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간나새끼, 꺼지라우!

글쓴이 :  하늘호수♡님이 2021-02-17 21:09:17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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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 1,21-28

+찬미 예수님

주님의 이름으로 평화를 빕니다

오늘 복음은 얼마 전에 한번 들어본 것 같지 않으세요?

연중 제1주간 화요일 복음과 같지요.

여러분들이 유튜브에 들어가서 들으면 알겠지만, 그때 주제는 권위 있는 가르침이 무엇이고 구마가 무엇인가에 대해 말했습니다.

오늘은 하느님을 증거 하는 삶이라는 주제로 묵상하려 합니다.

 

예수님이 회당에서 권위 있는 가르침을 주셨다고 나옵니다.

예수님이 들어가신 회당은 공생활 후 처음 들어가신 거예요.

예수님은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후, 오늘 마르코 복음에서는 정확히 광야에서 40일간 사탄과 싸우셨다고 나옵니다.

사탄이라는 뜻은 하느님과 등을 돌리고 있는 자라는 히브리어입니다.

사탄은 천국에서 루치펠, ‘하느님께 빛을 받은 자’라고 하는 천사 중에서도 대천사 이름을 갖고 있었어요.

그런데 하느님께 거역하여 천국에서 쫓겨나며 루치펠이라는 이름도 뺏기며 대신 받은 이름이 사탄입니다.

사탄의 졸개들을 우리는 마귀, 악령이라 부릅니다.

예수님과 광야에서 싸운 놈은 졸개 마귀가 아니라 사탄입니다.

마태오나 루카 복음에도 사탄을 우리 한국말로 번역한 악마가 나오지, 악령이나 마귀라는 말은 나오지 않습니다.

아마 사탄은 자신이 있었을 거예요.

‘네가 비록 하느님이지만 사람의 몸을 갖고 있기에, 네 몸뚱아리를 괴롭히면 분명히 너는 내 앞에 무릎을 꿇을 것이다.’

라고 생각했겠죠.

사탄은 성경을 가지고 예수님께 덤비고, 예수님도 성경으로 사탄을 물리치십니다.

이렇게 광야에서 사탄과 싸우고 난 다음,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마르코 복음 3장에는 12 사도 부르는 이야기가 나오고, 1장에는 어부 넷만 부르는 것이 나옵니다.

그러고 난 다음 오늘 회당에서 가르치시는 겁니다.

 

회당에서 가르치시는데, 다른 율법 학자들과 달리 가르침에 권위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회당에 있던 더러운 악령이 예수님을 보고 고백을 합니다.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압니다. 왜 우리를 괴롭히러 오셨습니까?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졸개 마귀들은 이미 왕초가 예수님에게 박살 났다는 소문을 들었던 겁니다.

그 얘기를 들었기 때문에 졸개 마귀들은 예수님을 보고 벌벌 떨었던 겁니다.

 

‘당신이 누구신지 합니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마귀가 두려워하는 것의 원칙을 찾아냅니다.

마귀 스스로 마귀라고 고백하게 만들고, 절대로 그의 앞에서는 변장할 수 없게 만들고,

살려달라고 애원하게 만드는 그것은 바로 ‘거룩함’입니다.

여러분에게도 거룩함만 있으면 마귀를 물리칠 수 있다는 겁니다.

사제에서 거룩함만 있다면 모두가 구마 사제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마귀는 거룩함을 제일 무서워합니다.

자물쇠를 수십 개 채워놓은 철옹성 같은 집에 숨어 살아도, 경비원 수십 명이 보초 서고 있다 해도 마귀는 들어 옵니다.

그러나 허허벌판에 살아도 자물쇠 채우지 않는 집이라도 내 영과 육이 거룩하게 살고 있고,

식구들이 그렇게 사는 거룩한 집에 마귀는 들어가지 못합니다.

 

거룩함은 마귀만 물리치는 것이 아니라, 돌같이 단단하고 얼음같이 차가운 마음도 부수고 녹입니다.

저는 ‘당신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거룩하신 분이십니다.’라는 복음을 대할 때마다 생각나는 일이 있습니다.

 

제가 70년대 신학교 다녔을 때, 개미회라는 모임이 있었습니다

신학생들 모임인데, 학술 모임이 아니라 쓰레기 줍는 모임이었습니다.

개미회는 처음에는 일본의 어느 수도원에서 시작되었는데, 한국 신학교까지 전파된 거죠.

당시 오웅진 신부님이 초대 회장이었고 저는 총무들 보았죠.

일주일에 2번, 개미회 회원들은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교수 방, 신학생 방과 복도의

쓰레기들을 등에 짊어지고 쓰레기장으로 모입니다.

그리고 분리수거를 해서 고물상에 팝니다.

기억으로는 종이를 발로 꾹꾹 눌러 한 가마를 채우면 500원인가를 받았던 것 같아요.

아무튼 그렇게 모은 돈으로 과일이나 빵을 사서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교도소를 방문했습니다.

그때 우리 개미회원들이 만난 죄수는 소위 사상범, 다른 말로 간첩들이었습니다.

마치 남북적십자 회담하듯이 긴 테이블 양쪽에 신학생과 그분들이 앉아서 30분이라는

제한된 시간에 이야기를 나누며 가져온 음식을 먹는 것이었습니다.

내 파트너가 된 분은 20년째 수감 생활을 하시던 할아버지였죠.

남파 간첩으로 잡혀 인생의 좋은 시절을 대부분 감옥에서 보내고,

종신형으로 희망 없는 삶을 살아가는 그에게, 이 세상은 분노의 대상이었고 사람들은 원망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분은 나를 만날 때마다 민망할 정도로 말을 건네지 않았습니다.

그저 침묵만 있었습니다.

독방에 오래 살다 보니 입은 오므라들어 뭐라 말을 해도 들리지 않을 정도였죠.

또 혼자 중얼거리는 말을 자세히 들어보면, 대부분 차마 듣기 끔찍할 정도의 저주와 인생을 비관하는 말이었습니다.

가끔 고개를 들어 쳐다보는 눈빛은 소름 끼쳤습니다.

소련에 유학까지 갔다 온 공산주의 사상과 무신론으로 철저하게 무장한 그분에게

아가 같은 신학생이 사실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분에게 붙여진 별명은 겉과 속이 모두 빨간 토마토였습니다.

아무튼 1년간 저는 몇 마디 못 들어왔습니다.

옆줄에 있는 다른 신학생은 참 재미있게 그 앞의 파트너와 이야기하는데, 나는 그야말로 돌덩이에 떠드는 심정이었습니다.

이렇게 방문한 지 1년이 되던 날, 그분이 손가락을 제 귀를 입에 가져다 대래요.

할 말이 있는 거구나 생각하고 얼마나 고마웠는지 허리를 쭉 펴고 귀를 댔죠.

그런데, 내 귓불을 냅다 잡더니 귀가 찢어질 정도로 세게 잡아당기면서 하는 말, 제가 1년 만에 들은 말은

‘이 간나새끼, 죽여 버리갔어, 대라기에 피도 안 마른 놈이, 어디서 내 사상 바꾸려고 개수작이야?

하느님이 어딨니? 총이 있으면 너도 쏴 죽이고, 하느님 그 새끼도 쏴 죽이고 싶어. 나가라우, 이 간나새끼야.’

충격이었어요.

저는 교도소장을 찾아가서 파트너를 바꿔 주든지 아니면 무서워서 못 나오겠다고 했지요.

교도소장은 아주 열심한 천주교 신자셨는데, 내 손을 잡고, ‘학사님, 그래도 저 영혼 구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전에 어떤 목사님이랑 파트너였을 때는 귀를 물어뜯었고,

또 다른 분은 자청해서 파트너 되었다가 구타를 당해 이가 다 부러졌대요.

‘불교, 개신교에서도 포기했는데, 우리 천주교까지 내버려 두면 저 영혼 어떻게 합니까?’

‘그럼, 소장님이 하세요. 저는 무서워 죽겠어요.’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조금 생각해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다음 달에 제가 안 나오면 안 나오는 겁니다.’

그날 그 충격을 안고 신학교에 들어왔어요.

그리고 신학교 성당에 앉아 성모님 앞에서 기도하고 있으니 성모님 하시는 말이 들립니다.

‘내가 도와줄게.’

그래서 그날 성모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성모님, 앞으로 그분이 회개하고 바뀔 때까지 두 가지를 희생으로 봉헌하겠습니다.

그러니 성모님, 그 아저씨의 돌같이 굳은 마음을 살처럼 바꿔 주시기 바랍니다.

첫 번째 희생은 아침을 굶겠습니다.

두 번째 15단씩 두 번 30단 묵주기도를 봉헌하겠습니다.’

그때는 빛의 신비가 없어 15단이었죠.

사실 두 가지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었어요.

그 옛날 신학교는 밥 세 그릇 먹고 하루를 버티어야 했죠.

간식이 어디 있습니까? 쌀도 바람 불면 날아가는 안남미였죠.

배에서 꼬르륵 나는 소리와 저녁 잠자리에 들면서 아침밥을 기다렸지요.

‘아침 안 먹겠다, 매일 30단 묵주기도 바치겠다.’

어떻게 제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는지 몰라요.

일단 성모님께 약속했기에 저는 지켰습니다.

어렵게, 정말 어렵게 이런 희생을 바치며 매달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더 무섭고 살벌해졌습니다.

재미있게 대화를 나누는 다른 신학생이 부러웠고,

매일 한 끼 단식하고 잠 못 자면서 묵주기도 30단 드리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싶었지요.

매달 그 얼굴을 보는 것도 부담스럽고 희생하는 것도 힘들어 중단하고 싶었으나,

어린 시절 부모님이 들려주셨던 말,

‘토마스야, 성모님께 전구 청하면 절대 거절하시는 법 없단다.’

이 말씀만 움켜쥐고 일 년을 그렇게 아무 소리 못 드리면서 또 다녔답니다.

이렇게 다시 일 년이 되던 날, 용돈까지 탈탈 털어 수박 한 덩어리를 사서 갔어요.

수박을 쪼개놓고 그분이 나오시길 기다렸지요.

그런데 그분이 다른 죄수와 함께 문 열고 들어오는데, 저를 먼저 쳐다보는 거예요.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나를 보고 웃는 거예요.

2년 만에 처음으로 나를 보고 웃었어요. 내가 잘못 보았는가 했죠.

웃으면서 내 앞에 앉으시더니 귀를 좀 갖다 대래요.

이번에는 혹시 뜯어 먹지 않을까 두려웠으니, 설마 웃으면서 귀를 뜯어 먹을까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귀를 가져다 대었죠.

1년 전 내 귀가 찢어질 정도로 잡았던 그 손이 아니라 아주 부드럽게 내 귓불을 만지면서 하신 첫 마디,

‘학생, 내가 졌어.’

‘하느님을 믿는 자네가 이렇게 아름답고 거룩한데,

자네가 믿는 하느님이야말로 얼마나 거룩하신 분인지 이제 조금 짐작이 가.

나는 예전부터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은 내 적이라고 생각했었지.

간나새끼 소리 들으면 그다음 달부터 안 나올 줄 알았어.

그런데 변함없이 생글생글 웃으며 참외, 복숭아 바나나 가지고 와, 한마디도 못 들으면서도 혼자 재잘거리고 갈 때

내 마음이 녹기 시작했어. 자네를 보니 내가 인생을 헛살았구나, 이렇게 분노와 저주 속에서만 살았구나.’

그러면서 그분은 ‘여보게, 자네가 믿는 하느님에 대해 좀 가르쳐줄 수 없을까?’

 

저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 감사했고, 성모님께 감사했지요.

얼음처럼 차갑던 그 영혼을 보잘것없은 나를 도구로 쓰셔서 구원하셨던 겁니다.

제가 그때 깨달은 것이

‘거룩함이 기적을 낳는구나. 하느님을 닮는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이렇게 큰 복음이구나, 기적을 낳는구나!’입니다.

저는 그때부터 거룩한 신학생으로 살기를 결심하고, 사제가 돼서도 거룩한 사제로 살다 죽자 혼자 많이 되뇄습니다.

그분은 교리 배우고 세례받고, 종신형이었던 무기징역이었는데 5년 더 사시고 모범수가 되어

교도소 안에서 천주교 회장까지 되어, 신학교 교수 신부님들이 보증으로 가석방됩니다.

그리고 신학교 목수로 살게 되었고 장가까지 가셨습니다.

물론 지금은 세상을 떠나셨지만, 어쩌다 신학교 가면 경비실에서 돋보기 끼고 성경 읽으시다

나를 보고 달려 나와 막 끌어 앉으셨죠.

‘나는 신부님 보면 하느님 보는 것 같아요.

예전 신학생 때, 내가 귀 잡아당기고 간나 새끼라고 욕한 다음부터 오시지 않았다면,

나는 저 포악해졌을 것이고 아마도 십중팔구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겁니다.

그래도 아름다운 신학생이 나를 구원해주었고, 이제는 내가 이렇게 신학교 울타리 안에서 마지막 생을 살고 있으니,

저한테 신부님은 하느님이십니다.’

그분은 늘 감사의 눈물을 흘리셨어요.

 

교우 여러분, 오늘 한 가지만 명심합시다.

마귀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뭐라구요?

거룩함입니다.

또 거룩함은 돌처럼 굳은 인간, 얼음처럼 차가운 인간을 부수고 녹이고 그래서 구원시킬 수 있습니다.

 

하느님이 거룩하신 것 같이, 여러분들도 이 세상 거룩하게 사시길 축원합니다.

거룩하게 사셔야 영적 분별의 사람으로 바뀝니다.

거룩하게 살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영적 분별력이 있겠습니까?

영적 분별은 누구나 다 원하지만, 거룩하게 사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그래서 어두운 악령이 여러분을 보면서, ‘아, 당신은 하느님이 보내신 거룩한 분이시군요.

제가 그냥 도망가는 것이 낫겠습니다.’ 해야겠지요?

 

거룩함은 마귀를 이기고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믿도록 합시다.

아멘

 

♣2021년 연중 제4주일 (01/31) 서운동성당 김웅열(느티나무)신부님 강론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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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발 (2021/02/18 11:3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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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멘, 김웅열(토마스 아퀴나스)신부님, 강론말씀감사드립니다, 신부님, 영육간에건강하시고 하느님의은총이 충만하시기를기도드립니다, 아   멘~~~
  
  lovega (2021/02/18 17:2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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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펠릭스1254 (2021/02/19 10: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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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멘~
  
  요셉 (2021/02/19 22: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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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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