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에로스와 아가페

글쓴이 :  하늘호수♡님이 2020-04-16 21:44:09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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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 느티나무신부님

 

+찬미 예수님

우리는 지금 6.25이래 초유의 사태를 겪고 있습니다.

전염병 때문에 많은 교구가 미사를 금지시켰고, 청주교구는 본당신부 재량에 맡겼죠.

분별을 위에서 해주면 좋겠는데, 그 부분이 조금 아쉽습니다.

미사를 드리는 신부도 안하는 신부도 미안하죠.

 

리나 수녀님, 수녀님 사랑하는 사람 명단에 수녀님께 상처를 주었던 분들이 있어요?

마음을 아프게 한 그 즉시 사랑할 수는 없었겠죠? 과정이 있을 거예요.

아네스 수녀님, 회장님, 젬마자매, 모두 있다고 대답하시네요.

정말 저보다 훨씬 낫네요. 저는 없어요.

강론을 준비하면서 정말 긍정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의 명단에,

내가 성당 지을 때 돈 떼먹고 도망간 그 놈이 들어가 있는가? 절대 못 들어가요.

나를 밑바닥까지 깔아뭉갠 그 사람이 거기 있느냐? 안 들어가요.

나의 서품을 보류한 주교님이 거기 있느냐? 안 들어가요.

그냥 의지적으로 사랑하려 애쓰는 것뿐, 정말 솔직히 얘기하면 명단에 안 들어가요.

아무리 기를 쓰고 노력해도 그냥 겉으로만 화해하고 용서했어요.

상처 준 사람은 상처 준 것도 기억도 못하는데 무슨 화해를 해요?

 

사랑은 철학적으로 이야기할 때 에로스적인 사랑과 아가페적 사랑으로 나눕니다.

 

에로스적인 사랑의 특징이 무엇인가요?

에로스적인 사랑의 정의는 ‘내가 너를 사랑하니 너도 나를 사랑해다오.’입니다.

Give&Take, 준만큼 받고 싶다는 것이죠.

이것을 우리는 인간적인 사랑, 에로스적인 사랑이라 불러요.

그런데 이 사랑은 한계와 불확실이라는 두 가지 넘지 못할 선이 있어요.

 

첫 번째 한계가 있다는 것은 이런 이야기이죠.

어릴 때는 엄마 사랑이 최고인 줄 알고 엄마가 우주의 중심이라 생각하죠.

엄마사랑만 있으면 아무 것도 필요 없었어요.

그런데 커가면서 이성에 눈을 뜨고 엄마보다 더 마음에 드는 상대가 생기죠.

그럴 때 엄마도 한계를 느끼며 내가 예뻐하는 만큼 자식도 엄마를 좋아하길 바라죠.

 

두 번째 불확실하다는 했어요.

결혼식장에서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이 세상에 이혼하려 결혼하는 사람은 없죠?

하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혼을 해요?

그리고 똑같은 날 동시에 죽지 않아요.

우리 같이 죽자고 같이 쥐약을 먹어도 달리 죽어요.

사랑하는 사람이 갑자기 내 옆에서 사라질 수가 있단 말이에요.

아침에 같이 차 한 잔 잘 마셨는데 저녁에 중환자실에 실려 가기도 해요.

우린 그걸 볼 때 불확실하고 한계를 느끼는 것이죠.

 

오늘 예수님이 ‘원수를 사랑하라 그랬는데, 분명 아가페적인 사랑을 말씀하신 거죠.

Give&Take 사랑을 많이 하고 온 우리는 채워지지 않음에 상처를 많이 받아왔죠.

이런 에로스적인 사랑 말고 원수까지 사랑할 수 있는, 한계가 없고 불확실하지 않은 사랑은 과연 없겠는가?

‘조건 없이 무조건 주겠소, 되돌려주지 않아도 조금도 서운하지 않겠소.’

 

주는 것만큼 나도 조금이라도 받고 싶다고 하는 마음은 인간의 본성입니다.

어떻게 보면 본성을 거스르는 명령을 하신 거죠.

인간의 본성은 한 대 맞으면 한 대만 때려요? 두 대 때리고 싶은 것이 본성이죠.

 

그럼 이제 우리가 묻습니다.

‘과연 인간은 이런 아가페 적인 사랑을 어느 정도까지 할 수 있을까?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은 현실 가능한 것일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우리 인간들은 가능해요.

 

현재 여기 우리는 못하더라도 에로스적인 사랑을 뛰어넘는 사랑을 하는 분들이 있죠.

어머니의 사랑을 하느님 사랑의 그림자라고 얘기합니다.

하느님 사랑에 가장 가까운 것이 바로 어머니 사랑이라 그래요.

자식 버리는 부모, 때려죽이는 부모 등등, 요즘 그것마저도 흔들리고 있지요.

그렇지만 근본적으로 그 어머니의 사랑은 하느님의 사랑을 가장 닮았다합니다.

자식을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죠.

 

기찻길에서 아이가 놀고 있는데 기차가 막 달려와요.

그러면 엄마는 빨래하다 아이가 옆에 없는 것이 보이면, 그냥 뛰어갑니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그 긴 거리를 한 순간에 가 아이 밀치고 엄마는 죽지요.

엄마가 죽을 때 무거운 쇳덩어리가 내 등을 누르면 아플까, 그 생각 안합니다.

그냥 내 새끼 살리면 되는 거지, 나는 죽어도 상관없다 입니다.

이게 바로 아가페 사랑입니다.

 

아이들만 집에 있는데 집에 불이 납니다.

외출하고 돌아오다 부부가 보니 소방차와 있고, 뭔가 우리 집이 이상한 거예요.

시뻘건 불덩어리가 집어 삼키는데 그 안에서 아이는 있죠.

그때 아버지는 어떻게 합니까?

그냥 무조건 뛰어 들어가는 거예요.

온 몸은 다 타더라도 양손에는 새끼를 끌어안고 나오는 거예요.

이것은 조건이 없어요.

내가 불에 타면 얼마나 뜨거울 지, 상처가 흉할까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들어가죠.

 

자, 그러면 지금 얘기한 이런 두 가지 예화는 피붙이니 그럴 수 있다 합시다.

그럼 피도 안 섞인 사람도 이런 사랑을 할 수 있느냐?

너무나 주변에 의외로 많죠.

피도 안 섞였지만 버려진 아이를 자식처럼 데리고 살아요.

또 피도 살도 안 섞였지만 자기 콩팥하나 떼어주는 사람 있거든요.

친자식을 칼로 찔러 죽인 살인범을 수양아들 삼아 옥바라지하는 사람도 저는 봤어요.

즉, 우리들도 아가페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것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고, 이룰 수 없는 꿈이 아니라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아가페 사랑은 우리는 의지의 사랑이라 그래요

그냥 가만히 있어도 좋아지는 에로스적 사랑은 ‘정(情)’의 사랑이 예요.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은 의지의 사랑이지, 정의 사랑으로는 해결이 안 됩니다.

 

우리 수녀님들은 그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나 상처 주었던 사람을 사랑 한대요.

저는 아직 못해요. 하지만 사랑하게 해달라고 기도는 해요.

그래서 ‘아, 내가 그 사람 사랑하고 있구나’ 하다가 갑자기 그 사람 얼굴이 TV에 나오면

다시 옛날 나를 힘들게 했던 그 생각이 또 나와요.

그래서 내가 아직 온전히 용서를 못하고 있구나 생각합니다.

겉으로만 맴돌고 있을 뿐이지, 정말 가슴깊이 끌어안은 적이 없었던 겁니다.

쉬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가 사랑해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는 내가 살기위해서고, 둘째는 그 인간 살려주기 위해 사랑해야 됩니다.

 

내 자신이 분노로 차 있으면 내가 망가집니다.

분노는 자신을 해치고, 마음속으로 자꾸 살인을 하게 돼요.

그러나 용서는 자신을 변화시키죠.

미움과 복수심에 불타고 있을 때는 우리의 생활은 균형을 잃어요.

그리고 자기 영혼의 상처를 줍니다.

위장병, 심장병, 불면증, 식욕감퇴 대부분 이런 병들은 마음에 분노가 있을 때 생기죠.

의학적으로도 이것은 증명이 되요.

그것을 포기하면 소화도 잘되고, 장도 편안해지고, 잠도 잘 잘 수 있어요.

그래서 용서해야 되는 첫 번째 이유는 그 사람 예뻐서가 아니라 내가 살기위해서예요.

아까 말했지만 상처 준 사람은 상처준 것도 기억도 못해요.

오히려 상처받은 사람만 잠을 못자고 힘들게 사는 거죠.

그 사람 때문에 내 삶이 불행하게 될 필요는 없다는 거죠. 행복해야지요.

 

두 번째 이유는 복수심은 상대의 악행을 증가시키지만 사랑은 상대방을 정복하지요.

어두운 것 둘이 합치면 더 큰 어둠이 되지만, 어둠을 몰아내는 것은 빛입니다.

어둠을 몰아내는 다른 도구는 없어요.

작은 성냥 하나라도 어디로 가야할지 길을 안내합니다.

악한 것 2개가 합치면 일이 안됩니다.

상대편이 나한테 어둠으로 대할 때 같이 어둠으로 대한다?

이건 정말 큰 서로간의 분해밖에 안 되는 거죠.

 

그래서 우리들은 황금률이 필요해요.

마태복음 12장 7절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그것이 어떻게 보면 우리 복음의 골자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이 사람을 정복하는 특별한 방법이었어요.

‘먼저 해 줘, 그 다음에 내가 너 해줄게’ 가 아니에요.

저 사람이 원하는 걸 내가 먼저 해주는 거예요

이게 바로 예수님이 사람을 정복했던 방법이에요

총이나 칼이나 힘으로 정복하신 것이 아니라, 바로 황금률을 가지고 정복하셨죠.

그리고 2000년 동안 그리스도제자들은 그 황금률을 실천을 위해 애쓰며 살아가고 있죠.

그러다보면 나도 모르게 에로스적인 삶에서 아가페적인 삶으로 살고 있음을 느껴요.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우리 믿는 이들에게는 기적이 아니라 이룰 수 있어요.

그렇지만 시간이 걸릴 거예요

물론 상처받은 깊이에 따라서 그것을 회복하는 데는 시간이 짧을 수도 있고,

정말 한 평생 그것과 싸우면서 해결 못하고 죽는 사람도 있을 수 있죠.

 

머릿속에 떠오르는 나의 은퇴 후 중요한 영적인 할 일 중 하나로,

사제생활 하면서 나를 힘들게 했던 그 사람들 정말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게,

또 그런 마음이 되어 이 세상을 떠나기를 바라는 기도가 나에게 중요하게 등장할 것이라 생각이듭니다.

 

그래서 우리 수녀님들, 회장님이하 모두 존경합니다.

그라시아자매는 세례 받은 지 얼마 안 되어 아직 그 방법을 잘 모를 수도 있겠죠.

내가 이 사람이면 그럴 수 있겠다는 동질의식을 느끼는 것도 아주 중요하다합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계란가지고 바위 치라는 무모한 명령이 아닙니다,

나는 못하나 주변에는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는 것에 자극받고 힘을 받읍시다.

아가페사랑, 쉽지는 않지만 실천하도록 애씁시다.

 

♣2020년 연중 제7주일(02/23) 서운동성당 김웅열(느티나무)신부님 강론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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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발 (2020/04/17 09:3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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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멘, 김웅열(토마스 아퀴나스)신부님, 강론말씀감사드립니다, 신부님, 영육간에건강하시고 하느님의은총이 충만하시기를기도드립니다, 아    멘~~~
  
  펠릭스1254 (2020/04/17 12:5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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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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