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예수님은 조폭

글쓴이 :  하늘호수♡님이 2021-03-21 20:46:33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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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2, 13 - 25

 

+찬미 예수님!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오늘 복음에 파스카 축제일이라는 단어가 두 번이 나왔는데 이것이 뭔가요?

우리 알고 넘어갑시다.

 

우리 한국은 큰 명절이 몇 개가 있어요? 양력 음력으로 해서 정월 초하루 있고, 또 추석, 작은 보름들도 있지만 제일 큰 것은 2개, 구정과 한가위입니다. 그리고 그 명절의 의미 크게 3가지죠. 첫째는 회상, 기억, 돌아가신 어른들 기억하죠, 둘째는 뉘우치는 거지요. 잘못 산 것에 대해서.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축복을 비는 겁니다. 우리 한국 명절의 의미는 3가지, 회상하고 뉘우치고 축복을 비는 것입니다.

 

그럼 유대인들에게 명절이 몇 개나 되느냐? 이번 기회에 한 번 알아두세요.

파스카 축제(유월절, 과월절), 칠칠절, 초막절을 유대인들의 3대 절기라고 해요.

 

이 3대 절기 중에 첫 번째가 바로 파스카 축제에요. 파스카(πασχα)라는 말은 그리스어에요. 원래 히브리 말로는 페사흐(פסח) 축제라고 해요. 또 다른 말로는 과월절, 또는 유월절이라고도 합니다. 다 같은 말이에요. 유월절(逾越節) 할 때 유자는 넘어갈 유(逾)자에요. 123456이 아니라 넘어갈 유에요. 과월절(過越節)도 마찬가지로 넘어가는 절기에요

 

파스카라는 말은 출애굽기(탈출기) 12장에 나옵니다. 모세가 이집트 왕에게 우리 백성 내 보내달라 했지만 계속 안 보내주자, 하느님은 마지막 10번째 재앙을 내립니다. 이 땅에 있는 모든 맏배를 모조리 치겠다 하시며, 유대인들에게 ‘양을 잡아서 양의 피를 너희들이 들어오는 집의 문에 칠해라. 오늘 밤 죽음의 사자가 이집트를 돌면서 첫 번째로 난 인간이든 짐승이든 다 죽일 것이다. 그런데 양의 피가 묻혀 있는 집은 거르고 지나갈 것이다.’ 하십니다. 그래서 파스카라는 말이 영어로 하면 Passover. 거르고 지나가다는 뜻이에요.

 

이집트 온 맏배들이 죽어 나가니, 파라오는 열 번째 재앙 끝에 이제 나가라고 해요. 포기했어요. 그래서 파스카 축제라는 것은 이집트의 노예살이에서 풀려난 것을 기념하는 날이에요. 이스라엘 달력으로 니산 달 15일 저녁이 바로 파스카 축제를 하는 날이죠.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 하신 날이 유월절이라고 했어요. 지금 우리 달력으로 보면 한 1월 15일 정도 저녁만 가리키는 것이 파스카 축제 날입니다. 그리고 그 밤이 지나고 나면 무교절이 7일 동안 계속돼요. 이때는 누룩이 안 든 빵을 먹고 구운 양고기를 먹고 아주 쓴 나물을 먹어야 해요.

 

두 번째 절기인 칠칠절은 3월에 해당하는데, 모세가 시나이산에서 하느님의 영광을 보고 십계명을 받아 내려온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이때는 첫 수확을 기념하는 축제가 벌어지죠.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장막절 또는 초막절이라고 해요. 이건 9~10월경에 지켜집니다. 의미는 이스라엘 백성이 40년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가는 과정을 재현합니다. 이때가 되면 유대인들은 임시 장막을 짓고 그 안에서 살아요. 먹고 즐기는 축제에요.

 

지금 간단하게 살펴본 유대인의 3대 절기, 파스카 축제, 칠칠절, 초막절, 여러분이 성경을 읽다 보면 이 단어와 안 마주칠 수 없습니다. 과월절, 유월절, 파스카 축제는 기본 상식이에요. 성경을 제대로 읽으려면 상식을 갖고 읽어야 합니다.

파스카 축제는 딱 저녁나절, 저녁 무렵이고 그것이 지나면 무교절이 시작되고, 칠칠절은 3월에 하고, 초막절은 9~10월경에 하는데 이 3가지의 명절이 유대인들의 가장 큰 축일입니다.

 

오늘 예수님이 성전 안에서 하시는 모습을 보면 거의 조폭 수준이에요. 그렇죠? 회초리를 만들어서 양과 염소를 막 쫓아내고, 환전상들의 책상을 뒤엎으면서 큰소리로 나가라고 합니다. 거의 실성한 사람 같아요. 성경에 어디를 봐도 예수님이 이렇게 화내고 분노한 것은 여기 밖에 없는 것 같아요. 물론 베드로와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에게 예수님이 화내신 적은 많지만, 오늘 예수님의 분노에 찬 모습은 우리에게 큰 충격을 줍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늘 사랑과 용서만을 강조하셨던 분이 오늘 거의 조폭 수준이십니다.

 

지금 저는 예수님의 분노라고 했지만, 엄밀히 따지면 예수님의 분노는 우리의 분노와는 다릅니다. 예수님의 분노를 의노라고 합니다. 의로운 분노라고 합니다. 우리가 하는 것은 진노, 말 그대로 분노입니다. 예수님의 의노는 차원이 다른 분노이지요. 이타적인 분노입니다.

 

예수님은 어느 때 의노를 보이셨는가?

하느님과 인간을 괴롭히는 조직이나, 인간, 사상, 그런 것 앞에서 예수님은 절대로 한발도 뒤로 물러서지 않고 정의롭게 그것을 없애기 위하여 목숨을 바쳐가며 싸우셨습니다. 오늘 성전에서 보여주신 예수님의 분노는 우리들이 일상적으로 하는 쩨쩨한 분노, 자기중심적인 분노, 손해 안 보려고 하는 분노, 미음이 잔뜩 들어가 있는 분노, 그런 쓸데없는 비생산적인 분노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분노는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방해되는 것 앞에서 보이신 의노였습니다.

 

사실 우리는 의노를 보여야 할 때는 분노합니다. 참으면 덕이 될 텐데, 손해 안 보려고 하고 싸우려 듭니다. 그리고 정말 정의롭게 의노를 보여야 할 때는 비겁하게 움츠러듭니다. 비겁한 집단 이기주의로 보고 무력하게 굴복하고 맙니다. 우리는 도둑이 들었을 때, 누가 길에서 폭행을 당할 때 우리는 정의롭게 나설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주님의 의노를 이해하기 위하여, 오늘 복음의 배경을 잠깐 살펴보고자 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우리처럼 길에서 마당 지나서 문 하나 열고 들어오면 성당인, 이런 개념이 아닙니다. 성전 안에 접근하려면 적어도 4가지의 뜰을 지나야 했습니다. 제일 밖에 있는 뜰이 이방인들의 뜰입니다.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뜰이었습니다. 두 번째 뜰은 이스라엘의 여인들만 모여있을 수 있는 뜰이 따로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방인들의 여인은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세 번째 뜰은 이스라엘의 뜰이 있었죠. 이것은 이스라엘 남자들만 들어오는 뜰이요 이 뜰에서 성전 예배가 봉헌됩니다. 마지막, 네 번째 뜰은 제사장들의 뜰, 여기에는 성소가 있었죠. 오로지 제사장들만 그 뜰 안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오늘 이 사건이 벌어진 것은 이방인의 뜰 여인의 뜰, 이스라엘의 뜰, 제사장의 뜰 가운데서 첫 번째인 이방인들의 뜰입니다. 이 이방인의 뜰은 아주 소란스러운 장소였습니다. 왜? 장사꾼들이 많이 들어와 있었죠. 크게 나누어서 이방인의 뜰에는 두 종류의 장사꾼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돈을 바꿔주는 환전상들이 있었습니다. 성전 안에 들어오려면 성전세를 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성전세는 일반 화폐로는 낼 수가 없기에, 성전세를 환전상에게 순도가 높은 은화로 바꾸어 그 은화로 성전에 들어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일반 돈을 은화로 바꿔주는 수수료가 엄청났던 것입니다. 환전상들은 수수료를 찾아내면서 일반 순례자들의 피를 빨아먹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 장사꾼들은 누구냐? 비둘기라든지 양을 파는 장사꾼들이 있었습니다. 돈을 바꾸어줄 때 수수료를 떼먹는 것보다도 더 나쁜 사람들이 이 비둘기 장사꾼들이었는데. 열심히 파스카 축제를 위해서 비둘기와 양을 열심히 길러서 성전에 갖고 들어가려고 하면 어떻게 되느냐? 검시관들이 있습니다. 검시관들은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서 밖에서 기른 가축들을 퇴짜를 놓습니다. “이거 비둘기 색깔이 안 좋아, 이 염소의 뿔이 왜 이렇게 갈라져 있어?” 멀쩡한데도 말이죠. 그래서 일반 순례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성전 안에서 파는 비둘기, 염소를 사서 갖고 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비둘기 값이 밖에서 파는 것과 비스무리하면 그러려니 하겠습니다만, 무려 15배에서 20배 가까이 차이가 났습니다.

 

이러니 성전에 한 번 들어가려면 환전상에게 수수료 떼고, 비둘기 장사들한테 15배 20배 생돈을 뺏기죠. 그런데 돈을 바꿔주는 환전상이나 비둘기 장사들의 주인은 누구였느냐? 대사제였습니다. 대사제가 직영하는 장사꾼들이었죠. 매점매석이 판을 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환전상들과 비둘기 장사꾼들에게 채찍질하고 상을 들으며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꾼들의 소굴로 만들지 말라’ 의노를 보이신 것입니다.

 

성전에 들어가려면 이렇게 돈을 뜯기니, 거기에 왔던 수많은 순례자는 얼마나 불만이 많았겠습니까? 하지만 아무도 얘기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 거기에 대사제들이 고용한 깡패들이 있었습니다. 누가 불평불만 일으키려고 하면 뒤에서 허리춤을 잡아서 끌고 가서 신나게 때려 성전 밖으로 내쫓았습니다. 만일 대항하면 목숨까지 잃었습니다. 그래서 성전이 아니라 범죄자들의 집단 소굴이었고 장사꾼들의 소굴이었던 겁니다. 서슬이 시퍼런 이방인의 뜰에서 예수님은 아주 목숨 걸고 들어 엎은 것입니다. 그 광경을 내려다보고 있던 대사제들은 ‘저것 봐라, 저거 죽으려고 환장을 했구나’ 오늘 이 성전정화사건 때문에 예수님은 목숨을 스스로 재촉하신 것입니다. 죽음을 재촉하신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의노를 묵상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노여움은 크게 두 가지를 향하여 항상 보여주셨습니다.

첫 번째 사람을 착취하는 사람들입니다. 특별히 종교의 이름을 빙자해서 착취하는 사람들을 향한 분노, 의노를 보이십니다. 예수님은 순례자들을 자기 사리사욕에 이용한 것에 분노하십니다. 성전의 당국자들은 그들의 목적을 위해 착취하는 대상으로 순례자들을 삼았던 것입니다. 사람들을 착취한다는 것은 항상 하느님의 분노를 일으킵니다.

 

우리도 물질적으로 혹은 정신적인 착취, 시간적인 착취를 안 하고 사는가 반성해야 합니다. 바티칸 공의회 정신 중 하나가 ‘나에게 필요 없는 여분의 것이 남아돌아 갈 때 나는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의 것을 훔친 것이다.’라는 충격적인 말을 했습니다. 내가 볼펜이 두 개인데 하나만 필요하고 하나는 벌써 오래전부터 안 쓰고 있는데, 어떤 사람은 볼펜이 없어서 못 써, 그랬을 때 여분의 것을 가지고 있으면 너는 하나도 없는 사람의 것을 훔친 것이다. 그러니 나누라는 뜻입니다. 베풀라는 뜻입니다.

인간에 대한 착취는 노예를 향한 것만이 아닙니다. 여러 가지 방향에서 우리는 물질적인 착취, 정신적인 착취, 영적인 착취를 할 수가 있습니다.

 

두 번째로 오늘 예수님은 하느님의 성전을 모독한 것에 대하여 분노하십니다. 성스러운 것을 상업화시키고 더럽힙니다. 다른 말로 하느님의 집에서 하느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자들에게 예수님은 의노를 보이십니다. 성전에는 물론 장사꾼들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진정으로 하느님을 구하고 예배하고 기도하기를 원하는 목마른 사람들도 거기 있었지만 장사꾼들의 흥정과 매매와 경매로 인한 소란 속에서 올바른 찬미를 드릴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혹시 내 경솔한 말과 행동으로 인하여 하느님께 나아가고자 하는 자들에게 분심을 주고 신앙생활에 방해했던 적은 없었는지 생각해봅시다. 그렇다면 나 역시 의노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성당에 나가고 싶다가도 너 하는 꼴만 보면 나가고 싶은 생각이 싹 사라진다 .’이건 분명히 주님 진노의 대상이 됩니다. ‘너 이쁜 짓 보면 나도 성당에 나가야겠다.’ 해야 합니다. 나로 인하여 걸려 넘어져서 성당에 못 나가게 한다면 장사꾼들처럼 성전에 기도하러 들어왔다가 그들 때문에 다시 돌아간 모습과 뭐가 다르겠는가. 성당에 다니는 사람들이 남에게 피해만 주고 믿지 않는 사람보다 더 이기적이고 입이 솜털보다도 더 가벼워서 정나미가 떨어진다는 말을 들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사순절은 침묵의 시기입니다. 사순절은 다른 사람을 향하여 손가락질하는 시기가 아니라 본인 자신에게 준엄한 검사 노릇을 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본인 자신의 작은 죄라도 아주 모질게 고발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진정 부활할 수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의연하게 하느님 나라와 인간 구원을 위해 방해가 되는 모든 조직과 사상 앞에서 의노를 보이셨듯이, 우리도 그러해야 합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비록 의노를 보일 때 두렵고 무섭지만, 이것이 주님의 뜻이라고 한다면 주님을 믿고, 이 어지러운 세상에 우리는 분명히 분노를 보이는 인간이 아니라 의노를 보이는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2021년 사순 제3주일 (03/07) 서운동성당 김웅열(느티나무)신부님 강론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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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발 (2021/03/22 09: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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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멘, 김웅열(토마스 아퀴나스)신부님, 강론말씀감사합니다, 신부님, 영육간에건강하시고 하느님의은총이충만하시기를기도드립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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