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화해와 무관심

글쓴이 :  하늘호수♡님이 2020-04-27 21:17:52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959)
첨부파일1 :   성금요일.jpg (472.7 KB)
    이 게시글이 좋아요(1) 싫어요

클릭하시면 원본 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 찬미예수님

우리는 성삼일 가운데 성금요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성금요일 전례는 1부 말씀의 전례 ,2부 십자가경배, 3부 영성체 이렇게 3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지요.

 

살다보면 부모나 형제, 또 이웃과 어떤 일 때문에 서로 마음을 상하게 할 때도 있고

잘못을 저지를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잘못한 것을 회복하는 길은 무엇일 것 같습니까?

회복하는 길은 화해입니다.

그런데 이 화해를 거절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단절이 됩니다. 그리고 인연이 끊어집니다.

그런 다음 죽음의 상태로 들어가게 됩니다.

 

형제지간에 의를 끊고 사는 사람들 의외로 많습니다.

의만 끊는 것이 아니라 원수까지 됩니다.

법정에 가서 싸우고, 좀 불행 하지요.

그야말로 드라마에만 나오는 이야기들이 우리 주변에 너무 많습니다.

 

단절이 되고 서로 간에 인연이 끊어지고 죽음의 상태가 되는 것은

상대와의 화해를 거부할 때만 나오는 결과는 아닙니다.

마땅히 해야 할 본분을 하지 않았을 때도 역시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예를 들어 부모님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불손한 행위가 아니라 하더라도

부모에 대해 무관심한 상태가 지속이 될 때는 역시 결과만큼은 똑같은 거죠.

상처를 줄 때나 무관심 할 때나 결과는 똑같다는 거예요.

 

그 유명한 부자와 나자로 이야기에서 명확히 드러납니다.

부자는 대문 앞에 있는 나자로에게 악을 행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부자는 지옥에 가고 나자로는 천국에 갔어요.

부자가 지옥에 간 이유는 나자로에게 악행을 행했기 때문이 아니라

적극적인 선을 베풀지 못했기 때문에, 즉 무관심했기 때문입니다.

 

싸우고 난 다음에 화해하지 않아도 서로 간에 죽음의 상태로 들어갑니다.

‘저 인간 보기 싫어, 저 인간은 내 머리에선 유령이야.’ 하면서,

상대방이 교중미사 나오니 저녁미사로 옮겨, 미사 때 안 보인다고 마음이 편합니까? 안 편합니다.

무관심이라고 하는 것은 더 큰 죄요, 더 튼튼한 지옥에 자기를 가두는 것입니다.

 

하느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겠죠?

태초에 창조주 하느님은 인간에게만 지혜와 의지와 자유를 주어서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자유와 지혜와 의지를 가지고 선악과를 건드립니다.

이리하여 하느님과의 관계가 깨집니다.

신앙은 한마디로 관계성 입니다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 나와 이웃과의 관계, 나와 나 자신과의 관계가 바로 신앙입니다.

 

최초의 그 약속을 깨뜨렸기에 아담 하와와 하느님은 단절되고 죽음 상태로 들어갑니다.

자유가 없다면 죄를 지었을 일도 없고 책임질 일도 없을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개 주인에게 책임은 물어도 사람을 물은 개에게 책임을 못 묻습니다.

정신병자 상태에서 사람을 죽여도 병원에 가두지 일반형벌에 따라 단죄하지 못합니다.

왜? 정신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화해는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 회복입니다.

구원은 하느님과 사람사이의 관계 회복입니다.

하느님과 사람사이의 관계 회복을 우리 편에서 볼 때 구원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면 이 관계 회복을 위하여 인간 쪽에서 한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어찌 보면 무능뿐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나서신 겁니다.

우리 쪽에서는 절대로 우리의 능력으로는 구원받을 길이 없었습니다.

독생성자를 보내신 겁니다.

그래서 아담와 하와의 그 불순명을 성부께 죽기까지 순명으로 바꾸어 놓으셨고,

첫 인류의 교만을 인간에 대한 극진한 사랑으로 바꾸어 놓으신 겁니다.

 

내가 받아야 될 벌을 누군가 대신 받아주고 죽어준다면 얼마나 고마운 일이겠습니까?

그 사람은 은인입니다.

그 고마움을 모르는 되면 인간이 아닙니다.

예수그리스도는 내가 받아야 할 벌, 인류의 보속을 대신 받으신 겁니다.

 

저녁식사하시고

비탄의 겟세마니 기도를 바치시고,

흉악범 취급당하시고 끌려가시고,

조롱과 태형을 당하시고,

이리저리 끌려 다니면서 조롱거리가 되시고,

피투성이가 된 채 머리에는 가시관을 쓰시고,

무거운 십자가나무를 지고 세 번이나 넘어지시고,

골고타 언덕에서 옷 벗겨진 채 네 수족이 못 박혀

십자가위 허공에 달려 강도들 사이에서 죽으십니다.

그 심장에 창이 박혀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세상에 내어 주십니다.

 

우리를 대신해서 성부께 드리는 순명이었습니다.

우리를 대신해서 하신 보속이었습니다.

 

우리 죄 많은 인류를 대신해서 하신 사랑이시었기에

우리는 십자가상의 예수님의 작은 숨소리 하나에도 감사드려야 됩니다.

그분의 걸음걸이 하나하나, 그분의 흘러내리는 그 빗방울 하나하나에도 우리들은 진정 감사해야합니다.

내가 받아야 할 벌을 그분이 대신해서 받고 있기 때문에 있지요

 

하느님과 아직 화해 못하신 분들은 화해하시기 바랍니다.

사제 앞에서 고백 성사를 볼 수 없는 그런 상황이라 하더라도,

여러분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하느님 앞에 무릎을 꿇고 화해하시어 부활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

아멘

 

♣2020년 주님수난 성금요일(04/10) 서운동성당 김웅열(느티나무)신부님 강론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카페에서

 

 

  

카카오스토리에서 공유하기 페이스북에서 공유하기 네이버 밴드에서 공유하기 트위터에서 공유하기 구글+에서 공유하기 Blogger에서 공유하기

  펠릭스1254 (2020/04/28 10:14:08)
 이 댓글이 좋아요 싫어요
† 아~멘~
  
  백발 (2020/04/28 10:23:24)
 이 댓글이 좋아요 싫어요
아   멘,김웅열(토마스 아퀴나스)신부님, 강론말씀감사드립니다, 신부님, 영육간에건강하시고 하느님의은총이 충만하시기를기도드립니다 아   멘~~~
  

   
  댓글 쓰기

 
로그인 하셔야 댓글쓰기가 가능합니다. 여기를 눌러 로그인하세요.
 

이전 글 글쓰기  목록보기 다음 글

본 게시물에 대한 . . . [   불량글 신고 및 관리자 조치 요청   |   저작권자의 조치요청   ]
마리아사랑넷 | 이용약관 | 개인정보보호정책 | 메일추출방지정책 | 사용안내 | FAQ | 질문과 답변 | 관리자 연락 | 이메일 연락
Copyright (c) 2000~2021 mariasarang.net , All rights reserved.
가톨릭 가족공간 - 마리아사랑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