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여포야, 들어간다!

글쓴이 :  하늘호수♡님이 2020-04-24 20:55:01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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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 느티나무신부님

 

+찬미 예수님

교우 여러분들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주님수난 성지주일입니다.

하지만 성지 가지를 들지도 못하고, 또 사제와 함께 예루살렘을 향하는 예수님의 모습도 재현하지 못했습니다.

 

오늘 성경을 보면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들어가십니다.

그런데 이 장면을 볼 때마다 조금 예전의 예수님 모습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듭니다.

늘 당신이 하신 일 감추시고 함구령 내리시고, 겸손하기 그지없으신 분이었는데,

오늘은 마치 왕이라고 되듯이 폼을 잡으시면서 입성을 하십니다.

곰곰이 생각을 해보면 오늘 예수님의 입성은 반대자들에 대한 선전포고였습니다.

 

우리가 이제껏 매일 미사 때 요한복음 묵상하면서, 예수님의 사형결정을 내리기까지

신성모독이라는 죄명으로 예수님께 굴레를 씌워 호시탐탐 언제 잡아 갈 것 인가만을 엿보고 있는

수많은 반대자들과 적들에 둘러싸여 예수님의 목숨은 늘 위태로웠습니다.

그리고 이제 당신의 때가 되신 것을 아시고 입성하십시다,

어찌 보면 그동안 나를 괴롭히고 중상모략 했던 그리고 나를 해하려고 했던 그 많은 사람들에 대한

마지막 선전포고의 모습이 아니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또 예수님이 오늘 나귀를 타고 가셨던 이때도, 예루살렘백성들은 ‘호산나, 다윗의 후손’이라 외쳤지만,

사실은 그렇게 좋은 분위기도 아니었을 겁니다.

죽으러 올라가시는 길이었고, 또 예수님의 동향을 살피려는 사람들이 얼마나 구석구석 많이 숨어있었겠습니까?

보통 이런 환경에서는 몸을 숨기는 것이 상례지만, 오늘 예수님은 마치 삼국지에 나오는 것처럼

‘여포야, 나 들어간다.’하며 당당하게 환호를 받으면서 입성하십니다.

 

그런데 오늘 이 백성들의 대대적인 환영을 조금 분석을 해보면 진실성이라든지 어떤 믿음성과는

별 관련이 없어 보입니다.

현세적인 삶을 구하는 그들이었기 때문에 종살이로부터, 식민지로부터 정치적인 해방,

그리고 나아가서는 선민으로서 세상의 지배를 실현시켜 주리라는,

현세적인 삶을 충족시켜주는 메시아로 기대했던 것이었지 영생의 메시아를 기다렸던 것은 아닙니다.

그들의 생각과는 아주 다르게 예수님은 그런 메시아 역할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니 백상들의 꿈은 일순간에 무너졌습니다.

기대에 못 미치자 백성들은 분개하여 바라빠를 놓아주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일종의 보복을 합니다.

열열이 환영하던 어제 그 백성들이 오늘은 배반자가 되어 돌을 던지고 침을 뱉습니다.

그리고 죽이라고 합니다.

그들이 예수님에게 걸었던 화려한 기대만큼 예수님을 사정없이 짓밟아 버립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르고 있었던 거죠

하느님을 죽이리라는 상상도 못할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그들은 모르고 있던 거죠.

인간의 역사가 있는 한, 어느 민족보다도 하느님과 가까웠던 그들이 하느님을 2천 년 전에 죽였다고 하는

주홍글씨가 유대인에게 따라다닐 것이라는 것을 몰랐던 겁니다.

 

오늘 예수님의 수난사는 굉장히 깁니다.

예수님의 수난사에는 그분의 죽음의 협력자, 공을 쌓은 여러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어떻게 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데 기여했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예수님의 죽음에 제일 큰 공로를 세운 인간은 대사제들과 원로들 입니다.

대사제는 사두가이파들이라고 했습니다.

사두가이파들은 율법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현세적인 복락을 가진 자, 다시 말하면 기득권.

어떻게 해서든지 로마에 밉보이지 않아야만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그들이었죠.

만일 예수님을 그대로 두면 폭동이 일어날 것이고, 그것이 로마황제의 귀에 들어가면 유대인들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 죄로 분명 엄한 벌이 떨어진 것이라는 두려움에 가득 차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바로 그들이 바로 대사제였고, 그 해의 대표는 가야파였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자기들의 기득권을 무너뜨릴 수 있는 위험인물로 분명히 보였겠죠.

마태복음 21장 12절에서 17절에 성전정화 장면에서 보듯이 성전세와 장사꾼들에게 받은 자릿세가 바로

대사제들의 주머니로 들어갔었는데, 예수님은 그것을 깡그리 없앨 수 있는 아주 위험인물로 보였던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대사제와 원로들에게는 눈엣가시였습니다.

이 때문에 죽일 음로를 꾸미기 시작했고, 그리고 죽이기로 결심을 한 겁니다.

 

예수님의 수난사에서 그분의 죽음의 어두운 공을 쌓았던 두 번째 인간은 유다스입니다.

유다스는 대사제와 원로들의 함정에 빠져 스승을 팔아넘깁니다.

좀 더 심리적으로 유다스 입장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가는 측면도 있습니다.

유다스는 알다시피 조직에서 총무, 돈주머니를 관리하던 사람이었죠.

지금처럼 예수님 후원회가 있어 통장으로 돈이 착착 들어오던 시절도 아니었고.

끼니때마다 제일 몸이 다는 사람은 유다스였을 겁니다.

물론 착한 예루살렘 여인들이 십시일반 예수님과 열두제자를 돕지만 부족했을 거예요.

그래서 늘 제자들은 배가 고팠던 것 같아요.

안식일 밀밭사이를 지나다 덜 익은 이삭을 주워 먹다 주인에게 혼나는 이야기도 있죠.

또 예수님은 곰곰이 자신을 생각하니 좀 처량하셨죠.

‘여우도 굴이 있고 새도 둥지가 있지만, 인자는 머리 둘 곳조차 없구나.’하십니다.

그야말로 월세, 사글세도 없고, 아무것도 없던 그 분 아니었겠습니까?

이런 예수님을 모시고 다른 열한제자와 공동체를 끌어간다는 것은

총무입장에서 엄청나게 벅차고 큰 부담이었을 겁니다.

그럴 때 유혹이 들어옵니다.

‘팔아넘기면 돈을 주겠다.’

유다스는 묻죠.‘ 내가 예수님을 넘기면 얼마를 주겠소?’

은전 30냥을 준다 했습니다.

은전 30냥은 그 당시 노예 한 사람을 사고 파는 값입니다.

그리고 13명이 적어도 몇 달은 빵을 살 수 있는 값이었죠.

아마 유다스는 순간적으로 머리를 굴렸던 것 같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예수님은 내가 팔아넘겨도, 끌려가는 척하다 당신 능력으로 분명히 살아 나오실 분이다.

그러면 주머니에 은전 30냥은 들어올 것이고, 예수님은 또 살 것이고, 꿩 먹고 알 먹고다.’

이런 나름대로 자기 위주의 예수님을 생각했던 겁니다.

그래서 팔아넘겼지만 제 뜻대로 되지 않죠.

예수님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맥없이 끌려가십니다.

쫒아가면서 지금쯤은 뭔가 행동을 보이실 텐데, 그렇게 맞으시고 왜 가만히 계실까?

왜 저항을 못하실까?

그 전에 보이셨던 엄청난 능력, 죽은 이도 살리고 마귀에게 호령 치던 그 모습으로

로마 군인들을 왜 물리치지 않으실까?

그러나 유다스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그냥 비참하게 너무나 애통하게 돌아가십니다.

유다스는 어떻게 할 수 없었을 겁니다.

내 계획은 이것이 아니었는데!

내가 아무리 당장 돈이 귀해도, 또 그 돈도 개인을 위해서 쓸려했던 돈도 아니었고,

내가 은전 30냥에 선생님이 죽기를 바라는 인간은 아닌데!

결국 유다스는 성모님 곁으로 못 갑니다.

그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모습으로 예수님을 그리고 있는 대표적인 모습이 유다스 입니다.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은 이래야만 돼’ 하면서 본인의 예수님을 만들어 갑니다.

이 돈에 대한 욕심과 분별없음은 인간을 눈 멀게 합니다.

돈이 하느님인 사람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거겠죠.

그래서 돈 때문에 인간역사 이래 밀고도 있고 배신도 있고 청부살인도 있었나봅니다.

 

 

세 번째로 예수님의 죽음에 깊이 관여했던 사람은 열두 제자들입니다.

현세적인 출세를 꿈꾸면서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그들은 스승님이 체포되자

‘그 다음은 우리들이다. 우리도 잡히면 죽는다.’ 하는 마음으로 하나같이 도망칩니다.

신앙 때문에 어떤 불이익이라도 생긴다면 언제나 도망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옛날 순교자들이 주로 누구의 고발로 끌려간 줄 아십니까?

대부분은 하느님을 배반한 신자들의 의해서 밀고 당하여 끌려갔던 겁니다.

우리나라 역사의 독재 시절에 공직에 있는 천주교 신자들 중, 천주교가 탄압을 받을 때

천주교인이 아닌 것처럼 살았던 사람도 많습니다.

심지어는 자기 신상 카드에서 천주교를 돈을 주고라고 지운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불이익이 와도 천주교 신자임을 밝혔던 교인은 비록 세속적인 출세는 못했어도

하느님의 축복을 많이 받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밖에 예수님의 죽음에 관여했던 인간으로 또 누구인지 떠오르십니까?

성난 군중들입니다.

그 군중들은 가운데는 예수님 기적의 수혜자들이 많았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4000명을 먹였을 때 그 자리에서 하느님을 찬미했던 사람들,

눈이 멀었다 눈을 뜬 사람들, 마귀 들렸다가 마귀 떨어져 나간 사람들,

하느님에게 받은 그 은혜를 배반합니다.

망은의 죄를 집니다.

그리고 바라빠를 놓아주고 예수를 죽이라고 소리 지릅니다.

‘호산나 다윗의 후손이여’ 하면서 나뭇가지를 흔들었던 그들이 폭도로 변합니다.

 

그리고 또 예수님의 죽음에 관해했던 다섯 번째 인물은 빌라도입니다.

로마 황제를 대신해서 유대 땅을 다스렸던 총독이죠.

그래서 아주 정치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만일에 예수라고 인물 때문에 뭔가 시끄러운 일이 생기면 자기 정치생명에 분명히 영향이 올 것이라는 생각에,

죄 없는 것을 알면서도 예수님을 죽이라고 내 줍니다.

그리고 손을 닦습니다.

 

이렇게 지금 살펴본 대사제와 원로들, 유다스, 12사도, 성난 군중, 빌라도.

바로 이러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기득권 수호 때문에, 돈 욕심 때문에. 비겁함 때문에, 정치적인 출세를 위해

사지로 내몰았던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죽음은 인간의 죄악의 공모 작품입니다.

 

우리는 이 성주간에 이 다섯 인물 가운데 나와 겹쳐지는 인물은 없나 살펴봅시다,

또 내가 그렇게 살았다면 나 역시도 예수님을 죽음의 내몰았던 그런 주인임을 고백하고 새로 사는 길을 택해야합니다.

‘주님은 너 때문에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바로 나 때문에 돌아가셨다’는 것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사랑은 교우 여러분들, 성주간 동안 많이 안타깝고 힘들겠지만 그래도 우리들은 어둠 속에서도 강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꽃밭 속에서 크는 것이 아니라,

모세가 야훼의 목소리를 들은 장소가 푹신한 잔디밭이 아니라 가시덤불 속이듯,

우리들도 이 어둠 속에서 예수님 만날 겁니다.

그리고 새롭게 부활하고 온 인류가 다시 한 번 영적인 세탁을 하여 새롭게 부활 한다면

어둠은 빛을 못 이깁니다.

이 어둠은 분명히 물러날 거라고 믿습니다.

여러분들 힘내십시오.

그리고 많이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2020년 주님 수난 성지주일(04/05) 서운동성당 김웅열(느티나무)신부님 강론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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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펠릭스1254 (2020/04/25 09:4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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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멘~
  
  세실리아99 (2020/04/25 11:3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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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미예수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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