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세례받은 자의 삶이란

글쓴이 :  하늘호수♡님이 2021-02-09 04:41:46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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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 1, 7 - 11

+ 찬미 예수님

여러분들에게 평화를 빕니다

세례자 요한이 요르단강에서 세례를 베풉니다.

그때 세례는 지금처럼 이마에 물 붓는 세례가 아니라, 물에 완전히 담갔다 꺼내는 침수 세례였어요.

예수님도 똑같이 침수 세례를 받으신 거죠.

 

아주 오래전 배낭여행을 할 때, 가고 싶었던 곳 중 하나인 요르단강을 찾아갔죠.

가서 어디쯤이 예수님이 세례받으신 장소였을까 하면서 2000년 전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눈을 감고 앉아 1시간 정도 상상을 했어요.

그리고 나는 예수님 뒤에서 예수님 세례받는 것을 지켜보았던 군중의 한 사람으로 그 자리에 머물렀죠.

그러다 제가 갑자기 돌발 행동을 했습니다.

혼자 다니는 배낭여행이기에 같이 다니는 사람이 없었지요.

그냥 혼자 물로 뛰어들었어요.

머리까지 푹 잠갔다 꺼냈어요.

갈아입을 옷도 준비가 안 된 상황이었죠.

그런데 그 요르단강물에 완전히 잠겼다가 머리를 드는 순간, 무언가 보였어요.

예수님이 앞에 서 계신 느낌도 들고요.

‘아, 그분이 그때 이런 심정이셨겠구나.’

지금은 요르단강에 가서도 침수하기가 어려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주님 세례 축일에 우리가 묵상해야 할 주제는 세례받은 자의 할 일입니다.

오늘 제1 독서 이사야서 42장 1절 이하에는 세례받은 하느님의 종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나옵니다.

예수님이 요르단강에 세례받으심을 기념하면서 우리가 받은 세례를 다시 한번 생각해봅시다.

저는 초등학교 4학년 때 받아서 잘 기억이 나지는 않습니다.

엄마 손잡고 엄마와 세례를 받았기에, 가슴이 뜨겁다거나 눈물을 펑펑 흘리는 세례는 아니었죠.

각자 세례받은 날이 다를 겁니다.

인생의 방황 끝에 천주교에 입문하여 세례받으며 눈물 흘렸던 분도 계실 것이고, 무덤덤하게 받은 분도 있을 것이고,

태어나서 며칠 만에 받아서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조차 기억이 안 나는 분도 계실 겁니다.

 

오늘 예수님이 세례받는 이 장면을 타임머신을 타고 2000년 전으로 되돌아 가봅시다.

예수님이 등장하시는 모습이 참으로 신선합니다.

그리고 특별하지 않습니다.

‘요한, 내가 몇 날 몇 시에 세례받으러 가니, 나만 따로 줘야 하는 거 알지?’

이렇게 해서 예수님이 세례받으러 간 것이 아니시죠.

당시 많은 사람이 가슴을 치며 자신의 죄를 고백하면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러 몰려올 때,

그 군중 속에 끼어 그야말로 평범한 사람과 똑같이 행동하시면서 요한 앞에 나타나시는 예수님은 도대체 어떤 분이신지!

요한은 사전에 예수님이 오신다는 이야기를 못 들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정성을 다해 세례 주다 보니, 갑자기 ‘아, 그분이 내 앞에 나타나셨네.’

아마 요한은 엄청나게 큰 충격을 받았을 겁니다.

나보다 늦게 태어난 친척 동생을 언젠가는 뵙겠지 했는데, 이분이 평범하게 군중 사이에 줄을 서서 세례받으러 오신 겁니다.

 

그 높은 권능을 가진 분이 뭐가 부족하고 아쉬워 죄인들 틈에 끼어 세례받으려 하시는가?

신학생은 뭐라 생각해요?

‘죄인들을 위해 세례받으신 것은, 우리도 그분처럼 되어야 한다는 모범을 보여 주신 것으로 생각합니다.’

옳거니! 우리가 다 알아들을 수 없는 그분의 사랑과 겸손이 담겨있는 표양을 보여 주시기 위함이었다.

 

세례 이야기가 나왔으니 세례의 역사를 잠시 살펴보죠.

요한의 세례 이전에는 유대인에게는 세례받는 의식은 없었어요.

어떤 사람에게만 세례를 주었을까요?

다른 종교에서 유대교로 개종한 자들에게만 베풀었죠.

이방인들은 죄에 찌들고 더러워진 민족이기에, 깨끗한 유대교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먼저 닦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세례를 주었던 거죠.

유대인들은 본인은 하느님의 선민이고 아브라함의 후손이라 자처했기에,

본인들이 세례받을 필요가 있다는 것을 상상도 해본 적이 없던 민족이었습니다.

그런데 세례자 요한이 하늘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라고 선포합니다.

그 말을 들은 유대인들은 처음에는 어리둥절했지요.

우리가 왜 세례받아야 하지, 우리는 받을 필요 없는 민족인데?

하지만 요한의 외침을 가슴으로 들은 사람들은 요르단강에 와서 세례를 받았던 겁니다.

 

세례자 요한이 세상에서 한 일 중에 가장 큰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 세례 준 것? 아니에요.

민족 회개 운동을 일으킨 겁니다.

두 번째로는 세례를 통하여 하느님을 찾게 만든 것입니다.

 

저는 지금이야말로 우리 지구인들은 회개 운동을 해야 할 시기라고 절실히 생각합니다.

하느님이 우리 인간의 역사를 내려다볼 때, 얼마나 많이 가슴이 아프셨을까?

수많은 전쟁을 통해서 엄청나게 많은 사람을 서로 죽입니다.

인류의 전쟁이 1, 2차 세계대전만이겠습니까?

때로는 십자가를 앞세우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다른 민족을 처형하고 마녀사냥도 했습니다.

창조주가 만들어 놓은 아름다운 지구를 망가뜨리는 것은 곰이나 늑대가 아닌 인간들입니다.

땅속의 자원은 있는 대로 다 파먹었습니다.

이제 더 나올 것도 없습니다.

지구의 허파라 하는 아마존 밀림의 나무들도 벌목되어 황폐해지고 있습니다.

남극과 북극의 빙하는 녹아내리고, 수면은 올라가고, 온난화는 점점 심해지고, 오존층이 뚫리기 직전입니다.

무기를 만드는 과학자들은 단시간에 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무기를 개발하는데 많은 돈을 집어넣습니다.

핵무기, 화학무기, 세균무기의 개발은 인류를 멸망으로 치닫게 합니다.

세상에 태어나지 못하고 엄마 뱃속에서 죽어가는 낙태아의 원성이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이 지구와 인간들을 파괴하는 것은 동물이 아닌, 우리 인간 스스로입니다.

지금이야말로 모든 지구인이 회개해야 합니다.

이 코로나 세태를 맞이하여 정말 깊이 반성해야 합니다.

 

세례자 요한은 민족 회개 운동을 하였고, 세례를 통해 하느님을 찾는 일을 도와주었습니다.

그래서 요한의 가르침에 따라 사람들은 자기 죄를 의식했고 전에는 잘 몰랐던 하느님의 필요성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 발맞추어 예수님도 회개를 통하여 새롭게 되고자 하는 그들과 함께

세례를 겸손되이 받으시는 모습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합니까?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죄인들과 어울려 세례받으실 때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성령이 비둘기 형상으로 내려오시고 하늘에서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는 성부의 선언이 들립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이 말은 시편 2장 7절에 나옵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

‘너는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는 말은 이사야서 53장에 수난당하는 종의 모습으로 나옵니다.

 

세례받은 예수님은 수난당하는 종의 모습으로 살아가야 함을 암시합니다.

그러면 수난당하는 야훼의 종의 모습은 어떠한가?

오늘 들은 이사야서 42장 1절에서 4절에 세례받은 하느님의 아들이 수난당하는 종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모습의 삶으로 살아야 하는가 나옵니다.

‘그는 나의 영을 받아 뭇 민족에게 바른 인생길을 펴주리라.

그는 소리치거나 고함을 지르지 아니하며, 갈대가 부러졌다 하여 잘라버리지 아니하고, 성실하게 바른 인생길만 펴리라.’

 

이사야서 42장 1절에서 4절을 풀이하면, 예수님이 가신 길은 무엇보다도 화려한 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조용하고 소란스럽지 않게, 나팔을 불거나 요란하게 소란을 피우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고,

또 반대자들과 싸우러 오신 것도 아니고, 그분의 말을 거역하는 자들의 죄악을 단죄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참으신다는 이야기입니다.

인간들에게는 온유하신 분이라는 겁니다.

절대로 갈대를 꺾어 버리지 않을 분이라는 겁니다.

오히려 죄로 인해 괴로운 이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분이라는 겁니다.

작은 불씨도 살리시고 내적 힘을 주셔서 잘 타오르게 하시는 분이라는 겁니다.

 

세례받은 자들의 삶이 무엇인지가 오늘 복음의 주제라 했습니다.

우리 모두 세례받았습니다.

예수님과 똑같이 세례받은 우리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첫 번째 선배로 모시고, 예수님처럼 살아가면 됩니다.

즉, 세례받은 자들의 삶이란, 상한 갈대와 같은 사람, 꺼져가는 등불과 같은 사람에게도 다시 일으켜 주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세례받은 자들의 삶이란, 사람들 사이의 정의를 세워 주는 삶이어야 합니다.

세 번째로 마음의 눈이 먼 이들의 눈을 열어 주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네 번째로 현세의 고통 속에서 힘들어하는 이들을 도와주는 삶이어야 합니다.

그들에게 하느님이 계심을 증거하고 해방과 자유를 주어야 합니다.

주 예수님처럼 세례를 받은 우리는 예수님이 사신 길, 걸어가신 길을 따라만 가면 됩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코로나와 싸워 이길 수 있는 영적 무기 3가지를 알려드렸습니다.

침묵과 기도로 관상을 배우고, 그 관상을 통해 하느님과 가까워지고,

하느님이 주신 엄청난 영적 에너지를 갖고 자선을 통해 예수님의 삶을 따라가자 했습니다.

그렇게 살면 분명히 우리 귀에도 우리 마음에도 이 소리가 들릴 겁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우리 귀에 이 말이 들린다면 얼마나 진복자입니까?

죄인도 아닌 분이 죄인의 무리에 섞여서 정말 겸손한 모습으로 세례를 받으신 그분의 삶은 야훼의 종의 모습입니다.

오늘 제1독서(이사야서 42,1-4.6-7)를 다시 차분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거기에 바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정확히 짚어주고 계십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주님께서 모든 교우들에게 이 목소리를 전해 주시기를 간절히 청합니다.

아멘

 

♣2021년 주님 세례 축일 (01/10) 서운동성당 김웅열(느티나무)신부님 강론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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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펠릭스1254 (2021/02/09 10:5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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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멘~
  
  백발 (2021/02/09 11: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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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멘,김웅열(토마스 아퀴나스)신부님, 강론말씀감사드립니다, 신부님, 영육간에건강하시고 하느님의은총이 충만하시기를기도드립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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