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난 예수님 죽음과 무관할까?

글쓴이 :  하늘호수♡님이 2021-04-04 21:44:05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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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 14,1-15,47

 

+찬미 예수님

주님의 이름으로 평화를 빕니다.

 

33년 동안 세상에 나가 계셨던 성자께서 수난을 겪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시어 하늘에 오르시어,

오랜만에 천국에 세 어른이 다 모였다고 합니다. 세 어른의 이름은 아시죠? 성부, 성자, 성령.

33년 만에 성자가 다시 하늘에 오시어 대화를 나누시다가,

성부께서 왕년의 솜씨가 녹슬지 않았는지 실험해 보자고 제안하십니다.

그러면서 먼저 성령께 재주를 보여달라고 하자,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성령께서 비둘기 모양으로 바뀌더니,

또 눈 깜박할 사이에 불의 혀 모양으로 변신합니다.

그것을 보고 성부와 성자께서는 손뼉 치며 감탄하셨죠.

이번에는 성부께서 ‘성자께서도 기적을 보여 주시지요.’ 청합니다.

성자께서 ‘글쎄요. 워낙 기적 종류가 많은데 무엇을 할까요?’ 자신만만하게 대답합니다.

성부께서 ‘날도 더운데, 요 앞에 있는 호수의 물 위를 걷는 기적을 재현해 보십시오.’ 하고 청합니다.

성자는 ‘이것은 일도 아닌데, 이까짓 것쯤이야.’ 하면서 물 위에 한 발을 내디뎠습니다.

그런데 발이 닿자마자 바로 빠져버리는 거였어요.

두 번 세 번 시도해도 그렇게 쉽게 걸었던 물 위를 예수님은 걸을 수 없었습니다.

왜 이럴까 하고 살펴보니, 세상에! 발등에 못 구멍이 뻥 뚫려있었던 겁니다.

그러니 발만 물 위에 닿으면 물이 꼬르륵 들어와 물 위를 걸을 수 없었던 거죠.

 

천국에 가 계신 예수님께서는 발 등 위에 있는 구멍 때문에 물 위를 걸으실 수 없었지만,

세상에는 마음에 구멍이 뻥 뚫리고, 욕심에 구멍이 뻥 뚫리고,

영혼에 구멍이 뻥 뚫려서 자꾸만 세속의 바다에 가라앉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오늘 복음에는 욕심과 비겁에 구멍이 뚫어져 예수님을 돌아가시게 하는 여러 인간의 모습이 등장합니다.

수난 복음을 읽으면 구체적으로 예수님 주변의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어떻게 무죄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데 기여했는지 나타납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어느 한 사람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의 공모작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은 이천 년이 지난 지금, 이 순간에도 너를 통해서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을 통해서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나 때문에 예수님이 돌아가신 것이고, 우리 가정 때문에 예수님이 돌아가신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너 때문이야, 너 때문에 예수님 돌아가셨어.’

‘너만 성당 잘 나오면 우리 집은 성가정 될 텐데.’ 하면서

항상 예수님의 수난과 수고, 십자가 죽음의 원인을 너라고 가리킵니다.

본인은 거기서 자유롭습니다.

우리는 나 때문에 예수님이 돌아가실 이유가 없다 하지만, 그렇지 않죠.

 

첫 번째로 예수님의 죽음에 제일 큰 공로를 쌓은 인간은 놀랍게도

메시아가 이 세상에 오셨을 때 가장 먼저 알아봤어야 할 종교지도자들, 대사제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처형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던 인간들은 흉계를 꾸며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고

모의했던 대사제들과 백성의 원로였던 겁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자기의 편안한 자리를 노리는, 이제껏 누렸던 부와 명예를 송두리째 무너뜨릴 수 있는

참으로 위험한 사람으로 보였던 겁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성전정화 장면에서 보듯이

성전세와 장사꾼들에게 받은 수입원을 깡그리 없애버릴 수 있는 위험한 인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가시였기에, 서른 닢을 내주면서 넘기라 합니다.

그리고 그럴싸하게 신성모독이라는 죄를 걸어서,

예수님을 죽을 수밖에 없는 범죄자로 만드는데 앞장섰던 인간들이 바로 백성의 원로들과 대사제였습니다.

 

두 번째 예수님의 죽음의 공신은 자기 스승을 팔아넘긴 유다입니다.

가리옷 사람 유다는 그 당시 노예 한 명 값인 은전 삼십 닢에 스승을 팔아넘깁니다.

이처럼 돈에 대한 욕심은 인간 눈을 멀게 합니다. 황금 만능주의에 사로잡힙니다.

돈이 하느님보다 앞섭니다. 돈이 하느님보다 앞선 사람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서 밀고와 배신과 청부살인은 역사 어디에나 있고, 지금도 자행됩니다.

 

세 번째로 예수님 죽음에 대한 공신은 마태복음 26장 56절에 나오는 대로 제자들이었습니다.

3년 동안 열두 제자는 분명히 현세적인 출세를 꿈꾸면서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것이 분명합니다.

예수님이 왕이 되면 뭔가 크게 한 자리씩 할 수 있다고 믿었던 그들에게 스승의 무력한 체포,

아무 저항도 못 하고 죽어가는 모습은 큰 실망이요, 충격이었습니다.

그리고 더 무서웠던 것은 예수님과 한패라는 낙인이 찍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불이익을 피하려고 하나같이 도망칩니다.

예수님이 로마 병사에게 끌려갈 때 그 자리에는 12명이 있었지만,

돌아가실 때 십자가 밑에는 딱 한 명, 나이가 가장 어린 사도 요한뿐이었습니다.

신앙 때문에 어떤 불이익이 생긴다면 여러분들은 어쩌시겠습니까?

도망치실 겁니까? 아니면 끝까지 주님을 증거 하실 겁니까?

옛날 순교자들은 주로 하느님을 배반한 자들의 밀고로 죽었습니다.

 

그 옛날 우리 한국 역사의 유신독재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 당시 우리 서운동성당에서 보좌 생활을 마치고 원주교구 주교가 되신 지학순 주교님이

감옥에 갇히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집니다.

그리고 성당마다 형사들이 들어와 24시간 사제들을 감시했었습니다.

그리고 강론 때면 동향 보고하는 형사나 매수된 교우들이 혹시라도 반정부적인, 유신 체제에 반하는

이야기를 하는지 철저하게 조사해서 신부님들이 참 많이 고초를 당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시절 많은 공직에 있던 신자들은 천주교 신자가 아닌 것처럼 살았습니다.

돈을 써가면서 인사처에 가서 종교란에 ‘천주교’를 지워달라 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불이익이 보더라도 천주교 신자임을 밝히고 살았던 용감한 신자들도 많았습니다.

그들은 비록 세속적인 출세는 못 했어도 하느님의 축복을 많이 받고 살았습니다.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한다.’ 이것을 세 번이나 외친 사람이 있었습니다. 베드로.

세 번이나 배반한 베드로의 모습은 다른 사람의 모습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입니다.

여러분들이 입으로는 배반한 적이 한 번도 없다 해도,

살아가면서 마음속으로 ‘나는 예수님이 누군지 몰라요.’ 하신 적 있어요.

여러분들이 외인들과 식사할 때, 성호 긋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성호를 긋지 않았다면,

그것은 예수님을 모른다는 것과 똑같다는 겁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이 예수님 없는 사람처럼 신자 아닌 사람처럼 살아갑니까?

 

세례받는 그 순에 우리 이마에는 불 속에 가도 지워지지 않은 십자가 찍힙니다.

냉담자라 하더라도, 이마가 비록 녹슬었다 하더라도, 세례 때 받은 십자 표시는 분명히 있습니다.

 

네 번째로 예수님을 죽이는 데 동참했던 무리는 성난 군중들이 었습니다.

오늘은 비도 오고 코로나 때문에 밖에서 성지 가지를 축성하고 가지를 들고 들어오는 예식을 못 했습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 하면서 당나귀를 타고 들어오는 예수님을 예루살렘 사람들은 얼마나 환영했습니까?

하지만 그 환영이 순식간에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함성으로 바뀝니다.

군중에게 분별이 없으면 우중이 됩니다. 어리석은 집단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그리고 그 집단을 자기 원하는 대로 끌고 갈 수 있는 것은 선동적인 구호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어느 인간이 아마 큰소리로 떠들었을 겁니다.

계속 떠드니까 거기 있던 군중들 입에서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소리칩니다.

군중을 움직이고 선동하는데 한마디 구호가 아주 효과적입니다.

다시 말해 매스컴의 농단에 따라 덩달아 춤추는 여론 재판과 정치적인 군중 동원은 지금 이 시대도 흔한 일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너무나 자주 진실을 잘 모르면서도 선입견이나 남의 말만 듣고 각자의 뉴스를 믿습니다.

그래서 몹쓸 사람이라 단죄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한마디로 여론 재판으로 돌아가신 분입니다.

 

사목하다 보면 어처구니없는 유언비어나 낭설에 신자들이 중심을 잃고,

함부로 서로서로 의심하는 병에 걸리는 것을 보아왔습니다.

사람 하나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은 몇 사람 입이면 족합니다.

단 몇 사람 입만 맞추면, 그 성당에서 그 사람은 완전히 왕따 당하고 매장당합니다.

교우들은 정말 입조심 하여 나중에 이 일로 심판받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마지막 다섯 번째 예수님의 죽음에 깊이 관여한 사람은, 마음속으로는 예수님을 절대 죽이고 싶지 않았지만

자기의 정치적 출세 때문에 예수님을 내어줄 수밖에 없었던 빌라도입니다.

‘너희가 알아서 처리해. 머리 아파 죽겠다. 나는 이 사람의 피에 책임 없어.’ 하면서 예수님을 내줍니다.

그리고 강도 바라빠를 석방시킵니다.

예수님의 무죄를 분명히 알고 있던 빌라도 총독은 폭동이 일어나려는 기세를 보고

예수님의 피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면서, 예수님을 고깃덩어리 내주듯 보내줍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졸지에 로마제국을 반대하는 정치범으로 바뀝니다.

신성모독 죄로 끌려와서 정치범으로 죽습니다.

빌라도는 자신의 정치생명을 위하여 무죄함을 분명히 알고 있었으나,

한두 명 죽이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만일 예수를 살려주어 어리석은 군중들이 폭동을 일으키면 분명히 황제에게 나쁜 동향 보고가 전달되고,

그러면 본인의 정치 인생은 끝이라는 생각에 정의를 포기합니다. 그리고 불의를 선택합니다.

 

그러면 나나 여러분은 예수님의 죽음과 무관하다고 할 자신이 있는가?

예수님 주변에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자기들의 기득권 수호 때문에, 돈 욕심 때문에,

비겁함 때문에, 정치적인 출세 때문에 예수님을 죽음으로 내몰아왔는데,

예수님의 이 사건은 이천 년 전에 끝난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양심에 구멍이 나서 물이 술술 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신자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살지만, 이미 영혼에 구멍이 난 지 오래입니다.

세속인들의 마음과 전혀 다를 것이 없습니다.

늘 입으로 죄를 짓고 교만의 바벨탑을 쌓고 살아갑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2000년 전에 그들 때문에 돌아가셨지만, 지금도 나 때문에 돌아가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분명히 예수님의 죽음에 동참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죽음은 인간들의 죄악이 공모한 작품이었습니다.

어둡고 더러운 작품이었습니다.

이 성주간에 우리는 회개로 내가 지은 죄에 대하여 철저히 죽고 새로 사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너 때문에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바로 나 때문에 돌아가셨음을 잊지 맙시다.

그리고 죄를 지을 때마다 내가 다시금 예수님을 못 박고 있는 범죄의 주인공임을 상기합시다.

 

딱 일주일 남은 예수님의 부활, 지난 사순 5주간 아무런 의식 없이 살았다 하더라도,

아무런 희생 없이 살았다 하더라도, 이 일주일 동안만이라도 입을 다스리고 몸뚱아리를 다스리고 정신을 다스려서

뚫어진 구멍을 메꾸고, 온전한 마음으로 부활하는 예수님, 또 우리의 부활을 하느님께 간절히 청하도록 합시다.

 

아멘

 

♣2021년 주님 수난 성지 주일 (03/28) 서운동성당 김웅열(느티나무)신부님 강론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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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펠릭스1254 (2021/04/04 23:3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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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멘~
  
  한미카엘라모바일에서 올림 (2021/04/05 07: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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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감사합니다.
  
  백발 (2021/04/05 16:5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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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멘, 김웅열(토마스 아퀴나스)신부님, 감사합니다, 신부님, 영육간에건강하시고 하느님의은총이 충만하시기를기도드립니다, 아   멘~~~
  
  세실리아99 (2021/04/05 17:4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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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미예수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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