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당신은 의인입니까, 죄인입니까?

글쓴이 :  하늘호수♡님이 2019-12-16 22:47:01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1,0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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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미예수님

오늘 날이 좀 추워졌죠?

이렇게 추운 날에도 예수님 만나러 한걸음에 오신 여러분께 축복이 내리길 기원합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구약시대에 살고 있어요, 신약시대에 살고 있어요?

그럼, 지금 성령의 시대 살고 있어요, 율법의 시대에 살고 있어요?

분명히 몸은 마음은 신약에 살고 있고, 성령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구약시대에 사는 사람처럼 살고 있으니 이것을 어찌 해결해야 되는가?

신약의 시대 살면서 구약의 인간들처럼 사는 사람들의 특징이 오늘 복음에 나와요.

‘스스로 의인인 것처럼 착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입만 열면 성령의 시대에 살고 있고, 신약의 인간이라 떠들면서도 하는 것을 보면

‘우리 성당에 나보다 더 의인인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우리 성당에 나보다 더 열심한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우리 성당에 나보다 더 신자생활 열심히 한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지금도 늦지 않았어요.

여러분 중 본인이 죄인이 아니라 의인이라 생각하는 분이 계시면 조용히 집에 가세요.

지금 이 성당에는 죄인들만 있을 수 있어요.

미사 드리는 신부도 죄인이고, 우리 모두는 예수님 말고는 다 죄인입니다.

그런데 간혹 본인이 예수님보다 더 깨끗하다고 착각하는 분이 의외로 많아요,

스스로 의인이라 생각하는 이들은 공통적으로 병이 있어요.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병이죠.

무슨 병이 제일 무섭습니까? 암, 에이즈, 당뇨, 치매?

이런 병들보다 제일 무서운 병은 ‘불감증’ 못 느끼는 병입니다.

 

스스로 의인이라 착각하는 사람들은 불감증이라는 병에 걸려있는데, 3종류로 나눠져요.

 

첫 번째, 말씀의 불감증 환자들입니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 좋은 강론을 들어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나가요.

이런 말씀의 불감증 환자는 2종류예요.

한 부류는 아예 말씀 근처에 가지를 않아요. 생전 성경을 열어본 적이 없어요.

무슨 원수인 것처럼 말씀 근처에 안가는 사람도 말씀의 불감증 환자이지만,

또 다른 형태의 불감증 환자는 성경도 몇 번 읽고,

성서 40주간부터 훌륭한 신부님 강론을 달달 외워요.

그런데 문제는 뭐냐? 열매를 맺지 못해요.

야고보서 1장 22절에 나오는 대로 그저 듣기만해서 자기 자신을 늘 속여요.

듣고 배운 것이 겸손의 재료가 되어야하는데 머릿속에만 들어차서 교만의 재료가 되요

그래서 이러한 사람들의 특징은 듣고 배운 거 가지고 겸손해지지 않고 교만해 져요.

늘 판단하고 비판해요.

본당 신부님의 강론을 비판하고, 아무튼 하느님보다 자기가 늘 윗자리에 있지요.

피정 때 감동받아 울고불고 난리치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집에 가면 똑 같아요. 변하는 것이 하나도 없어요.

피정강사가 5년 10년 이 본당에 본당신부를 한들, 말씀을 듣고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죠.

바로 그런 사람들이 구약의 인간입니다.

그러면서 말씀은 들을 필요도 없고 자기는 의인이라 생각하죠.

 

이 말씀의 불감증은 열매가 없습니다.

본인은 열매를 맺었다고 하지만 다 쭉정이만 맺은 사람들이죠.

 

두 번째 불감증은 은총의 불감증입니다.

이 은총의 불감증에 걸리면 은총을 찾아다녀요.

은총은 찾아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와있는 은총을 겸손하게 발견하는 거죠.

내 삶의 역사 가운데 얼마나 하느님이 축복을 내려주셨는지,

지나온 길을 보면서 불만을 토로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하는 것이 그 병으로부터 탈출하는 길입니다.

여러분이 집에서 은총을 발견 못하면 성당에 와서 발견 못합니다.

여러분이 사는 가족끼리 서로 은총을 발견하지 못하면 교황님을 만나도 못 받아요.

하느님을 만나도 못 받아요.

은총의 불감증 환자들은 ‘은총 찾아 삼만리’ 입니다.

 

은총은 찾아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와있는 은총을 겸손하게 발견하고,

두 번째는 고백하고,

세 번째는 감사하고

마지막 단계는 봉헌까지 이르러야 해요.

 

입으로만 감사 백번해도 소용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병환자들을 고쳐주시고,

너희가 낫다는 것을 사제에게 보이고 모세가 일러준 대로 예물을 드리라고 했습니다.

감사까지 이르는 사람도 많지 않지만,

마음 절절이 감사한다고 하면서 입으로만 끝내는 사람이 대부분이에요.

 

내가 자주 얘기 하죠?

사제생활하면서 천주교 신자보다 개신교신자들에게 감사예물을 훨씬 더 많이 받았어요.

‘저 감리교인입니다. 평화방송 강의 듣고 신부님께 감사예물 드리러 왔습니다.

은총의 불감증 환자는 은총을 느끼지도 못 하지만,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감사할 줄도 모르고,

봉헌까지도 절대 이르지 못합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불감증은 죄의 불감증이라고 했습니다.

죄를 짓고도 죄가 아니라고 합니다.

미사 때는 자기 탓이라고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하면서

마음속으로는 ‘니 놈 탓이야, 니 놈 탓이야, 너의 큰 탓이야!’ 합니다.

다 남의 탓입니다. 내 탓이라고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오늘 바리새이는 성전 앞까지 와서 자신만만하게 꼿꼿하게 써서 머리를 빳빳하게 쳐들고,

 ‘저 왔어요. 주님, 저 아시죠? 제가 살아온 것도 아시죠? 저는 강도짓 한 적도 간음한 적도 없어요.

제가 잘 하는 거 너무 잘 아시잖아요?. 저는 십일조 칼같이 바쳤구요. 일주일에 2번, 어떤 일이 있어도 단식 했어요.

아 이정도면 저 훌륭하지 않습니까? 저기 바깥에 있는 저 세리와는 비교도 안 돼요.‘

그런데 놀랍게도 그 날 의인으로 인정받고 돌아간 사람은 스스로 의인인 척 했던 바리사이가 아니라 누구였습니까?

그렿죠. 세리는 성당 밖에서 고개도 못 들고 하느님을 볼 용기도 없었어요.

그리고 손을 모으고 무슨 기도만 했느냐?

‘주님, 죄인 왔습니다. 죄인 왔습니다. 자비를 베풀어주세요. 자비를 베풀어주세요.’

본인이 죄인임을 알면 자동으로 나와야 되는 기도는 자비를 청하는 것 뿐 입니다.

본인이 죄인인데 어떤 은총을 바라겠습니까?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는 것 뿐 이죠.

 

예수님은 오늘 건방을 떨고 간 사람과 본인이 죄인인 것을 알고 자비를 청한 또 한 사람 중

하느님께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고 집으로 간 사람은 세리라고 하십니다.

 

신앙인이 되려고 애를 써 가는 것이 신앙의 여정입니다

세례 받는 그 순간부터 신앙인이 되기는 쉽지 않아요.

누구나가 종교란에 종교를 쓸 수 있는 종교인으로 시작하죠.

그런데 그렇게 살아가면서 사람 중심의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하느님보다도 늘 사람을 보고 신앙생활을 해요.

자기보다 영성적으로 나은 사람을 본받기보다는 시기 질투해요.

또 자기보다 영성적으로 못한 사람은 얼마나 무시하는지 몰라요. 교만하죠.

 

우리들이 신앙생활하면서 정말 반복해서 묵상해야 될 것이 무엇인가?

‘내 가슴 한 가운데 사람이 가득 차 있느냐, 아니면 하느님이 가득 차 있는가?’

사람보고 성당 나가면 죽을 때까지 수십 번 냉담할 수밖에 없어요.

내 눈앞에 열심히 살아가는 저분도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걸 알고,

내 앞에 있는 그 열심한 사람이 예수님보다 윗자리에 올라가 있으면 안 된다 이거죠.

사람은 믿을 대상이 아니고 신뢰하려고 애쓰는 대상이라 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신의’라는 다리가 놓여있고

그 다리가 무너지지 않으려면 ‘분별’이라는 나사로 늘 조이고 확인해야합니다.

반대로 지금은 열심하지 못한 자매가 나중에는 성녀가 될 수도 있음을 생각해야합니다.

즉 사람중심의 신앙생활에서 하느님중심 예수님중심의 삶으로 옮아가야 됩니다.

 

우리는 내 자신을 하느님 앞에서 반성할 때마다

 ‘나는 냉담하고 있는 아무개보다 열심한가?‘ 하면 당연히 열심한 것처럼 보일 겁니다.

냉담중인 남편보다 주일 지키는 부인은 남편보다는 의인이라 착각합니다.

입만 열면 떠벌리는 자매보다는 입 다물고 사는 내가 더 의인이라 착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비교의 대상이 아니죠.

오로지 우리의 비교의 대상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나는 예수님만큼 기도하고 사는가?

나는 예수님만큼 봉사하는가?

나는 예수님만큼 나누며 살아가는가?

예수님이 나누어 주신 것을 생각하면 내가 어쩌다 나누는 것은 나누는 것도 아닙니다.

결국에는 내 만족뿐이 안 되었던 것입니다.

필리피서 1장 21절(공동번역, 성서)에 ‘나에게는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입니다.’

 

‘죄 많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고 했던 세리가 됩시다.

그리고 이 성당에서 나갈 때 의인으로 인정받아 나가기 위해 세리의 기도를 합시다.

첫째, 내가 죄인임을 인정하는 겁니다. 아까 죄의 불감증 이야기했죠?

둘째, 지난 한 주일 받은 은총에 감사합니다. 저를 지켜주신 주님 감사합니다.

저는 이제까지 은총의 불감증으로 살았습니다.

셋째, 이제부터 말씀을 듣고 지식으로만 쌓는 것이 아니라 작은 열매라도 맺으려 노력하겠습니다.

 

‘주님,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는 기도를 했을 때 비로소 여러분들이 성당 나갈 때

예수님에게 ‘그래, 제가 의로운 사람이다.’ 하고 인정받을 것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바리새이가 아니라 의를 향해 나가는 세리 쪽에 서도록 애씁시다.

아멘

 

♣2019년 연중 제30주일(10/27) 서운동성당 김웅열(느티나무) 신부님 강론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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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펠릭스1254 (2019/12/17 09:5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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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멘~
  
  백발 (2019/12/17 10:0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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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멘, 김웅열(토마스 아퀴나스)신부님, 강론말씀감사드립니다, 신부님, 영육간에건강하시고 하느님의은총이 충만하시기르기도드립니다, 아   멘,~~~
  
  요셉 (2019/12/17 13:5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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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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