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우물가의 여인처럼

글쓴이 :  하늘호수♡님이 2020-03-31 01:55:58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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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 느티나무 신부님

 

 

+찬미예수님

 

오늘 복음에서는 한 여인과 예수님과의 극적인 만남을 이야기하고 있지요?

여자는 사마리아인이고 예수님은 사마리아인과는 원수지간인 유다인,

유다인은 사마리아인에게 저 족속은 지옥의 땔감으로 쓸 자격이 없다고 할 정도예요.

그런데 이 여자는 여섯 남자와 사귀었고 지금 사는 남자도 남편이 아니라고 나오죠?

얼마나 삶은 상처투성이이고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았겠어요?

 

얼마나 무시당했으면 주위사람 눈을 피하기 위해서 햇볕 쨍쨍 내리쬐는 오후에 물 길러 왔겠어요?

그런 여인이 야곱의 우물로 육신의 물을 먹으러 왔다가 영혼의 물을 먹게 되는 드라마틱한 장면이나오고,

나중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증거 하는 이야기로 끝이 납니다.

 

우물은 무엇입니까?

땅에서 나오는 물을 모아두는 곳입니다.

바로 여기서 예수님과 죄 많은 여인이 만나신거지요.

이 세상의 물은 하느님의 메시지를 담고 있고, 상징성이 있고, 영혼의 물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다시 말하면 육신의 물을 통해 영혼의 물로 이어집니다.

 

‘인간은 물이다’라고 단적으로 표현합니다.

인간은 엄마뱃속에는 99%, 태어나서는 90%, 성인은 70%, 죽을 때는 55%가 물 이라합니다.

에모토 마사루는 책 <물은 답을 알고 있다> 에서 ‘물은 사람의 감성을 읽고, 글도 읽고 그 내용에 따라 반응도

달리한다.’고 말합니다. 사람이 물에 성질을 부리고 화를 내면 물의 결정이 찌그러지고 깨지는데,

반대로 칭찬하고 예뻐하면 그 결정체가 아름다워지고 균형이 잡혀진대요.

그래서 물을 마실 때마다 ‘고맙다’ ‘사랑한다’ 하면 좋은 물로 바뀐대요. 

아무리 소독약을 탄 수돗물이라도 고맙다는 말에 약수가 되고, 아무리 좋은 암반수라 하더라고 분노하며 먹으면 독이 된대요.

여러분들 화났을 때 물먹어도 체한다는 말 들어보신 적 있으시죠?

 

오늘 우리들은 세상의 많은 물들을 영적인 측면에서 묵상하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합니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제가 책에 썼던 이야기입니다.

 

물은 분명 부드럽고 정화의 기능이 있고 하향성과 적응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물에게 겸손과 인내와 끈기와 자기극복과 집중력을 배우게 됩니다.

물은 긍정적인 의미의 물이 있고 부정적인 의미의 물이 있습니다.

 

긍정적인 의미의 첫 번째 물로 낙수(落水)가 있습니다.

낙수는 추녀 끝에서 똑똑 떨어집니다.

한 곳에 집중으로 떨어지는 물은 세월이 지나면 돌을 파냅니다.

그 무슨 힘이 있겠나 싶지만 세월이 지나면 반드시 흔적을 남깁니다.

마찬가지로 신앙도 인내심을 갖고 희생과 기도를 할 때 우리도 하느님을 체험합니다.

오로지 주님만은 쳐다보며 우직하게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이라는 것에 요령이라는 것이 필요 있을까?

우리가 매일 드리는 묵주, 십자가의 길, 하다못해 밥을 먹을 때 긋는 성호같이 일상적인 작은 하나까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천상의 빗장을 여는 아주 중요한 영적 훈련입니다.

낙숫물처럼 똑똑. 힘도 없어 보이지만, 분명히 천국의 문을 열겁니다.

 

두 번째로는 유수(流水)가 있습니다.

물은 모이면 흘러갑니다.

흐르는 물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수신(修身)의 자세입니다. 자기 자신을 갈고 닦는 것입니다.

다듬어진 나의 모습을 통해서 다른 이들이 편함을 느끼게 해주어야 합니다.

이런 모습은 흐르는 물처럼 계속 자신을 갈고 닦을 때만 가능할 겁니다.

우리 거친 돌을 다듬듯이 우리의 악습과 우리의 나쁜 습관, 인성속의 상처들을 닦아 없애합니다.

물은 그 자리에 있으면 썩습니다. 흘러 나가야합니다.

 

세 번째 물은 담수(潭水)입니다.

작은 물줄기가 모여 담수가 됩니다.

신학적 이야기하면 작은 공동체, 더 작게 이야기하면 내 가정일 수 있고, 내가 속한 단체일 수 있습니다.

담수 안에는 두 가지 기능이 있습니다.

담수에 물체가 떨어지면 그것을 잡아끄는 침수의 기능과 떠받드는 부력의 기능이 있습니다.

내 가정 안에서, 내 단체 안에서 나는 과연 다른 사람을 끌어내리는가 아니면 떠받드는가?

부력의 역할을 하는 사람의 입에서는 항상 칭찬이 나옵니다.

그리고 늘 위로 격려하려고 애쓰고, 상처를 이유해주려고 애씁니다.

그러나 침수의 기능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남보다 조금 잘나고 멋있는 사람을 보면 헐뜯고 비난하고 끝이 없습니다.

그래서 담수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누군가를 떠받들어 주어야한다는 것입니다.

 

네 번째로는 호수(湖水)가 있습니다.

담수보다 큰 공동체, 본당이나 교회를 뜻합니다.

본당 안에 있어야하는 향기는 평화의 향기이지만 그렇지 못한 본당이 너무나 많습니다.

신자는 신자대로, 목자와 양은 헤어질 날만 기다리고 서로 피를 흘리며 삽니다.

평화가 없다는 것은 다른 말로 뿌리가 없거나 약한 것이지요.

즉, 출발점도 모르고 방향도 모르고, 그냥 상대의 반대를 위해 삽니다.

그리스도의 출발은 바로 바보가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 다섯 번째 영적인 물로는 용수(用水)가 있습니다.

담수와 호수는 반드시 유용하게 쓰여져야 합니다.

주님께서 쓰시고자 하는 대로 우리 자신을 내어 맡기고 그 분의 손안에서 작은 도구가 되어야합니다.

예루살렘 입성할 때 나귀를 타고 들어가셨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는 이 나귀보다 고집이 셀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늘 예수님이 원하는 삶을 살기보다는 예수님을 내가 원하는 대로 만들려고 할 때가 많습니다.

“주님께서 쓰시겠답니다.”

다른 말로 베드로를 쓰시겠답니다. 마리아를 쓰시겠답니다. 회장님을 쓰시겠답니다.

“예, 쓰십시오.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여섯 번째 영적인 물은 정수(淨水)가 있습니다..

당신의 협력자로 쓰시기 위해 우리가 정화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피정, 고해성사, 성서읽기, 혹은 성체를 가까이 하기 등의 정화의 기능이 우리 삶의 일부분이 될 때,

우리는 더러운 물이 아니라 자정능력이 있는 깨끗한 정수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일곱 번째로는 약수(藥水)가 있습니다.

약수는 제작기 효능이 다릅니다. 유황이 많은 약수도 있고, 철분이 많은 약수도 있고.

각기 다른 탈랜트를 받았다는 뜻입니다.

이웃을 위해주는 것이 우리가 탤런트를 받은 목적입니다.

하느님에게 받은 그 탈랜트는 본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웃을 위해 쓰여져야 할 약수입니다.

 

여덟 번째 물은 생수(生水)가 있습니다.

살아있는 물은 생명력을 지닙니다.

영적으로 살아있는 존재는 언제나 부드럽고, 변화가 가능하고 희망을 지니고 삽니다.

 

아홉 번째로는 천수(天水), 천상수가 있습니다.

성령이 주시는 은사를 이야기 합니다

구원으로 이끄는 물입니다.

 

이런 극정적인 물의 반대로 부정적인 의미의 물에는 첫째 하수(下水)가 있습니다.

가정, 병원 공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쓰레기 물처럼, 마음이 하수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은 분심, 잡념이 많은 겁니다.

내 마음 안에 맑은 물이 흐르지 않고, 늘 쓰레기가 떠돌아다닙니다.

 

두 번째는 누수(漏水)가 있습니다.

공동체를 늘 분열시킵니다. 모아지지 않고 늘 새어나갑니다.

 

그 다음 세 번째에는 한수(寒水)가 있습니다.

말 그대로 찬물입니다. 안하무인입니다. 본당에서 자기가 제일 잘났다고 합니다.

찬바람이 쌩쌩 납니다.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만 좋아하고 조금이라도 해가 되거나 싫은 표시를 내면 온 몸에 가시를 돋고 대합니다.

 

네 번째로는 건수(乾水)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정작 쓰시기를 원하면 이런 핑계 저런 핑계로 늘 거부를 합니다.

 

그 다음은 무수(無水)가 있습니다. 무수는 냉담자를 뜻합니다.

다음은 운수(雲水)가 있습니다. 오로지 요행만을 바라면서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다음 홍수(洪水)가 있습니다. 절제하지를 못한다는 뜻 입니다.

마지막으로 해일(海溢)이 있습니다. 본당전체를 뒤집어 놓고 큰 어둠으로 바꾸는 사람이 있습니다.

 

물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지만 죽이기도 합니다.

영적인 물을 먹고 살다가도 조금만 한 눈을 팔면 우리는 썩은 물이 될 것임을 명심하도록 합시다.

말씀과 성체에서 구원의 생수를 퍼 올려 나도 마시고 다른 이에게도 나눠 주어야합니다.

 

이제 사순절도 중반을 지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사순절동안 얼마나 자기 자신을 정화하고 심판하시면서 살았습니까?

사순절은 은총을 받기위한 준비 기간인데, 작은 희생이라고 시작하고 계십니까?

또 어느 때보다 시련과 유혹이 많은 때인데, 시련과 유혹을 분노와 짜증으로 해결하려 하십니까?

예수님은 이천년 전에 이미 부활하셨습니다.

부활절에는 우리 자신 각자가 부활해야합니다.

그래서 이 사순절은 남편 부활시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부활해야하고,

다른 사람 잘못 손가락질하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을 정화하고 심판해야하는 시기입니다.

 

여기 오신 여러분은 야곱의 우물에서 예수님을 만난 이 여인처럼 선택받아서 온 분입니다.

불러주셨기에 하실 말씀이 있고, 또 주실 은사가 있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오늘 불러주신 주님께 감사드리면서

머물면서 사순절이 좀 더 깊이 있게 주님께 가까이 가는 좋은 시간이 되도록 노력합시다.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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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발 (2020/03/31 08:4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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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멘,김웅열(토마스 아퀴나스)신부님, 강론말씀감사드립니다, 신부님, 영육간에건강하시고 하느님의은총이 충만하시기를기도드립니다, 아   멘~~~
  
  펠릭스1254 (2020/03/31 11: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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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멘~
  
  요셉 (2020/03/31 15:0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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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신부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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