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은총 받고 함구령!

글쓴이 :  하늘호수♡님이 2020-01-23 11:05:17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1,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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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 예수님!

한 달 참 잘 가죠? 1년도 너무너무 빨리 가죠. 정말 빨리 갑니다.

저의 사제 삶은 늘 변함이 없습니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려 애쓰고 있고, 특히 은퇴성당 온 2년을 뒤돌아볼 때 제일 힘쓴 것이 있다면

매일의 강론준비가 그렇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 강론준비를 하면서 제가 은혜 받는다는 것이 이해가 되시죠?

 

오늘 복음은 불과 9장 27절에서 31절까지니까 4줄이에요.

짧은 4줄이지만 강론준비하면서 한해를 정리할 수 있었고 많은 은혜를 받았어요.

여러분들, 평일 복음은 해마다 똑같습니다. 주일 복음만 가 나 다해로 바뀌죠.

작년에도 같은 마태복음 9장 27절에서 31절, 그때 준비했던 강론 원본이 있어요.

그때는 딱 한 페이지였는데 이번에는 한 줄 한 줄이 샘솟는 단물처럼 나오던지!

단 네 줄이지만 이 네 줄을 묵상하고 정리하는 데만 6시간이 걸렸어요.

작년에는 못 봤던 보석을 올해는 캤고 아마 내년에 또 다른 보물을 캘 수 있겠죠?

지식은 듣고 외우면 그뿐이지만, 하느님의 말씀은 볼 때마다 드러나요.

어느 신부님의 강론도 마찬가지겠죠?

아이 때문에 고민하며 강론을 들으면 그것에 초점이 맞추어서 뭐가 하나 나와요.

같은 강론을 아픈 몸으로 들으면 지난번 안 들렸던 것이 꽂힌단 말이죠.

자기가 처한 상황에 따라 신자들이 쉽게 볼 수 있게끔,

말씀 속에 묻혀 있는 보물을 캐내는 일을 하는 것이 사제들의 직무라고 전 생각을 합니다.

 

오늘 복음에 보면 소경 둘이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는 얘기로 시작이 됩니다.

청각장애자, 시각장애자, 그리고 벙어리, 어느 분이 더 불편할까요?

물어보나 마나지요? 다 불편하죠. 다 불편해요. 다 상황에 따라서 다 불편해요.

비교가 안 되는 질문이에요. 맞죠? 답이 없는 질문이에요.

하지만 오늘 복음처럼 예수님을 쫓아 길을 나서는 데는 어느 쪽이 제일 불편할까요?

그렇죠. 앞이 안 보이는 분이 불편할 것이에요.

 

‘장님 둘이 예수님을 쫓아가다가 ‘다윗의 자손이시여,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아무렇지 않게 아무 생각도 없이 그냥 읽고 들어요.

눈이 성한 사람은 예수님이 어디 가시는지 보이지만 장님에게는 안 보이는 거죠.

소경이 인파에 이리저리 밀리며 예수님을 쫓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가!

상상할 수가 없어요. 두 눈이 멀쩡해도 돌에 걸려 넘어질 판이 아닙니까?

앞이 안 보이는 분이 예수님을 따라 나선다고 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는 거죠.

 

장님은 육의 장님이 있고 영의 장님이 있어요.

육신의 장님이든 영의 장님이든 예수님 쫓아가는 것 어렵습니다.

여러분들 예수님 코앞까지 쫓아간 적 있으셨어요? 거의 없을 것에요.

누가 어렴풋이 전해주는 ‘요 동네에 사신데요.’

또 신부님들이 미사 때마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시래요.’ 라고 설명하는 것만 들었지,

여러분의 두 눈으로, 영의 눈으로 예수님의 주름살 하나하나, 그분의 미소를 보셨는지요?

 

우리들의 영의 장님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뒤따라간다는 것이 힘듭니다. 사제인 저도 힘듭니다.

그분이랑 가까이 있다 싶으면 이분은 도망가고 안 보여요.

또 기를 쓰고 어느 동네에 계신다고해서 찾아가 보면 또 다른 동네 가셨다고 그러고.

육의 장님이든 영의 장님이든 예수님을 쫓아가는 데 가로막는 게 있어요.

육의 장님은 시력이 없는 것이지만, 영의 장님이 예수님을 못 찾아갈 때는 분명히 걸림돌이 있다는 거죠.

나태함이 첫 번째, 두 번째는 교만, 세 번째는 진리의 반대쪽에 서는 악습입니다.

그리고 선악 중에 선으로 기울어지기보다는 악으로 기울어지는 나쁜 습성입니다.

이런 나쁜 돌들에 걸려 넘어지면 예수님 쫓아가다 보면 그분은 계속 달아나요.

 

오늘 복음의 소경은 그 복잡하고 어려운 가운데, 웅성거리는 소리로 예수님이 저 앞에 계시다는 것을 직감합니다.

그리고 소리치면 그분이 내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거리라는 것을 믿고 뭐라 하죠?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라고 외칩니다.

한 번 했겠습니까? 수백 번 외쳤을 것에요.

정확한 방향을 모르잖아요?

수많은 사람이 왁자지껄하는데, 내 소리가 그분께 전달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외쳤죠.

그런데 나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는 게 아니었어요.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소경은 혼자가 아니라 둘이었어요.

사람은 자기 발등에 불이 떨어지면 다른 사람의 등에 불 떨어진 게 안 보여요.

그런데 이 소경은 ‘제 눈만 고쳐주십시오’가 아니라 이웃을 향한 기도를 합니다.

감격스러운 기도를 합니다.

내 발등의 불 뿐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발등에 떨어진 불까지 치유시켜 주십시오!

나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같이 살려달라고 하는 성숙한 기도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목청껏 외치는데 예수님은 여느 때와 다르게 침묵으로 일관하십니다.

분명 못 들을 분이 아닙니다. 분명 들었어요.

다른 때 같으면 ‘오지마, 그 자리에 있어.’ 하고 가셨을 분인데,

이날은 아무리 목청껏 외쳐도 아무런 대꾸도 없이 집안으로 들어가셨어요.

침묵으로 일관하시는 하느님, 응답이 없는 하느님 앞에 우리는 절망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벼랑 끝에 몰렸다고 이렇게 매달리고 소리치는데 어찌 한 말씀이 없으십니까?

 

예수님은 분명히 들으셨을 것에요. 아니 들었어야 됩니다.

그런데 그냥 집으로 들어가셨어요.

그럼, 이 앞 못 보는 두 맹인은 거기서 포기하고 자기 집으로 갑니까? 아니죠.

그 집 앞에는 인산인해를 이루었을 것에요.

얼마나 많은 병자들이 들것에 실려 오고 마귀 들린 자식 손발 묶여왔겠어요?

유대인들이 사는 평범한 집의 문은 머리를 숙이고 들어가야 되는 작은 문이었죠.

누구의 도움을 받았는지 모르지만 예수님이 계신 집안으로 그 두 소경이 들어옵니다.

‘집안까지 따라 들어왔다.’라고 나옵니다.

 

그때 예수님은 그때 처음 한 말씀을 하시죠.

‘내가 너희의 소원을 이루어줄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가 아니에요. ‘믿느냐?’

생각하는 것과 믿는 것의 차이는 정말 커요.

그냥 내가 너희의 소원을 이루어줄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면 정말 믿느냐?

소경은 ‘예. 주님 믿습니다.’

‘예. 믿습니다.’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 안 하면 손해 볼 것 같고, 주님께 매달리는 척이라도 해야만 내 마음이 편하고,

 그렇게 해야 한다고 배웠으니 마지못해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겁니다.

손에 잡히는 것이 없어도 믿는 게 믿음입니다.

눈앞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도 내 앞에 주님 계시다고 확신하는 게 신앙입니다.

믿을 만한 구석이 단 1프로도 없더라도 믿는 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어쩌면 예수님은 문밖에서 목이 터지라고 외치는 그 소리를 들었지만,

일부러 못 들으신 척하시며 그들의 믿음을 보신지도 모릅니다.

그랬더니 세상에 집안에까지 따라 들어온 것에요.

 

아무튼 예수님의 ‘내가 너희의 소원을 이루어줄 수 있다고 믿느냐?’는 말에

‘예. 믿습니다. 주님.’ 하고 대답합니다.

그 말을 들으시고 예수님은 다른 환자들에게 하시던 대로 소경한테로 다가가시죠.

다가가신 다음에 터치 테라피(touch therapy)!

따뜻한 예수님의 손이 소경의 눈 위에 닿습니다.

사랑이 전달됩니다. 치유가 전달됩니다.

터치(touch)하면서 ‘믿는 대로 될 것이다.’ 말씀하시니 눈이 떠졌어요.

 

내가 강론을 준비하면서 앞줄에 앉아있는 요셉과 데레사 부부도 생각했어요.

그랬더니 주님께서 요셉의 핸디캡을 통해 당신을 드러내고자 함이라 하셨어요. 아멘.

비록 세상은 못 보지만 영안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밝은 분들입니다.

눈뜬 우리는 교만에 걸려 넘어지고, 미움에 걸려 넘어지고, 욕심에 걸려 넘어져 예수님 곁에 못 찾아가지만,

비록 세상은 안 보이는 육신의 장님이라 하더라도 영안이 열려있기는 우리 요셉이랑 데레사는

영가가 얼마나 아름답게 나오는지!

 

오늘 복음에 나오는 소경은 여기까지는 참 좋았던 것 같아요.

예수님이 그런데 함구령을 내리셨어요. 이것 밖에 나가 퍼뜨리지 말라고 했어요.

함구령을 내렸지만 불순종하고 소문을 퍼뜨렸다고 성경은 끝이 나죠.

 

그럼 왜 함구령을 내리셨을까요?

저도 피정 후 귀가하는 교우들에게 강복을 주면서 에수님처럼 함구령을 내려요.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이렇게 피정하느라고 몇 달 전부터 준비하셨겠지만 이 동네 마귀들도 비상대책회의를 했어요.

'마귀 때려잡는 신부가 와서 마귀 때려잡는 방법을 분명히 교우들이 배울 터인데

피정 끝나고 나오는 인간들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유혹해서 피정 때 받은 은혜 시궁창 속에 집어넣어라.’

해서 그래요.‘

‘여러분들 지금 행복하시죠? 지금부터 일주일 동안 입에다 쟈크를 채우세요.

마귀는 여러분들이 은총 받는 꼴을 못 봅니다.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그 은총을 깨뜨려버립니다.

성당 정문 앞에 마귀들이 수도 없이 모여 있을 겁니다.

그러니 집에 가서 함구하십시오. 누가 시비 걸어도 무조건 잘못했다고 하십시오.

그리고 일주일 동안 제가 숙제 내 드릴테니 집회서를 읽으십시오.

가슴에 와 닿는 것이 있으면 줄을 긋고 노트에 써 옮기십시오. 사

제의 입을 통하여 축복의 씨앗이 떨어졌을 때는,

집에 가서는 말씀을 읽고 들음으로써 그 씨앗에 거름을 주게 되고 싹이 나오게 해야 돼요’.

함구령을 내리신 이유는 기적 뒤에는 반드시 마귀의 공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침묵하고 말씀을 가까이 해야 된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 눈을 뜬 장님 둘은 왜 함구하지 못했을까요?

오늘 성경에 보면 눈을 뜬 다음에 어느 곳에서도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없어요.

치유 받은 자 입에서 나와야 되는 말은 찬미와 감사에요.

예수님이 보니 처음 찾아올때 까지는 정말 아름다웠는데, 눈을 뜬  후엔 앞에 있는 예수님은 쳐다보지도 않아.

‘아이고, 보이네.’ 밖에 뛰쳐나갈 생각만 해.

찬미와 감사를 하지 않는 사람은 예수님의 그 말씀에 순명할 수가 없죠.

 

여러분들 잘 아시는 것 있죠?

예수님께 열 명의 나병 환자가 오자 치유도 없이 사제들에게 몸을 보이라고 보냈죠.

열 명은 돌 맞아 죽을 각오하고 사제에게 가는데 도중에 모두 치유됐다고 나옵니다.

그런데 그날 즉시 예수님께 와서 감사드린 사람은 단 한 사람, 사마리아인뿐이었죠.

예수님이 묻습니다. ‘내가 고쳐준 사람은 분명히 열 명인데, 아홉은 어디 갔느냐?’

 

아홉 명은 어디 간 것에 대해서 연구를 해서 여러 피정 중에 답을 알려드렸어요.

세 명은 나병이 낫자 마자 몽둥이 찾아서 자기 버린 마누라 두들겨 패러 갔대요.

치유가 되면 분노의 마귀가 즉시 달라붙습니다.

사람이 아플 때는 누구 미워하는 사람도 생각이 안 나요.

내 몸이 지금 죽게 되었으면 미워하는 사람이 앞에서 약을 올려도 안 미워져요.

그런데 다시 건강을 찾으면 옛날에 상처를 줬던 그 인간에게 복수하고 싶어져요.

또 세 사람은 술집으로 달려갔다고 그랬죠.

병이 걸렸을 때는 술이 받지를 않아요. 입만 대면 토해버려요.

육신이 다시 건강해지니까 다시 술 생각이 나는 것에요.

마지막 세 명의 행방을 알아내는 데 정말 힘들었어요.

이 세 명은 창녀 집으로 달려갔대요.

몸이 아플 때는 여자를 가까이할 수 없었는데 ‘밤새 즐겨보자.’ 하며 갔대요.

 

그 아홉 명이 나병이 낫고 난 다음에 제일 먼저 해야 될 일은 뭐에요?

예수님 앞에 한걸음으로 쫓아와서 열 명이 겸손하게 엎드려서,

‘주님이 저희가 무엇이길래 저희를 이렇게 낫게 해 주셨습니까?’ 하면서 감사와 찬미를 드려야 해요.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 하나만이 감사와 찬미 드렸잖아요?

두 소경이 눈이 떠지는 순간 예수님은 그들의 반응을 눈 여겨 보셨을 거예요.

성경 어디에도 감사의 ‘감’ 자도 안 나오죠? ‘찬미의 ’찬‘자도 찾아볼 수가 없어요.

그저 눈 떴다는 것에 난리법석을 떨 뿐이죠.

눈을 뜨게 해 준 분이 바로 눈앞에 있는데, 눈뜨기 전에는 그렇게 주님 얼굴을 보고 싶어 했던 그 인간들이

눈이 떠지고 나니 감사하기는커녕 다 때가 되서 자기가 능력이 있어서 눈떠진 줄 압니다.

예수님은 이 상태로 나가면 마귀의 밥이 될 것을 알았기 때문에 함구령 내린 거죠.

‘입 다물어. 내게 찬미 안 드려도 돼. 어떻게 고쳐놨는데, 마귀의 밥 되면 안 돼!’

 

찬미와 감사를 안 한 사람에게 함구령은 한귀로 들어와 다른 귀로 나가는 아무 힘이 없는 소리였을 겁니다.

예수님이 함구령을 내릴 때는 항상 오늘처럼 치유되고 난 다음에 치유와 감사가 없는때 입니다.

열병이 걸린 베드로의 장모는 예수님이 손을 잡자마자 열이 떨어졌죠.

그리고 ‘그 즉시 일어나서 예수님의 시중 들었다.’ 라고 나옵니다.

치유 받은 자는 감사와 찬미의 마음을 가지고 봉사해야 돼요.

그렇지 않을 때는 그 치유는, 그 기적은 사탄의 도구가 될 수밖에 없죠. 

  

오늘 소경이 예수님을 찾아 나서는 그 과정, 그 기가 막힌 여정!

영의 눈이 먼 우리들도 예수님 찾아 나서기 쉽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소리만 지른다고 아는 척하시지 않으셨죠?

직접 사람 비집고 예수님 앞까지 집안으로 들어온 것에요.

그 장애들 딛고 사람들 틈새에서 비집고 당신을 만나려고 오는 그 모습을 보고, 

 그때야 ‘내가 너희의 소원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느냐? 생각하고 온 거냐, 믿고 온 거냐?’

‘예, 믿습니다. 주님.’

그때 예수님은 일어서서 ‘가만있어라, 내가 간다. 네가 믿는다했으니 이제 내가 간다.’

예수님은 가셔서 터치하셨죠. 그리고 ‘믿는 대로 될 것이다.’라고 하셨어요.

이 복음이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복음이 됐다면, 어떤 말이 나와야 된다고요?

‘눈을 뜬 그 장님은 주님 앞에 무릎 꿇고 감사를 드렸다.’

그러면 예수님의 입에서 ‘함구해라’는 얘기도 안 나왔을 것에요.

 

지금 양쪽 고해소에서 신부님 두 분이 몇 시간씩 좁은 골방에서 성사를 주고 계세요.

고백성사 보면서 저 안에서도 치유가 일어나고 있죠.

그리고 이 미사 중에 수많은 성인성녀들이 여러분 각자에 필요한 은혜와 해결해야 될 문제들을 위해

얼마나 전심전력으로 예수님께 전구하셨겠습니까?

조금 후 예수님은 성체의 모습으로 우리 안에 들어오십니다.

손을 대어 주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 입안에 들어오십니다.

그 냄새나는 입안에 들어오십니다. 썩은 이가 있는 입안에 들어오십니다.

‘내가 너를 살릴 수만 있다면 네 이에 씹히는 한이 있어도 네가 치유될 수만 있다면.’

 

주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묻습니다.

‘내가 너의 소원을 이룰 수 있게 해줄 수 있다고 믿느냐?’

‘예, 주님. 믿습니다.’ 그리고 치유시켜 주십니다.

그리고 치유된 자의 첫 번째 자세는 감사와 찬미, 나아가서 봉사입니다.

그래야 마귀의 습격, 마습을 안 당합니다.

예수님은 늘 그것이 불안했기에 함구령을 내리십니다.

눈뜨고 난 다음에 어디를 찾아봐도 주님 앞에 무릎 꿇고 감사를 드렸다는 말이 글자 하나도 안 보입니다.

바로 우리들의 모습, 현재 나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오늘 은밤에는 달라는 기도는 나중에 합시다. 감사기도부터 먼저 합시다.

‘주님, 저를 불러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를 부르시려 얼마나 애를 쓰셨는지요?

저는 그것도 모르고 내발로 걸어온 줄로 알고 착각하고 살았습니다. 주님, 감사와 찬미 받으십시오.’

그런 마음으로 올해의 마지막 은총의 밤을 잘 정리하도록 합시다.

 

아멘.

 

 

♣2019년 12월 은총의 밤(12/07) 서운동성당 김웅열(느티나무)신부님 강론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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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발 (2020/01/23 11:2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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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멘, 김웅열(토마스 아퀴나스)신부님, 강론말씀감사드립니다, 신부님, 영육간에건강하시고 하느님의은총이 충만하시기를기도드립니다, 아   멘~~~
  
  펠릭스1254 (2020/01/24 10: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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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멘~
  
  우한숙 로사모바일에서 올림 (2020/01/24 16:4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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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은총을 받고도 감사 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 눈을 뜨게 된 기적을 함구하라고 하셨군요. 신부님 강론을 보고 성경 말씀을 곰곰히 읽었습니다. 주님을 믿고 늘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오늘 말씀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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