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바위 걱정하지 마세요

글쓴이 :  하늘호수♡님이 2021-04-08 21:52:31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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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 16, 1 - 7

 

+찬미 예수님

우리 주님이 부활하셨습니다. 부활의 기쁨을 나누며, 여러분들 축하드립니다.

오늘 우리는 2021년 부활 성야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작년 성삼일은 신부 수녀들만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참 절망적인 마음으로 내년에도 이러면 어쩌나 걱정하는 마음으로 미사를 봉헌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우리는 오늘 왜 기뻐해야 하는가?

혹시 예수님 부활시켜드렸다는 뿌듯한 마음이 있어서 기쁘신 것은 아니죠?

예수님 부활시켜드리려고 부활절이 있는 것은 아닐 겁니다.

우리는 매일 미사에 성체 성혈의 신비를 체험합니다.

그런데, 미사 때마다 성체 성혈의 신비를 통해 주님의 몸과 피가 정말 만들어집니까? 아니면 흉내만 내는 겁니까?

정말 만들어지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2000년 동안 전 세계의 성당에서 매일같이 흉내를 내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만들어지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매년 부활하셨을까요? 아니죠.

예수님의 부활은 2021년 전에 한 번 부활로 끝났고, 하늘에 오르셨습니다.

그렇지만 매 미사에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우리에게 오십니다.

그래서 성체 성혈의 신비와 부활의 신비는 조금 다릅니다.

성체 성혈의 신비는 미사 때마다 예수님의 몸과 피가 만들어지는 것이지만,

부활의 신비는 포커스가 예수님에게 있는 것보다 바로 우리 자신에게 있습니다.

우리 각자의 부활 때문에 기뻐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가 부활시킨다고 부활하실 것도 아니고, 하지 말란다고 하지 않으실 분도 아니죠.

그분은 역사적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부활 때문에 기뻐해야 합니다.

죄와 교만으로부터 부활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여전히 죄와 교만으로부터 부활하지 못한 사람의 입에서 ‘참으로 부활절이 기쁘다.’라고 말하는 것은 난센스입니다.

 

오늘 우리는 마르코 복음 16장 1절에서 7절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주간 첫날 매우 이른 아침, 무덤을 향해 가는 세 여인이 있었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

이 세 여인이 예수님의 무덤을 향해 간다고 하는 것이 우리 남자들은 조금 창피합니다.

항상 정말 결정적일 때 용기가 하늘에 오르는 양반들을 보면 여자가 더 많아요.

정말 위급한 순간에 남자들은 갈팡질팡 하는데, 여자들은 일해내거든요.

홀아비는 자식 키우기 어려운데, 과부는 자식이 몇 있어도 다 대학 보냅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지 얼마 안 되어 무덤 근처만 가도 끌려갈 판인데, 새 여인은 무덤을 향해 갑니다.

왜 갔다고 나와 있나요?

예수님의 시신에 발라 드릴 향료를 샀다고 나옵니다.

사실 샀다고 하더라도 예수님의 몸에 발라 드릴 가능성은 0%였습니다.

왜? 무덤 앞에 수십 명이 밀어도 꿈쩍도 하지 않는 바위가 막고 있는데, 여자 셋이 밀어낼 수 있겠습니까?

저는 이 대목을 들으면 입대한 아들 찾아가는 엄마의 마음이 생각나요.

훈련소에서는 면회도 안 되는데, 혹시 가면 만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찾아갑니다.

이런 마음으로 여인들은 향료를 사서 갑니다.

세 여인은 앞으로 얼마나 엄청난 일을 겪을지는 상상도 못 하고, 무덤을 막고 있는 큰 돌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만 염려하고 있었습니다.

‘누가 그 돌을 무덤 입구에서 굴려 내 줄까요?’ 하고 서로 말합니다.

예수님을 만나러 가면서도 온통 걱정은 돌만 가득합니다.

그런데 가서 보니,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 사이를 가로막아 놓은 엄청나게 큰 돌이 이미 치워져 있었던 겁니다.

 

향료를 사서 가던 세 여인의 관심은 부활보다 돌덩어리였습니다.

분명히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 죽고 난 후 사흘 만에 부활할 것이라 이야기했지만,

이 세 여인의 머릿속에서 깨끗이 지워진 지가 오래입니다.

예수님의 시신에 향료 발라 드릴 것만 생각하고, 그것을 가로막고 있는 돌덩어리에만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의 여정에 깊이 동참하려는 우리를 방해하고 가로막고 있는 큰 돌은 없습니까?

미사 오시면서도 부활한 예수님을 만나러 오기보다는 여러분이 가지고 현실적인 걱정,

내일 일어날 수도 있는 일들 걱정하면서 발걸음을 성당으로 향하신 분은 없습니까?

여러분은 분명 부활한 예수님을 보러 집을 떠났지만,

여러분 마음은 마치 큰 돌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세 여인의 마음 같지는 않았는지 묻는 겁니다.

 

예수님의 파스카 축제에 깊이 동참하려 하는 우리의 여정을 방해하고 있는 큰 돌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우리의 죄입니다.

교만입니다.

절망감입니다.

슬픔이고 분노이고 상처입니다.

죄의 바윗덩어리가 우리 가슴을 짓누르고 삽니다.

교만의 바위가 부활한 예수님을 못 보게 합니다.

절망감의 바위, 슬픔의 바위, 분노의 바위, 상처의 바위가 예수님을 못 보게 부활 신앙을 막습니다. 체험을 못 하게 합니다.

 

그래서 오늘 이 세 여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이 무거운 돌을 도대체 어떻게 치울 수 있을까, 누가 있어 도와주기나 할까?’

그런데 눈을 들어 바라보니 그 돌은 이미 굴려져 있었다고 나옵니다.

 

미사에 오면서도 걱정을 한 보따리 가지고 오셨던 분이라고,

예수님의 부활보다는 걱정 보따리 풀어놓고 해결해 달라는 마음으로 오신 분이라 하더라도,

부활의 시간 이 자리에 찾아온 우리 앞에 이미 예수님을 가로막고 있던 돌은 굴려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쁜 겁니다.

활짝 열린 무덤이 우리에게 이제 세상 걱정, 죄라고 하는 무거운 돌을 생각지 말고, 부활의 옷을 입으라고 권고합니다.

죄의식이라고 하는 무거운 돌을 천사가 치웠으니, 이제는 하느님을 위해 살라고 권고합니다.

로마서 6장 11절에 ‘여러분 자신도 죄에서는 죽었지만,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을 위하여 살고 있다고 생각하십시오.’라고 권면합니다.

 

파스카의 신비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전부입니다.

파스카는 ‘거르고 지나가다’라는 뜻이라 했습니다.

파스카는 역사적이고, 우의적이고, 윤리적이고 신비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역사적으로는 파스카는 죽음의 천사가 이집트를 지날 때 있었습니다.

우의적으로는 우리 각자가 세례받을 때, 믿음이 없는 상태에서 믿음이 있는 상태로 지나갈 때 파스카가 있었습니다.

윤리적으로는 죄지은 영혼이 참회와 고백을 통해서 악에서 선으로 지나갈 때 파스카가 있습니다.

신비적으로는 삶의 비참함과 좌절감에서 영원한 기쁨으로 갈 때 파스카가 있습니다.

 

 

이제부터 여러분 마음 안에 있는 무거운 바위를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옮기려 해도 못 옮깁니다.

인간이 절대 옮길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얼굴을 돌려 십자가를 바라보면 됩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믿음과 사랑, 열성과 경탄, 환희와 기쁨, 찬미와 환호로 예수님과 함께 파스카 합시다.

예수님과 함께 건너갑시다.

 

걱정이 많은 사람들은 하느님의 목소리를 잃어버립니다.

예수님이 그토록 나는 죽은 지 사흘 후에 부활할 거라 하신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었다면, 향료를 사가면서도 걱정 안 했을 겁니다.

돌은 걱정을 나타냅니다. 죄를 나타냅니다. 슬픔을 나타내고 상처를 나타냅니다.

여러분이 성야 미사에 오시면서도 많은 걱정에 그 돌 앞에 서 계셨다면,

오늘 미사 중에 천사가 여러분과 부활한 예수님 사이에 가로막고 있는 그 큰 돌을 확실하게 치워 드릴 테니

아무 걱정하지 마시고, 기쁨의 부활 성야 미사 봉헌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2021년 파스카 성야 (04/03) 서운동성당 김웅열(느티나무)신부님 강론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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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펠릭스1254 (2021/04/09 09:5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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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멘~
  
  백발 (2021/04/09 09:5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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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멘, 김웅열(토마스 아퀴나스)신부님, 강론말씀감사합니다, 신부님, 영육간에건강하시고 하느님의은총이 충만하시기를기도드립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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