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마귀 밥 되지 않는 영적 무기

글쓴이 :  하늘호수♡님이 2021-02-10 07:51:42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7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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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1,35 - 42

+찬미 예수님

주님의 이름으로 평화와 사랑을 전합니다.

 

오늘 복음은 다른 복음과 마찬가지로 참 많은 보물이 묻혀있는 복음입니다.

여러 가지 방향에서 묵상을 할 수 있는데, 첫 번째는 세례자 요한과 그가 바라보는 예수님에 대한 시선에 대한 묵상입니다.

두 번째는 스승 세례자 요한에게 떠밀려서 예수님을 따라가는 두 제자의 모습에 대한 묵상입니다.

세 번째는 와서 보라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묵상입니다.

 

참 많은 보물이 묻혀있는 복음에서 저는 오늘 여러분과 딱 한 단어만 가지고 묵상하려고 합니다.

오늘의 상황은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께 세례를 준 다음 날 같은 흐름입니다.

아무튼 또 길에서 만났습니다. 저 멀리 지나갑니다.

세례자 요한이 제자들과 어디를 가려던 길인지 나와 있지는 않지만, 아무튼 만납니다.

만나고 난 다음에, 글쎄요. 자기 제자를 다른 사람에게 보내기가 쉬웠을까요?

제자들이 다른 사람에게 한눈팔면, ‘어디 봐? 키워놨더니 배신하네? 날 봐.’해야 하는데,

오히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키면서 ‘보라, 저분 보아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영어로는 ‘Look, There is the Lamb of God.’, 라틴어로는 ‘엑체 아뉴스데이(Ecce agnus Dei)’

‘하느님의 어린양이 간다.’가 아니라 ‘하느님의 어린양 자체다’라고 합니다.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을 가리켜 ‘하느님의 어린양’이라는 말이 어떻게 입에서 나왔을까, 또 어떤 생각을 갖고 말씀하셨을까 묵상하고자 합니다.

과연 세례자 요한의 머릿속에 무엇이 떠올랐길래 메시아도 아니고 그리스도도 아니고 하느님의 어린양이란 단어를 썼을까?

 

분명히 ‘어린양’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한 뜻이 아니라 많은 것을 내포합니다.

전통적으로 유대인들에게 하느님의 어린양은 3가지 의미를 지닙니다.

첫 번째는 사탄을 싸워 이기는 하느님의 어린양이 나옵니다.

두 번째로 속죄하는 어린양이요, 세 번째는 승리하는 어린양입니다.

 

첫 번째가 사탄을 싸워 이기는 어린양.

유대인들은 최후심판 때 어린양이 악을 쓸어 낼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을 봤을 때 떠오르는 것은 사탄을 이기는 예수님이 떠올랐던 겁니다.

‘사탄 이놈들, 너희들 이제 제삿날이야, 마음대로 이제껏 인간을 괴롭혀 봤지만

이제부터는 저분이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

‘당신이 사탄을 물리칠 분이라는 것을 믿습니다.’라는 신앙 고백이었습니다.

왜? 세례자 요한은 한계가 있었어요. 그럴 힘이 없었죠.

제가 자주 하는 이야기지만, 하느님이 계심을 믿듯이 악마가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악마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게 만듭니다.

마귀가 없다고 생각하도록 만듭니다.

성숙한 신앙생활, 영성 생활에 진보한 사람도 때로는 유혹에 걸려 있으면서도 까맣게 모르고 있다고 대 데레사 성녀가 지적하고 있습니다.

악마가 해를 끼치는 수법은 아주 다양하기에 늘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된다고 대 데레사 성녀는 강조합니다.

 

우리 신자들, 본당에서 악마에 관한 이야기는 자주 못 들으셨을 겁니다.

주교님들도 악마에 대해 이야기를 잘 안 하시어, 저는 시간 날 때마다 단편적으로라도, 지식 겸 우리의 자세를 가르치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악마의 활동 모습을 보면, 대개 3가지 활동으로 인간에게 접근합니다.

첫 번째는 변장입니다. 다른 말로 위선입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에 악마는 위선자이며 거짓의 원흉이라 했습니다.

또 코린토 2서 11장 14절에 보면 빛의 천사로 가장할 수 있는 존재라 합니다.

이렇게 악마가 활동하는 방법 첫 번째는 우리 어리석은 인간들이 절대 눈치 못 채도록 변장합니다.

뿔 달린 모습이나 번쩍번쩍한 시뻘건 눈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너무너무 교묘하게, 때로는 천사의 모습으로, 때로는 성모님 목소리까지 흉내 낼 수 있고,

예수님 가면을 쓰고 나타날 수 있는 어두운 능력자가 사탄입니다.

 

두 번째 방법은 유혹입니다.

악마는 나의 나쁜 성향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습니다.

나쁜 성향을 파악하여 욕망을 부채질해서 양심의 영역까지 침범합니다.

창세기 3장 6절에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영리해짐 직하고’ 온갖 것으로 첫 조상을 유혹합니다.

사람마다 악으로 기우는 나쁜 성향이 있고, 그것을 악습이라 합니다.

그 악습을 마귀가 정확히 파악하고 있기에, 그 악습을 갖고 부채질합니다.

‘너, 잘났다. 너 대단한 사람이야.’

자기의 악습을 못 보게 합니다.

칭찬을 갖고 자기도 모르게 붕 뜨게 만들어 놓습니다.

 

세 번째 방법은 혼란을 가져옵니다.

특별히 혼란에 대한 묵상을 저는 요즘 많이 합니다.

완덕을 열망하는 영혼을 무너뜨리기 위해 악마들이 사용하는 첫 번째 무기가 혼란스러움을 줍니다.

하느님에 대한 열정을 멈추게 하거나, 주저하게 하거나, 시선을 마비시켜 버립니다.

그래서 갈팡질팡하게 만듭니다.

 

일 년에 두 번, 서품식 끝나고 1월과 8월에 사제 이동이 있습니다.

전반기는 보좌신부님급, 후반기는 주임신부님급의 이동을 많이 합니다.

저는 이번 인사이동을 보면서 정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제껏 이렇게 어둡고 슬픈 충격적인 인사이동은 없었습니다.

휴양이 세 사람이고 제적되는 사람이 한 사람이에요.

이것도 다 젊은 신부들이요.

난 정말 몸이 아픈 줄 알았죠.

그런데 상황을 파악해보니 몸이 아니라 마음이 아픈 것이었어요.

사제로 살면서 성직자와 수도자 면담을 많이 합니다.

갈팡질팡하는 그들이 성소를 잃지 않게끔 저는 최선을 다해 도와주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너무 많습니다.

이 작은 청주 교구에서 인사이동이 나올 때 휴양이 셋, 제적이 하나라니요.

은퇴한 신부님께 전화가 옵니다.

‘김신부님, 은퇴 얼마 안 남았지만,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 아시죠? 사제평의회가 왜 열립니까?’

‘네, 알겠습니다. 노력은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여러 번 사제 정체성에 대해, 신학생 교육에 대해 사제평의회 때

이야기했습니다. 모두 동의하지만, 그다음 진전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디다.’

기쁨 없는 사제 생활은 얼마 못 갑니다.

사제직 자체에 대한 사랑이 없어지고, 직업으로 압니다.

그래서 직종 바꾸듯이 그만둡니다.

또, 그렇게 마음의 병이 될 때까지 대화할 사람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요즘 젊은 신부님들, 확실히 예전의 산전수전 겪으며 살았던 나이 든 신부들보다 곱게 자라서 그런지 인내심이 없습니다.

어지간하면 이를 악물고 버틸 텐데 끝나버립니다.

 

지금 사제들은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교구마다 이런 일이 벌어져도 쉬쉬하고 말하지 않기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얼마나 많은 사제가 환속하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많은 사제가 갈팡질팡하는지 모릅니다.

수도원도 별 차이가 없습니다.

이것이 마귀의 장난인지 모른다 이겁니다.

혼란은 사제나 수도자들에게만 사용되는 무기가 아니라, 당연히 평신도들에게도 사용됩니다.

 

이 강론을 듣는 우리 신자들에게 정말 부탁합니다.

사제들을 위해 건성으로 기도하실 때가 아닙니다.

사제 되는 것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런데 너무나 많은 젊은 신부님들이 사제직을 사랑하지 못합니다.

물론 그러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보좌신부 생활이 너무 길다든지, 어느 교구는 10년이 넘어야 주임으로 나가니 자꾸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고

눈치만 보게 되고, 재미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변장, 유혹, 혼란, 이것이 바로 악마의 활동 방법입니다.

 

그럼, 악마의 활동 목적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영혼의 파멸입니다.

긴말이 필요 없습니다.

악마가 노리는 마지막 목적은 조금 혼냈다가 다시 놓아주는 것이 아니라, 한번 악마 손에 잡히면 끝까지 놓지 않습니다.

영혼이 완전히 파멸될 때까지 끝까지 갑니다.

그 방법으로 악마는 첫 번째 분열을 일으킵니다.

인간상호간의 불화를 조성합니다.

두 번째로 불안을 조성합니다.

분열이 오면 당연히 구성원들은 불안합니다.

세 번째로는 공포와 근심을 갖게 합니다.

네 번째로는 영안(靈眼)을 흐리게 만들어 놓습니다

다섯 번째로는 소란하게 만듭니다.

온종일 말 안 한다고 내 속이 평화로운 것은 아니지요.

내적 삶 안에 마귀들은 소란을 피웁니다.

여섯 번째 절망을 줍니다.

절망의 밑바닥에 떨어졌을 때가 되면 마귀는 그 영혼을 잡았다고 승리의 자축을 합니다.

 

그렇다면 마귀의 먹잇감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첫 번째 기도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두 번째 계시와 진리의 무관심한 자들입니다.

즉, 성경을 읽지 않는 자들입니다.

세 번째 상상에 도취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네 번째 의지가 허약한 자, 그다음 병약자, 소심증, 우울한 성격, 이성의 조절이 약한 영혼,

하느님과 재물에 양다리를 걸치고 살아가는 사람들, 위선자들, 가짜 겸손한 자들, 불순종한 자들,

이런 자들이 바로 악마의 먹잇감으로 등장합니다.

 

이제 제가 드리고 싶은 얘기는 어떻게 우리가 악마를 대처해서 싸워나갈 수 있을까?

첫 번째는 지나친 걱정 근심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얼마 전 담화에서 하느님의 목소리와 사탄의 목소리를 구분하는 법을 알려주셨습니다.

‘하느님의 목소리는 사람을 압박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목소리는 사람에게 불안감을 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탄의 목소리는 사람을 불안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악마에 대처하는 첫 번째 방법은 근심 걱정이 생길 때마다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고 애써야 합니다.

 

두 번째는 준성사를 믿음을 갖고 사용하셔야 합니다.

준성사는 성수가 첫 번째요, 두 번째가 구마경, 세 번째가 성모님이 알려주신 성패나 스카풀라입니다.

 

세 번째로 가장 강한 무기를 딱 두 가지로 교회는 가르칩니다.

그 두 무기는 예수님도 실질적으로 쓰셨고, 예수님 전에도 수많은 선지자가,

예수님 이후에도 수많은 성인 성녀가 마귀와 싸울 때 사용했습니다.

기도와 단식입니다.

 

모세도 시나이산에 올라갔을 때 기도와 단식을 했고, 예수님 광야에서 기도와 단식을 하면서

비록 몸뚱아리는 한계 상황까지 내몰렸지만, 영은 어느 때보다 맑아진 것입니다.

단식은 단순히 밖에서 들어오는 음식을 먹고 안 먹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육신을 굶기면서 단식할 때는 영이 맑아집니다.

이 세상의 제대로 된 종교들의 첫 번째 수행 방법은 단식입니다.

자신이 찾고 있는 신과 가까워지고, 내 안의 어둠을 물리치는 첫 방법이었습니다.

덕이 높은 스님들도 여름에는 하안거, 겨울이면 동안거하며 굴속에 들어가 좁쌀과 솔잎만 씹으며

자기 몸을 이겨내면서 맑은 영을 가지려 했습니다.

단식의 목적은 분별입니다.

분별해야만 지금 내 속에서 일어나는 소리가 하느님의 목소리인지 마귀의 목소리인지 구분합니다.

지금 내 앞에 닥친 어려움이 나를 더 크게 만드시는 하느님의 시련인지, 사탄의 장난인지 분별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특별히 기도 중에서 묵상 기도를 놓으면 안 됩니다.

많은 성인 성녀들이 악마를 대처하는 기도 가운데서 묵상 기도에 굉장한 힘을 쏟으셨습니다.

저는 강론 중에 제가 강론을 준비하고 진행하는 과정을 신자들에게 교육합니다.

어떻게 말씀을 묵상하고 자기화해서 삶으로 끌고 가는지를 여러분에게 가르치는 겁니다.

제 강론을 오랫동안 들으셨던 분들은 마치 저와 같이 타임머신을 타고 2천 년 전으로 돌아가고 계실 겁니다.

그것이 묵상 기도입니다.

성서를 읽으면서 글자 하나하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그림을 봐야 하고 그 그림 속으로 내가 들어가야 합니다.

묵상 기도는 관상 기도로 이어집니다.

아무튼 기도와 단식, 이 영적 무기를 놓치면 우리는 죽습니다.

 

악마가 겁내는 영혼은 하느님께 온전히 바쳐진 영혼이요 묵상 기도를 놓지 않는 영혼입니다.

묵상 기도하는 사람들은 억지로 짜내는 기도 하지 않습니다.

‘시간을 맞춰서 나는 하루에 몇 시부터 몇 시까지 기도한다’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화장실에 앉아서도 묵상 기도할 수 있고, 침대에 누워서도 우리는 얼마든지 예수님이 살던 그때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길을 걸으면서도 우린 묵상 기도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형식이라는 것 자체가 묵상 기도를 막을 때가 있습니다.

묵상 기도는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사제 수도자들이 하는 성무일도는 의무니까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훌륭한 기도, 묵상 기도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 하느님의 어린양은 속죄의 어린양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의 죄를 자신이 짊어지고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하느님의 종으로서의 어린양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없애시려 스스로 희생 제물이 되셨듯이,

성체성사 때마다 세상과 이웃을 위해 자신을 희생 제물로 내어놓는 다짐을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세 번째로 해방 시키시는 어린양이 떠올랐을 것입니다.

죽음에서 해방되어 영원한 생명을 얻어 누리게 해주는 파스카의 어린양.

죽음의 공포에서 해방하시는 예수님.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보면서 그날 그 시간이 언제 오더라도 죽음을 두려워하면 안 됩니다.

생(生)에서 사(死)로 가는 것은 문을 열고 그냥 한번 지나가면 끝나는 겁니다.

문을 열면 그 밑에 낭떠러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 문을 열면 다른 세상으로 옮겨가는 겁니다.

 

이렇게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을 정확히 알고 증언했습니다.

단 한마디, ‘하느님의 어린양’이라고 하는 그 한마디였지만, ‘어린양’ 안에는 이렇게 많은 뜻이 들어 있습니다.

사탄을 쳐부수는 하느님, 고난당하시는 하느님, 부활하여 승리하는 하느님.

세례자 요한이 주님을 정확히 안 것은 지식이 아니라 성령의 도우심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확신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만 그리스도를 알아볼 수 있는 눈을 가질 수 있고, 증거할 수 있음을 여러분들 믿도록 합시다.

세례자 요한처럼 겸손과 인내심을 가지고 세상에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삶을 사실 수 있도록 축원합니다.

아멘

 

♣2021년 연중 제2주일 (01/17) 서운동성당 김웅열(느티나무)신부님 강론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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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용 프란치스코 (2021/02/10 08:4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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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
  
  펠릭스1254 (2021/02/10 10:4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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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멘~
  
  lovega (2021/02/10 13:4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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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아멘~

  
  요셉 (2021/02/10 21: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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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백발 (2021/02/16 10:5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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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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