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송백 나무의 영성

글쓴이 :  하늘호수♡님이 2021-04-01 22:14:53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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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12, 20 – 33

 

+찬미 예수님

예수님의 이름으로 평화를 빕니다.

벌써 사순 제5주일이고, 다음 주는 성지주일이고, 4월 4일이 부활절이에요.

여러분들 부활 준비 잘하고 계세요?

 

제가 재의 수요일에 사순(四旬, 40)은 어떤 의미라 했습니까?

성경에 어디에 나오는가부터 설명했지요?

제일 먼저 나온 것이 ‘노아의 방주’, 그때의 40일은 정화와 심판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40일 동안 우리는 남을 심판하지 말고, 작은 티끌이라도 감추려 하지 말고 본인을 아주 모질게 심판해보자 했습니다.

본인의 준엄한 검사가 되자 했습니다.

다음은 모세가 십계명 받기 전에 시나이산에서 단식과 기도로 40일을 보냈다고 했죠.

그리고 이 의미는 은총을 받기 위한 준비 기간이라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부활절을 준비 한 사람이든 안 한 사람이든 모두에게 옵니다.

하지만 부활절을 위해 준비한 사람에게는 특별한 부활이 될 것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예수님 십자가 보기 부끄러울 겁니다.

마지막 40일은 예수님이 광야에서 악마와 싸웠다 했습니다. 즉, 사순절은 유혹이 많은 시기이다.

그래서 다른 어느 때보다 유혹이 많을 터이니 경계하고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했습니다.

사순절은 어느 때보다 많은 죄인이 회개하는 시기이기에 마귀들은 한 영혼이라도 회개하지 않게 하려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상도 못 할 교활한 방법으로 여러분의 영혼을 흔들어 놓고 평화를 깨어놓을 것이라 했습니다.

생각하지도 않는 사람을 미워하게 만들게 되고, 생각하지 않았던 분노가 나오게 만드는,

분명히 이런 공격이 있을 것이니 정신 바싹 차리고 깨어있으라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악마를 말씀으로 물리치셨으니, 우리도 40일간 침묵하며 성경을 읽고 필사하자 했습니다.

전부는 못 쓴다 해도 ‘한 복음만큼은 꼭 써야겠다.

내년 사순에는 다음 복음을 써야겠다.’라는 영성스러운 계획을 세우고 사셔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성숙한 신앙인이 되는 지름길입니다.

 

이렇게 사순절은 본인을 심판하며 정화하는 시기, 은총을 받기 위한 준비하는 시기,

어느 때보다 유혹이 많을 것이기에 마귀와 싸워나가는 구마의 시기라고 했습니다.

 

벌써 사순 제5주일입니다. 저도 강론 준비하면서 참 빨리 지나간다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마 2주 동안은 제가 십자가에 관한 이야기를 좀 집중적으로 많이 하게 될 것입니다.

사순절과 십자가를 떼어놓을 수 있을까. 십자가 없는 부활이 과연 가당찮은 이야기인가?

많은 이들이 부활은 원하는데 십자가를 원하지 않습니다.

축복받는 것을 원하지만, 축복받는 과정 안에 반드시 내가 짊어져야 하고 우리 가정이 짊어져야 하고,

우리 공동체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를 회피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부활을 돕기 위해 십자가에 관한 이야기를 좀 해드리고자 합니다.

 

지금부터 드릴 이야기는 거듭 들어도 지나치지 않은 그런 이야기입니다.

아주 옛날 요르단 계곡에 아주 잘생긴 세 그루의 송백이 있었습니다.

그 나무들은 자기들의 희망을 이야기하곤 하였습니다.

첫 번째 송백의 꿈은 예루살렘에 가서 예루살렘 성전에 제단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제단이 되면 하느님께 봉사는 물론이고, 많은 사람이 경배하러 와 제단이 된 자신의 모습에 존경을 표하리라 생각했죠.

두 번째 송백 나무의 꿈은 지중해의 항해하는 큰 범선이 되어 사람들을 섬기는 것이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나무는 ‘나는 어디 가지 않고 여기 혼자 남고 싶어. 내 키를 아주 크게 해서,

사람들이 내 꼭대기를 쳐다보면 저절로 하느님까지 바라보게 만들고 싶어.

그리고 무성한 잎을 내어 여름에는 피곤한 길손들에게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는 것이 내 꿈이야.’

세 번째 나무의 꿈은 쉼터였습니다.

 

세월이 흘러 어느 날 도끼가 첫 번째 나무 밑을 찍습니다.

그 나무는 드디어 베어져서 내 꿈이 이루어진다고 하며 기뻐했습니다.

첫 번째 나무의 꿈이 뭐였죠? 제단이 되는 거였죠?

그러나 성전의 제단이 되리라는 꿈은 깨지면서 베들레헴 어느 가난한 집 마구간의 구유가 되었죠.

말먹이를 담아 놓는 음식 통이 됐다는 겁니다.

그 나무는 심한 수치감을 느끼고 괴로워했습니다.

‘예루살렘의 제단이 되려 했던 내 꿈은 없어지고, 겨우 말 밥통이 되었단 말인가!’

 

두 번째 나무도 베어집니다.

두 번째 나무는 꿈은 큰 범선이 되어 사람들을 편안히 실어나르는 거라 했죠?

이 나무는 자기가 바라던 대로 배 만드는 공장으로 보내지긴 했습니다.

그러나 만들어져 가는 자기의 모습을 보면서 꿈은 허무하게 깨어집니다.

넓은 지중해의 꿈은 사라지고 겨우 갈릴래아 호수에 머물 수밖에 없는 조그만 고깃배로 만들어진 겁니다.

배는 배지만, 거대한 범선이 아니라 갈릴래아 호수를 둥둥 떠다니다 바람 한번 불면 이리 흔들 저리 흔들거리는

약해빠진 고깃배로 끝나고 만 겁니다.

이 나무도 자기 자신이 그렇게 무명한 존재가 된 것에 대해 수치심을 느낍니다.

 

세 번째 나무는 꿈이 뭐라 그랬죠? 그 자리에 있으면서 쉼터가 되는 것이었죠?

세 번째 나무는 그가 바라던 대로 오랫동안 그 언덕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역시 때가 되어 도끼가 치고 들어옵니다.

그리고 잘려서 예루살렘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베어지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었지요.

그리고 무엇으로 바뀌었나?

큰 죄인들을 처형하는 세 개의 십자가 형틀로 변해갑니다.

그리고 절망에 빠집니다.

그 현실을 슬퍼합니다. ‘아니, 흉악

무도한 죄인이 짊어지는 십자가로 내 몽뚱아리가 바뀌다니.’

 

아마 여러분들은 이야기의 마지막을 듣지 않고도 은혜로운 결론에 도달해 계실 겁니다.

 

첫 번째 나무는 보잘것없는 말구유가 되었음을 불평하였지만,

어느 거룩한 밤, 고요한 밤, 하늘에 별이 찬란하게 떠 있을 때,

마리아라는 동정녀가 아기를 낳기 위해, 말과 소가 사는 마구간에 찾아듭니다.

예수님을 낳고, 바로 그 구유에 눕힙니다.

그 아기는 메시아였습니다.

지금까지 어떤 성전도 어떤 제단도 이 같은 명예를 얻지 못했던 겁니다.

거룩한 구세주를 처음으로 받아들인 것은 제단이 아니라, 말 여물통을 통해서였던 거죠.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고깃배가 된 두 번째 나무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자신의 존재는 이제 아무 의미가 없다면서 우울증에 빠져 살았습니다.

갈릴래아 호수의 고깃배가 된 신세를 한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배의 주인이 베드로였습니다. 바로 베드로의 배였습니다.

어느 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이 그 작은 배에 오르셔서 물가에 앉아있는 많은 사람에게 설교하기 시작합니다.

갈릴래아의 조그만 고깃배는 세상의 어느 범선보다도 더 큰 영광을 차지하는 위대한 설교대로 바뀐 것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 십자가로 변한 나무에는 누가 매달리십니까?

하느님의 어린양 예수님이 속죄를 이루시고자 그 십자 나무 위에서 생명을 거두십니다.

그때부터 이 땅의 어느 교회에 가든지 신자 집에 가든지, 십자 형태를 띤 그 나무 모습은 늘 걸려 있습니다.

그 나무는 죄의 수렁에서 구원을 열망하는 수많은 인생들에게 영생과 믿음의 상징으로 바뀐 것입니다.

사람의 피를 말려 죽였던 저주스러웠던 사형 틀이 예수님이 매달리심으로써 구원의 상징으로 바뀐 것입니다.

 

이처럼 자신의 계획이 있던 세 그루의 송백 나무는 꿈이 산산이 부서지면서 실패한 것 같았으나,

결과는 참으로 거룩하고 영광이 넘치는 사명을 감당하게 됐던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짧은 생각으로 자기 인생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무가치하다고 생각하고, 세상에 자기만큼 불행한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고,

자기 인생은 실패했다고 체념하거나 좌절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비록 내 이름은 없는 자처럼 살지만 하늘나라에서는 유명한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요,

내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살았다면, 내가 언젠가는 죽지만 영생을 살 것이요.

내가 그리스도 안에만 산다면 지금은 슬퍼하는 자 같지만, 영원히 기뻐할 수 있는 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왕국은 이 세상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헛된 세상 것을 쫓지 말고, 오늘 이 순간부터 영광스러운 제대가 되겠다는 생각을 말고, 말 구유가 되겠다고 생각하십시오.

내 안에 온갖 음식 찌꺼기를 가져다 부어 주어도, 모욕을 당해도, 괴롭혀도,

주님을 모셨던 베들레헴의 구유처럼 영광스러운 존재로 살아갈 것을 다짐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밀알 하나가 썩으면 많은 열매를 맺지만, 썩지 않으면 그것으로 끝이라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밀알의 삶입니다. 구유가 되는 것이 밀알의 삶입니다.

 

오늘 이 순간부터 여러분은 갈릴레아 호수의 고깃배처럼 예수님의 발판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나를 딛고서는 도구로 써주시기를 간절히 청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순간부터 여러분은 십자가를 외면하지 마십시오.

십자 나무를 지도록 하십시오. 지는 것 보다 끌어안도록 하십시오.

 

오늘 주님의 말씀은 당신이 앞으로 당하셔야 할 삶, 또 당신을 따르는 자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려주십니다.

‘한 알의 밀알이 돼라.’

바로 오늘 송백나무들의 삶이었습니다.

구유가 되고, 예수님의 설교대의 발판이 되는 도구가 되고, 예수님의 몸을 의지할 수 있는 십자가가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오늘 묵상을 전합니다.

나는 과연 화려한 제대만 되려고만 하며 살지 않았을까?

어디를 가든 항상 나를 드러내야 하지 않았는가?

어디를 가든 항상 1등 해야 하지는 않았을까?

썩어 없어지는 밀알이 아니라 늘 자기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는 제단이 되려 할 때는 분명히 내 생각과는 반대가 될 것입니다.

 

오늘 십자가의 의미 첫 번째 강론으로써, 비록 이것은 전설이지만,

2000년간 내려오는 아름다운 전설로 우리에게 많은 메시지를 줍니다.

셋 중에 여러분들이 무엇을 선택하고 계시는지, 십자가의 의미를 묵상하도록 합시다.

아멘

 

♣2021년 사순 제5주일 (03/21) 서운동성당 김웅열(느티나무)신부님 강론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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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펠릭스1254 (2021/04/02 10:4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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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멘~
  
  백발 (2021/04/02 10:5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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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멘, 김웅열(토마스 아퀴나스)신부님, 강론말씀감사합니다, 신부님, 영육간에건강하시고 하느님의은총이 충만하시기를기도드립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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