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아! 감곡 매괴 성모님!

글쓴이 :  하늘호수♡님이 2020-01-10 06:40:01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1,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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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감곡 매괴 성모님!

 

+ 찬미예수님

 

성탄전야, 성탄미사, 송년미사, 새해미사, 은총의 밤, 또 내일은 주일 미사.
부실한 몸으로 이렇게 행사들을 치르다 보니 좀 많이 힘듭니다.
그러다보니 성모님, 특히 감곡에 계신 성모님이 생각이 납디다.

주님의 봉헌대축일 미사를 지내고 있지만,
오늘 은총의 밤에는 감곡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왜 감곡매괴성당이 동양의 루르드 성지가 될 자격이 있는지 이야기 드리고 싶습니다.
오늘 매괴성모님 이야기 들으시고 감곡도 찾아가주세요.

 

 

매괴성당을 이야기하려면 성당을 건설하신 임가밀로 신부님을 빼 놓을 수 없습니다.

임신부님은 루드르 근처의 작은 마을에서 탄생하시고,

심신 깊은 부모님 밑에서 신앙교육을 받고 자라나 파리외방선교회 신학교에 입학을 하였습니다.

서품을 받고 한국으로 떠나기 전에 운명적으로 소화데레사 성녀님을 만나 전구를 청하시고

영적 오누이로 지내시기로 합니다.

나중에 소화데레사 성녀님이 성녀 품에 오르시자 마당 오른쪽에

소화데레사 성녀 제대를 조그맣게 만들어 놓으시고, 성당 종 3개 중 하나는 소화데레사종으로 칭하셨습니다.

소화데레사 성녀의 기도거리중 하나가 조선, 특히 감곡의 매괴성당이었으니 참 신비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조선에 오신 임신부님은 처음에는 여주에 가셨으나 자리가 적당치 않다고 생각하고,

성당 터를 찾아다니시다가 강 건너 성모님 치마폭 같은 산과 그 아래 큰 궁궐 같은 집이 보였습니다.

민비 친척 민응식의 집이었습니다.

‘저 집과 저 뒷산에 성당을 지으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너무 비쌌습니다.

이에 임신부님은 ‘기적패’를 민영식의 땅에 몰래 묻고 기도합니다.

 ‘이 집과 저 뒷산을 주신다면 저는 평생 성모님의 종으로 살겠습니다.’

 

이 기도 후 2년이 채 안 되어 갑신정변이 일어나 농민들에 의해 집은 불타고

민응식은 도망간 후 아주 헐값에 집터와 뒤의 큰 산을 살 수 있게 됩니다.

타나 남은 집 중 안 탄 집을 첫 성당으로 하고 대문을 달아 첫 미사를 지내게 되는데,

첫 미사에 참여 신자 수는 무려 2명(웃음)이었습니다.

하지만 불과 몇 년 안에 첫 번째 성당이 비좁게 되어 산 중턱에 성전을 지어야할 때라 생각하십니다.

명동성당은 중부 이북을, 감곡성당은 중부 이남을 선교하는 성당으로 생각하고

명동성당의 설계도를 그대로 가지고 지으시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일제시대에 성당으로 오는 자재를 중간에 빼앗아가서 명동성당의 반쪽만한 성당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박물관에 가서 보시면 ‘대문’을 보실 것입니다.
2005년 저는 일주일 내내 같은 꿈을 꿉니다. 어느 장소에 가서 삽으로 파는 꿈입니다.

신자들과 함께 그 장소에 가서 파보니 ‘첫 번째 성당 대문’이 나왔던 것입니다.

 

임신부님은 성당은 지으신 후 1930년에 루르드에서 루르드성모님을 모시고 와 제대위의 벽을 파내고 그 안에 성모님을 모십니다.

그리고 온 몸으로 일제와 싸우십니다.

지금 14처 올라가는 곳의 성모광장자리에 일본사람들은 성당보다 훨씬 큰 신사를 짓고 싶어 했습니다.

임신부님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또다시 밤중에 몰래가서 주춧돌 자리에 기적패를 묻습니다.

“성모님, 성모님이 계신 이 거룩한 산에 어떻게 귀신을 섬기는 신사가 들어올 수 있습니까?

성모님이 막아주십시오.”

 

그 때부터 희한한 일이 벌여졌습니다.

공사만 하려하면 갑자기 산위에서 바위가 굴러오거나, 호랑이가 나타났습니다.

목수들이 못 하나를 못 박고 끝났습니다. 그러다 해방을 맞이했습니다.

 

임신부님은 감곡에서만 63년을 본당신부를 하십니다.

일제시대 때 세 번 서대문형무소에 붙들려가고, 세 번째에는 사형선고를 받습니다.

마지막으로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질문에 임신부님은

꿈에도 그리는 감곡에 가서 미사를 한 대 드리고 싶다하십니다.

 임신부님을 8월 15일 성모승천대축일미사를 감곡신자들과 눈물로 드리고 있었습니다.

성체분배가 끝나고 미사가 끝나갈 무렵, 성당 문이 활짝 열리면서 동네청년이 해방을 알려왔습니다.

“신부님은 이제 사셨어요!!! 해방됐어요!”

 

해방 후에도 본당신부님을 하시는데, 기록에 의하면 지병도 없으셨는데

어느 날 식사시간에 내려오시지 않아 가보니 돌아가 계셨습니다.

사제들이 죽으면 신자들은 사제를 만질 수 없습니다.

회장만 들어가서 이불을 덮어드리고, 파리외방선교회신부님들께 알립니다.

신부님들이 오시는데 3일이 걸렸는데, 신자들은 문밖에서 기도만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송장 썩는 냄새가 아닌 장미향기가 계속 났다고 합니다.

신부님들이 들어가서 보니 썩은 곳은 하나도 없었고, 염을 하려고 몸을 뒤집어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임신부님은 평생을  십자가위에서 주무셔서, 등에는 십자가자국이 파고 들어가 있었다고 합니다.

 

임신부님은 60여년을 사시면서 한 번도 고향을 가시지 않았다 합니다.

교우들에게는 엄했지만, 부성을 가지고 신자들을 대하셨고,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온 말인 “나는 여러분을 만나기 전부터 사랑했습니다.”

 

저는 처음 감곡에 가서 임신부님을 공부하면서 이 말을 들었을 때, 충격이었습니다.

사람 사이에 이 말보다 더 아름다운 말이 어디 있을까?

 

이 김신부도 여러분을 만나기 전부터 사랑했습니다. 

 

임신부님은 3개의 종을 종탑에 겁니다.

마리아종, 데레사종, 벨라뎃다종.

일제 말기에 일본사람들은 쇠란 쇠는 모두 가져가는데 성당의 종도 어김없이 내려져서

청주에 있는 불가마속에 녹이려고 집어넣습니다.

그런데 이 종 3개는 전혀 녹지를 않습니다.

화가 난 일본인들은 불을 끈 후 망치로 종에 금을 가게 만들었습니다.

박물관에는 데레사종과 마리아종이 있고, 그나마 훼손이 덜 된 벨라뎃다종은 종탑에 걸었습니다.

종 하나도 하느님의 영광을 들어냅니다.

 

6.25가 터집니다. 인민군 특히 장교들의 회합실과 숙소실로 바뀝니다.

그런데 그 안에서 여러 가지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갑자기 큰 돌 성수대가 쓰러진다던가,

마루에 앉아 회의를 하는데, 성당 안에 갑자기 불덩이 3개가 휙휙 지나간다던지 합니다.

성당 안에서 자꾸 이상한 일이 벌어지자, 그 탓을 제대위에 서 계신 성모님께 돌립니다.

“저 여자가 아마 요망을 부리나보다. 저거만 깨부수면 성당이 조용해지겠지”

 

처음에는 2층에서 성모님께 정조준을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쏴도 총알이 빗나가는 거예요.

기관총으로 마구 쏩니다. 수백발이 날아갑니다.

하지만, 단 7발만 성모님은 받아들이십니다.

저 성모님은 돌로 된 것도 나무로 된 것도 아니고 속이 빈 석고입니다.

손만으로도 부셔져야 하는데 성모님은 총알 7발만 가슴에 품고 서 계셨습니다.

 

화가 난 인민군은 성모님 목에 밧줄을 메고 망치를 가지고 올라갑니다.

그런데 망치를 치려는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앞을 보고 계시던 성모님이 고개를 돌려 인민군들을 쳐다보셨대요.

그 인민군은 떨어지고 그 밑에 있던 장교 2명은 혼비백산되어 달아납니다.

성당 밑에 인민군에게 밥을 해주던 할머니의 증언에 의하면

어느 날 밥 때도 아닌데 장교 2명이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내려왔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성당 안에 귀신 있다고. 그 때부터 인민군은 무서워서 못 들어갔습니다.

 

이북으로 후퇴가면서 청년들을 끌고 가려 할 때, 동네 청년들은 성당 안으로 들어가고,

그 안에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인민군들은 밖에서 나오라고 소리만 지를 뿐 총질도 못했습니다. 

인근 다른 동네 청년들은 끌려갔지만, 감곡의 청년은 한 명도 끌려가지 않았고

오늘 날 그분들은 90이 다 된 노인들이십니다.

지금도 그 때를 증언합니다.

 

6.25가 지난 후부터 성모님의 이야기가 입으로 전해지고, 순례객들이 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성모님 앞에서 기도를 하면서 많은 치유와 영적인 체험을 하게 됩니다.

성모님의 은혜 가운데 2006년에 주교님이 감곡성당을 성모님성지로 선포합니다.

임가밀로 신부님께서 본당을 처음 만들려하던 때부터 114년 되던 해입니다.

 

저는 감곡가기 전부터 죽을 고비를 많이 넘겼고 그 때마다 성모님께서 살려주신 것을 압니다.
여러분, 배티를 위해서도 기도해주셔야 하지만,

감곡 매괴성모님 성지를 위해서도 기도하고 찾아가 주십시오.

 

2016년 1월 은총의 밤, 임가밀로신부님의 말이 떠올랐고, 저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성모님도 여러분 만나기 전부터 여러분을 사랑하고 계셨을 겁니다.

올 1년 동안 성모님께 많이 의지하고 전구하며 평화를 깨는 많은 어둠이 찾아온다하더라도

손에 묵주를 놓지 말고 매괴성모님께 기도합시다.

 

프랑스엔 루르드성모님, 포르투갈엔 파티마성모님, 벨기에엔 바뇌성모님,

멕시코에는 과달루페 성모님이 대표하시듯

한국의 대표 성모님은 감곡에 7개의 총알구멍을 가지고 계신 매괴성모님이십니다.

 

저는 궁금증이 많은 사람인데, 처음에 가서 성모님 뒷판을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총알이 나간 자국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내시경을 집어넣어서 보았습니다.

그 안에는 녹 쓴 총알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지금도 많은 고통을 가지고 감곡을 찾아오는 신자들에게

 “얘들아, 내가 네 고통 안다. 나도 내 몸에 아직도 총알 7개를 가지고 있다.

나도 이렇게 쓰러지지 않고 버티고 있는데, 네 십자가 힘겨워하지 말아라. 이 어미가 있지 않니?”

 

감곡의 칠고성모님은 우리가 어려울 때 가서 울면서 매달릴 수 있는 어머니이십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칠고성모님을 모시고 있다는 것은 큰 은총입니다.

 

감곡 많이 가세요. 제 안부도 전해주시고요.

 

매괴성모님을 모시고 간 신자들이 “총알구멍에 향수를 뿌렸나요?” 하고 묻습니다.

아니에요. 대성당 앞에도 매괴성모님이 계시지요? 가끔은 짙은 향기가 난다고 합니다.

 

올 1년 동안 나와 내 가족, 내 영혼, 내 영적사업, 세속사업 성모님께서 도와주셔서

선한 쪽으로 열매를 맺길 성모님께 간절히 기도합시다.

 

아멘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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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텔샤모바일에서 올림 (2020/01/10 07: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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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수산나의 기쁨 (2020/01/10 07:4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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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성모님... 
  
  백발 (2020/01/10 09:4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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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멘, 김웅열(토마스 아퀴나스)신부님, 강론말씀감사드립니다, 신부님, 영육간에건강하시고 하느님의은총이 충만하시기를기도드립니다, 아   멘~~~
  
  펠릭스1254 (2020/01/10 11: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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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멘~
  
  우한숙 로사모바일에서 올림 (2020/01/11 01:2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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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곡 매괴 성모님! 꼭 뵙고 싶습니다. 저를 불러주세요. 김웅열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감곡의 매괴 성모님을 모셨던 감격을 저도 느낌니다. 성모님의 장미향기를 맡고 싶어요. 아멘. 우 로사 드림.
  
  미세스랍모바일에서 올림 (2020/01/12 03: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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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곡의 매괴성지에 십자가의길을 통해 대형십자가앞에서 기도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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