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소생 3 언

글쓴이 :  하늘호수♡님이 2020-04-24 06:47:55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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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 느티나무신부님

 

+ 찬미예수님!

 

은퇴하신 할아버지 신부님이 어느 한 본당에 미사 한 대를 맡아서 해 주셨어요.

그런데 복사 아이들이 그 할아버지 신부님 미사 복사 안 서려고 자꾸 빼는 거예요.

왜 그런가 보니 그 신부님이 미사 때 방귀를 잘 뀌어.

방귀도 종류가 많죠.

소리가 크게 나는 방귀는 청각적으로는 괴로워도 후각적으로는 문제가 없어요.

이 은퇴 신부님 방귀는 거의 화생방 수준, 뽕하고 나오는 게 아니라 그냥 새는 거죠.

주로 성작 들어 올릴 때 힘이 들면 자기도 모르게 방귀가 새는 거죠.

한동안은 방귀가 제의 속에 머물다가 슬슬 빠져나가면 그 옆에 얌전하게 무릎을 꿇고 있는

복사 아이들의 콧구멍으로 쏙 들어가는 것에요. 아이들이 그냥 발라당!

그런데 그것이 다가 아니라, 대리석 바닥에 땡그랑 뭔가 떨어지는 소리가 나요.

그게 무슨 소리인가 봤더니 대못이 하나 어디서 빠져 제단에 굴러 떨어진 것에요.

천장에서 못이 빠졌나 하고 둘러 봤더니, 세상에!

예수님이 코 막느냐 손에 있던 못이 빠진 거야.

 

사람의 몸에서 나가는 냄새가 향기로 울까요? 대부분 안 좋죠.

사람의 몸 안에 있는 가스가 빠져나갈 때도 역겨운 데 죽을 때 냄새가 어떨까?

요즘은 시신이 생겨도 바로 냉동실로 들어가 썩은 냄새가 나는 것은 잘 모르죠.

예전 집안에서 장례를 지낼 때는 병풍 뒤에 관을 비스듬하게 세워놓잖아요.

삼복더위에는 이틀만 지나도 시신이 썩기 시작해서 물이 줄줄 흘러내려요.

조문 가서 절을 하면 물이 흘러서 바닥에 보이고 냄새는 이루 말할 수가 없죠.

그렇게 썩은 시신을 산에 묻을 때는 얼마나 냄새가 나겠어요?

살아서는 온갖 치장을 다했어도 숨 끊어지고 나면 자식도 만지게 싫은 게 사람의 썩어가는 몸뚱이에요.

 

오늘은 무덤에 묻힌 지 사흘이 지난 나자로를 소생시킨 기적의 이야기가 나오죠.

실제로 사흘인지 오일인지, 육일인지 정확히 몰라요.

예수님이 인간을 대상으로 하셨던 기적은 크게 내용으로 볼 때 세 가지에요.

첫 번째가 구마, 두 번째가 치유, 세 번째 소생.

죽은 사람을 살리는 소생의 기적은 성경에 딱 세 번 나와요.

루카복음 7장 11절 죽은 과부의 아들을 살리는 이야기,

마르코 복음 5장 21절 야이로의 딸을 소생시키는 이야기,

오늘 복음, 나자로의 소생, 딱 세 번이 나옵니다.

 

지난주일 복음, 2주전 복음이 어떤 내용이었는지 기억이 납니까?

2주전 복음의 힌트는 우물가.

결혼을 다섯 번이나 하고 지금 남편도 자기 남편인지 아닌지 몰랐던 그 여인,

너무 창피하고 부끄러워서 사람이 없는 대낮에 물 뜨러 왔다 예수님을 만났잖아요?

그리고 그 여인은 육신의 물만이 아니라 영적인 물, 생명의 물을 예수님을 통해서 얻죠.

그 후 두려움과 무서움을 다 물리치고, 동네 사람들에게 예언자를 만났다고 전하죠.

예수님 만난 다음에 확 변했죠.

 

지난 주 복음은 소경의 치유에요.

사마리아의 여인을 통해 생명의 물이 전달되었고 소경의 치유를 통해 빛이 전달되었죠.

육신의 눈만 열린 것이 아니라 영안까지 같이 열렸다.

 

오늘 나자로의 소생을 통해서는 바로 생명의 주인이심을 나타내십니다.

생명의 물을 주시는 주인이 바로 예수님이시고, 빛의 주인이 바로 예수님이시고,

오늘 나자로의 부활을 통해서 생명의 주인이 예수님이라는 것이 오늘 복음의 핵심이에요.

 

오늘 긴 복음을 이렇게 중간 중간 끊어서 짧게 했습니다.

문맥이 좀 안 맞는 게 있는데 미사 끝나고 오늘 복음 전체를 읽어보세요.

대충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마르타, 마리아, 나자로, 이 남매를 예수님은 극진한 사랑을 갖고 대했던 것으로 나오죠.

사람들이 나자로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을 때 예수님은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그 병은 죽을병이 아니야. 그 죽음으로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날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렇게 사랑하던 나자로가 중병으로 앓아 누워있다는 것을 아셨다면

‘내가 빨리 가봐야겠다.’라고 하셔야 되는데 안 가시고 이틀을 더 머무르시는 것에요.

속이 타죠. 저분이 빨리 가셔야 뭔가 해결이 될 것 같은데.

그러면서 툭 던지시는 말이 ‘그 병은 죽을병이 아니야.’

그런데 실제로 육신적으로 죽었잖아요?

오늘 생략된 복음 7절, 8절에 보면 이틀이 지나고 난 다음에 예수님이 그때야

유다로 돌아가자 하고 나서시니까 제자들이 말리죠.

‘선생님, 얼마 전에 그 땅에 갔다가 선생님을 돌로 치려고 했는데 죽으려고 가십니까?’

나자로를 살리는 것이 당신을 죽게 만들 직접적인 원인을 준다는 것을 예수님은 아셨죠.

그렇지만 ‘가자.’ 죽음을 각오한 말씀을 하시면서 나자로를 향해서 가십니다.

 

이런 예수님의 태도를 통해 우리들이 묵상할 것이 있다면,

우리도 누군가를 살리려는 마음이 있다면,

누군가를 부활시키려는 마음이 있다면,

영적으로 죽은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살리려는 마음이 있다면 죽음을 각오해야 된다는 뜻입니다.

 

제가 교우들에게 가끔 그런 얘기를 해요.

‘누구 성당에 좀 나왔으면 좋겠네.’

그건 생각이지 기도가 아니야. 걱정이지. 걱정과 기도는 다르다고 그랬죠.

걱정하면 마귀가 들끓지만 기도하면 기적이 일어나요.

누군가를 살리려는 간절한 마음이 있다면 행동으로 보여야죠.

십자가 밑에 이름과 세례명 붙여놓고 1년 동안 십자가 볼 때마다 주모경만 바쳐보세요.

안 나올 것 같습니까? 나옵니다.

누군가를 살리려는 마음이 있다면 죽을 각오로 살리려는 애씀이 있어야 된다는 것이죠.

자신은 조금도 부서지지 않고, 시간과 노력과 물질을 조금도 손해 보지 않으면서

누군가를 도와주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에요.

 

4절에 ‘그 병은 죽을병이 아니다. 그 병을 통해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낼 것이다.’

주님께서 못 고치는 병이 없고, 용서하시지 못하는 죄가 없다는 뜻일 겁니다.

어느 철학자는 절망을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그랬어요.

‘저는 죽어가고 있습니다.’ 아니야, 너는 죽을병이 아니야‘

자기 혼자 죽어가고 있다고 그러는 거죠.

‘주님, 저는 죄를 많이 지어서 회생할 기미가 없습니다. 저는 구원 못 받겠지요?’

회개의 끝은 절망이 되어서는 안 되고 기쁨과 소생으로 연결이 되어야 됩니다.

 

유다 땅으로 가십니다.

묵상할 많은 얘기들이 나오지만 다 얘기할 수는 없고, 끝부분만 얘기하도록 합시다.

끝부분에 아주 중요한 얘기가 나오죠.

예수님이 끝부분에 세 가지 말씀을 하세요.

저는 그것이 누군가를 소생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야 할 소생삼언,

아니면 부활삼언이라고 제 나름대로 묵상하면서 정했습니다.

 

첫 번째, 1언 ‘돌을 치워라’.

저의 4권의 묵상 책 중에서 1권의 제목이 39절의 ‘돌을 치워라.’입니다.

두 번째, 2언은 ‘나자로야 나오너라.’

마지막 세 번째는 44절에 나오는 ‘풀어주어 가게 하여라.’

이 세 가지가 누군가를 소생시켰을 때 우리 입에서도 나와야 되는 말입니다.

 

간단하게나마 잠깐 살펴봅시다.

‘돌을 치워라.’

나자로를 죽음의 상태에서 못 벗어나도록 가로막고 있는 큰 돌을 치우라고 명령하십니다.

오늘 복음의 어투를 보면 권고가 아닙니다.

‘돌 좀 치웠으면 좋겠어’가 아니라 ‘돌을 치워라’입니다.

내가 나자로를 살릴 터인데 저 돌이 막고 있으면 못 나온다.

우리들은 각자각자 앞에 많은 돌이 있습니다.

우리들도 돌을 치워야 됩니다.

하느님과 나 사이를 가로막고 있고 영적으로 나를 부활 못 시키는 그 돌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내면의 눈을 가지고 살펴보고 그 돌을 치워야 됩니다.

그 돌의 종류를 성경에는 갈라디아서 5장 19절에서 21절에 어떻게 나열하고 있느냐?

방탕의 돌, 음행의 돌, 우상숭배의 돌, 원수가 되는 돌, 시기의 돌, 분노의 돌, 이기심, 분열, 질투, 술주정.

이런 것들이 하느님과 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어둠의 돌입니다.

돌을 치워라!

우리 부활의 첫 번째 단계는 예수님께 못 가게 가로막혀있는 그 돌을 치워야 됩니다.

 

두 번째, 나자로야 나오너라!

두 번째도 권고가 아니라 명령입니다.

일단 큰 장애물은 없어졌어요.

돌 때문에 예수님도 성모님도 보이지 않고 어떻게 살아야 되는 지

캄캄했는데 내 앞을 가로막고 있던 산더미 같은 돌은 예수님이 치워주셨어요.

뻥 뚫렸어. 구원의 문이 열렸어!

그 다음 두 번째 행동은 나오라는 겁니다. .

내가 살 곳은 굴속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만의 골방에 갇혀, 어둠에 갇혀, 교만에 갇혀, 묘지에 갇혀 나오려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굴 앞을 막고 있는 돌멩이를 치워도 나오려는 의지가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나자로야 나오너라,’ 이 말은 ‘긍정적인 삶을 살아라.’ 라는 뜻입니다.

미래지향적인 삶으로 바꿔라, 이겁니다.

너의 어두운 생각을 바꿔라, 이겁니다.

열등감이라든지 악습이라든지 죄악이라든지 과거의 상처로부터 벗어나서 나오너라!

주님께서 내 양심을 통해, 말씀을 통해, 성체를 통해, 성사를 통해 나오라 명령하십니다.

그분의 음성을 들어야 됩니다.

 

마지막 소생삼언 세 번째는 ‘풀어줘서 가게 하여라.’

나자로가 나왔는데 어떻게 나왔겠어요?

장례치를 때 했던 것처럼 온몸을 천으로 감싸고 얼굴도 가리고 뒤뚱거리면서 나왔겠죠?

예수님은 나자로의 시신을 감아줬던 천들을 풀어줘서 자유롭게 걸어가게 하라 하십니다.

용서를 생각해봅시다.

내가 잘못을 저질렀고 알고 있는데, 이웃이 용서해주지 않으면 나는 부자유스럽습니다.

또 나를 미워하고 있는 그 사람 역시 부자유스러울 겁니다.

용서하여 풀어주어 가게 해야 됩니다.

그를 풀어줘야 내 묶인 것도 같이 풀립니다.

용서로 상대를 풀어줘야만 나도 같이 해방되어 같이 행복하다는 겁니다.

나자로를 칭칭 감고 있는 천조각, 팔다리 옴짝달싹 못하고 걷지 못하게 하는 그 천,

각자 각자가 색깔이 다를 겁니다.

 

돌을 치워라, 나자로야 나오너라.

예수님께서는 과부의 아들이 실려갈 때 뭐라고 하셨습니까?

‘젊은이여, 일어나라!’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풀어주어 가게 하여라.

 

오늘 복음은 참으로 많은 얘기를 할 수 있는 정말 아름다운 소생삼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께 숙제 드립니다.

첫 번째 숙제는 오늘 복음 전체를 정독을 해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21장 32절에 예수님을 원망하는 말이 나옵니다.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내 동생은 살 텐데.’

이 말에 대해서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힘들고 어려울 때 종종 하느님께 이런 비난을 던집니다.

‘왜 그때 주님 왜 이렇게 힘든데 안 도와주셨어요? 어디 가셨어요?’

그런데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때 주님이 함께 해 주셨기에

그 긴 터널을 빠져나왔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 다음 45절 ‘마리아를 찾아왔다가 예수님이 하는 많은 일을 보고 예수를 믿게 되었다’는

 말로 오늘 복음은 끝이 납니다.

‘마리아를 찾아왔다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여러분을 찾아왔다가 나의 모습을 보고 신앙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책임감 있게 행동해야 됩니다.

내가 하는 행동이 하느님을 가까이 하려는 사람을 멀리할 수도 있고

하느님을 전혀 모르던 사람에게 주님을 안내하는 아름다운 행위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마리아를 만나러 왔다가 예수님의 그 모습을 보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그것도 많은 사람들이!

 

우리들 앞에 가로막혀있는 돌을 치웁시다.

그리고 주님이 나오라고 하니, 일어서라고 하니, 군말 말고 따지지 말고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내 양심을 통해서 성체를 영할 때마다 일어나 컴컴한 굴속에서 나와야 됩니다.

일단 나오면 주님께서 내 몸뚱이 감고 있는 그 더러운 천 조각 깨끗하게 걷어내어 주시고

새 옷을 입혀주신다는 그 믿음을 가지고 사순절을 마무리하도록 합시다.

 

아멘.

♣2020년 사순 제5주일(03/29) 서운동성당 김웅열(느티나무)신부님 강론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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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발 (2020/04/24 09:2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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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멘, 김웅열(토마스 아퀴나스)신부님, 강론말씀감사드립니다, 신부님, 영육간에건강하시고 하느님의은총이 충만하시기를기도드립니다, 아   멘~~~
  
  펠릭스1254 (2020/04/24 11: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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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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