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예수님 화나시니 무섭네!

글쓴이 :  하늘호수♡님이 2020-09-15 21:17:47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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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oto by  -  느티신부님

 

 

 

 

+찬미 예수님

이렇게 교우 없이 수녀랑 신부랑만 하는 미사가 또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주로 끝나길 바라지만, 우리 본당은 워낙 어르신들이 많아 조심스럽습니다.

지금 이 미사를 보고 계실 교우분들, 주님의 이름으로 평화를 빕니다.

마음이 어둡고 힘들어도, 우리는 기쁘게 희망을 품고 이 어려움을 잘 이겨내야 합니다.

 

우선 많은 교우분이 궁금해하고 헷갈리시는 대송에 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우리 신자들은 주일의 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불가피하게 주일미사를 못 드렸을 때 우리 한국 천주교회는 오랫동안 주님의 기도 33번을 하고,

대송 후 가능한 한 빨리 성사를 보라고 가르쳤습니다만, 그것이 지금은 바뀌었습니다.

한국 천주교 사목 지침서 74 4 ‘“미사나 공소예절 등에도 참례할 수 없는 부득이한 경우에는

그 대신에 묵주기도, 성경 봉독, 선행 등으로 그 의무를 대신할 수 있다.”라 나옵니다.

그리고 이 대송 첫 번째가 묵주기도 5, 두 번째가 주일미사의 독서와 복음 읽는 것,

 세 번째 선행을 베푸는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이런 경우 고해성사를 받지 않아도 되지만, 마음이 편치 않으면 따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 대신 이 대송을 남용해서는 안 됩니다.

 

, 오늘 복음을 묵상합시다.

오늘 복음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에게 사탄이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유대인들의 욕 중 가장 찰진 욕 중의 하나가 사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얼마나 화가 나셨으면 수제자인 베드로에게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장애물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십니다.

 

사탄이라는 소리를 듣게 된 그 원인이 뭐겠습니까?

예수님이 제자들을 앞에 앉혀놓고 얘기합니다.

원로들, 대사제들, 율법 학자들, 즉 종교 지도자들에게 박해받고 죽을 것이다.’라고

하자마자 베드로가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은 하지 말라 하면서 펄쩍 뜁니다.

그러자 예수님께 바로 나온 말씀이 사탄아, 물러가라입니다.

 

아마 베드로와 그 옆의 다른 제자들도 예수님이 이렇게 깜짝 놀랄 정도로

화를 내시는 것에 대해 황당했을 것입니다.

 

그럼 복음의 핵심은 왜 예수님은 이토록 예민한 반응을 보이셨을까?‘

그냥 좋게 꾸짖으실 수도 있는데, 맏형을 다른 제자들 보는 앞에서 이러셨는지!

어찌 보면 이것은 큰 상처입니다.

이 이유가 무엇일까?‘가 바로 우리의 묵상 거리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사탄에게 유혹을 당했던 광야의 기억이 떠올랐던 겁니다.

광야에서 사탄은 예수님께 3가지 유혹을 하는데, 결국 어떤 것이었습니까?

사람의 일을 행하라고 했던 거죠.

네가 하느님이지만 하느님이 아닌 거로 생각하고 사람의 일만 생각해라.

 

이 세 가지 유혹의 첫 번째는 돌을 빵이 되게 해라.‘

, 사람들에게 먹을 것, 물질적인 것만 주어라. 그러면 너를 따를 것이다.

이것은 하느님의 일이 아니라 사람의 일입니다.

 

두 번째는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라.‘ 그러면 얼마나 감동하겠느냐?

한마디로 감동적이고 신기한 것 보여 주어라, 그러면 너를 따를 것이다.

 

세 번째는 나에게 절해라.‘

, 세상과 적당히 타협해라. 그러면 너를 따를 것이다.

 

이 세 가지 유혹을 예수님이 물리치기는 절대 쉽지 않았을 겁니다.

40일 동안 단식을 상태에서 돌더라 빵이 되라 한 유혹이 컸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돌멩이로 빵을 만드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아예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것에 우리는 유혹받지 않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대통령 되고 싶은 유혹을 받으신 분 있습니까?

신부님들 가운데 교황 되고 싶은 유혹 받으신 분이 있습니까?

그러나 손만 뻗으면, 눈 한번 질끈 감으면 내가 할 수 있는 것,

그것으로 사탄은 예수님을 유혹한 것입니다.

그래서 어려웠지요.

그러나 예수님은 폭력이나 힘이 아니라 말씀으로 사탄을 물리치십니다.

 

그런데도 루까 복음 4 13절에 사탄은 물러가면서도 한마디 하고 가지요.

다음 기회를 노리면서 떠나갔다.‘

예수님은 이것이 그분 뼛속 깊이 박혀 있고, 언젠가 사탄이 또 공격하리라 생각을

하고 있는데, 바로 그 사탄이 사랑하는 수제자에게 쏙 들어가

스승의 십자가의 길을 가로막으려 하고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죠.

가장 사랑하는 수제자의 입을 사탄이 갖고 노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토록 예민하게 반응을 보이셨다는 겁니다.

 

사탄은 반대자라는 뜻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하느님께 등을 돌리고 있는 자라는 뜻입니다.

우리를 하느님의 뜻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세력이 바로 사탄입니다.

사탄은 하느님의 명령을 인간의 욕망으로 바꾸게 하는 압력입니다.

 

십자가의 고통을 좋아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주님도 사실 두렵고 불안한 마음으로, 제자들에게 내가 앞으로 종교 지도자들에

의해서 박해받다 죽을 것이라고 정말 비통한 마음으로 이야기했는데,

 베드로가 이러한 주님의 마음을 흔들어 놓으니, 베드로는 장애물이었던 겁니다.

 

뒤돌아보면 우리도 하느님의 뜻보다 내 생각대로 살 때가 훨씬 더 많습니다.

또 어려운 일이 닥칠 때, 기도하거나 분별력을 청하기보다는 감정적으로

대처할 때가 더 많습니다.

분노하고 내 먹대로 처리한다면 분명히 우리는 하느님의 장애물입니다.

예수님의 장애물이요,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의 장애물입니다.

 

장애물을 라틴어로 스캔달룸(scandalum)이라고 합니다.

걸려 넘어지게 하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베드로의 그 말에 걸려 넘어질 뻔했던 겁니다

그 말에 이미 정해 주신 성자의 수난의 길을 거부하고 싶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너는 나의 장애물이다. 성부의 일은 생각지 않고, 인간의 일만 생각하느냐?‘

이렇게 베드로에게 일침을 놓으시고, 그다음 차분하게 제자들을 훈계하십니다.

제자들의 기본 수칙, 나를 따르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베드로의 이 말을 통해 예수님의 입에서 위대한 말이 나옵니다.

그런데 가만히 우리 주님이 하신 그 아름다운 명언들을 보면, 물론 평화스러울 때

나온 아름다운 말도 있지만, 더 힘 있고 강력한 말은 항상 예수님이 열 받으셨을 때예요.

우리 대부분은 열 받으면 코 평수만 커지고 씩씩거리지만, 예수님은 다릅니다.

의노를 보이신 후에는 세상을 변화시키고, 인간을 변화시키는 말을 하십니다.

 

신앙인들의 기본 수칙을 세 가지를 통해 이야기하고 계십니다.

첫 번째 자기를 버려야 한다.

자기를 버리는 것이 신앙인의 첫 번째 기본 수칙입니다.

자기를 버리는 것, 포기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는 압니다.

세례자 요한처럼 나는 갈수록 작아지고 그 붐은 갈수록 켜지셔야 하는데.

그 반대일 때가 많습니다.

삶의 순간순간 예수님 중심이라기보다는 대부분 내 중심으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항상 왕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내 자신입니다.

내가 지금 마음이 편치 못하다면 아직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행복은 포기하는 것만큼 옵니다.

 

내가 제일 버리기 어려웠던 것이 무엇이었는가 강론 준비하며 되돌아보았습니다.

제일 버리기 어려웠던 것이 선명하게 떠 올랐습니다.

하느님에게 교회에 불순종하고 싶어 했던 마음이었습니다.

교회는 순종을 원했습니다.

말도 안 되는 것을 갖고 순종하라 했습니다.

그래서 나만 희생당하는 것처럼 느끼고 살았습니다.

순종하라는 말이 떨어질 때마다 싫어요. 왜 저입니까?‘ 그 말이 목까지 올라왔습니다.

하지만, 정말 다행스럽게도 한 번도 길게 생각하지 않고 즉시 답했습니다.

, 하겠습니다.‘

우리 주님도 아실 겁니다.

사실 저라고 하는 인간은 천성이 누구에게 순명하는 성격이 아닙니다.

꼬마 때부터 동네에서도 늘 왕초 노릇을 했고, 명령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또 말도 안 되는 것에 대해 고분고분 순명하는 그런 스타일도 아닙니다.

그러한 저를 주님께서는 사제를 만드시어, 불순종이라는 그 독을 버리게 하시고, 

순종을 통하여 많은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사람마다 버려야 될 것이 있습니다.

하느님께 나가는 데 걸림돌이 되는 것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수도 없이 고해성사도 보죠.

성인 사제가 되기 위해 애쓸 때마다 나를 걸려 넘어지게 하는 그 힘은

더 강하게 나를 잡아끕니다.

 

텅 빈 충만이라는 이야기는 제가 자주 씁니다.

하지만 그 경지에 이르기는 쉽지 않습니다.

모든 이의 모든 이가 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두 번째로 매일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 신앙인의 기본 수칙이라 하십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주는 십자가, 아픈 몸뚱어리가 주는 십자가,

물질 때문에 당하는 십자가, 생각지도 않던 힘든 환경 때문에 당하는 십자가.

예수님께서는 가끔 생각날 때만이 아니라 매일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하십니다.

 

언제가 이야기해드렸죠?

십자가는 지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마디 덧붙였죠?

십자가는 지는 것이 아니라 가슴 가까이 끌어안는 것이다.

 

십자가는 고통을 뜻합니다.

고통 없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또한, 예수 그리스도 만큼 고통을 당한 사람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을 하느님은 고통만큼은 평등하게 주십니다.

고통을 억지로 받아들이기는 해도 사랑까진 어려울 겁니다.

 

저를 처음 보는 교우들은 제게 참 곱게 사제 생활하시고,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힌 것 같고,

아픈 곳도 없어 보이고, 많이 가진 것 같이 보인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 옛날 테이프나 강론을 처음부터 들으신 분들은 어떻게 저런 길을 걸었을까

 생각한다고 합니다.

나만큼 십자가가 많은 사제 있으면 나와보라고 하십시오.

얼마나 누구 십자가 더 많은지 한번 비교해 봅시다.

그렇지만 저는 한 번도 그 십자가 때문에 실망하거나 주눅 들어 산 적은 없습니다

십자가 짓눌러도 사제는 사제답게 폼나게 살아야 합니다.

신자들 앞에서 우거지상하고 살면 안 됩니다.

당장 내일 죽어도 사제답게 정갈한 모습으로 신자들 앞에 나타나야 합니다.

억지로 지는 십자가도 주님 보시기에는 기특해하실 것을 알기 때문에,

이 사제의 등과 가슴에 끌어안았던 십자가 기뻐서 진 십자가는 한 번도 없었어도,

그 십자가 지고 올라가라고 할 때까지 끝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사제로서 능동의 시간에서 수동의 시간으로 가는 길목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십자가를 지고 힘든 갈바리 산에 올라갈 때 제게

가장 큰 힘이 되었던 분은 성모님입니다.

늘 성모님의 전구를 청했고, 두 손으로 십자가 지기도 힘들었지만

내 손에는 늘 묵주가 걸려 있었습니다.

십자가의 무게를 느낄 때마다 성모님께 저는 더욱 가까이 매달리려 애썼습니다.

이것이 신앙인들의 두 번째 수칙입니다.

매일같이 자기 십자가를 져라.‘

 

세 번째 수칙은 따라오라고 했습니다.

오늘 따라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엉뚱한 길로 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길로 내달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따른다는 것은 예수님에게 절대적인 순명을 하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세주이시고 인생행로의 나침반이십니다.

그분이 안내해주시는 대로만 따라가면 절대 손해 볼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판단이 내 판단보다 못하고, 나의 지혜가 더 높다고 생각하는

그 교만을 갖고 살 때는 결과가 아름답지 않을 겁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면 고통이 없고, 부자가 되고,

모든 것이 척척 해결될 거라 말씀하신 적 없습니다.

나만 따르면 감기 한 번 안 걸릴 것이니 따르라고 하신 적도 없다는 겁니다.

예수님은 감언이설로 우리를 꼬신 적이 없습니다.

정직하게 이야기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나를 따르려면 더 고달플 것이다. 하지만 죽은 후 영생은 지켜 주마.

 

이 세상의 행복보다는 영원한 세상에 대해서 약속하셨다는 것을 믿고,

내 십자가를 남에게 떠넘기려 하지 말고,

기도의 힘으로 성사의 힘으로 주님께 은총 받아 기쁘게 지고 나가도록 노력합시다.

아멘

 

 

 

2020년 연중 제22주일(08/30) 서운동성당 김웅열(느티나무)신부님 강론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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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펠릭스1254 (2020/09/16 10: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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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멘~
  
  백발 (2020/09/16 12:5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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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멘, 김웅열(토마스 아퀴나스)신부님, 강론말씀감사드립니다, 신부님, 영육간에건강하시고 하느님의은총이 충만하시기를기도드립니다, 아   멘~~~
  
    ♡마리아♡ (2020/09/20 14:5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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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자매님이 제 블로그에다 만명 천사가 되고싶다면서

신부님 계좌번호 알려달라고 하던데요??

알려주시면 전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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