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확신, 겸손, 존경

글쓴이 :  하늘호수♡님이 2021-02-26 20:41:07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521)
첨부파일1 :   fb1d0da57a7ed21b8bbbc411785b5b49b582e8a4.jpg (174 KB)
    이 게시글이 좋아요(1) 싫어요

클릭하시면 원본 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마르코 1, 40 - 45

+찬미 예수님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명절 잘 보내셨습니까?

질문 하나 할게요.

여러분, 만일 신앙생활을 정말 잘한다는 소문이 교황님 귀까지 들어가서, 교황님이 강복을 주시겠다고 비행기 티켓까지 보내주셨대요.

교황님께 갈 날은 하루하루 가까워지는데, 무슨 준비를 하시겠습니까?

앞에 계신 형제님은 불러주신 것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 가장 멋진 옷, 뭔가 질문하셨을 때 할 대답, 선물을 준비하신대요.

그럼, 교황님이 높은 분이세요, 예수님이 높은 분이세요?

오늘 가장 멋진 옷 입고 오셨나요?

미사는 예수님이 우리를 초대해주신 것인데, ‘내 발로 성당 문턱을 넘어왔구나, 주님 불러주시어 감사합니다.’라는

마음을 갖고 가장 깨끗한 옷 입고 정갈하게 하고 오셨나요?

미사 중에 말씀을 통해, 사제의 입을 통해 여러분에게 예수님은 말을 건네실 거예요.

그리고 성체를 통해 우리는 예수님과 하나가 됩니다.

 

오늘 복음에는 예수님과 나병 환자가 만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나병 환자가 어떤 마음의 자세로 예수님을 만나러 갔을까요?

그리고 예수님은 치유가 끝난 후 나병 환자에게 어떤 당부를 하셨나요?

이것이 오늘 복음의 핵심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러 나가는 사람이 반드시 가져야 할 마음의 준비 세 가지가 나옵니다.

그리고 은혜받고 난 후 예수님이 걱정하시는 것 두 가지가 나옵니다.

 

첫 번째는 확신입니다.

확실히 나병 환자는 목숨을 걸 정도로 확신을 갖고 나왔습니다.

돌에 맞아 죽을 각오하고 산에서 내려온 것입니다.

나병 환자들이 일반 사람들 있는 곳에 나타났을 때, 돌로 쳐 죽여도 살인죄에 해당하지 않았습니다.

나병 환자가 예수님 앞에 나왔다고 하는 것은 목숨을 포기하고 나온 거예요.

예수님 앞에 오기까지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결코 만만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렇지만 이 나병 환자는 예수님이 원하시기만 한다면 자기의 병을 깨끗이 낫게 하실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신앙은 확신입니다.

더 신기한 것은 ‘신앙’이라는 라틴어 단어와 ‘확신’이라는 라틴어 단어가 같아요.

설령 예수님을 만나러 가는 중에 바리사이파들과 동네 사람들이 나에게 돌을 던져도

예수님만은 나를 기꺼이 받아줄 거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확신이 없으면 우리는 예수님 앞에 못 나갑니다.

여러분들이 미사 올 때마다 주님께서는 나의 더러움 깨끗이 씻어 주시리라는 것,

내 영과 육의 병을 낫게 해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없다면, 그냥 빈껍데기만 왔다 가는 것입니다.

사제가 하는 강론이 귀에 절대 들어올 리 없습니다.

미사 끝나고 뭐할까, 온통 분심 잡념 속에 그냥 시간을 보내고 가는 겁니다.

말씀을 들을 때마다, 또 읽을 때마다, 필사할 때마다 확신을 갖고 해야 합니다.

고백성사를 볼 때 나의 진홍색처럼 붉은 죄가 눈처럼 하얘진다는 확신을 갖고 임해야 합니다.

그 확신은 놀라운 열매, 영과 육이 치유를 가져옵니다.

 

나병 환자는 예수님을 100프로 믿었습니다. 24K 순금의 마음으로 확신했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존재하시는 한, 신체적으로 불치의 병으로, 혹은 영혼에 용서받지 못할 것이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깊은 좌절감에 빠진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 누구도 예수님의 치유대상에서 빗겨나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마귀는 우리가 확신을 가질 수 없게 수단 방법을 안 가리고 막아요.

‘오늘 미사 가서 분심 없이 신부님 강론 잘 들어야지, 조금 일찍 가서 참회할 것 참회하고 깨끗하게 주님을 만나야지’

하는 마음으로 미사를 왔다 해도, 왜 그리 오만 잡생각이 드는지!

하다못해 복사 아이들 보고도 잡생각이 들어요. ‘왜 키가 저렇게 안 맞아?’

정말 마귀는 참 교묘하게 우리의 분심을 갖고, 확신을 못 하게 합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에 나오는 나병 환자는 예수님을 만나러 갈 때 확신을 갖고 나왔어요.

 

두 번째로 예수님을 만나고자 하는 사람, 만나서 축복받고자 하는 사람의 태도는 겸손한 마음입니다.

나병 환자의 모습을 보면 얼마나 겸손한 모습으로 주님께 부탁하는지 모릅니다.

그는 고쳐달라고 떼를 쓰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에게 협박 공갈을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에게 절대로 부담 주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오로지 주님 원하시는 대로 제가 따를 겁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시간에 원하시는 모습으로 저에 대하여 계획하고

계심을 저는 믿습니다. 물론 저는 약한 인간이기에 지금 이 자리에서 저에게 하실 그 치유 해주시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제 뜻대로 마시고 당신 뜻대로 하소서.’

오늘 복음의 나병 환자가 한 기도는 겟세마니 동산에서 성자가 성부께 한 기도를 생각하게 합니다.

피땀 흘리며 기도하시면서 처음에 예수님은 이 잔을 거두어 달라고 하셨지만, 즉시 뭐라 하십니까?

제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 당신 뜻대로 하소서.

 

예수님께 지름길로 나아가는 길은 딱 한 가지, 자기가 부족한 것을 깨달아야 해요.

그리고 자기가 얼마나 주님 앞에 교만한지 회개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열매가 바로 겸손입니다.

겸손한 마음은 예수님께 나가는 고속도로입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께 협박 공갈하는 기도나 떼쓰는 기도가 아닌 겸손의 기도일 때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세 번째로 예수님 만나러 나갈 때 준비해야 할 것은 존경입니다.

오늘 나병 환자는 존경하는 마음으로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그 존경의 표시로 무릎을 꿇었다고 나옵니다.

 

제가 각 성당에 피정 지도하며 ‘우리 교회 안에 어둠이 들어와 있다는 여러 징표 중 하나가

각 성당마다 장궤틀을 없앤 것이다.’라고 자주 이야기합니다.

지금은 심지어 장궤틀을 없애는 수도원이 많습니다.

명동성당부터 없앴는데, 그 이유는 줄어든 길이만큼 의자 몇 개 더 넣는다는 지극히 세속적인 것이었습니다.

전 세계 성당을 다 다녀보아도 하느님 앞에 무릎을 못 꿇게 장궤틀을 없앤 천주교는 대한민국뿐입니다.

전통적인 가톨릭 성당은 성수를 찍으며 반 무릎을 꿇고 제대 앞에 존경을 표합니다.

성체 성혈 축성할 때는 그 자리에 있는 왕도 무릎을 꿇었습니다.

피조물이 창조주 앞에 하는 첫 번째 경배 행위는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존경의 표시입니다.

그래서 사제들은 서품식에 무릎을 꿇는 정도가 아니라 바닥에 그냥 엎드리지요.

‘오늘 이 순간부터 저는 주님 앞에 시체와 똑같습니다. 저는 주님 앞에 살아있는 송장과 같습니다.’

사제들의 수단은 수의입니다.

이 검은 색 옷은 시체를 쌌던 수의입니다.

 

존경하는 마음으로 무릎을 꿇고 나왔다.

청원하기 전에, 주님께 부탁하기 전에, 그리고 주님을 보자마자 옷자락 잡고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무릎은 영의 무릎이 있고 육신의 무릎이 있습니다.

겉으로만 몸뚱아리만 무릎을 꿇는 것이 아니라, 교만한 마음까지도 반으로 접어 꿇어야 합니다.

 

오늘 나병 환자는 세 가지의 영적 덕을 갖고 예수님 앞에 나왔다 했습니다.

첫 번째 확신을 가지고, 두 번째 겸손을 가지고, 세 번째 존경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우리는 교황님을 만날 때도 적어도 이 세 가지를 가져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물며 예수님을 만날 때, 미사에 나올 때 이 세 가지를 갖고 참석하고 있는지 스스로 점검해야 합니다.

 

주님이 나를 내치지 않으실 것이고 사랑하실 거라는 확신을 가져야만 이 미사 중에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미사 중에 기도하면서 예수님에게 스트레스 드리면 안 됩니다.

마치 내가 맡겨놓은 것 달라듯, 협박하듯, 떼쓰듯 이가 아닙니다.

‘주님 제가 이렇게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조금만 거들어 주셔도 제가 힘이 날 것 같습니다.’

‘주님 제가 요즘 신앙이 많이 흔들린답니다. 온종일 분심 속에 기도할 수 없습니다. 주님, 좀 도와주십시오,’

그리고 세 번째는 존경, 우리의 마음이 주님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하고, 육신이 주님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이 세 가지를 예수님은 보신 겁니다.

확신과 겸손과 존경의 마음으로 나를 찾아왔구나.

이 세 가지를 확인하신 후 예수님은 말로만 ‘깨끗하게 되어라.’가 아니라,

측은한 마음이 드시어 손을 갖다 대시며 ‘깨끗하게 되어라.’ 하십니다.

섬세한 치유를 하십니다.

 

손을 대지 않고도 치유하실 수 있는 분인데 왜 굳이 상처에 손을 댔을까요?

나병 환자에게는 육신의 병보다 더 깊은 병, 더 깊은 상처가 있었습니다.

가족과 사람들에게 받은 배신감, 절망감, 분노.

이 썩어 문드러지는 몸뚱이에 손을 댄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직접 그 썩어 문드러진 나병 환자의 몸뚱아리에 손을 대십니다.

터치 테라피(Touch therapy)입니다.

 

예수님의 손과 나병 환자의 상처가 만나는 순간, 예수님의 따뜻한 손길이 나병 환자의 온몸에 퍼지는 순간,

이제껏 갖고 있던 배신감 절망감 분노 미움은 육신의 병과 같이 치유된 겁니다.

사실 오늘날의 의학 지식에 의하면 예수님은 감염될 수 있는 무모한 행동을 하신 거지요.

그러나 참된 의사에게는 전염병에 걸린 사람도 위험한 존재가 아니라,

내 의술을 필요로 하는 사람임을 깨닫는 자가 진정한 명의입니다.

코로나로 죽은 사람들 가운데는 많은 의료인과 간병인이 있습니다.

최선을 다하다 돌아가신 거죠.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치유하신 후 두 개의 명령을 내리십니다.

첫 번째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는 함구령을 내리십니다.

두 번째는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정해준 대로 예물을 바치라고 하십니다.

치유 받은 사람에게 예수님이 내리신 명령은 ‘침묵’과 ‘감사예물 봉헌’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왜 함구령을 내리셨을까요?

은총 받은 자에 첫 번째 태도는 침묵입니다.

마귀는 은총을 받은 자의 그 입을 통해 은총을 시궁창에 떨어뜨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미사 후에, 순례 후에, 일상생활 중 은총을 받은 일이 있을 때마다

그 첫 번째가 침묵하면서 내 영혼의 밭에 주님 은총의 씨앗이 뿌리내릴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침묵하면서 성경을 읽는다든지, 사제들의 강론을 경청해야지요.

나중에 영광을 드러내 간증해야 할 때가 분명 있을 것입니다.

그때까지 참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늘 치유해주시고 난 다음에 침묵하라 하십니다.

그런데 오늘 이 나병 환자는 침묵했나요?

안 지켰어요.

사방팔방 뛰어다니면서 ‘나, 병나았어. 깔보던 놈들 어딨어?’ 소리 질렀죠.

 

두 번째 봉헌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그것은 감사예물이 될 수도 있고, 육신의 봉사, 때로는 재능 봉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축복 주신 후 함구령과 봉헌령을 우리에게도 주시지만, 우리는 대부분 침묵하지 않습니다.

봉헌하지 않습니다.

천형(天刑)인 나병을 치유해주시고 부탁하신 단 두 마디, 침묵과 봉헌을 사람들은 지키지 않습니다.

 

지난 강론에 말씀드렸지요.

예수님께서는 그토록 많은 사람을 치유해주시고 수많은 기적을 보여 주셨는데,

그 수혜자 중 예수님께서 잡혀 돌아가실 때 단 한 인간도 예수님 대신에 십자가를 진다고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 했습니까?

말씀이 선행되지 않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일단 아파 죽겠다고 예수님께 찾아오니까 예수님은 병부터 고쳐 주신 것입니다.

고쳐 주시면서도 이 사람은 병 고침만 받았지, 근본적으로 하느님을 향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사람은 말씀을 들은 적이 없어 단순히 기복적인 마음으로만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이 후에 은혜를 배반할 것을 아셨어도 고쳐 주신 겁니다.

그래서 그분은 기적의 수혜자들이 예수님께 침을 뱉고 돌을 던질 때 서운해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미 알고 하신 일이셨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이 나병 환자도 역시 말씀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말씀을 들어 본 적이 없고 산속에서 소문만 들었습니다.

손만 대면 병을 낫게 해준다는 이제껏 본 적 없는 마술사가 나타났다는 소문만 들었던 거죠.

이 나병 환자는 말씀 준비가 없었던 것입니다.

사제들은 신자들이 성체를 영하기 전에, 예수님을 뵙기 전에, 정성을 다해서 말씀을 잘 전달해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서 준비시켜야 합니다.

 

자, 정리합니다.

예수님을 뵈러 가는 사람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세 가지라고 했습니다.

첫 번째,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오늘 말씀을 통해서 나를 치유하실 것이라 믿는 확신.

주님은 오늘 성체를 통하여 나를 치유하실 것이라 믿는 확신. 이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 겸손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세 번째, 존경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치유 받았을 때 주님께서 우리에게 두 가지를 당부하십니다.

첫 번째는 침묵하라는 것입니다.

너한테 일어난 영적 변화에 대하여 세상에 막 떠들고 싶어도 일단은 더 조심해야 한다.

마귀가 그것을 가지고 너를 다시 마귀의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 침묵해야 한다.

다음 두 번째는 사제에게 가서 몸을 보이고 모세가 정해준 대로 예물을 바치라는 것입니다.

감사예물을 바쳐라, 봉헌하라는 뜻입니다.

 

우리도 영적으로는 나병 환자입니다. 상처투성이의 환자들입니다.

오늘 우리는 확신을 갖고 겸손한 마음으로, 그리고 하느님을 찬미하는 존경의 마음을 갖고 이 미사를 봉헌합시다.

아멘.

 

♣2021년 연중 제6주일 (02/14) 서운동성당 김웅열(느티나무)신부님 강론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카페에서

  

카카오스토리에서 공유하기 페이스북에서 공유하기 네이버 밴드에서 공유하기 트위터에서 공유하기 구글+에서 공유하기 Blogger에서 공유하기

  스키 (2021/02/27 08:39:15)
 이 댓글이 좋아요 싫어요

김웅렬 느티나무 신부님 보시와요!

영육간에 건강 하시길 두손 모아 祈禱드립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저희 마을인 전남 담양군 대전면 태암 마들에 인천시 중구 전동에 위치한 aosding 修道會가 하루라도 빨리 진출하여서,아름다운 야훼 하느님 나라및 神國이 이룩될 수 있도록 aosding 聖人처럼 끊임없고 쉼없이 기도해 주시와요!

김웅렬 느티나무 신부님의 靈肉간의 建康을 위해 祈禱중에 기억 하겠스무이다.

이천이십일년 이월 이십칠일 土曜日 全羅道 潭陽땅에서 김준철 Raphael Dream.

  
  펠릭스1254 (2021/02/27 11:28:39)
 이 댓글이 좋아요 싫어요
† 아~멘~
  

   
  댓글 쓰기

 
로그인 하셔야 댓글쓰기가 가능합니다. 여기를 눌러 로그인하세요.
 

이전 글 글쓰기  목록보기 다음 글

본 게시물에 대한 . . . [   불량글 신고 및 관리자 조치 요청   |   저작권자의 조치요청   ]
마리아사랑넷 | 이용약관 | 개인정보보호정책 | 메일추출방지정책 | 사용안내 | FAQ | 질문과 답변 | 관리자 연락 | 이메일 연락
Copyright (c) 2000~2021 mariasarang.net , All rights reserved.
가톨릭 가족공간 - 마리아사랑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