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길 위에서 만난 진리와 생명

글쓴이 :  하늘호수♡님이 2020-05-17 21:14:48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7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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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만봉/블라시오님 from 신앙사진방>

 

+ 찬미 예수님

오늘 입장하면서 하느님께 감사하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었어요.

야외에서 미사를 드리는데, 비를 그쳐주셨죠.

그런데 현수막을 앞에서는 못 보았는데, 뒤에서 보니 ‘T. 아퀴나스’라고 되어있네요.

‘토마스 A.Q’라 적어야 해요.

토마스가 이름이고, 아퀴나스는 출신 동네 이름입니다.

토마스라고만 하면 많아서 구분하기 어렵잖아요?

 

자, 오늘 복음은 지난주 무슨 요일 복음이랑 똑같죠, 언제였죠? 금요일.

혹시 지난주 금요일 제 강론 제목 기억나시는 분은 손들어보세요.

제가 강론한 것 열심히 팟빵과 유튜브에 올리는데, 제목을 기억하세요?

이런! 선물로 주려고 귀한 묵주를 가지고 나왔는데, 안타깝습니다.

지난주 제목이 특이해서 기억할 줄 알았어요.

‘도로공사 사장님이신 예수님’

길 안내하는 내비게이션이 아니라 길 자체라고 하셨으니 도로공사 사장님이라 했죠.

저는 강론 내보낼 때 강론 내용보다 제목에 엄청 신경을 씁니다.

제목을 보고 무엇을 말할지 50%는 이해할 수 있거든요.

 

오늘 복음의 핵심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입니다.

그런데 이 엄청나고 위대한 말이 나오게 된 것은 누구의 질문 때문입니까?

사도 토마!

‘어디로 가시는지 모르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에 대한 답이죠.

다른 제자들은 궁금해도 두려워서 묻지를 못했어요.

 

토마스의 성격은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는 그런 성격이 아니었죠.

성실한 회의 속에서 확실한 진리를 찾으려고 애쓰는 사람이었어요.

얼치기로 알고 있는 그러한 진리는 사실 진리가 아니에요.

기초도 안 되어있는 것으로 남에게 전달하려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입니다.

다른 사람한테는 ‘의심쟁이 토마’라고 2000년 동안 듣고 있지만, 토마 사도의 장점은

확신의 이르기 위한 의문을 계속 두드린 거죠.

그래서 이 세상에 어리석은 물음은 없다 합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이 위대한 말씀이 의심하는 자의 물음으로 나왔다고 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지요.

누구도 하느님에 대하여 궁금한 것이 부끄럽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입니다.

왜냐하면, 구하는 자는 분명히 선명하게 예수님께서 알려주실 것이기 때문이지요.

 

자, 예수님이 당신 자체라 하신 것 세 가지!

첫째가 길이고, 둘째가 진리고, 셋째가 생명이라 하십니다.

 

첫 번째, 길을 안내하거나 보여주는 사람이 아니라 바로 그 자체, 길이다

길에는 좋은 길도 있고 나쁜 길도 있지요.

좋은 길로 가면 장수와 번영을 약속한다고 구약 성서에 나옵니다.

잠언 8장 20절에 좋은 길은 정의를 실천하는 길이라 했습니다.

시편 119장 30절에 좋은 길은 진리에 대한 충실함이라고 했습니다.

이사야서 59장 8절에 좋은 길이라는 것은 평화를 추구하는 길이라 했습니다.

정의를 실천하고 진리에 대한 충실함에 불타고 평화를 추구하는 좋은 길을 걷는 사람에게

야훼 하느님은 장수와 번영을 내린다는 것이 바로 구약의 좋은 길의 뜻이지요.

 

세상에는 많은 길이 있습니다.

그러나 길의 존재 이유는 다 똑같습니다.

길의 존재 첫 번째 의미는 밟히는 데 있습니다.

그 무엇에 밟히지 않는 것은 길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길 자체 있셨기 때문에 2000년 동안 무수한 인간들한테 밟히고 사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닮아서 밟혀야죠.

누구를 밟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 신앙인들은 밟히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비싼 땅이 되려면 사람이 많이 밟고 다녀야 한다고 가끔 이야기했지요?

사람이 밟지 않는 땅은 몇 푼 안가지만 통행이 많은 땅은 저절로 값이 올라요.

많이 밟힐수록 우리는 비싼 영혼이 된다고 얘기했습니다.

 

나쁜 길은 잠언 21장 8절에 굽은 길로 이야기합니다.

마음이 비뚤어진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 공동체가 비뚤비뚤한 공동체가 있습니다

죄인의 길은 굽고 의인의 길은 곧다고 잠언은 말하고 있습니다.

 

나쁜 길로 가는 사람들은 3종류가 있다고 구약에서 얘기합니다.

첫 번째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잠언 12장 15절. ‘어리석은 사람들은 제 잘난 맛에 산다.’

두 번째 나쁜 길을 가는 사람들은 죄인들입니다.

시편 1장 1절 ‘죄인들의 길을 걷지 않게 해주시고’,

바로 죄인들이 가는 길을 걷지 않게 해달라는 간절한 찬송으로 시작이 됩니다

나쁜 길을 가는 세 번째 인간들은 악인들입니다

예레미야서 12장 1절에 ‘어찌하여 악인들에게 자비를 베푸시나이까? 억울합니다’

 

나쁜 길에 들어선 사람들, 다시 말하면 굽은 길을 들어선 자들은 저절로 어리석은 자, 죄인, 악인들이 되지만

이들에게 마지막에 다가오는 것은 장수와 번영이 아니라 멸망과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길 중에서 어느 쪽을 선택하거나 자유입니다.

그러나 각자는 그 선택에 따른 책임을 분명히 져야 할 겁니다.

생명에 이르는 길은 좁고 선택하는 사람이 적었지만, 죽음에 이르는 길은 넓고 이 길을 걸으려는 사람은 많다고

 마태복음 7장 13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오늘 예수님께서는 나는 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진리는 도덕적인 진리가 있고 과학적인 진리가 있습니다.

특별히 도덕적인 진리를 가르치는 사람은 배우는 사람에게 많은 영향을 끼칩니다.

사제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교우들에게 많은 영향을 줍니다.

도덕적이고 종교적이고 윤리적인 진리를 세상에 외쳐야 하는 여러분들도 이 세상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줄 겁니다.

그러나 도덕적인 진리를 가르치는 사람이 입으로는 관대함의 가치를 말하면서 누구보다도 탐욕스럽다면,

그 사람의 입에서 겸손을 가르치면서 누구보다도 횡포 하는 자로 산다면,

인내를 가르치면서 성미 급한 자로 사람들의 머릿속에 남는다면,

용서를 가르치면서 다른 입으로는 누구를 저주하고 산다면, 우리는 이런 자를 위선자라고 합니다.

이런 자들이 가르치는 것은 아무 힘이 없고 효력이 없고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도덕적인 진리는 모범을 보임으로써 가르쳐야 합니다.

자기가 가르치는 진리를 물론 100% 구현하는 자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당신이 하는 말 지키려고 애쓰는 분이다’라는 평가는 받아야 합니다.

도덕적인 진리를 가르치는 선생이 잘 못 살 경우는 큰 심판 받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예수님만이 내가 진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나는 너에게 진리를 가르쳤다’라고 밖에 할 수 없는 거지요.

 

세 번째로 오늘 예수님은 나는 생명 그 자체라고 하십니다.

인간 생명의 특징은 값진 겁니다. 그러나 동시에 덧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 모든 생명체는 일시적이고 한정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기도를 통하여 나오는 이 '작은 숨'에 의하여 우리 생명은 유지가 됩니다.

이 '숨'을 통하여 생명을 유지한다고 하는 것은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는 분에게 오로지 우리의 생명은 달려 있습니다

실제로 생명은 짧은 것이고 한 가닥 연기고 그림자고 허무입니다.

더군다나 생명은 태초 이래로 점점 수명이 줄어들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창세기 47장 9절에는 130년을 살게 해 놨다고 나옵니다.

그러나 그것이 창세기 6장 3절에 120년으로 줄어듭니다.

그리고 그 후에 100년으로 줄어들고, 심지어 시편 90장 10절에는

 ‘사람은 기껏해야 70년 근력이 좋아야 80년’이라고 하는 80년까지 떨어집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는 자는 죽지 않을 것이고, 영생에 대한 확신 때문에 이 세상 어려움을

기쁘게 극복할 것’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걱정하지 말아라’ 하시는 말씀을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주십니다.

지금 여러분들 마음속에 걱정거리가 있다면 다 맡기십시오.

지금 여러분들이 행복하지 않다면 분명히 무언가에 집착한 것이 있을 겁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욕심의 마지막 한 조각을 포기할 때 기쁨의 기적이 옵니다.

여러분 몸 안에 암 덩어리가 있다면 암도 여러분 몸의 일부라고 받아들이십시오.

그러면 그 암도 그것을 알아서 그냥 남들 사는 것만큼 퍼지지 않고 동거합니다.

행복은 내가 애착하는 것을 마지막 한 조각을 포기할 때 일어납니다.

 

그래서 우리는 걱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의 손을 꽉 잡고,

엄마 손을 놓치지 않으려는 아이처럼 주님의 손을 꽉 잡고

어디든지 따라나설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주님의 손을 꼭 잡고 우리는 인생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내가 가고 싶은 길이 있고, 현재 가고 있는 길이 있고, 가야만 될 일이 있습니다.

우리 신앙인은 가야만 될 길, 예수님이 가신 그 길, 비록 힘들어 보여도 가야 합니다.

저도 37년을 그 길을 따라 이렇게 이 시간까지 왔습니다.

여러분들도 숨이 다할 때까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 옷자락 꽉 잡고

주님이 이끄시는 대로 살아가도록 애씁시다.

아멘

 

♣2020년 부활 제5주일(05/10) 서운동성당 김웅열(느티나무)신부님 강론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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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소연레아모바일에서 올림 (2020/05/18 00: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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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백발 (2020/05/18 08:4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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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멘, 김웅열(토마스 아퀴나스)신부님, 강론말씀감사드립니다, 신부님, 영육간에건강하시고 하느님의은총이 충만하시기를기도드립니다, 아  멘~~~
  
  펠릭스1254 (2020/05/18 10:0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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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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