하다면 정말 약점투성이인 우리들, 깊은 신앙도 없는 우리들이 마귀들이 볼 때는 얼마나 밥이겠느냐 이거예요.우리는 예수님을 떠나면 마귀 소굴에 들어가, 그냥 다 망치고 살아가는 거예요.그래서 오늘 여러분들 이 자리에 주님 불러서 오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겉으로 보면 여러분들이 기름 태워 왔겠지만, 여러분 여기 오기 위해서 노력한 거랑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큰 이 자리의 수많은 성인의 전구를 통해서 오신거죠.
여러분에게 축복을 주기 위해서 이 자리에 불렀다는 거 명심합시다.
마찬가지로 내가 천주교 신자가 된 것도 어쩌다 된 게 아니라, 주님이 나를 천주교 신자들로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기도가 있었고, 그 기도 끝에 내가 천주교 신자로 살아가고 있는가 생각하면 쉽게 우리 냉담 못하죠.그렇죠.
선택받았다고 하는 생각을 하면 우리는 절대로 냉담하고 싶은 유혹이 들어도 늘 성체를 그리워하게 되고, 또 천지교 신자라는 걸 좀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또 빛과 소금이 되려고 우리는 애를 쓰게 될 겁니다.오늘 받은 은혜에 우리 감사합시다.
♣2025년 사순 제1주일 (3/9) 김웅열(느티나무) 신부님 강론
출처: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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