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성령이 함께하는 신앙인

글쓴이 :  하늘호수♡님이 2021-05-31 20:08:25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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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20, 19 – 23

 

+ 찬미 예수님

주님의 이름으로 평화를 빕니다.

 

제가 항상 강론 시작하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평화를 빈다고 하죠.

이 평화는 성령이 여러분과 함께할 때 가능한 평화입니다.

이 말이 오늘 미사 끝난 후 인간적인 재미 가운데 평화를 느끼라는 뜻은 아니죠.

성령이 주시는 평화를 느끼기를 바란다는 뜻입니다.

 

오늘 특별히 성령강림 대축일을 맞았습니다.

우리는 성령 체험을 해야만 성령이 주시는 은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아까 2 독서 끝나고 정말 아름다운 성령 송가를 읽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성령께서 하시는 일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 송가의 내용이 자신과는 전혀 관계없는, 그냥 1년에 한 번 해치우는 일이라고 생각되면

신앙생활을 40년을 했든, 60년을 했든 간에 아직 성령 체험을 하지 못하신 분들입니다.

사제와 수도자들도 성령 체험을 하지 못하면 말 그대로 직장인이 됩니다.

신부라는 직업, 수녀라고 하는 직업이 되어버립니다. 그

리고 온통 형식으로 가득 찹니다. 다시 말해, 자유롭지 못합니다.

성령 안에 사는 사람은 자유를 느낍니다.

그러면서도 담대할 때는 담대하며 전통을 지킬 때는 전통을 지키며 변화하는 사람들이 성령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이죠.

직접 성령 체험을 못 하셨다 하더라도 사제나 수녀가 성령이 충만한지 아닌지는 신자들이 제일 잘 압니다.

 

오늘 주님께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다락방에 나타나셔서 하신 말씀이 참 반갑다가 아니라,

Peace with you 평화가 너희들과 함께 하는 말입니다.

죽었다 살아나셨으면 얼마나 하실 말이 많으셨겠습니까.

하지만 다른 말 없이 같은 말만 세 번 반복하시죠. 평화가 너희들과 함께.

그 다락방에 있는 그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평화였습니다.

 

인간의 세상으로부터 얻는 평화는 늘 부서집니다.

경치 좋은 곳 시냇물을 보면서 평화롭다고 생각하다가도 집에 들어갔더니 갈등이 생깁니다.

전화가 왔는데 누가 시비를 걸면 평화가 사라집니다. 뉴스를 봤더니 끔찍한 이야기가 나오면 평화가 사라집니다.

오늘 성령강림 대축일을 지내면서 성령 송가에 나오는 바로 그 은혜를 여러분들이 받으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조금 전에 이야기했듯이 사제와 수도자들도 성령의 체험이 없으면, 비록 주교나 추기경이라고 할지라도

한평생 성령이 어떤 분이신지를 뜨겁게 체험하지 못하고 산다면 불행한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성령 체험해야 해요?’ 하고 물으신다면 달라고 요청해야 합니다.

이미 세례 때 여러분들에게 성령은 와 계십니다.

그러나 설탕을 물에 그냥 두면 섞이지 않고 가라앉습니다. 저어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령 쇄신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평신도들도 성령 체험을 하지 못하면 말 그대로 등신도가 됩니다.

반드시 성령이 함께하셔야만 그리스도의 사제직예언직왕직을 수행합니다.

그리스도의 사제직 목적이 무엇이라고 했죠?

여러분들도 세례받는 그 순간 예수님께서 사제처럼 사셨듯이 여러분도 사제처럼 살아야 할 의무가 있죠.

사제직의 목적은 봉사라고 했습니다.

성령이 함께하는 봉사는 아무리 육신이 힘들어도 기쁨이 오지만, 마지 못해 억지로 하는 봉사는 단 5분을 해도 피곤을 느낄 것입니다.

성령이 함께해야 지치질 않습니다.

그리고 늘 봉사하고도 왼손이 하는 일 오른손이 모르게 겸손해집니다.

그러나 성령이 없는 봉사는 늘 자기를 내세우고 싶고, 또 안 알아주면 서운합니다.

또 여러분들은 그리스도의 예언직에 부름을 받았고, 예언직의 목적은 말씀 선포입니다.

이 세상의 단 한 사람에게라도 예수님을 알려야 합니다.

성령이 충만한 교우들은 예수님을 안 알리고는 못 배깁니다.

그러나 성령 체험을 못 한 사람은 ‘어휴, 주일 나가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내 처지에 누구를 전교하느냐’며 자신이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 왕직의 목적은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왕은 자유로운 존재입니다. 노예는 구속된 존재죠.

무엇으로부터의 자유냐 하면, 세상 모든 것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그러려면 성령이 함께해야 하고 성령 체험을 해야 합니다.

이렇듯 사제든 평신도든, 모든 그리스도 백성들에게 성령이 함께하시지 않으면 그냥 말로 껍데기만 천주교 신자,

무늬만 천주교 신자입니다. 뜨거움을 못 느끼겠죠. 그래서 오늘 여러분들 간절히 청하셔야 합니다.

 

성령강림 대축일을 우리 교회의 생일입니다.

다락방에 무서워 덜덜 떨던 사람들에게 성령이 내리자마자 그들은 다락방을 박차고 나갔고,

비로소 교회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교회의 생일이자 새로 태어난 날이기에 성령강림 대축일은 가장 축하해야 할 날입니다.

예수님을 3년 쫓아다녔던 12명의 무리는 교회의 무리가 아니라 출세를 위해 쫓아다녔던 것이었고,

수많은 군중은 신기한 것을 보기 위해, 치료받기 위해서만 쫓아다닌 것이었지 교회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성령이 오신 바로 이 성령강림 대축일이야말로 교회가 탄생한 날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1년에 한 번씩 대축일 미사를 봉헌하면서

지금 내 신앙생활 안에 성령이 머무르고 계시는지뜨거움이 함께 하고 있는지 뒤돌아보면서

성령께서 다시 내 안을 지배하여 나에게 평화와 기쁨을 주시기를 간절히 청하는 날이 오늘입니다.

아멘.

 

개나 고양이 등, 다른 동물은 절대 할 수 없는데 우리 인간만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일 것 같습니까? 신을 접하는 능력, 다른 말로 신접 능력입니다.

신접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누어집니다.

첫 번째는 여러분들이 성령을 돈 주고 사는 것이 아니라 세례받을 때 성령을 받습니다.

세례받는 그 순간 내 모든 죄가 사라짐과 동시에 성령을 받습니다. 이게 바로 거룩한 신접입니다.

또 하나의 신접은 소위 무당들의 신내림, 마귀의 힘을 받는 것입니다.

악령을 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靈)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성령이 있고 악령이 있습니다.

 

우리는 세례 받는 순간에 성령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껏 이야기했듯이 한번 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늘 그 성령이 나를 풍요롭게 하지 않습니다.

내 쪽에서의 책임도 큽니다.

그분이 활동하게끔 문을 열어드리지 않으면 악령이 들어올 수 있습니다.

악령은 교만을 통해서, 내 미지근한 마음을 통해서 들어옵니다. 악령이 우리를 지배할 수 있는 문은 너무나도 많습니다.

내 상처, 어두운 마음, 때로는 집안에서 내려오는 내력도 있습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입구를 통해서 악령은 끊임없이 나를 지배하려고 합니다.

세례 때 우리는 성령을 신접합니다.

무당들은 무당이 될 때 어두운 영을 신접합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마귀 들린 사람, 악령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을 보면 알아냅니다.

반대로 악령에 들린 사람도 성령과 함께하는 사람을 보면 금세 알아냅니다.

제가 언젠가 이야기를 해 드렸을 것입니다. 저는 그런 경험을 참 많이 했다고 그랬죠.

차 안에서 빈자리 앉고 보니까 옆자리에 무당이 앉아 있었던 거죠. 앉기 전부터 앉기 싫었어요.

딱 앉는 순간에 어두운 기운이 나오지요.

그 무당도 느낌이 왔는지 잠시 보니까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있다가

곧 뒷자리로 가면서 재수 옴 붙었다고 하더군요.

내가 재수 옴 붙은 거지 자기는 사제가 옆에 앉았으니 축복받은 거지 생각했어요.

이렇게 악령에 잡힌 사람들은 성령이 함께하는 우리 믿는 자들을 즉시 압니다.

그래서 저는 교우들 피정시키고 난 뒤에 마지막 강복 주기 전에

‘오늘 여러분들은 온종일 피정을 통해 성령이 충만해졌습니다,

피정 오기 전 얼굴과 지금 몇 시간 피정 좀 듣고 난 뒤의 얼굴을 전혀 다른 얼굴입니다. 기쁘시죠?’ 하면

신자분들은 얼굴이 달덩이같이 환해져서 ‘예’하고 외칩니다.

그러면 제가 말을 이어 붙입니다.

‘자, 지금부터 제 말 잘 들으세요. 오늘 여기서 피정한다는 것을 이 동네 마귀들도 벌써 정보를 입수해서

비상 대책 회의를 하면서 어떻게 오늘 피정하고 나오는 사람들을 거꾸러뜨릴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집에 가는 중에 누가 시비를 걸어도 무조건 잘못했다고 하고,

집에서 배우자가 지금 몇 시냐고 불만을 이야기해도 웃으며 미안하다고 하며 넘어가십시오.

그렇게 악을 선으로 이기십시오. 만약 거기서 맞받아치면서 화를 내면 그날 받은 은혜는 그냥 다 사라지는 것입니다.’

피정을 통하여 성령이 살아난 사람을 마귀도 안다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들성령 체험이 많았던 사람들은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쭉 한번 설명해 드릴 테니 여러분들은 몇 가지나 해당이 되는지 확인하시면서 시원찮긴 하더라도 성령이 아직 내 안에 계시는지,

또는 아직 나는 부족하니 이제부터라도 성령이 역사하는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야겠다고 하는 반성해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드리는 이야기는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를 종합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 성령을 받은 사람들의 특징은 두려움이 없습니다. 영적으로 담대해집니다.

벌벌 떨던 인간들이 아무런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무엇으로부터 두려움이 없어지느냐면 첫 번째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행동으로 나타나는데 진리 쪽에 서게 됩니다.

그전에는 두려움 때문에 양다리 걸치고 살던 사람이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아닌 건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또 사라지는 두려움은 상실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물질을 잃어버릴까, 권력을 잃어버릴까, 내 가족을 잃을까 두려웠는데  잃어버리고 놓치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세 번째는 고통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를 얻습니다.

물론 고통 자체는 악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고통을 당하면 고독해지고 외로워집니다. 그 고독 속에서 예수님을 더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제가 늘 이 말을 하죠? 고통의 숫자만큼 행복의 숫자도 같을 것이다.

그 당시에는 몰라요. 그 고통이 바로 행복인지를. 그런데 지나고 보면

‘아, 그때 그 고통을 당하고 난 다음에 내가 이만큼 바뀌었네, 내가 이만큼 하느님께 다가갔네’하고 느끼게 돼요.

그래서 성령을 받은 사람은 그 안에서 하느님을 만날 것을 알기 때문에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함께하지 않는 상태에서 고통을 당할 때는 하느님을 원망하고 마귀의 밥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을 저주하고 삶을 저주합니다.

네 번째로 무엇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되느냐 하면 죽음으로부터의 두려움입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부터 자유로워집니다.

 

이렇게 두려움 없이 자유롭게 목숨을 내놓았던 분들을 선배님들로 모시고 있죠?

여기 제단 밑에 있는 오반지 바오로 복자님도 이 근처 육거리에서 돌아가셨습니다.

하느님을 믿기 전에 이분은 술 중독, 마약 중독, 음란 중독자였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을 알고 난 이후 다 버리고

신앙생활을 하다가 천주교 신자라는 것이 발각되어 청주까지 끌려와 모진 고문을 당합니다.

기록에 보면 얼마나 소리를 지르는지 몰랐대요,

천만번 백만 번 죽여도 천주님 배반하지 않을 것이라고 소리를 질렀대요.

나중에는 너무 시끄러워서 포졸들 몇이 오반지 바오로를 올라타 목을 졸라 죽였대요.

죽음이 두려웠으면 그렇게 됐겠습니까?

오반지 바오로뿐이겠습니까?

수많은 순교 성인들, 또 순교는 못 했지만, 최양업 신부님 같은 백색 순교자들, 이분들 모두 죽음이 두렵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 많은 교우가 망나니가 목을 칠 대 망나니를 쳐다보면서 이렇게 목을 빼면 치시기 더 편하냐 물어서 망나니들이 기겁했대요.

목이 몸에서 떨어져 굴러가는데도 웃고 있었대요.

천주학쟁이들은 도대체 무슨 힘으로 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까?

이 힘이 뭐예요? 성령이에요. 

교리 박사라 하더라도, 신학 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이라 하더라도 성령이 함께하지 않으면 절대 그렇게 못 합니다.

 

요약하면, 성령을 받은 사람들의 첫 번째 특징은 두려움이 없다는 것입니다.

네 가지로부터의 두려움세상에 대한 두려움상실에 대한 두려움고통에 대한 두려움,

마지막으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들의 두 번째 특징은 하느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에 앞서서 하느님을 첫째 자리에 놓습니다.

순도 100%의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어떤 일이 있어도 우상숭배를 하지 않습니다.

우상숭배가 어떤 것입니까? 성경에 나오는 대로 금송아지를 두거나 점쟁이한테 가는 것도 우상숭배가 되겠지요.

그런데 이런 기본적인 우상숭배보다 더 강렬하고, 우상숭배인 줄도 모르는 어둠에 싸인 우상숭배가 있습니다.

하느님 밀어내고 그 자리에 버티고 있는 것 모두 다 우상숭배입니다.

여러분들이 하루, 24시간 동안 여러분들의 아픈 몸뚱어리가 1순위라면 여러분들은 몸뚱어리를 우상 숭배하시는 것입니다.

눈만 뜨면 자식 생각만 하고 하느님 생각은 단 5분도 집중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우상숭배 하는 것입니다.

그 자식에 대한 행복은 누가 주십니까, 하느님이 주세요.

그런데 주시는 분은 저 밑으로 내리고, 자식을 하느님 자리에 올려놓는 것은 안 됩니다.

거꾸로 밑에서 위로 뿌리는 비는 없습니다. 은총의 비가 내리려면 하늘에서 내려야지요.

저녁 기도를 할 때 여러분들이 정말 진지하게 성찰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내가 하루를 살았는데 내 머릿속에 제일 첫째로 있었던 것이 무엇인가.

내 취미생활, 아니면 먹는 거, 맛있는 거 찾아다닌 것, 돈 걱정. 현대판 우상은 금송아지로 안 나타납니다.

절대 우상이 아닌 것처럼 하면서 하느님을 밀어냅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하느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있으므로 절대로 우상에 대한 유혹이 오더라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늘 하느님을 첫째 자리에내 삶의내 시간의내 모든 인생의 첫째 자리에 둡니다.

성령이 함께하는 자들은 이것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지요.

하느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생기면 하느님 나라를 알리는 데 온 힘을 다하게 됩니다.

여러분 모두 최양업 신부님 이야기 많이 아시죠?

일 년에 8천 리씩을 걸어 다니셨습니다.

한 달에 3일밖에 못 주무시면서 사제님은 11년 6개월 동안 하느님 나라를 알리는 데 애쓰시다가

영양실조로 길에서 앉은 채로 돌아가십니다.

하느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생기면 이 좋은 예수님, 이 좋은 하느님을 알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게 성령을 받은 사람의 두 번째 특징입니다.

 

성령과 함께하는 사람의 세 번째 특징은 말에 대한 분별력이 생깁니다.

반드시 해야 할 말이 무엇이고, 침묵을 지켜야 할 때가 언제인지에 대한 분별력이 생깁니다.

우리는 혀로써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도 있고, 혀로써 썩은 냄새를 풍길 수도 있습니다.

혀로 짓는 죄가 얼마나 큽니까.

침묵해야 할 때 침묵할 수 있는, 마치 브레이크처럼 입에서는 나가려고 할 딱 멈출 수 있는 그 힘. 그게 바로 성령입니다.

그리고 목에 칼이 들어와도, 불의 앞에서 정의를 말해야 할 때 목숨 내걸고

하느님의 이름으로 말할 수 있는 그 용기, 그 힘도 성령이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함께하지 않을 때는 반드시 말해야 할 때 움츠러들고 말을 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말을 하지 않아야 할 때 혼자 잘났다고 떠들어서 많은 사람을 힘들게 합니다.

우리의 혓바닥에도 성령이 함께하실 때는 그냥 밥만 넘기고 의사소통을 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거룩한 혀가 됩니다.

 

마지막 네 번째로 성령이 함께하는 분들의 특징은 늘 자신의 꼴을 찾으려고 애를 씁니다.

여러분들 ‘신부님 꼴값하십니다,’ 한번 해보실래요?

지금 안 하신 분들은 내가 지금 제대로 사제답게 못 살고 있다, 이 뜻이에요.

우리나라 말에 꼴값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전적 의미는 자신의 꼴의 모습, 이 뜻이에요. 원래는 좋은 말이에요.

‘자매님 꼴값하시네요,’ 이 말은 자매님 참 제대로 살고 있다 이 뜻이에요.

그런데 지금은 꼴값이라는 말이 주제 파악 못 하는 사람한테 혀를 차며 쓰이죠.

학교 선생의 꼴의 값이 있죠. 학교 선생이 뒷돈을 받으면 나쁜 의미로 꼴값한다고 하죠.

군인들의 꼴의 값도 있죠. 군인들은 나라를 지키는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군인들이 욕심이 나서 쿠데타를 일으키고 정권을 잡으면 꼴값한다고 하죠.

사제들의 꼴값이 있죠. 수녀들의 꼴값이 있죠. 주교들의 꼴값이 있죠. 다 자기 꼴값을 하고 살아야 해요.

성령은 사제를 사제답게 하는 힘이에요수녀를 수녀답게 하는 힘이고신자를 신자답게 하는 힘이고,

봉사자를 봉사자답게 하는 힘이에요.

잃어버린 자기의 꼴을 찾게 하는 거죠.

제가 듣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이라고요? 신부님꼴값하십니다.’

여러분도 꼴값하고 사세요. 엉뚱한 짓 하지 마시고.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만들어놓은 그 꼴, 좋은 의미로 꼴값하고 살아야지 손가락질당하는 꼴값을 하면 안 됩니다.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에게서 뿜어나오는 힘이요기운이요사랑입니다.

하느님을 하느님답게, 성자를 성자답게, 성령을 성령답게 하는 힘입니다.

우리도 우리에게서 성령을 빼버리면 허깨비만 남습니다. 허수아비 신자, 무늬만 신자입니다.

 

다시 정리하면 성령이 함께하는 사람, 성령을 체험한 사람들의 특징이 있다고 했습니다.

첫 번째, 두려움이 없다.

4가지 두려움, 세상 모든 것, 고통, 상실, 그리고 죽음으로부터의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영적으로 대담해집니다.

두 번째, 하느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앓는다.

어떤 일이 있어도 우상숭배에 빠지지 않으며 동시에 하느님 나라를 알리려고 목숨을 내놓는다.

세 번째는 혀를 다스립니다.

마지막, 네 번째는 자기 꼴을 찾기 위해 애를 씁니다.

 

제가 말씀드렸던 것을 유튜브나 녹음으로 다시 들어보시면서 과연 나는 어디가 부족한지 반성해보시길 바랍니다.

만약 한 번도 성령 체험을 한 적이 없다면 성령 체험을 목표로 기도하셔야죠.

성령께 도와달라고 매달리셔야죠.

아까 읽은 성령 송가를 하루에 적어도 두 번씩 읽으며 성령이 저에게 오기를 간절히 청한다고 매달리시기 바랍니다.

아멘.

 

 

 

 

2021년 성령 강림 대축일 (05/23) 서운동성당 김웅열(느티나무)신부님 강론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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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발 (2021/06/01 08:4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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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멘, 김웅열(토마스 아퀴나스)신부님, 강론말씀감사합니다, 신부님, 영육간에건강하시고 하느님의은총이 충만하시기를기도드립니다, 아   멘~~~
  
  한미카엘라모바일에서 올림 (2021/06/01 10: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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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감사합니다.
  
  펠릭스1254 (2021/06/01 14: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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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멘~
  
  pistos모바일에서 올림 (2021/06/02 08:4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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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감사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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