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나는 구약의 인간인가 신약의 인간인가?

글쓴이 :  하늘호수♡님이 2020-02-11 05:33:04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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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 느티나무신부님

 

+찬미 예수님!

 

월요일부터 일요일을 우리 믿는 자들은 기쁘게 살아야 될까요? 슬프게 살아야 될까요?

지혜롭게 살아야 될까요, 아니면 멍청하게 살아야 될까요?

화를 내야 될까요? 웃어야 될까요, 울어야 될까요?

웃어야지요.

 

월요일은 원래 웃는 날이에요.

화요일은 화사하게 웃는 날이래요.

수요일은 수수하게 웃는 날이래요.

목요일은 목숨 걸고 웃는 날이에요.

금요일은 금방 웃고 또 웃는 날이래요.

토요일은 토실토실 웃는 날이래요.

일요일은 뭘까요? 그냥 일없이 웃는 날이래요.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에게서 웃음이 없다면?

잠자기 전에 오늘 한 번도 웃은 적이 없다면 누구 앞에서라도 한 번은 웃어야죠.

십자가 앞에서, 성모님 앞에서 웃어야죠.

‘주님, 오늘 하루 종일 내 속을 뒤집어 놓는 인간만 만나다 보니까 웃을 일이 없었는데,

찡그린 얼굴 보기 싫으셨죠? 주님 앞에서 웃겠습니다. 마음 푸세요.’ 하며 웃어야 돼요.

 

기둥들이 있어요.

집안의 기둥은 누구일까요?

보통은 엄마를 주춧돌, 남편을 기둥, 자식들을 지붕이라고 해요.

지진이 일어나면 지붕과 기둥은 흔들려요. 그런데 어지간하면 자리를 잡아요.

하지만 그 밑에 받치고 있는 주춧돌이 흔들려버리면 기둥이 아무리 버티려고 애를 써도

아무리 지붕 위에 있는 기왓장들이 안 떨어지려고 발버둥을 쳐도 무너져요.

밑에 기초가 흔들려버리면 삼풍백화점이 되고 성수대교가 돼서 폭삭 가라앉는 것에요.

기초나 기둥이나 다 중요해요.

부모가 흔들리면 자식이 흔들려요.

본당 신부가 갈팡질팡 흔들리면 당연히 신자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를 것에요.

정치인들이 흔들리고 또 대통령이 흔들려버리면 나라가 어디로 갈지 몰라요.

그래서 공인은 정말 조심해서 살아야 됩니다.

생각하는 것, 말하는 것, 어떤 위급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말아야 돼요.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감옥에 갇힌 세례자 요한이 흔들리는 모습이 보여요.

세례자 요한이 지하 감방에 갇힌 것은 아시죠?

당시에 헤로데 안티파스라고 하는 왕이 로마에 동생 집에 갔다 제수를 겁탈했죠.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자기 부인과 이혼하고 동생한테서 뺏은 제수와 결혼했어요.

그것에 대해서 세례자 요한이 ‘회개하라’ 하고, 그 여자 헤로디아도 무섭게 꾸짖었죠.

왕이라 아무도 얘기를 못 하는데, 이런 이유로 감옥에 갇히고 나중에는 죽죠.

 

광야출신인 세례자 요한에게 옥중 생활이 견디기 어려웠을 것에요.

넓고 탁 트인 광야에서 맑은 바람을 호흡하고 하늘을 지붕 삼아 살던 사람이었어요.

햇빛도 안 들어오는 지하 감방에서 죽음 같은 생활을 하고 있으니 얼마나 괴로웠을까?

넓은 광야를 뛰어다니던 사람이 감방에 갇혔다고 생각해 보세요? 보통 고문이 아니죠.

저도 서운동 성당 와서 한동안 이런 마음이 들었어요.

배티! 그 공기 좋은 데서 하늘을 지붕 삼아 창문만 열만 푸른 나무들이 보이고

봄, 여름, 가을, 겨울 하느님께 저절로 찬미의 노래를 부르던 그곳에서 8년을 살다가 하산을 해서

서운동 성당에 왔더니, 사제관 침실 앞에서 세차장이 있어.

하루에 3~40번씩 계속해서 차에다가 그 먼지 물을 뿌리는데. 칙~칙~.

소음도 만만치 않지만 먼지가 사제관으로 들어와 창문틀을 닦아도 다음 날엔 새까매요.

배티에는 무공해 산모기가 있었는데, 여기 모기는 새까맣고 얼마나 독하게 무는지...

요한과 비교는 안 되겠지만, 배티에서 와서 여기에 적응하기까지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러니 세례자 요한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죽음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아무리 대가 센 세례자 요한이지만 그러한 환경 속에서 흔들릴 수밖에 없었을 것에요.

사실 요한에게 죽는 것은 두렵지 않았어요.

그런데 자기가 죽기 전에 확인해야 될 것이 있었죠.

자기가 이 세상에 존재했던 이유가 메시아를 예비하는 거였죠.

그런데 헷갈리는 거야.

요르단강에서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세례를 받았던 내 사촌 동생 예수가 정말 메시아인지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싶었어요.

오늘 복음 첫 줄에 감옥에 있던 요한이 제자들을 보내 당신이 메시아인지 확인합니다.

흔들리는 것에요. 다시 말하면 조바심의 질문을 던집니다.

불안한 마음으로 제자들을 통해서

‘정말 네가 메시아가 맞니? 지금 내가 죽는 것은 두렵지 않은데, 나는 메시아를 예비하는 역할을 해야 돼.

이제껏 예수 당신이 메시아인 줄 알았는데, 지하 감방에 갇히니까 불안하고 두렵고 하루 종일 분심이 들어.’

그 바위 같은 세례자 요한이 흔들리는 것에요.

확인을 시키는 것에요. 조바심이 나서 질문하게 하는 겁니다.

 

세례자 요한의 메시지는 심판의 메시지였습니다.

그리고 당신도 알고 있었어요.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 ‘회개 하여라! 회개 하여라!’

심판의 내용을 담고 있는 메시지지만, 뒤에 오는 분은 심판하는 메시아로 알고 있었죠.

그래서 도대체 언제 예수가 행동할까?

동네 다니면서 병자 고쳐주고 구마해주고, 세례자요한이 볼 때 그게 목표는 아니었죠.

로마 제국으로부터 이 나라를 구원해야 되는데.

이집트에서 300년간 종살이를 하고 페르시아, 바빌론, 그리스로 노예 생활을 했어요.

선민이라고 믿었던 우리에게 그 메시아가 와서 이 세상을 정복해야 될 판인데,

하는 행동을 보니까 나라를 구할 사람 같지는 않아요.

아픈 사람 고쳐주고 마귀 떼어주는 일만 열심히 하고 다니는 것에요.

세례자 입장에서는 불안했죠.

‘내가 지금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건가? 메시아가 아닐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언제 원수를 멸망시킬 것이냐는 것에요.

 

그런데 세례자 요한의 생각과 예수님의 생각은 당연히 달랐죠.

요한은 하느님의 거룩하심과 심판을, 예수님은 하느님의 거룩하심과 사랑을 선포했죠.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과 같이 하느님의 거룩하심을 똑같이 선포했어요.

그러나 세례자 요한은 오로지 심판만을 선포했지만, 예수님은 사랑을 선포했어요.

원수를 사랑하라!

 

그런데 요한의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내가 메시아’ 라고 말하지 않았어요.

대신에 ‘너희가 보고 들은 대로 너희 스승에게 가서 전하라.’ 고 했어요.

뭘 보고 전하라는 거에요?

첫 번째 소경이 눈을 뜨고, 절름발이가 걷게 되고, 나병 환자가 깨끗해지고, 귀머거리가 듣게 되고,

죽은 사람이 살아났어. 다시 말하면 치유가 된 거죠, 부활이 된 것에요.

그러니 요한에게 가서 전하라는 것에요.

나는 육신의 주인임을 전하라는 겁니다.

두 번째 기쁜 소식이 가난한 이에게 전해지는 것을 전하라고 그랬어요.

그래서 절망에 찌든 그들이 희망과 기쁨을 가지고 다시 일어서게 하라고 그랬어요.

다시 말하면 영혼의 주인이심을 전하라고 그랬습니다.

 

‘나는 육신의 주인이며 영혼의 주인이다.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은 자는 행복하다’ 고 오늘 그러셨죠.

의심을 품고 있던 세례자 요한에게 아마 예수님은 서운한 마음이 드신 것 같아요.

‘아니 아직 나를 못 믿나 봐. 제자들을 보내 확인시키는 것 아냐?’

하지만 예수님은 세례자 요한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었어요.

‘감옥에서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할까, 몸 고생이 심할까?’

그 요한을 생각하면서 군중들에게 요한을 들어 올려주십니다.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 가운데 요한보다 위대한 사람은 없다!’

극찬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이리저리 흔들리는 갈대가 아니라는 겁니다.

광야에서 살던 그 요한이 사치하게 옷을 입고 다니던 적을 본 적이 있느냐?

‘그는 모든 예언자보다 더 훌륭하다.’

그런데 여기까지로 끝나면 좋을 텐데.

‘그러나 하늘나라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라도 요한보다도 크다‘고 하십니다.

 

요한이 구약의 위대한 선지자요, 메시아를 예비하는 자이지만 구약의 인간이죠.

우리는 신약의 인간이에요.

율법의 인간이 아니라 성령의 인간입니다.

요한이 뭐가 모자라서 하늘나라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라도 요한보다 클까?

풀이하면 신약 시대에 세례 받은 여러분들이 요한보다도 더 위대하다는 그 뜻이에요.

 

세례자 요한이 무엇이 부족해서 우리보다 부족하다고 얘기하시는 것일까?

세례자 요한은 세 가지 신비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첫 번째, 십자가의 신비를 모르고 죽었습니다.

요한은 하느님의 거룩하심과 의로움을 알고 심판에 대한 것을 선포했지만,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나타난 하느님의 신비를 선포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신비를 구약의 인간들을 몰라요.

 

두 번째, 부활의 신비를 몰랐어요.

요한은 예수님의 부활을 못 보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예수님의 부활하신 것을 눈으로 보지는 않았어도 믿고 있죠.

그리고 우리도 부활할 것을 믿고 있죠.

그래서 우리는 세례자 요한보다 위대하다는 것에요.

 

마지막 세 번째 신비는 복음의 신비에요.

요한이 전한 메시지는 멸망의 경고였죠.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사랑과 용서였습니다.

 

이렇게 이론상으로는 우리는 세례자 요한보다 위대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보다도 우리가 더 위대합니다.

그러나 우리도 여전히 이 세 가지의 신비를 못 느끼고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우리의 몸뚱이는 신약 시대에 살지만, 여전히 구약의 인간일 수밖에 없다는 거죠.

 

세 가지 신비가 뭐죠?

십자가의 신비, 부활의 신비, 복음의 신비!

이 세 가지의 신비에 대해서 구약의 인간들은 모르고 죽었어요.

그러나 우리는 이미 이천년 동안 보고 듣고 전달받고 그리고 살면서 체험하고 살아요.

 

우리는 늘 깨어서 내가 지금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천국에 있는 세례자 요한보다 위대한 신약의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살펴보아야합니다.

여전히 구약의 인간처럼 십자가의 신비를 깨달은 적도, 부활의 신비도 느껴본 적도 없고,

복음의 신비도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신비라 한다면 큰일 날 일이죠.

 

십자가의 신비와 부활의 신비, 그리고 복음의 신비, 다른 말로 말씀의 신비. 이 세 가지의 신비는

신약의 인간으로 머무르기 위한, 또한 천국의 문을 열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열쇠라고 하는 것을 명심합시다.

 

아멘.

 

♣2019년 대림 제3주일(12/15) 서운동성당 김웅열(느티나무) 신부님 강론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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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발 (2020/02/11 08:3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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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멘, 김웅열(토마스 아퀴나스)신부님, 강론말씀감사드립니다, 신부님, 영육간에건강하시고 하느님의은총이 충만하시기를기도드립니다, 아   멘~~~
  
  펠릭스1254 (2020/02/11 13:5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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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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