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에게 가장 소중한 기억은?

하늘호수♡님 2022-06-20 11:55 ... 조회(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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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 예수님!
주님의 이름으로 평화를 빕니다.
 
한 주일 동안 평안하셨지요? 저는 지난주 월요일, 화요일 1박 2일 동안 강원도에 3년 만에 오래간만에 코에 바람을 좀 넣고 왔습니다. 그래서 갔다 오니까 감기 기운 남아 있던 것도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이런 게 필요한 것을 느꼈습니다.
 
이미 편집된 동영상으로도 보신 분도 있으시죠? 어때요? ‘아, 신부님 뒤에 매달려 가면 좋겠다.’ 남자분들 같은 경우에 ‘한번 배워볼까?’ 싶으신 분도 있을 겁니다. 배우세요, 저 쫓아다니시면 외국에 갈 때 제가 같이 다닐 수 있습니다.
 
제가 오래전부터 바이크 타는 걸 알고 계신 분들이 많을 겁니다. 제 바이크의 역사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탔으니까 오십 년이 훨씬 넘었죠. 그런데 여러분의 자식이 열다섯 살에 오토바이를 타면 여러분은 뭐라고 하겠습니까? 난리가 나죠. 근데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한 번도 뭐라고 하신 적이 없어요. 물론 내가 돌아올 때까지 우리 어머니는 촛불을 켜놓고 기도하셨을 것에요. 그렇지만 절대 기죽게 하지 않으셨어요. 그리고 나갔다 돌아오면 우리 어머니가 항상 하신 던 말씀이 기억나요. 우리 아들오늘 행복했어?’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이렇게까지 엄마가 열린 마음으로 해 주는데 만일 사고가 나면 큰일 나겠다. 정말 사고 안 내고 잘 타야겠다.’라고 마음먹었죠. 항상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대단하신 분이시라고 생각합니다. 세월이 지날수록 어떻게 그렇게 열려 있을 수 있었을까?
2015년도에 사고가 한번 크게 났어요. 갈비가 8대가 부러졌는데, 사고 후 어머니 뭐라고 그랬을까요? ‘이젠 그만해도 되지 않아?’ 아닙니다. 어머니는 이제는 그만 타라는 소리 한마디도 안 하시고, 아주 어렵게 조심해서 타라고 하셨죠. 초지일관 어머니는 우리 큰아들은 함부로 까불면서 탈 아들이 아니라는 큰아들에 대한 믿음이 있었던 거죠.
 
오늘 복음을 보면 평화, 기억 등이라는 말이 나왔어요. 제일 중요한 단어, 기억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얘기해 봅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기억이 안 날 때 있죠. 그럴 때 기억을 도와주는 것이 뭐가 있을까요? 메모, 알람, 사진, 달력, 지인, 선한 사람들. 그런 기억은 선한 삶을 살게 도와주는 좋은 기억이죠.
그러면 반대로 기억을 하고 싶은데 기억을 가로막는 게 있을 것에요. 건망증, 치매, 노쇠. 병치레, 전신마취를 많이 한 사람들. 또 분노에 차 있을 때 모든 것을 잊어버려요. 좋은 기억들은 다 사라져요. 이런 것들이 내 기억을 가로막는 중요한 것들이에요.
 
우리가 살면서 많은 기억이 있죠? 그러면 살면서 잊어서는 안 되는 최상위의 기억은 뭘까요? 아내의 생일보다, 아버지의 기일보다도 신자에게 제일 중요한 기억은 무엇일까? 그렇죠, 예수님의 말씀. 그리고 예수님을 체험했던 그 순간들. 예를 들어 운전하며 어떤 신부님의 강론을 듣고 눈물이 앞을 가려 차를 세울 수밖에 없었던 순간. 그 뜨거운 마음, 회개하는 마음, 하느님과의 만남 있었던 순간. 하느님을 체험했던 그 순간을 절대 잊어버리면 안 돼요.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도 내가 가장 좋아했던 성구를 자식한테 유언하고 죽을 정도가 돼야 해요. 내 머릿속내 뼛속에 있는 예수님의 한마디그리고 예수님을 체험했던 순간들!
 
그러면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나게 도와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오늘 복음에 ‘성령께서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라고 나옵니다. 이미 답은 나왔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나게 도와주시는 정말 고마운 분, 성령이죠. 그게 바로 오늘 복음의 핵심이에요. 예수님이 3년 동안 했던 얘기, 가르침을 예수님이 떠나신 후 인간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성령이 오신 것에요.
두 번째는 성령이 충만한 사제의 강론입니다. 성령이 함께하는 사제의 강론은 자꾸 잊어버렸던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나게 해줘요. 반복해서 들으면서도 전번에 들었을 때와 또 다른 감동을 얻습니다.
잊어버린 약속을 알려주는 것도 고마운데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나게 해 주시는 성령은 얼마나 고마운 분이신지 이루 말할 수가 없죠.
 
그러면 성령과 성령이 충만한 사제가 우리에게 어떤 것을 기억나게 해 주실까요?
크게 4가지에요.
첫 번째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종교적도덕적윤리적인 것이 있어요이 세 가지를 성령께서 계속해서 깨우치게 해줘요. 내가 종교적으로 올바르게 살아가고 있느냐, 내가 도덕적으로 타락한 인간이냐, 혹은 제대로 된 인간이냐, 내가 윤리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손가락질받은 적은 없는가, 지금 내가 하는 행동으로 윤리적으로 맞는가? 그때그때 마다 성령께서 어떻게 살아야 종교적으로 진리 안에 살 수 있고, 어떻게 살아야 도덕적, 윤리적으로 어긋나지 않게 사는지를 기억나게 하시죠. 예수님께서 하셨던 얘기지만, 우리가 까먹기 때문에 성령께서 그때그때 마다 때로는 회초리를 들고, 때로는 꿀밤을 주실 때도 있고, 때론 부드러운 스쳐 가는 바람같이 얘기해 주실 때도 있죠. 이게 바로 예수님의 협조자인 성령께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하신 내용을 기억나게 해 주는 첫 번째 내용이에요.
 
그리고 성령께서는 각자 각자의 마음 안에서 죽을힘을 다해서 우리가 세속에 빠지지 않게끔 하느님의 사람임을 계속해서 알려주시고 윤리적 가르침, 도덕적인 가르침을 주시는데 귀로만 들어서는 안 되겠죠. 그 가르침이 본인의 행동과 일치하도록 애쓰고 열매를 맺어야 해요.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고 영을 맑게 하면 책에서가 아니라 본인 스스로 성령께 얼마나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지를 느끼게 돼요. 신학자들이 쓴 영성 서적이 얼마나 많아요? 줄을 긋고 단지 읽는다고 하느님을 체험하지 못하죠. 그러나 기도할 때 손을 벌리면서 ‘주님 오소서, 성령이여 오소서. 둔하고 무딘 마음의 문을 열어 주소서.’ 하다못해 제 유튜브(youtube) 강론을 듣기 전에 성령께 청하며, ‘주님, 당신 사제의 말씀을 들으려고 합니다. 분심 없이 듣게 해 주시고 제 영을 맑게 해 주십시오’ 하고 한마디 하면서 듣는 것과 다를 것에요.
 
예전에 제가 설악산 계곡 바위에 앉아서 물이 흐르는 것을 1시간 멍때리면서 조용히 쳐다본 적이 있었어요. 그때 신기하게도 물에 대한 여러 가지 것들이 떠오르기 시작했어요. 물은 정말 많은 종류가 있네. 긍정적인 물도 있고 부정적인 물도 있고, 긍정적인 물에는 유수, 용수, 담수, 호수, 약수, 생수도 있고. 부정적인 물에는 하수, 침수, 누수, 한수, 건수, 운수, 홍수, 해일, 조수도 있구나. 물을 바라보면서 손을 벌리고 가부좌를 틀고 ‘성령이여 한 말씀만 하소서. 깨닫게 하소서. 물 앞에 있는 이 한 시간에 내 인생에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인데 한 말씀만 하소서. 신자들에게 전할 말을 알려주소서.’ 하니 그 수많은 물의 종류가 영화의 한 장면처럼 지나갔어요. 이건 책에서 배운 것이 아니에요. 내 강론 중에 물만 가지고 몇 시간을 강론한 적이 있어요.
 
마찬가지로 학교라고는 가본 적이 없는 성령 충만한 할머니가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보다 더 지혜로울 수 있고 분별력이 있을 수 있잖아요? 박사학위는 책상에 앉아서 자료를 모아서 5년이고 10년이고 들고 파면 받을 수 있어요. 하지만 분별력과 지혜는 책상에 앉아 있다고 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죠. 자기 이름도 못 쓰는 배추 파는 할머니가 문학박사를 전교해서 성당으로 데리고 온다는 거죠. 할머니의 말이 감동을 주니까 오는 것에요. 이는 성령이 하는 말이죠. 성령이 내 입을 통해서 종교적인 진리를 내뱉게 하고 종교적 진리를 외치게 만들고, 또 도덕이, 윤리가, 신앙이 뭔지 예수님께서 하신 얘기를 성령께서 다시 내 입을 통해서 하는 것에요. 사제의 입에서만 이런 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입에서도 나옵니다. 이방인에게도 직장 동료에게도 전해야 해요. 세상 끝날까지 이방인에게 전하라고 하셨잖아요성령의 입을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주시고자 하는 것은 진리에요종교적이고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진리를 끊임없이 세상에 외쳐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성령을 통하여또 사제의 성령 충만한 강론을 통해서 알려주시고자 하는 것은 세상과 부딪칠 때 어떻게 대처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세요. 신앙에 문제가 생겼을 때 성령은 예수님의 말씀으로 분명히 우리를 이끌어 주시고 평정심을 갖게 해 주세요. 그리고 세상의 악이 나를 지배하려고 할 때 어떤 영적 무기를 가지고 그 마귀와 싸울 수 있을 방법을 가르쳐 주세요. 때로는 내 안에 교만한 마음, 음란한 마음, 불순한 마음으로 가득 차 있을 때, 그 그릇된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그것은 예수님이 이천 년 전에 하셨던 얘기에요. 성경에도 나오지만, 성령이 내 안에 들어와서 그때그때 순간마다 세상의 어두움과 싸울 때 우리가 어떤 방법으로 물리칠지를 정확하게 찍어 주신다는 말이죠. 성령과 사제의 말씀으로 우리가 유혹당하는 순간에도 성령께서는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십니다.
 
세 번째로 성령을 통하여사제를 통하여 예수님이 알려주시고 기억하게 해 주시는 것은 예수님의 선물을 기억하게 해 주세요.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은 샬롬평화에요. 부활하신 예수님이 다락방에 오셔서 하신 말씀은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Peace be with you!)’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성령은 우리가 지금 예수님의 어떤 선물 안에 사는 가를 자꾸 상기시켜 주세요. ‘네가 감사할 것이 얼마나 많은데 불평불만이 많아?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은총으로 덮여 있는 인간이 맨날 우거지상을 하고 입만 열면 불평불만하고. 싫어. 죽겠네.’ 상처 주는 말만이 우리 입에서 나와서는 안 되냐는 것이죠. 우리는 온몸이 평화로 덮여 있는 사람입니다.
 
평화에는 물론 종류가 있어요. 세상이 주는 평화는 도피하는 평화에요. 일단 어려움을 피해서 살고 보자는 일시적인 평화에요. 그러나 예수님이 주셨던 평화는 도망치는 평화가 아니라 문제를 극복하는 평화에요. 당당하게 맞서서 싸우는 평화에요. 슬픔이나 박해나 위기가 오더라도 당당하게 맞서는 거죠. 외적인 환경에 좌우되지 않는 평화가 우리가 받은 예수님의 평화에요. 주머니에 돈이 두둑할 때 생기는 평화와 다르다는 것에요. 맞죠? 물질적으로 충만할 때, 많은 것을 가졌을 때 생기는 평화가 아니에요. 재벌들에게 평화롭냐고 물으면 ‘하루하루가 전쟁이죠.’라고 할 겁니다. 한 돈 많은 재벌 회장은 병원에서 몇 년 동안 식물인간으로 살다가 갔잖아요. 그게 평화로운 죽음이에요? 아니에요. 누가 병문안도 못 해요. 외적인 환경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 평화를 우리는 받고 살아요. 말씀을 통해서 성체가 내 안에 들어올 때마다! 성체가 들어오면서 ‘마리아야, 너에게 평화를 빈다.’ 하시면서 내 안에 들어오시죠. 이것을 성령께서 계속 알려주시는 것에요.
너는 온몸이 평화의 덩어리이다은총의 덩어리이다그런데 평화가 하나도 없는 사람처럼 사니왜 그렇게 유리처럼 사니건드리기만 해도 깨지고 깨진 조각에 사람들이 손만 대도 베이게 하니너는 그런 존재가 아니잖아너는 누구라도 만지고 싶은 조약돌 같은 존재가 돼야 하잖아주머니에 넣고 싶은 조약돌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해칼날 같은 존재가 되면 안 되지 않니?’
 
마지막으로 성령께서 주님과 나중에 만날 곳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우리도 언젠가는 세상을 떠나겠죠. 50년 후에 이 자리에 살아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에요. 우리는 언젠가 영원한 곳으로 가요. 그곳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야 해요. 예수님께서도 성부께로 돌아가셨잖아요. 그래서 우리 주변에 사랑하는 사람이 떠났을 때도 ‘아, 이분은 문을 열고 예수님을 만나러 갔구나. 새로운 탄생이구나.’ 하면서 희망으로 기뻐해야 해요. 그리고 나도 언젠가는 죽음이라는 문을 열고 정말 영원한 세상, 그토록 보고 싶었던 예수님, 성모님이 계시는 곳, 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장소로 간다는 것을 기억해야 해요. 예수님은 당신이 성부께로 돌아가신다고 하시면서 우리도 반드시 그쪽으로 와야 한다고 계속해서 얘기해 주셨어요. 그래서 정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면 인간적인 정 때문에 당연히 눈물이 나지만 울음으로만 그치면 안 된다는 것에요. 많은 경우에 우리는 자기 위주로 울 때가 많아요. 신세타령하면서 ‘아휴,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 돌아가신 사람이 지금 예수님과 같이 있다는 생각은 안 하고, 나도 언젠가는 그 곁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안 하고, 세상적인 슬픔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는 거죠. 성령은 나중에 예수님과 만날 그곳을 생각하면서 희망을 갖으라고망덕을 삶을 살라고 계속해서 알려주시는 거죠.
 
오늘 예수님은 요한 사도의 입을 통해서 성령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분이신가를 알려주셨습니다. 성령은 예수님이 떠나가더라도 예수님의 말을 기억하게 해 주시고 늘 그분을 가까이하도록 해 준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과거에 성령에 대한 체험이 없으면 사제도 직업인이고, 신자들도 평신도가 아니라 빙신도가 된다고 했습니다. 껍데기만 있는 것에요. 성령은 예수님을 대신해 우리에게 오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그만큼 중요한 것에요.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면 우리의 고비 고비마다 ‘그 소리가 성령의 소리였구나. 맞아. 성령께서 내가 삐딱하게 갈 때마다 얼마나 잡아주셨던가! ’를 깨닫게 됩니다.
성령께 늘 도움을 청하고 성령께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우리에게 전할 때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마음으로 살아가도록 합시다.
 
아멘.
 
2022년 부활 제6주일(5/29) 김웅열(느티나무)신부님 강론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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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발 (2022/06/20 13:2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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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멘,김웅열(토마스 아퀴나스)신부님, 강론말씀감사합니다, 신부님, 영육간에건강하시고 하느님의은총이 충만하시기를기도드립니다, 아   멘,~~~
  
  펠릭스1254 (2022/06/21 10:2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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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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