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예복도 안 입고 어디 가셔?

글쓴이 :  하늘호수♡님이 2020-11-20 21:15:06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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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운동성당 - photo by - 느티나무 신부님

 

 

 

+찬미 예수님

어제저녁부터 목이 막 간질간질 아파서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어요.

아무리 사람을 만나지 않으려 해도, 여기저기서 찾아오고, 머리에 손 얹어 안수도 주었거든요.

‘지금 확진이면 대한민국 1번 신부가 되는 것인데, 안 돼.’ 하며 약통을 뒤졌죠.

프로폴리스를 찾아서 두 번 뿌리다, ‘이 어리석은 사제야, 예수님 손으로 기도해.’

아침에 눈 뜨자마자 성호를 그면서 침을 삼키니 쭉 넘어가요. 열도 재보니 정상이에요.

그러면서 든 생각이 ‘이렇게 벌벌 떨다니, 코로나에 노예가 되었구나.’

모든 것이 망가지고 깨집니다.

요즘 같은 시기는 교우분들이 신앙을 지키고 사는 것이 더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처음 미사가 없을 때는 막 안타깝고, TV 미사를 보아도 미사 한 것 같지 않았는데,

이렇게 몇 달이 흐르니 덤덤해지시는 것 같아요.

‘생방송 미사를 해서 성체를 못 영해도 신령성체 기도하면 되고, 괜히 나갔다 확진자 되는 것보다 나아.’

큰일입니다.

결국 이렇게 하느님과 멀어지게 하는 것이 마귀가 노리는 것이거든요.

원래도 신앙을 지키고 사는 것이 쉽지 않은데, 요즘은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하느님의 뜻대로, 가르침대로 살려고 하면 어려워요.

하느님 뜻대로 살다 보면, 힘들고 억울하고 속상할 때도 많고, 약이 오를 때도 있고,

서러울 때도 있고 정말 하느님을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어요.

그래도 우리가 끝까지 항구하게 내 십자가를 버리지 않고 죽음의 그 순간까지 신앙을 잃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죽으면 그뿐이라면 이렇게 살 이유가 없죠,

죽은 다음의 세상이 더 중요하죠.

우리가 사는 인생은 영원한 세상에 비하면, 태평양에 떨어지는 빗방울보다도 작아요.

어리석은 자는 죽음 후의 그 영원한 세상을 생각하지 않고 이승에서 마음껏 즐깁니다.

먹고 마시고, 다른 사람이 피눈물 나는 것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믿는 이들은 그렇게 못 살잖아요.

억울한 일을 당해도 죽은 후에는 영원한 잔치에 우리를 초대해주시리라는 믿음을 갖고 견뎌내지 않습니까?

 

오늘 말씀의 주제는 ‘잔치’입니다.

여러 사람을 잔치에 초대하고,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은 쫓아내는 이야기가 나오죠.

또 1독서에는 그 잔치가 어떤 잔치인지 말해줍니다.

‘하느님께서 연한 살코기에 맑은 술을 준비해서 사람을 부르신다. 그 잔칫상에서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 준다.

‘그래, 80년 동안 참 애쓰고 살았다. 눈물 자국이 아직도 있구나.’ 하시며,

하느님이 직접 내 한평생 흘렸던 눈물을 닦아 주신다고 했어요.

또, 그 잔치에 가면 너울을 벗겨 주신다고 했어요.

너울이 뭡니까? 어두운 것, 상처죠.

살면서 왜 상처가 없었겠어요?

그것을 꾹꾹 누르고 사니, 당연히 얼굴이 어둡죠.

그 어두운 너울을 벗겨 주신다고 했어요.

그리고 억울함을 풀어주신다고 나와요.

‘얼마나 억울한 일 많았니? 내가 다 알고 있어. 그래도 너는 나를 믿고 막살지 않았지. 정말 고맙다.’

하면서 그 억울함을 풀어주신다고 나와요.

이것이 바로 하늘나라 잔치입니다.

‘연한 살코기에 맑은 술을 준비하고,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시고, 얼굴의 그늘을 거두어 주시고,

억울함을 풀어주신다.’

 

이 잔치는 한평생 믿음을 가지고 살았던 것에 대한 보상입니다.

우리는 그것 때문에 신앙생활이 힘들어도 기를 쓰고 하는 겁니다.

이러한 천국 잔치가 없다면, 인생은 허무한 것이고 신앙은 아무 쓸모가 없게 됩니다.

죽은 후에 하느님이 이러한 보상을 주시지 않는다면, 뭐하러 희생하고 억울하게 삽니까?

 

오늘 복음에 초청된 사람들은 유대인을 뜻합니다.

아들 혼인 잔치이니 오라고 불렀는데 안 갔죠.

열심히 한다는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를 뜻합니다.

오라고 해도 안 오고, 먹으라 해도 먹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결과 그들은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었지요.

그 대신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믿던 죄인들, 이방인들이 초대받아 갑니다.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이 앉을 그 자리에,

유대인들이 인간으로 여기지도 않던 죄인이고 이방인들이 잔치 자리를 가득 메웁니다.

 

아주 돈이 많은 영감님이 있었어요.

3남 2녀를 두었는데, 너무너무 잘하는 거예요.

하루는 이 영감님이 ‘혹시 돈 때문에 잘하는 걸까?’ 생각했죠.

그래서 어디 투자했다 홀랑 망했다고 소문을 냈어요.

그리고 얼만 안되어 아버지 생신날이 되었는데, 세상에, 한 놈도 안 오더래요.

그렇게 뻔질나게 드나들던 자식들이, 이제 망해 자기들에게 빌붙을까 봐 안 온 거죠.

그때야 영감님은 깨달았죠.

그리고 그 많은 돈을 사회에 환원했대요.

 

유대인들, 특히 바리사이나 율법 학자들은 예수님이 거지인 줄 알았어요.

그리고 죽이려고 하고, 또 죽이기까지 했죠.

그들을 아들 잔치에 초대했는데 안 왔어요.

돈이 바닥난 것을 안 자식들은 아무도 아버지의 생일상에 오지 않았던 겁니다.

 

하느님의 초대는 기쁨이 넘치는 초대입니다.

혹시 여러분들 가운데 청와대의 초대받아서 가신 적이 있으세요?

아마도 대통령에게 초대받았다고 하면 그 전날 잠이 안 올 겁니다.

양복은 뭐 입나? 새로 한 벌 맞추나? 하면 준비를 할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청와대와는 비교도 안 되는 미사에 초대받아 오시잖아요.

대통령이 부른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부르신 거잖아요?

이 자리에 앉아계신 것은 하느님께서 초대하셔서 오신 거예요.

 

이 말씀과 성체의 잔치에 앉아있다고 하는 것, 얼마나 기쁘고, 발걸음이 가볍고,

전날부터 가슴이 뛰어야 하는 것인지!

‘일주일 기다리던 바로 이 미사구나!’ 하면서 행복해야 합니다.

미사를 참석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초대받았다는 생각만으로도 행복해야 해요.

그런데 하느님은 초대하시지만,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오지 않는 사람들이 있죠.

오더라도 억지로 끌려오는 그런 마음은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통계에 의하면 주일미사 참석 이유가 60%가 고백성사 보는 것 싫어서라고 합니다.

세상에! 그런 마음으로 나오는 그 영혼에 하느님이 무슨 축복을 줄 수 있겠습니까?

초대받은 자의 자세가 틀린 것이죠.

표본조사이기 때문에 이 자리에도 60%가 그런 마음일 겁니다.

청와대 가고 대통령 만나는 것과 하느님을 만나는 것은 비교가 안 됩니다.

여러분은 오늘 기쁘고 행복하게 살라고 초대받으셨어요.

그래서 사제인 저는 늘 미사 끝날 때 ‘기쁘게 삽시다.’ 합니다.

다른 말로 ‘기쁨을 전하십시오.’라는 말입니다.

내가 기쁘게 살지 못하는데, 어떻게 내가 이웃에게 기쁨을 전합니까?

내가 기뻐야 다른 사람에게도 기쁨을 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미사 끝에 가서 기쁘게 살라는 말을 3년 내내 들었는데도 기쁘게 못 살까?

 

첫 번째 아직 하느님을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살아계신 하느님은 못 만났기 때문입니다.

살아계신 하느님은, 죽은 하느님이나 문자의 하느님, 교리서에 있는 하느님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느님이라는 것을 성사를 통하여, 말씀을 통하여, 체험을 통하여 우리에게 알려주십니다.

 

두 번째 부서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요.

깨지지 못했기 때문에 그래요.

겸손하지 못하기 때문에 기쁘지 않아요.

포기하지 못하기 때문에 기쁨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주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초대는 우울한 초대가 아니라,

겁주거나 협박하는 초대가 아니라 기쁨의 초대입니다.

우울하고 힘들고 삶에 짓눌렸던 사람도 이 초대에 와서, 미사 끝나고 돌아갈 때는 얼굴이 달라져야 합니다.

환하게 빛나게 되어 천사처럼 밝아져야 합니다.

들어올 때는 마귀의 얼굴로 들어왔다 하더라도, 미사가 진행되는 과정에 치유되고 구마되어,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기쁘게 삽시다.’ 할 때는 기쁨이 밑에서부터 솟아올라야 해요.

미사 다녀온 엄마를 보고 자식이 ‘엄마, 오늘 성당에서 좋은 일 있어? 얼굴이 환해졌어.’

말도 안 하던 아버지도 들어오면서 ‘찬미 예수님, 오늘 짜장면 먹을까?’로 바꿔야죠.

 

기쁘게 못 사는 이유는 두 가지라고 했지요?

첫째, 살아계신 하느님을 체험 못 한다. 둘째 포기하지 못할 때라고 했습니다.

 

오늘 복음은 하느님의 초대에 응하지 않았을 때 어떤 벌을 받느냐 하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초대에 응하지 않았을 때 얼마나 귀한 것들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냐는 안타까움을 전하고 계십니다.

 

길거리에 있는 사람들이 대신 초대받았지만, 그중에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은 쫓겨났다고 나와 있습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 예복은 무엇을 나타낼까?

‘불렀으면 밥을 먹여야지, 옷 갖춰 입지 않았다고 내쫓다니, 무슨 경우가 이렇습니까?’

 

그리스도교는 모든 사람에게 문이 열려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교회에 들어올 때는 사랑의 은혜에 맞갖은 모습을 가지고 들어와야 합니다.

초대받았다는 것, 은총을 받았다는 것은, 선물인 동시에 책임도 따릅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에는 전과 같은 생활을 해서는 안 됩니다.

새로운 순결과 새로운 선으로 옷을 입지 않으면 안 됩니다.

교회 문은 항상 누구에게나 열어 죄인도 들어올 수 있지만,

들어온 후에는 그냥 죄인으로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거룩한 신자가 되려고 애를 써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럼 예복은 뭐냐?

예복은 하느님 앞에 나갈 때에 우리의 정신을 나타냅니다.

정신병자들, 치매 걸린 분들은 옷을 제대로 갖춰 입지 못합니다.

 

우리 아버지가 3년 동안 뇌경색으로 고생하시다 돌아가셨어요.

처음에 아버지가 뇌경색이라고 안 것은 경비아저씨의 전화였어요.

‘회장님 나가시는데, 잠바를 한쪽만 입으시고, 한쪽은 땅에 끌고 나가세요.’

놀래서 가보니, 그날 차를 몰고 나가신 아버지는 접촉사고도 난 거예요.

검사해보니 너무 늦게 왔다고 하더군요.

우리 아버지는 항상 양복 정장을 입고 다니셨거든요.

그러니 경비아저씨가 깜짝 놀란 거죠.

 

정신이 망가지면 옷을 제대로 입지 못합니다.

내면의 세계는 외모에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단정한 사람, 풀어헤치는 사람, 겉을 보면 속을 알 수 있죠.

그래서 예복은 초대받은 사람의 기본자세입니다.

사제도 미사 드리기 전, 내가 예복을 제대로 입고 제단 앞에 나가는 가를 늘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뭔가 내 마음의 죄를 지었다면, 제의를 입으며 기도합니다.

‘주님, 제가 지은 마음의 죄 때문에 오늘 미사의 은혜가 줄어들지 않게 해주십시오.’

 

우리가 하느님 앞에 나아갈 때 반드시 입고 나가야 할 예복은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겸손의 예복이고, 두 번째는 회개의 예복이고, 세 번째는 믿음의 예복입니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하는 모든 것은, 내가 하는 것 같지만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시킨 것이기에 모두 초대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이름으로 하는 모든 행위는 반드시 합당한 예복이 필요합니다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나를 선택하여 봉사하게 하시고,

하느님이 나를 선택하여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게 하시고,

하느님이 나를 선택하여 봉헌하게 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봉사하기 전에도 먼저 내가 제대로 예복을 입고 있느냐를 생각해야 합니다.

겸손의 예복, 회개의 예복, 믿음의 예복, 딱 세 벌입니다.

겸손의 예복을 안 입었어? 그럼 유세밖에 안 떨어요.

봉헌하기 전에도 내가 이 세 가지의 예복을 입고, 가난한 과부의 봉헌같이 봉헌하는가?

하느님은 거지가 아닙니다.

지나가는 거지에게 한 푼 던져주는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 믿는 자들의 모든 하느님을 향한 행위에는 예복이 필요합니다.

미사 오기 전, 독서와 복음 한 번 읽어 오는 것은 기본적인 양말 신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봉헌할 돈도 제일 깨끗한 것으로 준비 못 했다면, 돈에 손을 대고 기도하세요.

‘주님, 이 돈이 이렇게 꼬깃꼬깃 나이를 먹었습니다. 저에게 오기까지 어떤 풍파를 겪었을지 모릅니다.

범죄에 쓰였을지도 모르고, 창녀 집에 갔다 온 돈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 제가 오늘 봉헌하고자 하니 이 돈을 축성해주십시오.

비록 더러운 돈일지라도 거룩한 돈으로 축성하여주십시오.’

이런 것이 바로 기본적인 예복을 입는 것입니다.

 

미사가 있는 날은 조금 일찍 나와서 성체조배하고, 묵상하고,

자기 반성하는 순간을 잠시라도 한 후 미사에 임한다면, 미사를 통해서 얼마나 큰 은혜가 내릴까?

저는 평일 미사든 주일미사든 최선을 다합니다.

내 생애의 마지막 미사를 봉헌하는 마음으로 늘 제의를 입습니다.

이 사제를 통하여 여러분에게 은혜가 내려가려면, 파이프의 크기가 맞아야 물이 새지 않습니다.

시편 81장 10절(성경 81장 11절)에 ‘다만 입을 크게 벌려라, 내가 채워주리라.’

적어도 여러분들은 입을 벌려야 합니다.

그러면 폭포수 같은 은혜가 여러분에게 흘러넘칠 것을 믿읍시다.

그리고 우리는 예복을 입지 않아 쫓겨나는 불행한 사람 되지 않도록 노력합시다.

 

 

 

♣2020년 연중 제28주일(10/11) 서운동성당 김웅열(느티나무)신부님 강론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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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텔샤모바일에서 올림 (2020/11/21 01: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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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복을 잘 갖춰입고 미사드리는 정성을 준비하겠습니다.
아멘
  
  텔샤모바일에서 올림 (2020/11/21 01: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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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복을 잘 갖춰입고 미사드리는 정성을 준비하겠습니다.
아멘
  
  펠릭스1254 (2020/11/21 10:37:40)
 이 댓글이 좋아요 싫어요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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