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하느님의 시간과 우리의 시간이 다르고, 하느님의 때와 우리의 때가 다릅니다

글쓴이 :  하늘호수♡님이 2020-01-13 04:41:34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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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 느티나무신부님

 

+ 찬미예수님!

 

내년 3월부터인가 우리 동네 재개발하는데, 아파트가 1,500세대가 들어온대요.

도로도 넓어지고 점(占)집이고 없어지겠고, 신입가정 축성하러 다니면 얼마나 좋아요?

신자 집 축성하러 다니는 것이 저는 제일 행복한 것 같아요.

내 손으로 ‘천주교우’문패 붙여주면서 ‘마귀 얼씬 마라’ 구마기도 하고 나오니까요.

 

신학교에 처음 들어가면 신학생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공부하기가 무엇일까요?

언어 가운데서 라틴어가 어려워요. 라틴어보다 더 어려운 것은 히브리어.

히브리어는 파리가 지나가다 똥 하나만 떨어뜨려도 말이 바뀌어요. 그렇게 어려워요.

그런데 그리스어도 배워야 해요. 영어는 기본이고요.

1학년 들어가서 처음에 라틴어 기초, 단어를 주로 외워요.

라틴어 배우고 한 달 지나서 단어 시험을 보는데, 문제가 20개가 나왔어요.

‘라틴어는 한글로, 한글은 라틴어로 적어라.’

라틴어를 한글로는 다 썼는데, 한글을 라틴어로 적는 문제 하나가 답이 생각 안나요.

100점 안주려고 안 배운 곳에서 문제를 냈으니 알 재간이 없었죠.

다른 신학생들은 다 나갔지만, 나 혼자 앉아있었어요.

이거 하나 맞히면 100점인데 너무 자존심이 상하는 거죠.

끙끙거리고 있는데, 라틴어 담당 신부님이 내 앞을 왔다 갔다 했어요.

그 신부님이 옆으로 지나가실 때 무슨 배짱이었는지 신부님 수단을 잡아 당겼어요.

‘이 문제, 답 좀 가르쳐주세요.’

감독하러 오신 신부님께 답을 알려 달라하니 기가 차신지 휙 가시더니, 다시 오셨어요.

이번에는 세게 잡고 안 놓았죠. ‘이거 답이 뭐냐고요? 신부님’

신부님이 ‘몰라.’하고 가버렸어요.

 

그렇게 시험을 마치고 나와서 속이 상해서 그 신부님 방으로 쫓아갔어요.

‘자비를 외치시는 사제께서 어린 양이 답하나 알려달라는데 어찌 ‘몰라’ 하십니까?‘

‘야, 이놈아 내가 언제 안 알려줬어? 몰라야. 몰라. 몰라가 답이야.’

그때 문제가 맷돌이었어요. 오늘 복음에 나왔죠.

‘두 사람이 맷돌질하다가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내버려 둔다.’

내 귀에다 대고 ‘몰라, 몰라, 몰라’ 세 번이나 그랬는데. 내가 모른 거죠.

그때 배운 교훈이 ‘욕심이 앞을 가리면 내 앞에 예수님이 나타나도 못 볼 수 있겠구나.’

100점 맞고 나가려는 욕심에, 귀에 대고 ‘몰라, 몰라, 몰라’ 답을 알려줘도 모른 것에요.

저는 늘 이 성경 구절을 읽을 때마다 신학교 1학년 때 이 일이 생각이 나요.

 

결국에는 주님이 내 앞에 안 계셔서가 아니고 진리가 내 주변에 없어서가 아니죠.

우리 욕심에 눈이 닫히고 귀가 멀고, 급하고 겸손하지 못한 마음 때문에

예수님이 내 코앞에서 이야기하셔도 못 알아듣고 못 알아보는 겁니다.

 

수학과 대학원생이 배우는 내용들을 보면 여러분들 푸실 수 있으세요?

대학원생들이 풀던 문제를 초등학생들에게 풀라하면 풀 수 있을까요? 천재래도 못 해요.

그렇지만 대학교 다니는 학생은 초등학교 다니는 학생의 문제를 풀 수 있죠.

하느님의 계산과 우리 인간의 계산은 다르다는 겁니다.

우리 인간은 하느님이 지금 어떤 계산을 하고 있는지 못 알아차려요.

그렇지만 하느님은 쓱 보셔도 내가 지금 계산하는 것이 맞는지, 틀렸는지 아시죠.

종교인과 신앙인으로 나눠진다고 그랬죠?

종교인은 자기 계산대로 살아요.

그리고 그 쉬운 1+1=2를 맞춘 것 가지고 세상 계산을 다 끝냈다고 착각을 해요.

어려운 고등수학이 얼마나 많은데, 늘 자기 생각, 자기 계획이 가장 정확하다 생각해요.

입으로는 하느님 계산대로 산다 하지만 늘 하느님에게는 받을 게 없다고 생각하죠.

그리고 하느님과 계산해 보면 내가 늘 손해 본다고 생각해요.

‘하느님이 준 게 뭐 있어? 헌금, 교무금, 후원회 등등, 내가 바친 게 얼마나 많은데?’

신앙은, 은총은 계산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죠.

하느님을 믿으면서도 기쁨이 없고 날이 갈수록 고달파지는 사람 대부분 하느님 앞에서 계산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더 비극은 자기계산이 하느님계산보다 더 정확하다고 착각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늘 성경이 전하고 있는 키워드(keyword), 중요한 묵상 단어는 시간, 때입니다.

하느님의 시간과 우리의 시간이 다르고, 하느님의 때와 우리의 때가 다르다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새해를 시작하는 대림 1주 교우들에게 선포하는 하느님 말씀의 키워드입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고 계획하시는 때를 얘기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그 때’를 목소리를 통하여, 양심을 통하여, 사제의 강론을 통하여,

또는 우연히 틀어 본 유투브(youtube)를 통하여 마치 번개 맞은 것처럼 듣습니다.

때로는 사건을 통해서, 때로는 십자가의 고통을 통하여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세상의 모든 일에도 다 때가 있습니다.

심을 때가 있으면 거둘 때가 있고, 울 때가 있으면 분명히 웃을 때가 있습니다.

사람은 때를 잘 알아야 됩니다.

사업이나 장사할 때도 때를 놓치면 큰 손해를 봅니다.

부모가 아무리 재산을 많이 물려줘도 자식이 시원찮고 때를 못 보면 재산 다 날립니다.

공부도 때가 있습니다.

삶의 여러 부분이 그렇습니다.

기도도 할 때가 있고 봉사도 할 때가 있습니다.

휠체어 타고 ‘두 발로 걸어 다닐 때 봉사 할걸! 이제는 누구 도움 없이는 꼼짝도 못하네!’

열심히 봉사하다가 휠체어 타신 분들은 그런 후회가 없겠지만,

봉사만 받다가 마지막 순간 휠체어 타면서도 봉사를 받을 땐 부끄러움과 수치심이 올 겁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그 중요한 때를 그리스어로 카이로스(καιρός)라고 그럽니다.

카이로스는 충분히 찬 시간. 충만한 시간, 찰대로 충분히 가득 찬 시간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때가 됐다는 것은 십자가의 때. 수난과 죽음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때입니다.

그래서 충만한 시간입니다.

하느님께 나가는 거룩한 때를 우리는 잘 분별해야합니다.

서두에 얘기했듯이, 라틴어 담당 신부님이 내 귀에 ‘몰라, 몰라, 몰라’ 답을 알려줘도

나는 여전히 계속 ‘몰라, 몰라’ 하다가 결국 하나는 못 쓰고 나왔다는 것 아닙니까?

 

오늘 2독서에서 ‘깨어나야 할 때가 왔다.’고 바오로 사도가 외치고 계십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바로 오늘 우리가 들은 이 성경 구절을 듣고서 완전히 변화됩니다.

마니교에 빠져 인생은 쾌락에 있다며 온갖 탐욕적인 생활을 했던 아우구스티누스는

뒤에서 아들의 회개를 위해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며 쫓아다니는 모니카성녀를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당대 유명한 설교가 암브로시오 주교님이 온다는 얘기를 듣습니다.

‘얼마나 잘하나 한 번 보자. 나도 수사학을 배운 사람인데’ 아주 교만한 마음으로 갑니다.

그날 암브로시오 주교님의 말은 아우구스티노의 마음을 흔들어놓았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번민과 몸부림 끝에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내 앞에 있는 성경책을 펼쳐라!’

그 자리에서 딱 펼쳤더니, 오늘 2독서, 로마서 13장 13절이 눈에 띄었던 것입니다.

‘진탕 먹고 마시고 취하거나 음행과 방종에 빠지거나 분쟁과 시기를 일삼거나 하지 말고

언제나 대낮으로 생각하고 단정하게 살아갑시다.’

아우구스티노는 바로 이 대목에서 너무나 큰 하느님의 은총을 만나게 됩니다.

그는 드디어 찾던 것을 찾았고 만나고자 하던 분 만나게 되었다고 외쳤습니다.

실로 구원의 때를 만난 겁니다. 살아 계신 하느님을 만난 겁니다.

 

프란치스코는 개망나니로 살다 글라라가 나병환자를 도와주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만나서 위대한 성인이 되었습니다.

 

철학자요 물리학자인 파스칼을 하느님을 만났던 그때, 그 시간을 잊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음 글을 양피지에 적어 양복 안단에 꿰매서 입고 다녔다고 합니다.

‘아브라함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 그리고 나 파스칼의 하느님을 언제 만났노라.’

신앙이 흔들릴 때마다 하느님을 만났던 그 시간을 상기하면서 분심을 몰아냈다고 합니다.

 

저도 하느님을 만나서 성소를 받았던 때가 있습니다.

하느님은 약한 인간들이 만든 허상이라 여기고 살던 교만한 저에게 인격적인 하느님,

살아계신 하느님이 내 앞에 나타났던 겁니다.

 

여러분들도 하느님을 만났던 때가 있을 겁니다. 그 시간을 소중히 여기십시오.

 

대림절은 지난 1년을 반성하며 보다 더욱 성숙하고 새롭게 변화되는 은혜로운 시기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대림절은 성장의 시기요 또한 회개의 시기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때 그분이 오시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원하시는 때 그분이 우리에게 오십니다.

늘 단정한 몸과 마음으로 깨어 준비합시다.

 

아멘.

 

♣2019년 대림 제1주일(12/01) 서운동성당 김웅열(느티나무) 신부님 강론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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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ovega (2020/01/13 07:3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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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감사합니다

  
  백발 (2020/01/13 08:5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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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멘, 김웅열(토마스 아퀴나스)신부님, 강론말씀감사드립니다, 신부님, 영육간에건강하시고 하느님의은총이 충만하시기를기도드립니다, 아  멘~~~
  
  펠릭스1254 (2020/01/13 12:3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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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멘~
  
  수산나의 기쁨 (2020/01/14 07:0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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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감사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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