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사제는 직업이 아닙니다.

글쓴이 :  하늘호수♡님이 2021-04-30 21:31:44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8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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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10, 11 - 18

 

+찬미 예수님

예수님의 평화를 빕니다.

 

오늘 성소 주일입니다. 말 그대로 성소는 ‘거룩한 부르심’입니다.

그런데 요즘 성소의 위기라 하죠? 신학교의 수도원의 지원자가 이제는 거의 없어요.

올해 우리 청주교구에 신학교 입학한 사람이 딱 한 명이에요. 교구 생긴 이래 처음 있는 일이죠. 적어도 다섯은 되었어요.

더욱이 그 한 명도 10년 후에 사제로 살지 안 살지 모르죠.

또 각 교구의 인사 이동할 때마다, 너무 많은 분이 사제직을 떠나요.

우리 청주교구같이 조그만 교구도 지난 1월 인사이동에, 면직 1명, 휴양이 2명이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성소의 위기입니다.

거룩한 부르심을 받은 사람답게 못 살고 나가는 이유는 다 있습니다만, 내가 볼 때,

모든 이유의 출발점은 사제직을 애초에 직업으로 알고 들어온 것이에요.

사제직은 직업이 아닙니다.

사제가 좋은 직장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너무 힘든 일이 많고 스트레스를 받아요.

그러니 기쁨이 없어요. 젊은 신부 얼굴도 늙은 얼굴이지요.

물불 안 가리로 열심히 뛰어다녀야 할 나이인데, 매너리즘에 빠지고, 자꾸 힘들다는 생각만 하니 마귀가 들어옵니다.

음란 마귀, 술 마귀, 돈 마귀가 들어와서 사제가 절대 가까이해서는 안 될 것들로 사제를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걸려 넘어지는 것이요. 그

렇게 나가고, 또 나갈 용기가 없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사제복 입고 수녀복을 입고 있을 뿐, 어떻게 착한 목자가 될 수 있겠는가!

 

요즘이 예전보다 성소 위기라 느끼는 것은, 찾아오시는 수도자와 사제 부모님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자꾸 나오려 해요.’ 하며 사진 보여주면서 강복 청하고, 미사 청하는 분들이 많아요.

 

오늘은 착한 사제로 잘살고 있는 신부님을 위해 기도하는 날이 아니라,

지금 성소의 위기를 겪고 있는 사제들과 수도자들그리고 사제직을 직업처럼 알고 살아가는 사제들이

오늘 복음에 나오는 대로 양들을 위해 목숨까지 내던질 수 있는 착한 목자착한 수도자가 될 수 있도록

한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해야 하는 날입니다.

 

오늘 복음은 첫마디로 나는 착한 목자다.’라고 나오죠. 착하다.’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니 세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 번째 착실하다,’ 두 번째 어질다.’ 세 번째 선하다.’ 어떤 사람이 착하다고 할 때는 위 세 가지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저 사람 참 착실해. 일 맡으면 얼마나 확실하게 하는지 몰라.’

‘저 사람은 참 어질어. 다른 사람을 다 포용해.’

세 번째로 선하다는 것은 길이 아니면 가지 않고, 절대 불의 쪽으로는 가지 않는 정의롭다는 뜻이죠.

 

강론 준비를 위해 사전을 찾아보면서, 착하다가 이렇게 세 가지 뜻이 있는데, 과연 이 김웅열 신부는 어떨까 생각해 보았어요.

첫 번째 착실하냐?

그런 것 같아요. 내 별명이 ‘김 착실’이에요. (웃음)

누가 알아주거나 말거나, 저는 한눈팔며 산 적은 없어요. 제 일 남에게 떠넘긴 적 없어요. 그냥 등신 소리 들어도 약질 못해요.

두 번째 어지냐?

나보다 어진 신부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아이고, 얼마나 공격을 당하려고 제가 이런 말을 하죠?

어쨌든, 최소한 악한 신부는 아닌 것 같아요. 마음 상한 것이 있어도 쉽게 훌훌 털어버리고 살려고 해요.

서운동 신자분들, 제가 여기 와서 화낸 것 본 적 있으세요? 화날 일이 없어서 화를 안 냈을까요? 그것은 아니지요.

화낼 힘으로 신자분들을 위해 기도했어요.

화내봤자 마귀에게 휘둘리기만 하잖아요.

더욱이 사제는 설교대, 제대 위에서 미사 드리면서 절대로 분노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마귀에게 휘둘림당하는 것입니다.

그럼, 세 번째 선한가? 이것은 저는 자신 있어요.

저는 이제껏 살면서 목에 칼이 들어와서 의로움 쪽 외에는 쳐다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결론은 김웅열 신부는 착한 목자예요.

 

이제 은퇴가 얼마 안 남으니, 제가 별소리를 다 하네요.

여러분이 저를 인정해 주셔야지, 제가 혼자 착각하면 안 되죠.

착한 목자이십니다.’라는 소리 들으며 은퇴하고 싶습니다.

 

양들에게 삯꾼이 아니라 목자는 꼭 필요합니다. 삯꾼은 돈 받고 일하는 사람이죠.

목자는 그 양이 태어날 때 탯줄을 잘라 준 이요, 다 클 때까지 돌보아 주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보통 목자가 아니라 착한 목자가 양들에게 있어야 합니다.

자기 이익이나 편리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늘 복음처럼 늑대가 양을 잡으러 오면 맨손으로라도 싸워 양을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안전한 곳으로 인도하고 풀이 많은 초지로 인도해야 합니다.

 

우리 서운동 목장에는 목자와 양으로 서로 어떻게 살았을까?

저는 거짓말 안 보태고 여러분들을 위해 죽을 수 있습니다여러분들을 제 생명만큼 사랑합니다.

여러분은 저를 위해 죽을 수 있습니까?

괜찮아요. 양들은 목자를 위해 죽지 못할 수 있지만, 목자는 양을 위해 죽을 수 있어요. 서운하지 않아요.

 

사탄이라는 놈은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고 목자와 양을 갈라놓으려 이간질합니다.

목자와 양이 정말 행복하게 사는 교회 공동체가 많지 않아요.

지금은 피정을 못 나가지만, 예전에 한국에서 피정을 제일 많이 다녔던 신부죠.

그래서 비록 제 소속을 청주교구지만, 각 교구의 본당 소식을 많이 알 수 있었죠.

피정하러 문 열고 들어가면, 바로 알아요.

신자들과 본당 신부가 행복해하는 본당은,

피정 지도 신부가 오기 30분 전부터 신부, 수녀, 평협 임원이 추운 겨울에도 밖에서 기다려 맞아줍니다.

성당 안에 가서 신자 얼굴을 보면 밝아요.

그리고 본당 신부님도 인사만 하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맨 앞자리에서 노트에 받아 적어요.

그런 본당 신부님의 열심한 모습을 보고, 열심히 신앙 생활하지 않을 신자가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어느 성당은 문 열고 들어가면 찬바람이 쌩하고 나와요.

본당 신부도 사제관에 있는데 나와서 인사도 없고, 신자들 얼굴도 다 굳어있죠.

 

내가 이곳에 부임한 이후 외부 신자들이 이곳을 많이 찾아왔습니다.

그 외부 신자들이 은총의 밤이라든지 미사에 다녀간 후 간간이 해주는 말 중에 가장 행복한 이야기가 뭔지 아십니까?

‘신부님, 서운동 신자들 참 친절하고 열심하신 분 같아요. 역사가 오래된 성당이라 달라요.

그리고 신부님 처음보다 얼굴이 점점 환해져요.’

그 이야기 들으면 정말 행복합니다.

강론 때 물어도 대답 한마디 못 해도, 콩나물시루에 물이 다 빠져나가는 것처럼 보여도

콩나물 자라듯 신자들이 자랐구나! 정말 행복합니다.

 

아무튼 많은 교회가 목자와 신자들이 반목하고 지냅니다.

본당 신부는 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또 신자들도 본당 신부 떠날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면, 이것은 교회가 아니죠.

목자와 양은 이런 관계가 돼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서로 반목하는 것은 어느 쪽 잘못일까?

아무리 사제 측면에서 봐주려 해도, 철없는 신부 수녀들이 있어요.

인성이 제대로 안 되어있는 수도자가 있어요. 그 인성이 신학교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지요.

신학교 오기 전 어떤 부모 밑에서 어떤 인성을 받고 성장했는가에 이미 결정됩니다.

수녀복, 사제복 입는다고 그 사람의 인격이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다행히 신학교에서 좋은 신부님을 만나서 자기 속마음과 상처를 드러내놓고 치유를 원한다면, 그것을 들어주지 않을 신부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것을 꾹꾹 숨깁니다. 사제만 돼봐라.

그렇게 상처를 많이 갖고 사제가 되니, 나중에는 괴물이 되는 겁니다. 목자가 아니라 삯꾼이 되는 겁니다.

 

거룩하고 착한 사제가 그 본당에 몇 년을 사는지, 아니면 삯꾼 같은 목자가 사느냐에 따라

그 본당은 영적으로 성장하는가, 아니면 지옥으로 떨어지게 되는지 달라집니다.

 

자식은 아비를 잘 만나야 합니다.

그러나 아비가 못 됐다 하더라도, 자식은 아비를 위해 기도하고 주님께 청해야 하는 날이 바로 오늘이라는 겁니다.

 

이 방송을 듣는 유튜브로 보는 많은 교우분, 여러분 본당 신부님에게 예수님의 전부를 보려 하지 마십시오.

 

예전에 어느 본당 피정 갔다 시간이 좀 남아, 한 신자 집에 쉬었다 가려고 찾아간 적이 있어요.

가보니, 아파트 문이 열려있어 들어갔더니 자매들 신발이 참 많아요.

거실이 벽에 가려져 있어, 자매들은 내가 들어온 줄 몰랐죠.

몇 번 기침해도 얼마나 신나게 이야기하는지 사람 온 것도 몰라요.

그래서 본의 아니게 20분을 서서 이야기를 듣게 되었어요.

반 모임을 하고 있었는데, 세상에! 본당 신부님 욕을 하는데 아주 완벽히 난도질합디다. 신부라고도 안 불러요. ‘그 인간, 언제가?’

아니, 본당 신부 도대체 어떻게 살았길래 이런 소리까지 듣고 손가락질을 당하는가! 마음이 아팠어요.

조용하길래, ‘안 계세요?’ 하니 그때야 주인이 보고 깜짝 놀라며 ‘신부님, 언제 오셨어요?’

‘한 30분 되었어.’ ‘지금 이야기 다 들으셨어요?’

반 모임을 하면서 본당 신부 욕하던 자매들이 막 나오려 하길래 가로막고 모두 들어가라 했어요.

내가 소파에 앉으니, 자기들 지은 죄는 아는지 다 무릎을 꿇고 앉습니다.

‘자매님, 내가 여기 본당 신부는 아닌데, 내가 들어보니 신부가 여러분에게 상처를 주었다면 같은 사제로서 일단 사과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물어봅시다. 본당 신부님이 좋은 표양을 못 보일 때 성체 앞에 나와

예수님께 우리 신부님 살려달라고 눈물로 매달려 본 분 있습니까? 묵주를 들고 성모님께 우리 신부님 일으켜달라고

눈물로 전구를 청한 사람이 있습니까? 본당 신부를 위해서 성체 앞에 기도하고, 성모님께 전구 청하는 분이라면

그 자리에 앉아 그렇게 험담하지 않습니다.’

 

사제 한 사람에게 예수님을 다 보려는 것 자체가 욕심입니다.

피정 다니면 신자들이‘신부님 성당 신자들은 얼마나 행복할까요?’ 합니다.

전 속으로 그래요. ‘너도 와서 살아봐.’

예수님이 본당 신부를 해도 반은 예수님에게 돌 던질 사람들이에요.

어떤 사제가 와도 씹는 인간들은 끝까지 씹어요.

 

여러분 본당 사제에게서 예수님의 한 조각만을 볼 수 있어도 그 신부는 성인 사제입니다.

어느 신부님은 부지런해서 레지오 단원보다 먼저 환자에게 가 있어요. 예수님의 발바닥을 보여주는 신부님이죠.

어느 신부님은 그냥 가까이만 가도 착한 게 뚝뚝 떨어져요. 강론 못 하는 것이 흠이 안 돼요. 예수님의 착함을 보여주는 사제죠.

어느 신부님은 예수님의 큰 스케일을 보여줘요.

어느 신부님은 예수님의 섬세한 마음을 보여줘요.

또, 어떤 신부님은 예수님의 입을 보여줍니다.

입만 열었다 하면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그분 말씀을 통해 치유되고 구마가 일어납니다. 믿음의 벽을 쌓습니다.

 

여러분이 이제껏 만났던 신부님들이 보여주었던 예수님의 한 조각이 무엇인지 한 번 상기해보십시오.

그 예수님의 조각조각을 절대 버리지 마세요.

나중에 여러분이 세상 떠날 때나를 이끌어 주고 예수님을 보여주었던 그 예수님의 조각들을 한 도화지에 붙여보세요.

그러면 그때 비로소 예수님 모습 하나가 만들어질 겁니다.

 

예수님이 나타나서 사목하셔도, 비안네 신부님이 오시어 사목하시어도 늘 반대편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거죠.

‘나는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신자들은 나를 험담을 할까?’ 하며, 젊었을 때는 상처를 받습니다.

하지만 이놈한테 찍히고 저놈에게 찍히고, 산전수전 공중전 화생방전까지 겪은 사제들은

‘그래, 실컷 씹다가 질리면 뱉어라.’ 하며 신경 안 씁니다.

중요한 것은 사탄은 신자들을 통하여 사제를 노린다는 것입니다.

신자들이 수십 명 냉담을 하면 교회가 가슴은 아파도 뒤집어지지는 않습니다. 하

지만 사제 1명이 환속하면 교구가 다 뒤집어집니다.

결국 신자들의 입과 손가락질을 가지고 마귀가 노리는 마지막 목표물은 사제입니다.

 

사제들은 힘들고 흔들릴 때 제일 먼저 부모님을 떠올립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엄마는 촛불 켜놓고 기도하겠지,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신자는 나를 위해 묵주 기도를 드리고 있겠지.’

그 생각으로 그때그때 고비를 넘어가는 것이지요.

 

사제들은 슈퍼맨이 아닙니다.

신부 되는 그 순간 인간의 오욕칠정을 다 극복하고 완벽한 인간으로 사제가 되는 것도 아니죠.

여러분처럼 너무너무 모자란 것도 많고 약점도 많아요.

그럼에도불구하고, 거룩한 부르심에 응하려고 기를 쓰고 살아가는 거죠.

 

가끔 교우들이 물어요. ‘신부님, 사제 생활하시면서 뭐가 제일 불편하세요?’

나는 세 가지가 불편해요.

첫째, 교우들과 술 먹은 것이 좀 과할 때가 있죠. 그럼 속이 울렁거려 토하고 싶은데 등쳐주는 인간이 없어요.

둘째, 등이 가려울 때 등 긁을 재간이 없어요. 요즘 가끔 신자들이 효자손을 사다 줍디다.

런데 쇳덩어리 효자손은 너무 아파요. 사람 손이 얼마나 시원합니까?

세 번째 등에 파스 붙일 때예요. 그런데 이제는 내가 요령이 생겼어요. 벽에 일단 양면테이프로 파스를 붙여 놓은 후 내가 가서 붙는 거예요.

그거 외에는 불편한 거 없어요.

 

‘신부님, 여자 생각나지 않으세요?’

왜 인간인데 생각이 안 나겠어요.

그런데 그것은 기도와 반비례해요.

기도 열심히 하면 그런 생각이 줄어들지만, 기도하지 않으면 더 커져요.

낮이 길어지면 밤이 짧아지고밤이 길어지면 낮이 짧아지듯이내 기도가 길어지면 어둠은 점점 물러가게 돼 있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사제는 개인 수도가 아니라 공동 우물입니다.

어느 한 사람만을 위해 만들어진 수도가 아니라, 동네 사람이나 지나가는 나그네 모든 사람이 퍼마실 수 있는 것이 사제입니다. 그

런데 신자들 가운데 사제를 자기의 개인 수도로 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어요.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끈을 잡고 연결하려 하죠. 잘못된 거죠.

 

피정 다니다 보면 사제들의 이야기를 안 듣고 싶어도 많이 듣게 됩니다.

‘어느 신부님은 어느 신자들하고만 어울린다, 어느 신자들하고만 술 먹는다, 어느 신자들하고만 여행 다닌다.’

사제가 분별력이 없을 때는 돌을 던지지 마시고기도로 그분을 지켜 주셔야 합니다.

그것이 오늘 성소 주일의 의미입니다.

 

사제는 멀리서 볼 때 아름답고 신비스럽습니다.

어느 사제가 편안해하는 집에 차 한 잔 마시러 들어갑니다. 믿고 들어갑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면 신부님이 어느 집에 와서 차 마시고 갔다는 소문이 납니다.

내 신부님이 아니라우리들의 신부님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가서 ‘라면 하나 끓여줘’ 해서 먹고 나와도 아무 소문이 안나야 합니다.

 

환난의 시대에 사제로 산다는 것이 점점 어렵습니다.

그리고 사제로 살면서 손가락질 안 당하고 산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 외아들 신학교 보내려 했는데, 그 어려운 길에 자식을 어떻게 보내, 저 벼려야겠어.’ 하시는 분들, 걱정하지 마세요.

성령이 지켜 주십니다. 많은 약점을 가지고 있어도 성령께서 분명히 지켜 주십니다

 

오늘 수도자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또 은퇴하신 사제들을 위해서도 기도합시다.

병중에 있는 사제를 위해 기도합시다.

무엇보다도 성소의 위기를 겪고 있는 신학생들, 또 그런 사제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지금 이 시대는 능력이 있는 신부똑똑한 신부보다 거룩한 사제거룩한 수도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대입니다.

거룩한 사제거룩한 수도자가 나올 수 있도록 오늘 이 미사 중에특별히 성체를 영하면서 예수님께 간절히 청합시다.

 

 

 

 

2021년 부활 제4주일 (04/25) 서운동성당 김웅열(느티나무)신부님 강론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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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셉 (2021/04/30 22:03:41)
 이 댓글이 좋아요 싫어요
우리 신부님 감사합니다.
  
  펠릭스1254 (2021/05/01 11: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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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멘~
  
  한미카엘라모바일에서 올림 (2021/05/02 10:39:29)
 이 댓글이 좋아요 싫어요
아멘! 감사합니다.
  
  lovega모바일에서 올림 (2021/05/04 07:14:57)
 이 댓글이 좋아요 싫어요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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