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어두운 두려움과 거룩한 두려움!

글쓴이 :  하늘호수♡님이 2021-01-20 13:46:19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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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 1, 26 - 38

 

+찬미 예수님

아주 중한 환자가 모여 있는 어느 정신 병원에 있던 일입니다.

한 환자가 입원했는데, 이 사람은 망상증에 빠져있어요.

자기를 하느님이 보낸 예언자로 알고 있는 거예요.

길에서 ‘이놈들아, 무릎을 꿇어라, 내가 예언자다.’ 소리 지르다가 잡혀 온 거예요.

정신 병원에 들어오면서부터 또 소리 질렀죠. ‘이놈들아, 무릎을 꿇어라, 내가 예언자다.’

그런데 거기는 또 다 정신병자여서인지 모두 무릎을 꿇는 거예요.

그러니 얼마나 신이 났겠어요?

어깨에 힘 빡 주고 3층 자기 방으로 가는 길에서도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죠.

‘아, 드디어 나를 알아주는 대로 내가 찾아왔구나.’

3층에 올라가서도 소리를 지르니, 모두 무릎을 꿇는데 한 사람만 안 꿇는 거예요.

삐딱하게 벽에 기댄 그 사람에게 소리를 지르니, 그 사람 말하길, ‘난 너 같은 놈 보낸 적 없다.’

믿거나 말거나입니다.

오늘 강론과 조금 연관이 있기에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우리가 무엇인가 이해를 하려면 키워드가 필요하죠.

중요한 단어 몇 개를 연결하면 세월이 지나도 기억나요.

어떤 책에서, 혹은 성경 읽을 때 제일 중요했던 단어, 빨간 줄 그어 놓았던 것만 생각하고 있으면, 그다음이 연결되어 떠오르게 돼요.

 

오늘 복음에는 예수님이 잉태되시면서 마리아에게 천사가 나타나서 주고받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기서 우리가 묵상해야 할 중요한 주제는 3가지입니다.

성령 잉태, 거룩한 두려움, 임마누엘입니다.

이 세 가지로 성탄을 앞두고 대림을 마무리하는 의미에서 짧게 묵상 거리를 드릴 겁니다.

 

첫 번째, 성령 잉태!

구약과 신약에 성령으로 아기를 갖은 분이 성모님까지 네 분 나오시죠. 누구시죠?

제가 기억하는 구약과 신약의 돌계집은 구약에 둘, 신약의 둘이에요.

구약 처음은 아브라함의 부인, 이사악의 엄마 사라죠.

천사들 대접 잘했더니 자손을 주겠다고 했죠.

하느님의 도움으로 잉태된 것은 성령의 도움인 것이죠.

다음은 삼손의 엄마, 삼손의 아빠 마노아의 부인, 이름은 안 나오는데 천사가 나타나서 말하죠.

‘아들을 낳을 것이다. 그 아들에게는 포도주를 먹이지 말고 절대 머리를 깎여 서는 안된다. 너희 민족을 괴롭히고 있는 불레셋인(필리스티아인)을 전부 물리칠 것이다.’

판관기 13장 2절부터 7절, 거의 한 페이지 이상 삼손이 잉태되는 과정이 나와요.

또 한나도 성령 잉태했는지도 숙제로 찾아보세요. 사무엘기를 보면 나옵니다.

그러면 신약 시대 성령 잉태는 누굽니까?

세례자 요한의 엄마, 엘리사벳 그리고 성모 마리아죠.

그런데 사라의 이사악 잉태, 삼손의 잉태, 세례자 요한의 잉태는 처녀 잉태가 아니고 결혼한 사람의 잉태였죠? 동정녀 잉태라 부르지 않아요.

그런데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처녀 잉태, 동정녀 잉태죠.

이것이 아주 큰 차이가 있는 겁니다.

이사야서 7장 14절에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라는 예언이 나옵니다.

성령으로 잉태된 특별한 성인은 있지만, 처녀 잉태는 유일하게 성모 마리아 한 분뿐입니다.

 

오늘 복음에는 아주 중요한 얘기가 나오죠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라고 그랬어요.

이것은 마리아에게 하는 얘기가 아니라 바로 여러분들에게 하신 말씀이에요.

성령께서 여러분 안에 내려오실 것이고, 거룩한 분의 힘이 여러분을 덮어야만 예수님을 잉태할 수 있고, 세상의 예수님을 출산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죠.

 

2000년 전에 성모님이 잉태한 것이 우리랑 무슨 상관이 있어요?

우리는 육적으로는 예수님을 낳을 수 없지만, 영적으로 성령이 나에게 들어오시고 거룩한 분의 힘이 나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덮으면, 나를 통해서도 예수님이 내 안에 들어오시고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여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 잉태가 현재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입니다.

‘그거 신기하다. 2000년 전에 그런 일이 있었대.’ 놀라라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의 중요한 의무는 뭡니까?

예수님을 세상에 보여주는 것입니다.

낳아 드려야 됩니다. 출산해 드려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 출산이 전에 해야 하는 것이 잉태입니다.

예수님을 잉태하지 못하고, 예수님을 내 안에 갖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예수님을 세상에 낳아 드릴 수 있고, 어찌 예수님을 세상에 보여줄 수 있겠는가!

예수님을 잉태하는 방법은 성모 마리아께서 그러하셨듯이 우리에게도 성령이 내려오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의 거룩한 힘이 나를 덮어야 합니다.

 

성령이 내 안에 안 계시면 예수님을 세상에 보여줄 재간이 없습니다.

사제 안에 성령이 안 계시면, 그것은 사제가 아니라 직업인입니다.

수녀 안에 성령이 안 계시면, 오히려 세상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평신도 안에 성령이 안 계시면, 그 사람은 신앙인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종교인에서 못 벗어날 겁니다.

교리적인 하느님은 머릿속에 가득 차 있을지 몰라도 체험적인 하느님은 없을 겁니다.

 

천사가 마리아에게 하셨던 그 아름답고 가슴이 저리는 그 말, ‘성령이 너에게 내려오시고 거룩한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오늘 세례받는 사람들을 위해, 오늘 누구보다도 세례받는 날이기 때문에, 정말 거룩한 성령 이 여러분들을 덮을 것이고 그 힘이 여러분들의 강하게 할 겁니다.

 

이렇게 특별한 은혜를 받는 사람들, 성령 잉태라고 하는 어마어마한 하느님의 은혜를 받는 사람들은 어떻게 했길래 그런 은혜를 받을까?

분명히 다릅니다.

첫 번째 하느님을 정성껏 섬겼던 사람들한테 내려옵니다.

엉망진창으로 사는 사람에게 성령이 들어오신다고요? 천만에.

하느님을 지극정성으로 섬기면서 가까이하려 애썼던 사람들한테 성령이 들어오십니다.

두 번째 하느님의 뜻을 내 생활 속에서 구체적으로 열매 맺으려 애썼던 사람에게 성령이 함께하시어 그 열매를 맺을 힘을 주십니다.

이런 은총의 축복을 주시는 이유는 뭐겠습니까? 아주 간단합니다

하느님께 영광 돌려 드리고 다른 이들에게 봉사하라는 겁니다.

이것이 하느님에게 우리들이 받은 그 은총의 마지막 종착점입니다.

우리도 하느님을 정성껏 섬기며 열매 맺는 삶을 살면 은총을 받습니다.

예수님을 낳을 수가 있습니다. 잉태만이 아니라 출산까지 해야 하는 겁니다.

 

어떤 이들은 하느님을 체험합니다.

피정을 통해서, 성령 기도회를 통해서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들어오신 겁니다. 거룩한 힘이 나를 덮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잉태했는데 출산을 못 하면, 즉 삶 가운데에 구체적인 열매를 맺지 못하면 그냥 사산됩니다.

엄마 뱃속에서 그냥 죽습니다. 예수님이 들어오셨다가 죽습니다.

 

성령 잉태는 2000년 전 혹은 그 전의 구약 시대의 몇몇 특별한 사람에게만 일어난 일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매 미사 마다 말씀을 들을 때마다 고백소에서 회개를 할 때마다 성체를 영할 때마다 마리아가 성령을 받아 예수님을 잉태하였듯이 우리 안에 예수님은 머무십니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예수님을 열 달 동안 잘 모시어, 흠 없이 이 세상에 보여드려야 합니다. 특별히 버림받은 예수님에게 보여드려야 합니다.

 

두 번째 묵상 거리는 거룩한 두려움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두려움을 느낄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지금도 우리는 두렵잖아요?

나 혹시 코로나 걸린 사람 아닐까? 오늘 만났던 사람이 혹시 보균자 아닐까?

우리는 누구나 내 이성과 반대되고 비합리적인 일을 당하면 생각지도 못한 일을 당하면 두려움을 느낍니다.

처녀의 몸으로 잉태할 것이라는 이야기는 마리아 당사자나 주변 사람들에게 큰 두려움을 분명히 줬을 겁니다,

그래서 성모 마리아도 뭐라 그랬어요?

너무 두렵고 무서워서, ‘저는 처녀인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

‘무서워요. 왜 나한테 그런 얘기 하세요? 저 조금 있으면 요셉과 결혼할 몸인데, 왜 하필이면 제가 그 이야기를 들어야 해요?’

얼마나 두려웠겠습니까?

요셉은 또 얼마나 두려웠겠습니까?

요셉이 너무 두려워하니까 천사가 요셉의 꿈에도 나타나지 않았습니까?

뭐라 그러죠?

‘두려워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 드려라.’

얼마나 충격과 두려움에 떨고 있었으면 꿈에서조차 천사가 용기를 줍니다.

 

두려움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어두운 두려움과 거룩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어두운 두려움은 죄를 짓고 난 후에 오는 두려움 등, 공포스러운 두려움입니다.

그러나 거룩한 두려움은 하느님의 뜻을 알 수 없을 때 오는 두려움입니다.

그 두려움의 원인이 내 죄가 아니라, 하느님 때문에 느끼는 두려움은 거룩한 두려움입니다.

어두운 두려움은 그 원인이 본인에게 나왔기에 내가 어떤 죄를 지었는지 찾아내서 겸손히 회개하면 사라집니다. 그러나 그것이 지속되면 반드시 마귀가 그 어두운 두려움을 가지고 그 사람을 하수인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거룩한 두려움은 하느님에 의해서 왔기 때문에 여러 방법을 통하여 설명에 주시고 위로를 해 주십니다.

 

그래서 마리아에게 뭐라 그래요?

‘보아라, 네 친척 엘리사벳도 그 늙은 나이에 아기 가진 지 6개월이 되었단다. 하느님께 하시는 일은 안되는 것이 없다.’

또 요셉에게 어떻게 설명해 주십니까?

‘두려워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드려라. 태중의 아기는 다른 남자의 씨가 아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을 것이다.’

 

거룩한 두려움을 가질 때는 반드시 하느님께서 설명해 주시고 위로해주십니다.

그래서 거룩한 두려움은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는 때이기 때문에 기뻐해야 합니다.

거룩한 두려움은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는 때이고,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는 순간이고, 그 결과 거룩한 두려움을 들면 신앙이 업그레이드되는 행복한 순간이기에 거룩한 두려움과 더럽고 무서운 두려움을 구분해야 합니다.

 

지금 코로나 때문에 두려운 것은 거룩한 두려움인가요 아니면 어두운 두려움인가요?

어두운 두려움이죠. 우리가 잘 분별해야 해요.

 

두려움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거룩한 두려움이 들 때는 내 신앙이 큰 순간, 성령이 지금 나한테 문을 두드리고 있는 순간이기 때문에 절대 외면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어두운 두려움이 들어오면 원인을 잘 분석해서 피하든지 멀리하든지 해야 합니다.

 

세 번째 묵상 거리는 임마누엘이라고 했죠?

임마누엘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입니다.

제가 피정 때도 참 많이 얘기했고, 여러분에게도 참 많이 한 이야기 중 하나가 뭐냐.

이 김웅열 신부는 신학교 들어갈 때도 사제가 될 때도 평탄하지 못하고 힘들었고, 사제가 되어서도 편안하게 살아 본 적이 없다. 그럴 때마다 나를 붙잡아 주었던 3개의 믿음 기둥이 있다 했죠?

첫 번째 하느님은 나를 사랑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두 번째 하느님은 나의 이 어려움을 반드시 해결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세 번째 하느님은 나의 앞길 선하게 예비하심을 믿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이 세 가지를 저는 꿈속에서도 외쳤습니다.

어떤 때는 아침에 눈이 떠지지 않기를 바랄 때도 있었어요.

너무나 어려운 일들이 많았기에 그냥 밤에 불러 가셨으면 할 때도 있었어요.

내일도 업자들이 어떻게 만나지? 멱살을 또 잡힐까?

그럴 때 아침에 눈이 떠지면, 군인들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구호를 외치듯, 저는 침대에서 목청껏 외치며 일어났습니다.

‘주님은 이 김 신부 사랑하고 있음을 믿습니다.

주님은 이 김 신부의 어려운 반드시 해결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주님은 이 김 신부의 앞길 선하게 예비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임마누엘,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풀이하면, 그 세 가지입니다.

하느님은 나를 사랑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하느님은 나의 어려운 일 반드시 해결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또 미래가 걱정될 때는 주님은 나의 앞길 선하게 예비하심을 믿습니다.

이것이 바로 임마누엘의 뜻이지요.

 

성탄을 앞두고 여러분에게 대림절을 마무리하고 주님의 강생을 기다리는 3가지의 묵상을 드렸습니다.

첫 번째는 성령 잉태.

우리 분명히 성령 잉태해야 합니다.

성령으로 인해서 삶이 바뀌게 될 겁니다. 열매를 맺게 될 겁니다.

아직도 신앙 생활하면서 성령 이야기는 나와는 관계없고, 그 말하는 사람을 이상하게 보았다면 회개하십시오.

어떻게 하루에 수십 번 성부 성자 성령은 부르면서 성령 얘기만 나오면 쳐다보지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령이 없으면 교회가 아니고, 성령이 없으면 신부가 아니고, 성령이 없으면 수녀가 아니고, 성령이 안 계시면 주교가 아닙니다.

성령께 청해야지요. 힘들고 어려울 때 성령 청하는 기도 있지 않습니까?

 

두 번째 테마는 거룩한 두려움.

우리는 살면서 어두운 두려움은 지혜롭게 피해야 하지만, 거룩한 두려움이 올 때는 물리치지 말고, 그 순간이야말로 내 신앙이 커지는 순간임을 명심하라는 겁니다.

 

세 번째는 임마누엘.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은 구체적으로 3가지로 말하면, ‘주님은 나를 사랑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주님은 나의 어려움 반드시 해결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주님은 나의 앞길을 선하게 예비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오늘 이 강론은 예비자들에게도 해당하는 강론이기에 얘기를 드리는 겁니다.

이 세 가지를 잘 묵상하면서, 마구간이나 구유가 아닌 여러분 가슴 하나하나에 예수님을 탄생시키도록 합시다.

아멘

 

♣2020년 대림 제4주일 (12/20) 서운동성당 김웅열(느티나무)신부님 강론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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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발 (2021/01/21 09:0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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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멘, 김웅열(토마스 아퀴나스)신부님, 강론말씀감사드립니다, 신부님, 영육간에건강하시고 하느님의은총이 충만하시기를기도드립니다, 아   멘~~~
  
  펠릭스1254 (2021/01/21 11: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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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멘~
  
  하늘빛모바일에서 올림 (2021/04/09 16: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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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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