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성모님의 태교

글쓴이 :  하늘호수♡님이 2020-02-24 21:27:49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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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 느티나무신부님

 

+찬미예수님

 

성탄 축하드립니다.

 

어제 성탄전야미사 영성체 후에 작은 공연이 하나가 있었어요.

앞이 안 보이는 요셉 형제가 팬플룻을 아름답게 잘 불어주셨죠.

두 곡 연주 후 자기는 살면서 눈이 먼 게 아니라 엄마 뱃속부터 눈이 멀었다고 했죠.

저는 그 얘기 들으면서 그 엄마의 마음을 헤아려보았어요.

예전에 요셉 형제가 형도 소경이라고 했거든요.

이미 난 큰 아들은 소경인데, 지금 뱃속의 아가는 어떨까?

그때만 하더라도 미리 보고 치료하던 시기가 아니었죠?

이 엄마가 그 요셉을 배고 열 달 동안 얼마나 불안한 마음으로 있었을까?

그리고 낳았는데 애가 눈이 초점을 못 맞추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겠죠.

저는 또 한편으로 엄마가 깊은 걱정 속에 있었지만 태교를 잘했다 생각했죠.

요셉이 저렇게 착하고, 앞이 안 보이는데도 매사에 긍정적이잖아요.

어제 그러지 않았습니까?

‘이제껏 살아오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은 ’감사합니다‘ 뿐입니다.’

5분을 눈을 가리고 집안을 다녀도 이리 부딪치고 저리 부딪치고 얼마나 힘들어요.

 

그러면서 저는 성모님의 열 달 동안 마음으로 옮아갔어요.

성모님께서 열 달 동안 예수님을 배시고 마음이 편안하셨을까? 평화로웠을까?

얼마나 인간적으로 불안하셨을까?

‘성령으로 잉태된 내 뱃속의 아기가 정말 메시아일까? 세상에 나와서 무슨 일을 할까?

메시아라 하니 혹시 왕이 될지도 몰라, 그러면 왕의 엄마가 될 수도 있어.’

혼자서 상상하시다가

‘아닌데, 내가 이 자식 때문에 얼마나 고통을 당해야 되고 내 태중의 자식은 얼마나 고통을 당해야 될까?’

어린 소녀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에요.

그래도 예수님이 의롭게 사신 인성에 따뜻한 영향을 준 것은 성모님의 태교였을 것이다.

성모님도 불안하셨겠지만, 아까 말한 요셉의 엄마도 불안했겠지만 요셉의 착하고 긍정적인 눈은

요셉엄마의 10달 동안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예수님이 10달 동안에 성모님에게 어떤 태교의 교육을 받으셨을까?

성모님의 태교는 첫 번째 순명의 태교였습니다.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주님께서 나를 통하여 일을 하실 것이고

분명히 나쁘게는 안 할 것임을 성모님은 그 어린 나이지만 믿음으로 받아들이셨어요.

 

또, 기도의 태교를 하셨을 것에요.

얼마나 많은 기도를 바치셨겠습니까?

태교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내 태중에 생명을 주신 하느님께 기도하는 것이었죠.

성모님의 태교의 기도 내용은 뭐겠습니까?

성모님이 처음 천사의 방문을 받았을 때 마지막으로 한 말이 뭐라고 그랬죠?

태초 이후 세상에 나온 모든 여자의 입에서 나온 말 중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말,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당신 뜻대로 하소서!’

아마 그 기도만 열 달 동안 하셨을 것에요. 주님의 종이 오니 당신 뜻대로 하소서!

 

여러분들도 영성체 후에 자리에 앉아서 바쳐야 할 가장 중요한 기도는 뭘까요?

‘아픈데 낫게 해 주세요. 집안일 좀 해결해 주세요.’

그런 얘기는 안 해도 예수님은 다 알고 계세요. 하느님의 능력을 왜 그렇게 무시하세요?

너무너무 잘 알고 계시는 사실을 미주알 고주알 설명하려고 그래요.

우리 입에 성체가 여러분 안에 들어가시면 예수님을 태중에 모시는 겁니다.

또 하나의 마리아가 되는 것, 그때 마리아처럼 기도하셔야 돼요. 무슨 기도?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당신 뜻대로 하소서.’

그 기도가 성체를 영하는 우리들의 기도요, 가장 아름다운 기도가 바로 그것에요.

그런데 우리는 그 반대로 하는 경우가 많죠.

‘내 뜻대로 하소서. 주님 뜻은 별로 신경 안 씁니다. 사면초가에요. 나부터 살려주세요.’

 

어제 요셉을 보면서, 요셉과 앞이 안 보이는 형을 낳은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까?

그래도 요셉은 참 반듯하게 잘 크셨다.

이렇게 좋은 인성을 갖고 있는 것은 그 엄마의 마음이 순하고 잘 분별하는 성격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7살에 신부님, 수녀님께 맡겼죠.

충주 맹아학교에 떨어지기 싫어서 우는 아이를 떼어놓고 우리 아이를 잘 키우실 거다.

 

두 번째는 경배입니다.

여러분들이 오늘 오신 이유가 있으실 겁니다.

장례 집에 가는 이유는 슬픔을 같이 나누고 상주들을 위로해주기 위해서예요.

그런데 조문하러 갈 때 말 만 몇 마디 하는 것이 아니라 봉투라도 가지고 가야죠.

또 아기 낳는 집에 가는 이유는 축하하기 위함이죠.

저는 잘 모르는데, 아기 낳는 집에는 뭘 가지고 가요? 미역, 분유, 기저귀.,,

그런데 아기 예수님의 탄생 축하를 위해 오신 여러분은 무슨 선물을 가지고 오셨나요?

아기 낳은 집에 오셨으면 뭐라도 들고 오셔야 되잖아요? 미역값을 가지고 오셨다구요?

구유 예물. 구유 예물이 미역값이죠.

그런데 영적인 선물이 훨씬 더 중요하죠.

 단돈 만 원, 이만 원을 구유통에 넣는 것보다 아기 예수님이 진정 바라는, 성모님이 진정으로 바라는 마음은 뭘까요?

아무튼 성모님이 고마워하실 가장 귀한 선물이 뭘까?

딱 두 가지, 용서와 화해의 선물이겠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용서와 화해를 하겠다고는 결심을 오늘 성모님께 얘기해드려야 될까?

아직 아기 예수님은 몰라요. 결국은 성모님이 들으시는 거죠.

갓 태어난 아기가 뭘 들어요. 성모님한테 얘기하셔야 돼요.

’성모님, 다른 선물은 준비 못 하고, 용서와 화해의 선물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러면 용서와 화해를 말로만 선물하는 것 아니겠지요.

여러분 지금 솔직히 미운 사람 있죠?

미사하는데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하필 그놈이라면 뒷통수라도 때리겠어.

아이구 짜증나. 그런 미운사람 있죠. 왜 없겠어요?

그런 미운 사람을 용서하고 화해하는 첫 번째 단추를 많은 영성신학자들은 알려줍니다.

’너도 초보였다는 것을 생각하라‘는 것에요.

지금 이렇게 존경받고 귀한 존재가 되었지만, 여러분도 올챙이 시절이 있었다는 것에요.

저 사람은 아직 올챙이기 때문에 몰라. 그런데 올챙이로만 있을 게 아니야.

너처럼 성숙할 날이 올 거니까 좀 너그럽게 받아들이라는 거죠.

 

차 뒤에 많은 스티커를 붙이고 다녀요.

초보운전, 운전시작 1일째, 왕초보, 이유 없이 브레이크를 밟습니다, 알아서 추월하세요.

별의별 스티커가 다 있어요. 그런데 초보운전이라는 스티커가 제일 많아요.

능숙하게 운전하는 사람도 처음 운전대 올랐을 때는 누구나 벌벌 떠는 것에요.

 

우리 누구나 인생 초보의 시절이 있었습니다.

철없던 시절에 어른께 혼도 많이 났었고, 신입생 시절도 있었고,

사회 초년생으로부터 실수도 많이 한 적도 있었죠.

올챙이 시절을 잊어버린 입 큰 개구리마냥 나에게는 그런 시절이 없었다고.

처음부터 전문가로 존재했었다고 착각해서 잘 모르거나 실수하는 사람들에

다짜고짜 다그치고 화를 낸다면 얼마나 자기기만이고 모순이겠습니까?

내가 초보였던 시절을 기억해보면 다른 사람이 나에게 실수하는 것은,

그것 때문에 생긴 미움과 분노는 쉽게 용서할 수 있습니다.

미워하기보다 사랑하기가 훨씬 어렵다 하지만,

용서가 사랑의 시작이기 때문에 용서하면 사랑도 나의 것이 됩니다.

 

오늘 아기 예수님은 인성으로는 초보자로서 시작하십니다.

하느님이지만 저 작은 몸뚱이로 이 세상에 나오셔서 인생의 왕초보로 시작하십니다.

울며 보채는 피덩이 갓난아이 모습을 보고 누가 거기서 메시아를 찾아낼 수 있으며,

누가 저 아기가 주님이심을 인정할 수 있겠는가?

내게 자주 상처를 주는 저 사람의 모습에서 옛날 초보 시절의 내 모습이 있다는 것,

어쩌면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영원히 초보자임을 명심합시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그 인생을 우리도 살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상처를 주는 저 사람이 영원히 초보자로 남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그 사람을 용서해야 됩니다.

 

갈라티아서 6장 1절에서 3절의 말씀을 끝으로 강론을 끝내고자 합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온유한 마음으로 바로잡아 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자신을 늘 살피십시오. 서로 남의 짐을 져 주십시오.

그래서 그리스도의 법을 이루십시오.

사실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무엇이나 된 것처럼 한다면 그는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아기 예수님이 여러분에게 기쁨과 평화의 은혜를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2019년 예수성탄대축일(12/25) 서운동성당 김웅열(느티나무) 신부님 강론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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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발 (2020/02/25 08:2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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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멘, 김웅열(토마스 아퀴나스)신부님, 강론말씀감사드립니다, 신부님, 영육간에건강하시고 하느님의은총이 충만하시기를기도드립니다, 아   멘~~~
  
  펠릭스1254 (2020/02/25 11:4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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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멘~
  
  세실리아99 (2020/02/26 11:3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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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미예수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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