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혼란스러울 때는 전통으로 돌아가라.’

글쓴이 :  하늘호수♡님이 2019-11-26 22:07:44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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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예수님

 

미사도 정성껏 드리고 강론도 열심히 하는 거룩한 사제인 본당신부님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 신부님이 고민에 빠졌어요.

이상하게 성체를 줄 때 자꾸 신자들이 수녀님께만 가고 자기 줄은 줄어드는 거예요.

어찌된 일인가 고민하다 총회장에게 물었죠.

‘혹시 신자들이 내게 무슨 감정이 있습니까?’

회장님은 머뭇거리다 대답했어요.

‘신부님, 노여워 마세요. 신부님이 코를 후빌 때 성체 주는 두 번째 손가락을 이용하는 것을 본당 신자들이

많아 보았어요. 그것이 소문이 나서 그래요. 죄송합니다.’

신부님은 웃으면서 다음부터는 왼손으로 코를 후벼야지 했다는 이야기!

 

공인들은 말 한마디 행동거지 하나가 많은 영항을 줍니다.

정치가도 그렇고 본을 보여야 된 사람들이 잘못한 것이 있으면 많은 스캔들이 되요.

스캔들이라고 하는 것은 라틴어의 ‘scandalum’ ‘걸려서 넘어지게 하다’는 뜻입니다.

사제가 잘 못 살면 사제 때문에 신자들이 걸려 넘어집니다.

수녀가 제대로 못 살았을 때는 신자들이 수녀를 보고 걸려 넘어집니다.

부모가 자식 앞에 제대로 못 살았을 때는 자식이 부모보고 걸려 넘어집니다.

성당 나가려는 며느리가 시어머니 때문에 자꾸 걸려 넘어져 신앙생활을 포기합니다.

어떤 위치에 있든 어떤 말을 하든 우리들은 나도 모르게 많은 영향을 주고, 또 그 영향 때문에 삶이 밝게도 하고

 어둡게도 만들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하루하루 내가 만나는 사람 앞에서 조심해야합니다.

 

요즘 세상은 평화로운가요 아니면 혼란스러운가요?

뉴스를 켜면 평화가 깨어져버리는, 앞날이 불확실한 시대입니다.

과연 우리들은 하느님의 구원계획 역사 가운데 지금 어디쯤 와 있을까?

궁금할 필요가 없지만 또 어떤 때는 궁금해져요.

요즘은 믿음이 없는 사람들 입에서도 ‘에휴, 인간들 이러다 천벌 받지.’ 합니다.

 

창조주 하느님이 세상과 인간을 만들 때부터 파괴할 계획을 가지고 만드셨겠습니까?

아니지요.

작가는 영원히 그 작품이 지속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작품을 만듭니다.

그런데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는데, 그것으로 세상을 다 망가뜨리고 있죠.

위에서 내려다보시는 그분이 우리 인간들의 만행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실까?

 

하느님의 뜻이 우리들이 알아듣게 표현된 것을 ‘계시’ 라고 합니다.

계시는 공적인 계시가 있고 사적인 계시가 있죠.

공적인 계시는 요한 묵시록으로 끝이 났습니다.

그 이후에 2천 년 동안은 사적인 계시가 계속해서 전달되어 옵니다.

성인들을 통해서도, 본당신부님의 강론을 통해서도 하느님의 뜻이 전달됩니다.

이러한 것들도 어떤 의미에서 사적계시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계시가운데, 가장 정확하고 가장 권위있는 계시는,

누구보다도 하느님의 그 마음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분, 성모님을 통해 전달된 계시입니다.

성모님을 통해서 전달된 계시는 성모님이 직접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경우도 있었고,

또 어떤 사람을 택해 그 사람의 입을 통해 하느님의 뜻을 알려주시는 경우도 있었죠.

성모님이 선택하여 하느님의 나라를 이 땅에 구현하기 위해

성모님의 군대를 만드는데 중개인이 되었던 성인이 바로 성 루도비꼬 이시죠.

레지오 마리애가 그렇게 탄생되었습니다.

막시밀리안 꼴배신부님을 통해서 성모님의 기사가 만들어집니다.

이렇게 성모님은 무너져 내리는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특별한 사람들을 선택하여 하느님의 계시를 전합니다.

성모님을 통한 하느님의 뜻을 보면 지금 우리시대가 어디쯤인지 짐작하게 합니다.

성모님의 메시지를 종합해보면 지금의 우리 시대를 ‘환난의 시대’라고 합니다.

 

환난의 시대 한가운데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은 이미 2천 년 전에 예수님이 마태복음을 통해서 알려주셨고,

그 후 성모님께서는 더 구체적이고 확실하게 알려주셨습니다.

 

지금이 환난의 시대라고 하는 최소의 6가지 징표가 있습니다.

첫 번째 징표 ‘오류가 전 세상에, 특별히 교회 안에 오류가 퍼지고 있다.’

‘가톨릭이 세상을 향하여 열려있다’ 라는 명목 하에

바티칸 공의회의 이전에 정말로 귀중했던 전통들이 많이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이것이 개신교인지 천주교인지 여호와증인지 구별이 잘 안됩니다.

지금은 신부인지 목사인지 구별이 잘 안됩니다.

목사님은 멀리서도 목사님 냄새가, 신부님은 멀리서도 신부님 냄새가 나야 됩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다음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교회의 유리창 틈으로 어두운 연기가 들어와 오류를 퍼뜨리고 있다.’

때로는 저명한 신학자들에 의해 오류가 번져나간다 했습니다.

맑은 물에 잉크 한 방울만 떨어뜨리면 순식간에 파란 물이 되듯이,

 마귀는 때로는 저명한 신학자들을 휘어잡아서 그 신학자의 입을 통해 신자들의 판단을 흐리게 합니다.

이 오류를 막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저는 한평생을 신자들을 가리키면서 이 이야기를 정말 많이 했습니다.

‘혼란스러울 때는 전통으로 돌아가라.’

이 환난의 시대의 오류를 맞설 수 있는 새로운 해법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초가 튼튼하지 않으면 냉담자가 될 수밖에 없고 신천지에 끌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한 평생 특별한 걸 가르친 게 아닙니다.

천주교의 전통교리를 가르치려도 무던히도 애섰습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질러가는 방법이 없다’.

‘신앙과 구원은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다.’

‘신앙과 구원은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응답의 문제다.’

50년 60년을 천주교 신자로 살아도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산 사람과,

단 일년을 천주교신자로 살았지만 뜨겁게 산 사람 중 하느님은 누구를 택하실 것인가?

구원은 기간보다 얼마나 성실하게 응답하면서 살았는가의 문제입니다.

응답은 다른 말로 열매입니다. 열매를 맺고 살았느냐?

늦게 가더라도 한 방향만 향해 길을 나서는 것이 바로 신앙의 여정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혼란스러울 때는 뭐라고요? 전통으로 돌아가요

우리 전통의 기본적인 것들 무엇이 있습니까?

아침에는 눈 뜨면 조과 바쳤습니다.

식사 때 외인들과 먹어도 식사전후 기도 정성껏 바쳤습니다.

저녁에 아무리 육신이 피곤해도 저녁 만과 바쳐야 하루 끝나는 줄 알았습니다.

아무리 꾀가 나도 시간만 나면 묵주를 들고 매괴신공 드렸습니다.

이건 기초 중의 가장 기초입니다.

어마어마한 저수지가 작은 구멍 하나로 무너지듯, 일상기도생활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다 무너집니다.

성당에는 체면과 자존심 때문에 나가는 종교인이지 절대 신앙인이 될 수 없습니다.

 

환난의 시대에 두 번째 징표는 ‘독성죄가 만연하고 있다’라고 하십니다.

독성죄는 거룩한 것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각 분야, 문화 예술에 걸쳐서 독성죄가 퍼져 있지 않은 데가 없습니다.

영화감독을 마귀가 휘어잡으면 사탄의 영화를 만듭니다.

소설가를 마귀가 휘어잡으면 그 소설가의 펜대에 의해 사탄의 소설이 만들어집니다.

요즘 일 년에 한 편씩 구마 에 관련된 영화가 나옵니다.

물론 그 뒤에는 제가 시나리오부터 감수까지 깊이 관련 하고 있습니다.

그 젊은 감독들이 돈 벌려고 구마 영화 만드는 거 아닙니다.

저는 그 젊은 감독들과 기도하면서 말했어요.

‘이 세상에 마귀가 있다는 걸 알려야 하느님이 계시다는 것도 알 수 있다.

당신들이 시도하는 것이 비록 작은 걸음일지 모르고 영화도 쪽박 찰지 몰라도

하느님책에는 크게 기록될 것이다. 힘을 냅시다.‘

 

세 번째로 환난의 시대에 징표는 ‘전 세계에 전쟁과 기아가 퍼진다.’

부연설명이 필요 없을 겁니다.

얼마나 많은 전쟁과 테러가 지금 일어나고 있습니까?

전쟁을 피하다 굻어죽습니다.

UN통계에 의하면 1초에 5천명이 죽는다고 합니다.

불쌍한 나자로가 1초에 5천 명씩 생긴다고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나자로는 게을러서가 아니라,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이 안 되고,

누군가 도와주지 않으면 그 상황을 헤쳐나 갈 수없는 사람의 표징으로 나타납니다.

단지 게을러서만 굶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밥알 하나 입에 넣어도 감사하십니다.

식탁에 떨어진 밥알 하나 버리지 말고 굶는 사람들을 생각하십시오.

 

네 번째 환난의 시대에 징표는 ‘자연이변현상이 일어난다.’

사막에 눈이 오고, 열대물고기가 서해에서 잡히고, 자연현상이 다 뒤집어 집니다.

그 원인을 만든 것은 누구입니까?

사람들, 사람들이 지구를 다 망가뜨리고 있지 않습니까?

샴푸 2번 쓰시는 분, 반으로 줄이십시오.

공장폐수보다 가정폐수가 훨씬 양이 많습니다.

저는 오래 전부터 비누만으로 세수와 머리를 감습니다.

작은 것이지만 이 지구를 살리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하는 마음입니다.

그래도 제 머리와 얼굴 때깔 좋죠?

 

다섯 번째 환난의 시대 징표는 ‘거짓예언자들이 출몰한다.’

여기저기 거짓예언자가 나타나고, 모두 자기가 재림예수라고 합니다.

그리고 돈을 긁어모으고 가정을 파탄시키고 신자들을 성추행합니다.

거짓예언자의 출몰, 이미 2천 년 전 예수님께서 얘기하신 겁니다.

 

마지막 여섯 번째 환난의 시대에 징표는 ‘전세계에 복음이 퍼질 것이다.’

이천년 전에는 유다땅에만, 그 다음 제자들이 외국으로 나가면서 조금씩 복음이 퍼졌지만,

요즘은 라디오만 틀면 전세계 어디서나 기독교 방송이 들립니다.

 

이 6가지가 바로 공적계시와 사적계시를 통해 나타난 환난에 시대의 징표입니다.

우리는 위 6가지에 모두 해당되는 분명 환난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 환난의 시대가 지나면, 주님의 재림이 온다고 하였습니다.

주님의 재림은 육의 재림이 아니라 영의 재림이 올 것이다.

그러면 주님이 영적으로 재림하셨음을 우리는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을까?

전세계 모든 사람이 하느님을 믿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무신론자도, 불자도 하느님을 믿게 되고 영적인 세례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이 다시 오셨다고 하는 징표 입니다

그리고 그 후에 천년왕국이 시작하게 됩니다.

 

사이비집단들이 잘 이용하는 ‘천년왕국’은 999년 다음의 천년이라는 개념이 아닙니다.

천년왕국이라는 것은 마지막 정화의 시기입니다.

여러분들 세례를 받았다고 해도 죄를 짓습니다. 그래서 고백성사를 봅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이 오시어 모두 영적세례를 받는다 해도 분명 죄에 떨어집니다.

그래서 이 천년왕국이라는 그 기간 동안 정화를 시켜야합니다.

시편에는 천년도 하루 같고 하루도 천년 같다고 그랬어요.

초대 교회는 예수님 재림이 곧 올 줄 알고 바오로사도는 가능한 결혼하지 말라했죠.

그런데 아직도 기다리지요?

그럼 ‘내 시대 때에 오시나, 내 자식 때 오시나?’ 그렇게 판단하지 마십시오.

우리 계산으로는 2천 년이 흘렀어도 하느님 계산으로는 이틀만 흘렀을 수 있습니다.

 

이 천년왕국이 끝나면 성경에 나오는 세상종말이 온다는 그 말입니다.

엄격한 개인 심판입니다

부부가 한 침상에서 자다가 하나는 지옥으로 떨어지고 하나는 천국으로 갈 것이요.

둘이 맷돌질 하다가 하나는 천국으로, 하나는 지옥으로 떨어진다는 겁니다.

 

노스트라다무스같은 세상 예언자들의 마지막 예언은 ‘반드시 인간은 멸망한다’입니다.

그런데 성모님의 메시지는 ‘최후의 심판을 거두어 드리실 수 있다.’입니다.

단 조건은? 너희가 서로 사랑하고, 나누고, 용서하고, 봉사하고 살면.

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든 작가인 하느님이 이 세상을 파괴하려고 안달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거지요

하느님은 어떻게 쓰는지 세상을 살려보려고 많은 예언자를 보내고, 성인성녀의 삶을 통해 배우라 하시고,

피정을 시키는 사제의 입을 통해 얼마나 많은 일침을 주십니까?

그것을 듣고 서로 사랑하면, 서로 용서하면, 서로 아끼고 살면, 서로 받아들이고 살면,

서로 화를 거두려 애쓰고 산다면 최후의 심판은 없다는 겁니다.

세상 예언자들은 우리의 회개와 상관없이 지구 종말을 예언합니다.

성모님의 메시지와 그들의 차이는 바로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최후의 심판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너부터 회개하라고 손가락질 할게 아니라 나부터 회개하자.

너부터 나를 용서할 것이 아니라 나부터 용서를 시작하자.

너부터 봉사해라가 아니라 나부터 봉사하는 거예요

너부터 내놓으면 나도 내놓을게, 그것이 아니지요.

 

성모님은 이 환난의 시대에 우리들에게 울타리를 마련해주셨습니다.

메주고리 성모님이 5개의 흰 돌을 갖고 살면 영적울타리를 만들어줄 것이라 하셨죠.

그 5개의 흰 돌 첫 번째가 ‘단식훈련에 들어가라.’

단식훈련의 목적은 영적분별력에 있습니다.

온 몸에 음식으로 가득 차있으면 정신이 멍하고, 절대 분별이 안됩니다.

제대로 된 스님들은 겨울이면 동안거, 여름이면 하안거 들어가십니다.

비록 몸은 말라가지만 영은 맑아집니다.

영이 맑아지면 엉켰던 실타래의 끝이 보이며 영적 분별력이 생깁니다.

천주교 초대교회에는 단식이라는 훈련방법을 얼마나 귀히 여겼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세월이 가면서 다 없어지고, 재의 수요일과 성금요일 단 두 번만 남았죠.

그런데 이것을 지키는 신자도 30프로가 안됩니다.

천주교가 버린 것을 개신교신자들은 잘 쓰고 있지요.

여러분 주변에 개신교 신자들을 얼마나 철저하게 단식 합니까?

성모님은 환난의 시대에 첫 번째 울타리인 단식을 통해 영의 분별력을 기르라합니다.

 

두번째 울타리는 ‘묵주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지금은 신비가 4개지만, 빛의 신비는 요한바오로 2세가 2000년 초에 선포하셨죠.

전 그 날 많이 울었습니다.

왜냐하면 신학생때부터 묵주기도하면서 왜 예수님의 공생활을 없을까 궁금했거든요.

영성지도신부님께 여쭈어도 옛날부터 3개라만 하시고, 분심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혼자 예수님의 공생활 중 중요한 5개를 찾아서 비밀리 묵상을 해왔지요.

그런데, 세상에, 그 5개중 4개가 일치하는 거예요.

이제는 환희의 신비부터 영광의 신비까지 완전한 모양을 갖춘 관상기도가 됐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관상기도가 바로 로사리오기도입니다.

 

여러분들 감곡 성당에 가 보셨죠? 루르드에 다녀오신 분도 계실 것이고.

감곡이나 루르드에 계신 성모님의 팔에는 5단묵주가 아니라 6단묵주가 걸려있습니다.

처음 감곡에 가니 한평생 성모님을 쳐다보신 92세 할아버지도 6단묵주 모르셨대요.

6단묵주의 유래는 벨라뎃다에게 성모님이 발현하시어 ‘1단만큼은 양보하지 말고 네 영혼구령을 위해 바쳐라.’

하셨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성녀는 수녀원에 들어가서도 6단묵주를 사용했고, 유럽에 6단 묵주가 퍼지기 시작합니다.

지금도 프랑스 신부님들은 6단 묵주로 기도합니다.

그래서 저도 6단 묵주를 만들어 주교님께 선물로 가져갔더니 구설수에 오르니 만들지 말라 하시어 순명했습니다.

전 지금도 5단 바친 후 저를 위해 1단을 더합니다,

여러분도 5단 끝나면 1단은 자기위해 바치세요.

그러면 20단이면, 5단 끝날 때마다 1단씩 더해서 24단을 바치란 말입니다.

 

성모님의 울타리 세 번째는 ‘정기적으로 고백 성사를 보라’ 입니다

정기적으로, 후회가 아니라 회개하라 하십니다.

후회하고 고백소에서 나오면 같은 죄를 1시간도 되지 않아 다시 짓습니다.

회개는 내가 얼마나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는가를 뉘우치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고백소에서 ‘주님, 제가 이런 죄로 인하여 예수성심을 거스렀나이다.’

‘제가 이런 죄로 인하여 성모성심을 거스렸나이다.; 하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자기 지은 죄만 빨리 사해달라 할 뿐인지 이 죄 때문에 하느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시고,

성령님의 마음이 얼마나 슬프신지 헤아리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고백 성사를 들을 수가 없습니다.

참다운 회개는 내 중심이 아니라, 내 몸에 묻은 때 빨리 지워버리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을 먼저 깊이 깨우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후회는 죄 떨어져서 자존심이 상에서 빨리 해결하고 싶은 그 마음뿐입니다.

그래서 후회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계속 같은 죄에 떨어지지만,

회개하면 그 죄로 생긴 성처를 치유 받음을 믿으십시오,

 

성모님의 울타리 네 번째는 ‘가능한 매일 성체를 영하라’고 하셨습니다.

매일이 어려우면 적어도 일주일에 두세번은 성체를 영해야합니다.

고혈압 환자는 매일 혈압약을 먹고, 어디 갈 때도 약부터 챙깁니다.

자기 몸의 혈압약은 그리 챙기면서 천상의 약인 성체는 일주일에 한번으로 족합니까?

지금 이 환난의 시대에는 일주일에 한번 성체 모시고는 버틸 재간이 없습니다.

얼마나 매일 미사가 좋으신 줄 알지요?

하루아침 시작할 때 아니면 저녁에 하루를 마칠 때 미사를 드립니다.

무엇보다도 매일미사의 장점은 헌금이 없다는 사실입니다.(웃음)

이렇게 훌륭한 매일미사를 왜 일주일에 한번만 하려고 합니까?

 

마지막 다섯 번째 성모 울타리는 ‘말씀을 가까이 하라’입니다.

다른 말로 성서를 가까이 해라.

열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읽는 것이 은혜롭고, 열 번 읽는 것보다 한 번 쓰는 것이 더 은혜롭다.

여러분이 살아생전에 아무것도 하느님 앞에 자랑할 것이 없다 해도

여러분의 손으로 열심히 신구약성서 한 번이라도 쓰고 죽었다면 주님이 엄하게 심판하지 않을 겁니다.

 

이 환난의 시대의 성모님의 울타리

첫 번째가 단식, 두 번째가 묵주, 세 번째가 고백성사, 네 번째가 성체, 다섯 번째가 성서, 말씀입니다.

이 5가지 영적무기로 붙들고 살면 여러분도 이 시대를 능히 견디어 내실 것 같지요?

여러분 생각하기에도 능이 이 시대의 견디어 내고, 싸워 이길 것 같지요?

생각만 갖지 말고 실제로 행하십시오.

 

오늘 이 자리에 그런 힘을 주시고자 성모님의 여러분을 이 자리에 불러내시고,

성인들이 여러분을 이 자리에 불러내시고, 순교자들이 여러분이 자리 초대하셨고,

천상의 천사들이, 여러분의 수호천사들이 여러분을 이끌었다는 것을 명심하시고 열심히 살아가도록 해 씁시다.

 아멘

 

♣2019년 10월 은총의 밤 (10/05) 서운동성당 김웅열(느티나무) 신부님 강론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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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펠릭스1254 (2019/11/27 10:2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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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멘~
  
  백발 (2019/11/28 10:3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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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웅열(토마스 아퀴나스)신부님, 강론말씀감사드립니다, 신부님, 영육간에건강하시고 하느님의은총이 충만하시기를기도드립니다, 아   멘~~~
  
  lovega (2019/11/28 15:4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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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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