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열명의 나병환자

글쓴이 :  하늘호수♡님이 2019-12-03 21:30:32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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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예수님

입장하고 성호를 그으면서 저기 위의 성가대부터 쭉 신자들 얼굴 한 번씩 훑어봐요.

오늘은 왜 저 형제는 얼굴이 우거지상인가, 뭐 싸우고 왔나?

오늘 저 자매는 참 밝다 일주일 내내 좋은 일 있었나보다 하고 생각해요.

 

어렸을 때 보면 상이군인 용사가 많이 다녔죠.

갈고리도 하신 분도 있고, 행패도 좀 부린 것 같았고, 어릴 때는 좀 무서웠어요.

하긴 전쟁터에서 손 잘렸는데 나라가 보상을 잘 해주던 시절도 아니었죠.

또 비슷하게 무섭게 다니시던 분이 있었어요. 문둥이들. 나병환자들.

나라에서는 그 분들을 격리를 시켰어요. 그 중 하나가 소록도죠.

이 병은 일단 병에 걸리면 집안에서도 격리가 되어요.

 

오늘 복음에 나온 나병환자 10명도 동네 한 가운데 살았던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때도 철저하게 죽은 사람 취급했죠.

동네에서 뚝 떨어진 산, 굴에서 가끔 식구들이 굴 앞에 두는 빵으로 연명했죠.

자식, 아내, 남편에게도 버림을 받아 마지못해 사는데, 동굴 밖 외치는 소리를 듣죠.

‘들리세요? 죽은 사람도 살렸던 예수님이 우리 동네 지나가신대요!’

동굴 안 썩은 고름 내를 맡으며 죽을 날만 기다리던 사람 중 몇 명이 움찔거립니다.

‘이게 무슨 소리야? 죽은 사람도 살렸던 예수님이시라면 나병은 병도 아니잖아?’

옆에 사람을 깨웁니다. 그렇게 10명이 만들어져요.

10명은 손가락도 없는 손으로 얼굴도 몸도 더러운 천으로 친친 감습니다.

발가락도 없으니 걷는 것이 불편한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10명이 산을 내려옵니다.

누구 만나러? 예수님 만나러.

그러면서 다짐하죠. ‘돌이 날아와 가다가 죽는 한이 있어도 가까이 가서 죽자.’

당시에는 문둥이들이 동네로 들어오면 돌로 처 죽여도도 죄가 되지 않았어요.

오늘 복음에는 너무 자연스럽게 예수님 계신 쪽으로 10명의 나병환자들이 찾아왔다고 하지만

그 찾아오기까지의 과정은 목숨을 걸고 찾아온 거지요.

아마 그 굴속에는 10명만 있던 것은 아닐 겁니다.

어떤 이는 이미 팔다리가 없어서, 또 어떤 이는 두려움 때문에 못나왔을 겁니다.

아무튼 10명이 예수님을 향해서 갑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보고 서 있었기에 나병환자가 뒤쪽에서 오는 걸 못 봤을 거예요.

그러다 한 사람이 냄새가 나 돌아보니 세상에!

얼굴을 칭칭 감은 나병환자 10명이서 뒤에 서있는 거야.

‘문둥이다’! 하고 소리 질렀을 겁니다.

그러자 그래도 혓바닥이라도 제대로 있는 나병환자 하나가 저만치서 소리를 지르죠.

‘예수님! 스승님!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예수님도 들으셨을 겁니다.

특별히 나병환자에 대한 사랑이 깊으신 예수님은 나병환자가 오면 그 쪽으로 가셨죠.

그리고 말로만으로도 치유가 될 텐데 꼭 몸에 손을 대시면서 치유해주셨죠.

그런데 이 날은 얼마나 쌀쌀 맞으신지. 가까이 오시지도 않으면서 한마디 툭하시죠.

‘사제에게 너희 몸을 보여. 그리고 몸 보인 다음에 예물 드려.’

그리고 냉정하게 뒤도 안 돌아보시는 거예요.

 

10명의 나병환자들은 ‘뭘까? 사랑이 많은 분 이라했는데, 목숨을 걸고 내려왔는데.

사제에게 가서 몸을 보이라는 말뜻은 무엇이지?

사제는 동네 한 가운데 사니, 동네 한 가운데를 지나가란 말인데, 돌에 맞아 죽으라는 뜻인가?‘

그 10명은 잠시 망설였죠.

‘거봐, 괜히 내려 왔잖아. 내려오면서도 기분이 이상했어.’

‘아니 죽으라는 이야기지. 동네로 들어가라니!’

그런데 누가 말합니다.

‘괜찮아. 여기까지 내려왔는데 두려울 것이 뭐 있어?

사제 만나러 가다 돌에 맞아 죽으면 죽는 거고. 그래도 저 양반 말은 들은 건 아닌가? 자, 갑시다!’

10명이 다시 다리를 끕니다.

다른 유대인들은 돌멩이를 다들 하나씩 집어 들었어요.

한 사람이 여차하고 던지면 수백 개의 돌멩이가 그들을 향해 날라 갈 상황이었죠.

 

예수님도 그 광경을 분명히 보고 계셨을 거예요.

예수님의 그 차가운 말 한 마디에도 순명하면서 사제를 향하여 가는 그들이었어요.

그런데 사제에게 도달하기도 전에 어떻게 된 거에요? 병이 나은 거예요.

오늘 여러분들은 집에서 이 성당을 향하여 오면서 이미 치유가 되신 거예요.

하느님의 집을 향하여 길을 나서는 그 순간부터 하느님은 치유를 시작하신 겁니다

10명의 나병환자들은 얼마나 기뻤겠어요?

“거봐 저분 말 듣기를 천만 다행이지”

 

그런데 그 다음부터 우리에게 많은 묵상거리를 주는 사건이 생기죠?

그 10명 가운데 1명이 외국인이었던 사마리아 사람이에요

평상시 같으면 유대인과 사마리아 사람들은 절대로 같이 할 수가 없어요.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은 지옥의 땔감으로 쓸 수밖에 없는 족속들이라며 무시했죠.

그런데 나병이라는 공통적인 고통 한가운데서는 한 굴속에서 살았다 이겁니다

그리고 사마리아 사람의 손을 잡고 예수님께 왔다 이겁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교훈을 배웁니다.

 

나나 여러분, 우리들을 다 영적으로 죄인이라는 병자들입니다.

다시 말하면 죄의 상처 때문에 늘 고통 중에 있는 죄인들이죠.

우리가 서로 하느님 앞에 같은 죄인이라는 것을 깊이 의식하고 있을 때는,

이 공동체 안에서 다른 사람 업신여길 수가 없어요. 다른 사람 멸시할 수가 없어요.

동물의 왕국이라는 프로 있죠?

홍수가 나서 짐승들이 막 떠내려니 큰 나무에 짐승들이 목숨을 걸고 올라가요.

그런데 어느 사진작가가 멀리서 촬영했더니 그 나무 위에 표범이랑 사슴이 있어요.

평상시면 서로 죽이고 먹히는 사이지만, 서로 잡아먹지 않고 도망가지도 않더래요.

원수지간 사이인데도 불구하고 서로가 불운에 처해 있을 때는 모든 장벽이 허물어집니다.

문둔병이라는 공통 비극 속에서 그들에게 있어서 종족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고통당할 때는 평등해집니다. 겸손해집니다.

도저히 친구가 될 수 없는 사람들도 고통을 통해서 가까워질 때가 있다는 이야기죠.

 

이렇게 열 사람은 예수님의 말 그대로 순명하여 사제 쪽으로 가다가 병이 낫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다음부터!

병이 낫다고 예수님 앞에 한 걸음으로 달려와 ‘감사합니다.’ 한 사람은 누구에요?

유대인들이 아니었어요. 사마리아 사람이었죠.

예수님도 기가 막혀서 ‘아니, 다른 아홉은 어디 간 거야? 분명히 10명을 고쳐줬는데‘

 

이 아홉의 행방에 대해 수많은 성서학자들이 연구를 했고 저도 해서 결과가 나왔죠.

아직 논문에도 발표를 안 한 건데 서운동 신자들에게 특별히 알려드릴게요.

그 9명은 병이 낫자마자 예수님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죠. 그래서 세 명씩 딴 짓을 했죠.

 

병이 낫자마자 세 명은 몽둥이를 찾아서 마누라 뚜드려 패러 갔다는 거예요.

왜? 병 들었다고 마누라가 날 버렸거든. 딴 놈이랑 살림 차렸거든요.

육신이 나니 죽은 줄 알았던 그 미움과 분노가 살아나요.

하느님이 우리를 치유하실 때 경계해야할 것은 ‘미움의 마귀, 분노의 마귀’예요.

몸이 정말 아플 때는 미워하고 싶어도 미워할 힘도 없어요.

그렇죠? 누구를 한 대 가서 패고 싶어도 팰 힘도 없어. 너무 몸이 아플 때는.

그런데 육신의 병이 낫고 힘이 솟으니까 분노의 마귀가 다시 어둠을 가지고 장난을 해요.

마누라가 맞았는지는 확인되지는 않았어요.

 

그리고 그 다음에 또 3사람, 이 양반들은 술집을 갔대요.

몸이 나니 술 생각이 나는 거야, 술 마귀가 다시 들어온 거죠.

그동안 못 먹었던 술, 밤새 마시자. 이건 술집 주인들의 증언을 들었으니 사실이에요

 

이제 몇 사람 남았어요? 세 사람.

이 세 사람의 행적을 찾는 것이 힘들었어요. 한 3년 걸렸습니다.

이 사람들은 오늘 밤새 여자 맛 좀 보자 하면서 창녀촌으로 간 거예요.

음란마귀가 들어온 거죠.

 

우리가 치유되는 것을 마귀는 가만히 보고 두지를 않아요.

마귀 3형제인 분노마귀, 음란마귀, 술마귀가 죽을힘을 다해 쫒아온다 해요.

그래서 우리는 치유 받고 난 다음에, 우리 안의 더러운 것을 모두 끄집어 낸 다음에는

그 안에는 무엇을 넣어야 하느냐?

금요일 복음이었죠?

집이 깨끗해진 것을 알면 마귀가 나갔다가 더 힘센 마귀 일곱을 끌고 온다고 했어요.

그 마귀들이 오기 전에 집만 깨끗이 해두면 안 돼요.

그 안에 성령의 열매로 채워놔야 합니다.

치유 받고 은혜 받은 사람들은 잘못하면 마귀한테 휘둘림을 받기 쉽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복음은 감사가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천국에 가면 세 부서가 있대요.

어느 사람이 죽어 천국에 갔대요.

베드로사도의 손에 이끌려 가보니 사무실이 꽉 차있어. ‘여기는 뭐하는 뎁니까?’

사람들이 청원의 편지 올리면, 도와달라고 하면 그 편지를 접수하는 ‘접수처’래요.

얼마나 편지가 많이 올라오는지 천사들이 접수해서 일일이 다 적느라 정신이 없어.

 

그리고 한참 가다보니 두 번째 사무실이 있는데 거기선 더 바뻐.

팻말를 보니까 ‘발송처’.

청원의 편지에 대해서 일일이 은총으로 포장해서 택배를 붙여야 하니 너무 바빴어요.

 

그러다 한참 가다가 세 번째 부서, 확인처에 도착했더니 거긴 웬걸 사람이 하나도 없어

뭘 확인한다는 거예요?

은총을 보냈는데 그것을 받았다는 답을 확인하는 확인처예요.

확인처 천사들은 할 일이 없다면서 베드로 사도가 아주 서글픈 얼굴로 말했죠.

‘참 슬픈 일이야. 사람들은 급할 때는 살려달라고 그렇게 부탁을 해서, 천국에서는 열심히 축복을 보내고

 해결책을 보내고 그 청원에 대한 답을 열심히 하는데! 그런데 기도에 응답과 축복을 받고 나서

 ’잘 받았습니다.‘는 확인서를 보내는 인간이 없어 그래서 확인처는 이렇게 사람들이 놀고먹네.”

 

그래서 베드로와 같이 있던 영혼은 또 물었죠.

‘그럼 하느님의 축복에 어떻게 확인서를 보냅니까?’

‘어려운 거 아냐, 주님 감사합니다!. 그 한마디만 하면 되’

 

오늘 복음에 나오는 10명의 유대인들은 목숨을 걸고 예수님 앞에 와 병이 낫습니다.

그런데 그 중 아홉은 어디를 갔다고요?

술집 가고, 자기 업신여기던 사람 패러가고, 음욕을 채우러 가고, 감사 안한다 이거죠.

주님께 감사드리러 온 사람은 10명 중 이방인 한 사람뿐이었다는 겁니다.

그들처럼 우리들의 삶도 그렇게 살지는 않았는가?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지는 않는가?

 

우리 모두는 단 일분일초라도 하느님의 보살핌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피조물입니다.

하루를 살아가면서 예기치 못했던 불행과 사고의 얼음판 위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지요.

신문이나 라디오 텔레비전을 통해서 수많은 사고를 우리는 매일 접합니다.

그게 내 일이 아니라고 우리 가족들의 일이 아니라고 어느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지금까지 건재합니다.

이 어찌 하느님의 보호하심에 감사드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리는 너무나 감사에 인색하게 살아갑니다.

공기의 고마움을 모르고 살아가듯이 그저 고마움을 잊고 살아갑니다.

아주 조그만 일, 오늘 아침에 새 날을 맞이하게 해주신 것, 얼마나 감사할 겁니까?

아침에 눈 뜨게 해주신 것, 숨 쉬게 해주신 것 얼마나 감사할 겁니까?

학교나 직장에서 하루하루 무사히 마치고 돌아온 일, 감사거리요

온 집안이 건강한 일 감사거리요.

손주가 걸음마하고 아픈데 없이 장애상태로 태어난 것 감사거리요.

앞마당 감나무에 감이 풍성히 열리고 곡식이 결실 맺도록 햇빛이 비춰주심도 감사거리요,

계절의 변화로 빨갛게 노랗게 단풍이 들어 아름다움이 더해주게 하신 것도 감사거리요,

집안의 복실 강아지가 오늘도 주인을 알아보고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것도 감사거리요,

해와 달과 별과 공기와 바람과 더위와 추위든 나에게 간접적으로 도움 주는 모든 것들,

그리고 많은 사람들, 하다못해 택배 아저씨들까지도, 특별히 나를 낳아주셨던 부모님,

나를 영세 받도록 이끌어주셨던 은인들, 하느님께서 나를 당신의 자녀로 불러주신 것,

그리고 고해성사를 통해 사죄 받고 미사에 참여하여 주님의 성체를 영하는 등등등등!

얼마나 하느님께 ‘감사합니다!’ 할 거리가 많은가!

 

이럼에도 천국의 접수처와 발송처는 바빠도 확인처에는 천사들이 할 일이 없답니다.

10명 가운데 한 놈이 딴짓하고 9명이 왔다면 예수님 그렇게 서운하지 않으셨을 거예요.

그런데 세상에 10명 가운데 10명을 고쳐줬는데 9명은 안 온 거에요.

여러분 꽃동네 가보셨죠? 꽃동네 올라가다 보면 큰 돌멩이에다 뭐라고 써 있죠?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주님의 은총입니다.’

그거 가지고는 약해요.

‘내가 두 다리로 성당 문턱 드나들 수 있는 것만으로도 주님 은총이요,

내가 두 눈을 떠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주님의 은총이요,

내 손가락에다 묵주를 걸고 묵주를 굴릴 수 있는 것만 해도 주님의 은총이에요.’

다 자기가 잘나서 숨 쉬고 살아가는 줄 알고 아침에 눈 뜨는 줄 알지만 아닙니다.

 

‘어떤 처지에서든지 항상 감사하십시오.’

이 말씀을 생각할 때 감사할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몸이 깨끗해진 사람이 열 사람이 아니었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딜 갔느냐?

하느님께 찬양 드리러 돌아온 사람은 어찌 이 이방인 한 사람 밖에 없단 말이냐?

 

오늘 복음의 치유만 받은 아홉 사람이 아니라 감사드리러 온 한 사람이 되려고 애씁시다.

 

아멘

 

♣2019년 연중 제28주일(10/13) 서운동성당 김웅열(느티나무) 신부님 강론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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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발 (2019/12/04 09:2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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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멘, 김웅열(토마스 아퀴나스)신부님, 강론말씀감사드립니다, 신부님, 영육간에건강하시고하느님의은총이 충만하시기를기도드립니다, 아    멘~~~
  
  펠릭스1254 (2019/12/04 09:5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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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멘~
  
  lovega (2019/12/06 14:4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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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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